선천적 갈증 (김주완 시집)

선천적 갈증 (김주완 시집)

$14.00
Description
김주완의 시는 이성적인 철학적 사유思惟를 감성적인 시적 언어로 녹이고 변용해서 다채롭게 떠올린다. 동양 고전에서 따온 구절을 명제로 인유引喩하는 일부 시들은 현학적이며 이성적인 논리에 무게가 실리지만, 대부분의 시는 해박한 지식을 이면裏面에 깔거나 쟁이면서도 자신만의 언어로 부드럽게 풀어 보이려는 데 무게중심이 주어져 있다.
이 같은 시도와 그 흐름은 철학을 전공하는 시인으로서 ‘시 속의 철학’과 ‘철학 속의 시’를 함께 받들더라도 이성의 통로로 나아가는 철학적 관념(서사)들을 감성의 통로로 끌어가면서 승화하고 아우르려는 유연한 시적 지향과 추구에 무게가 옮겨지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시집에 실린 일련의 시에는 존재의 부름에 응답하듯 ‘언어=존재’라는 등식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의 집’ 짓기로 새길을 트고 다지려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특히 미세한 움직임과 아주 작은 소리에서 생명력을 천착해내고, 곡선과 둥긂의 미덕과 정적靜寂과 침묵의 세계를 그윽하게 길어 올리는 견자見者로서의 예지는 각별하게 돋보인다.
우주의 질서에 겸허하게 순응하면서 자신을 낮추고 비우며, 사람을 향한 외경심과 따뜻한 신뢰도 남다른 그는 겸양지덕과 가톨릭적 사유가 어우러져 받쳐주는 사랑과 감사와 용서와 화해로 나아가는 현대판 선비이자 이성을 감성으로 너그럽게 감싸 안는 관용의 시인이라 할 수 있다.
저자

김주완

1949년경북왜관에서태어나구상시인추천으로1984년《현대시학》으로등단했다.경북대철학과를졸업하고계명대대학원에서철학박사(서양예술철학전공)학위를받았다.시집『구름꽃』(1986),『어머니』(1988),『엘리베이터안의20초』(1994),『오르는길이내리는길이다』(2013),『그늘의정체』(2014),『주역서문을읽다』(2016)를냈으며시집『그늘의정체』로세종도서문학나눔(2015)에선정됐다.카툰에세이집『짧으면서도긴사랑이야기』(2004),저서『미와예술』(1994),『아름다움의가치와시의철학』(1998)외다수를냈으며,논문「시와언어」(1994),「문인수의시‘간통’에대한미학적ㆍ가치론적고찰」(1997),「하기락과자유」(1998),「예술창작의존재론적본질」(2005),「시의정신치료적기능에대한철학적정초」(2006),「시낭송에대한철학적해명과시낭송치료의가능성모색」(2019),「구상강문학의존재론적본질」(2022)외다수가있다.제54회한국문학상,제31회경상북도문학상,제18회경북예술대상을수상했다.한국문협이사,경북문협회장과대구한의대교수로총장직무대리,대학원장,교육대학원장,국학대학장,교무처장,기획처장,행정처장등과대구교육대겸임교수,대한철학회장,한국동서철학회장,새한철학회장등을지냈으며,운제철학상운영위원장으로활동하고있다.

목차



역易______10
불학시무이언不學詩無以言______14
위지악이선기인울爲之樂以宣其湮鬱______16
적수세滴水勢______18
적수간滴水間______20
충내형외지위미充內形外之謂美______23
공심병空心病______24
조용한의자______26
스킬______28
명관明觀______30
마음______32
마디론______34
집자集字______36
아주작은소리______37
곡선에대한회상______38



만남______42
신록을받다______44
저기어디쯤______46
그녀라는도시______48
왜관아랫개에대한다큐______50
가온다원근법______52
눈내리는겨울밤에월오교를걸었다______54
나무는나무의몸을모르고______57
기다리지마라______58
국화꽃,명화名華______60
여백을앉히다______62
가을어조______63
봉숭아여안녕______64
지우기______65
비와바람의행장______66



관觀______70
집중集中______71
화신花信______72
라일락꽃향기______73
땅찔레______74
나비______75
반伴______76
양안兩岸______77
물______78
부조浮彫______79
잉아______80
빙어______81
나무뱀______82
전지剪枝______83
종지부______84



근곡선생의달빛조상彫像______88
산수몽山水蒙______89
박찬선선생______90
아나키스트김성국교수______92
쾌도난마______94
물가의나무______95
물가에마을이있습니다______96
요약______99
초록음자리표______100
치명致命______102
택호宅號______104
물바위______106
목자스럽다______108
이제부터자유다______110
고맙습니다______111

│해설│이태수(시인)
철학적사유,예지와관용의시학______113

출판사 서평

김주완의시는스스로밝히고있듯이‘반신半神’의경지에서존재의부름에응답하듯‘언어=존재’와‘시=존재의집’이라는등식을떠올리게하는세계를지향하고,그세계에이르고있다는느낌도안겨준다.

어린꽃나무가앓고있습니다속에서생긴병인지밖에서온병인지는알수가없습니다들판의서쪽에서는여전히싹이틉니다동쪽에서는쉼없이고요하던나뭇잎이자꾸무거워집니다여기저기기척이있는데알아들을수가없습니다아침이되자어린꽃이피어납니다완연하던병색이많이사라졌습니다아주작은기도가부풀어올라저리터져나온것입니다앓는속도꽉차서부풀면팝콘처럼터지는것이지요처음에꽃은모두여자의몸에서태어났습니다북쪽이었습니다어디선가새어나오는데아무도듣지못하는아주작은소리가있습니다가장먼곳에서출발하여우주의가장낮은곳을떠받치는아주작은소리는구체적입니다여자의집안팎에서구석구석꽃이피고꽃이지며생명이살아가는소리는몸을가졌습니다붉은마음을가진새가작은소리를품은채남쪽에서높이날아오릅니다
─「아주작은소리」전문

나는콘트라베이스가되어배경소리를내었지요
멀리서보는가온다의자리는눈부셨지요
(중략)
나도어느자리에앉아구석의음표가되었지요
너무높이있거나너무낮게있는친구는
스스로거리를두면서자꾸멀어지고
우리는같은음계끼리만만나곤했어요
한번눈먼새는영원히날지못해요
까마득높은소리와아득히낮은소리가만나
몸부림치면심포니가되지요
멀고가까운건세계가아니라자리였어요
눈이내리는으뜸음자리는금세녹아버려서
누구도머물지못하는영역이었지요
새벽이면강으로나가
날마다물결치는소리를들었어요
─「가온다원근법」부분

「아주작은소리」는들판의서쪽에서싹이트고동쪽에서는나뭇잎이자꾸무거워지는상황에서앓고있는어린꽃나무를들여다보면서착상한듯한시다.아침이되자알아들을수도없는기척으로어린꽃나무의연원을알수없는병색病色이사라지고꽃을피우는모습으로바뀌어진다.이상황변화는아주작은기도와어린꽃나무의속이꽉차서부풀어올라터져나오는것으로묘사된다.
게다가처음에꽃은모두북쪽여자의몸에서태어났으며,아무도듣지못하는아주작은소리가가장먼곳에서출발해우주의가장낮은곳을떠받치기때문으로그려진다.이어서여자의집안팎에서꽃이피고지며,생명이살아가는소리는몸을가졌다고할뿐아니라붉은마음을가진새가작은소리를품은채남쪽에서높이날아오르는것으로그려지고있다.
서쪽에서싹이트고동쪽에서는나뭇잎이무거워지며북쪽에선여자의몸에서꽃이태어나고남쪽에서마음이붉은새가몸을가진작은소리를품은채높이날아오르는상황이암시하는의미는무엇일까.더구나생명력이어린꽃나무에서여자와새에게로전이되고비약하는까닭은‘왜’일까.
동서남북을두루포용하고있는이공간은거시적인시각과미시적인시각이어우러져빚는생명의근원과그불가시적인생명력을가시화하는세계의떠올림으로,시인이재구성해보이는세계라할수있다.아침을계기로어린꽃나무가작은기도와기도에힘입기도한충만감으로생명력을회복(발산)하고,아주작은소리로상징되는우주의보이지않는질서와그힘이생명을잉태하는모성母性으로서의여자와비상하는새를통해가시화하는것으로도볼수있을것같다.

삶이삶을지우고,죽음이죽음을지운다
열심히거두고채우면서살아도
산다는것은짐짓지우는일
하루하루
나는나를지우고
당신은당신을지운다
가시는가시를지우면서가시가된다
─「지우기」부분

시인은“산다는것은짐짓지우는길”일지라도사람들과더불어살아가는세상을어둡게만보지는않는다.비록“오는줄도모르고왔다가/가는줄도모르고가는”(「고맙습니다」)‘오늘’(날들)이지만,우러르고사랑하고가까이교유交遊하는사람들도있기때문이아닐까.더구나그들은“춤추는하늘이었고/손닿을듯멀리나는바다”같고“천사였고바보”(「이제부터자유다」)같은경우도있고,그런사람들과는여전히더불어“내가,내가아니어도되는자유”(같은시)를누릴수도있어서인지도모른다.

이시집의맨마지막에실린시가「고맙습니다」이다.요즘심경을진솔하게보여주는듯한이시는사랑을바탕으로감사와용서와화해로나아가는관용의메시지들을아름답게빚어보여그윽한여운을안겨준다.감사의마음은와서가는인생에대해,부모와가족들에게,마지막까지고운마음을베푸는사람들에게,낮게마음비움으로써복을받았다는데로스미고번지며,자신때문에아프고슬프거나손해본사람들에게도용서를비는마음이곡진하게쟁여져있다.

오는줄도모르고왔다가
가는줄도모르고가는
오늘나는고맙습니다
나를세상으로보내주신어머니,아버지
고맙습니다
내손을잡고일으켜주신할머니,누님고맙습니다

모든것을두고갈수있어서
나는복을받았습니다
임종을하듯나의저녁을살펴준마음씨
고운사람에게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나로인해아프고슬펐던사람들
나때문에손해를본사람들에게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