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사랑한다 고백했던 말은 (김윤배 시집)

내가 너를 사랑한다 고백했던 말은 (김윤배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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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986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문단 활동을 시작한 김윤배 시인은 등단 37년을 맞아 열여덟 번째 시집 『내가 너를 사랑한다 고백했던 말은』을 발간했다. 이번 시집에는 「꽃말」 「백년 독자」 「후포」 「달그림자」 「카타콤」 「율려」 「내 영혼이 아플 때」 「미몽」 등 신작시 77편을 실었다.
현대시는 마법적 가치와 혁명적 소망이라는 양극 사이를 왕복한다. 마법적 가치에 대한 긍정이 상상력의 시 세계를 완성하고 혁명적 소망이 역사의식의 시 세계를 완성한다. 그러나 이 양극은 서로 회통하므로 하나이다. 시인은 두 양극을 한 시편에 넣기도 하며 다른 시편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시인의 이러한 양극적 운동은 인간의 조건에 대한 인간의 반역으로 보아야 한다. 어느 쪽이든 규범 지향과 가치 지향과 윤리 지향으로 대변되는 상식적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저자

김윤배

1944년충북청주에서출생,1986년『세계의문학』에작품을발표하면서문단생활을시작했다.시집『겨울숲에서』(1986,열음사),『떠돌이의노래』(1990,창작과비평사),『강깊은당신편지』(1991,문학과지성사),『굴욕은아름답다』(1994,문학과지성사),『따뜻한말속에욕망이숨어있다』(1997,문학과지성사),『슬프도록비천하고슬프도록당당한』(1999,세계사),『부론에서길을잃다』(2001,문학과지성사),『혹독한기다림위에있다』(2007,문학과지성사),『바람의등을보았다』(2012,창비),『마침내,네가비밀이되었다』(2019,휴먼북스),『언약,아름다웠다』(2021,현대시학사),『그녀들의루즈는소음기가장착된피스톨이다』(2022,문학세계사)장시집『사당바우덕이』(2004,문학과지성사),『시베리아의침묵』(2013,문학과지성사),『저,미치도록환한사내』(2021,휴먼북스)산문집『시인들이풍경』(2000,문학과지성사),『최울가는울보가아니다』(2004,작가)평론집『김수영시학』(2014,국학자료원)동화집『비를부르는소년』(2001,산하),『두노야힘내』(2010,푸른책들)등을냈다.

목차

1

꽃말______10
백년독자______12
광矌______14
지하창고의비밀______16
떠난자만이돌아올수있다______18
몽유,혹은검은대륙______19
획砉______21
질문하는돌______23
당신은내피를맛보았다______25
쓰러지는숲______27
미래______29
정한의기록______31
그숲에다시들수있을까______33
붉어지는하늘에무지개를띄울수없는날의
우울은어둠을묶을수있을까______34
영혼이라는새가지하를날게되면
먼저무엇을보았을까______36

2

누가검은눈물로울고있다______38
항상기다리는나는
아무도기다리지않는사람보다덜슬플까______39
영혼의뿌리______41
보이지않는힘______42
지하묘지마다누워있는시편들의미라를
어둠이열고있다______44
탈출______45
투명한밤으로천을짜는여인이여______46
한순간을날기위해______48
먼,먼______50
내가너를사랑한다고고백했던말은______51
내영혼이아플때______53
하루______55
절멸______57

3

미몽______60
상처난밤속으로호수의잠들지못한마음이
펄럭이는시간이다______62
나는생애의끝까지그리운곳을
생각하게될운명이다______64
계절이상한냄새를풍기는것은
내가쉽게상하는과일이기때문이다______65
구름이앓고있는병은
어쩌면그리움일지모른다______66
가문비나무숲에서무슨일이있었는지______67
고국이앓고있는역병을어찌말해야좋을지몰라
벚꽃계절을버렸다______68
이험난한시절에
눈동자를놓아서는안될것이다______70
마운틴킬리만자로의우흐르피크빙벽______71
무엇이그곳에오래서있게하는가______73
언약은벚꽃을지우고창문을지웠다______75
가슴의불덩어리를쏟았다______76

4

흰손______78
눈빛이닿으면종소리가들렸다______80
절망하는가문비나무숲______81
후포______82
햇빛______83
오래된피가궤도를이탈하지않으면
작은바닷가에서달빛의순장을볼것이다______85
생生______87
연련戀戀______89
몸에돋은슬픈잎들을보내려고강에서있다______91
달그림자______93
생의무늬들은가슴에난흉터보다선명하다______94
낙조______96
복수초______97
환희______98
피지않은꽃______99
장엄혹은영원______100

5

순야타Sunyata______102
진천______104
체다카Tzedakah______106
메타노이아Metanoia______107
모래바람______108
영원한공간______109
카타콤Catacomb______111
율려律呂______112
산음山陰______113
있는것은있는것이고
없는것은없는것이다______114
두모해변______115
기도______118
미친______119
시간의그늘이가슴에눕는다______120
펜툰테스Penthoun-tes______121
세바스티앙살가도의흑백사진______122
꽃눈______124
오미자나무를심다______125
침묵이두려워진다______126
미선이떠난다______127
시는닿고자하는것너머를응시한다______129

출판사 서평

마법적가치에대한긍정은영감에대한믿음에서온다.영감은신의숨결이불어넣어진것이라는의미이며들숨이라는뜻이고예측하거나기획되지않은것들과의조우를말한다.시인의상상력은유한을넘어선다.시인의언어적운산너머에있는들숨의체험이시인것이다.시인은무엇으로든상처받은자이다.상처의원초적치유는주술이며들숨이다.이러한치유과정은감각적영역바깥을바라보게하며영원한구원을향하게한다.시를통한구원은사회적좌표속에있어야한다는것을잊지말아야한다.
모리스메를로퐁티는‘우리의몸은거대한다이아몬드의흠집과같다’고말한다.여기서흠집이란인간으로서의불량품이라는뜻이며스캔들을가진인간이라는의미고인간으로서불가결한빈틈을가지고있다는뼈아픈통찰이다.그러므로흠집은세계와나사이의빈틈이며착각의불가결이기도하다.
시인은세계를눈이라는빈틈으로읽을수밖에없다.눈이어째서빈틈인가는설명을필요로하지않는다.우리들의운명적선택이얼마나후회막급이었는가를생각하면내눈을내가찌르고싶었던회한은새삼스러운게아니다.시가신체로부터시작되는것은틀리지않는말이지만이말이시인을절망케할수도있다.시는결국착각의미학이며흠집이이루어내는투명한결정체라고정의할수있을것이다.
우리들의눈은신처럼세상을조감하지못한다.중국송북시대의유명한화가장택단의〈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라는두루마리그림은북송의수도였던카이펑의청명절풍경을그린그림인데너무길어한눈에들어오지않는다.카이펑의풍물을여러각도의시각으로그린그림이다.이와같은큐비즘적화풍은세잔에게서처음시도되었다.세잔은같은장소를여러각도에서그렸다.세잔의큐비즘적시각은시인이사물을보는시각과닮았다.시인은한사물을다른각도에서접근해본질을꿰뚫어보려는수단으로상상력이라는정신적도구를사용한다.어느각도에서보든보이는것이보인다면보이는그것은그사물의본질로시인이그사물의본질을꿰뚫은것이된다.
이때본다는것은시인이사물을보는것이라기보다사물이시인을본다는것이더적확한표현일것이다.화가앙드레마르시앙은‘숲속에서나는숲을바라보는있는것은내가아니었다는것을느끼곤했다.어느날나는나를바라보며나에게말을걸어오는것은바로나무들이라고느꼈다.나는화가란우주에의해꿰뚫린자임에틀림없다고믿는다’고말한다.이러한생각은피그말리온과갈라테이아의신화에닿는다.
시인의마법적가치에대한무한긍정은몸의상처인눈으로만나는사물과의조우에서시작되는것이며사물이시인에게혹은바깥의세상이시인에게말을걸어오는순간에빛나는시문혹은이미지가섬광처럼오는것이다.시인은우주에의해꿰뚫린자이다.
시인의상상력은말과사물을향해꿈꾸게한다.말과사물이하나이기를소망하는것이다.말과사물이서로독립적으로존재할때시인은갈등하며혼란스러워한다.이는존재와존재자의문제이며사물의본질과그본질을드러내는언어의문제이다.말과사물,이름과이름이붙여진것사이의융합은그보다먼저시인이자기자신과세계와의화해를요구한다.그화해의매개가상상력이며마법적가치이다.

전생이라고말하면검은잎들이돋아나는죽은느티나무가달그림자속에선다

달그림자를본것이내실수다

평생달을보지않았던내가그날달그림자를보고정신을잃었다

전생을보았던것이다

붉은달이뜨고붉은달그림자가세상을붉게덮었다

달이세상을이기는순간이었다

붉은달그림자가일렁이는바다에거대한성채를지었다

─「달그림자」전문

혁명적소망은말의교란에서태어난다.역사이든개인사이든그압박에서자유로워지는길은의식과의식에따라역사를해명해온용어를부수는일이다.용어를부수는일은말의파괴이며인식의재탈출이고의식의새로운깊이다.다시말하면역사적실존이의식을결정하는것이아니라의식이역사적실존을결정한다는말이다.따라서혁명적시도는소외된의식의회복으로나타나며세계에대한진정한의식을갖는데서시작된다.
헤겔이‘이성적인것이현실적인것이며현실적인것이이성적인것이다’라고말해좌파와우파의아전인수식의논란을불러일으킨담론이었던것을기억할것이다.좌파에서는이성적인것이현실적인것이란인간의사유가언제라도현실로전환될수있다는것으로,마르크스의이론을실천으로이끌어내는강력한동기가되었던것이다.그런가하면우파에게는현실적인것이이성적인것이란현실에존재하는모든것이그자체로이성적사유의결론이라는해석을가지고현실을정당화하는논거를마련해주었던것이다.어느편에서든현실은비이성적인탐욕의결과이거나반이성적인폭력으로은폐된허위의현실에서꿈꾸며절망하며사랑하며증오하며살아가고있는삶의현장인것이다.그러나안타깝게도대중들은허위와위선에분노하지못했다.‘진리가우리를자유케하리라’라는잠언에몸을떨었지만이제는진리가우리를고통스럽게한다는것을알아버린것이다.그렇다고모두가침묵한것은아니다.
시인은진리가우리를고통스럽게하리라는것을알면서도고통에기꺼이온몸을바친다.그러고는존재하는현실로부터존재해야하는이성적인것들을이끌어내는것이다.현상을통해현상의이면에숨죽이며떨고있는본질을드러내는사유의힘이혁명적소망을향한시각이다.

종소리는죽은자의잠을깨우는의식이었다

종소리는수시로들렸다

수시로누군가깊은잠에서깨어나는것이다미선나무도잠에서깨어나고가문비나무도잠에서깨어나고수리부엉이도잠에서깨어난다

깊은잠에든여배우도잠에서깨어나스크린으로복귀할것이고생명사상을펼치다깊은잠에든시인도잠에서깨어나원고지앞에앉을것이다

봄이니까,세상이깨어나니까

눈빛이어디에닿아종소리가들리게될지알수없다

눈빛은어딘가에닿을것이고종소리는들릴것이다

─「눈빛이닿으면종소리가들렸다」전문

세상의모든시편은시인의창조적의지가개입되어있다.창조적의지없이탄생된시편은없는것이다.예컨대자동기술법도자동기술이라는의지가개입된것이며무의미시도무의미라는의지가개입된것이다.
아무리우리말이역동적이라하더라도말자신이시를이루어가지는못한다.이말은시적창조를언어의역동적기능에만맡길수는없다는말이기도하며알파고가시를쓸수없는이유이기도하다.말은시인에의해호명되었을때역동적인모습으로치환되는것이며말의의미가증폭되는것이다.
시어들은따지고보면가공되지않은질료들이다.진정한의미는질료속에숨어있으며시인에의해의미가채굴되는것이다.그럼에도불구하고시편들은의미나메시지나시정신이마멸된것처럼흐려보여잘판독되지않는로블떼라시옹l′oblite′ration이라할수밖에없다.이판독되지않는혹은가공되지않은질료의원형은시편안에서완성된세계에머물지않게하는시선의확장을의미한다.이때의시선이야말로무한한가능성으로나갈수있는구원의빛인것이다
시에서의우상은우리의시선을감각속에머물게하지만표상은우리의시선을감각의세계를지나무한한곳으로이끈다.시편이모든것을다드러내고있으면우상에사로잡힌것이다.우상은시편의여러곳에서출몰한다.좋아하는시인의어법과문장답습,고전이된작품의영향,대중적인인기영합,상투성과의타협,시대정신과역사의식의실종,매명과명예의추구,권력과의야합,본질추구의포기,미사여구美辭麗句와교언영색巧言令色등은우상의전형이다.무엇보다큰우상은자기자신임을깨달아야한다.자신과싸워야한다는말은자신이세운자기안의성전을부수라는뜻이고그성전안에강고하게군림하고있는자신이라는우상을파괴하라는강력한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