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서 온 편지 - 문학세계현대시인선 222

하루에서 온 편지 - 문학세계현대시인선 222

$12.00
Description
세 권의 시집을 내면서 문학적 감도와 상상력의 파장이 원심적으로 상승하는 과정을 밟아온 정유정 시인의 네 번째 시집 『하루에서 온 편지』가 문학세계사에서 출간됐다. 진화의 이력을 바탕으로 정유정 시인의 공력은 균질적으로 더욱 밀도가 높아졌다.
정유정의 시는 근원적으로 평화와 안식을 노래한다. 부드럽고 상냥한 해변의 미풍을 꿈꾸고 환하게 닦은 창 너머로 눈부신 꽃들이 피어나기를 희구한다. “고귀하고 소중한 신뢰”(「해변의 미풍」)가 끝까지 이어져 믿음의 세상이 영구히 펼쳐지기를 소망한다. 저녁에 별이 뜨면 나란히 산마루에 앉아 “아름답고 찬란한 내일의 꿈을 기다리는 것”(「별 5」)을 일과로 삼고자 한다. 참으로 고귀한 정념이다.
그렇다고 그의 내면에 아픔과 시련이 없는 것이 아니다. 남에게 다 털어놓지 못할 상처의 시간이 은밀히 내장되어 있지만, 그는 그것을 직접 발설하지 않고 음악과 기도의 힘으로 다스려 아름다운 소망의 음역을 펼쳐내는 일에 전념한다. 참으로 순결한 서정이다.

저자

정유정

1992년《현대문학》으로등단했으며시집『보석을사면캄캄해진다』,『아무도오지않았다』,『셀라비,셀라비』를출간했다.2021년대구시인협회상을수상했다.

목차


해변의미풍______10
저렇게밝은창______12
찔레______14
별4______15
별5______16
별6______18
별이찾아간길______20
별을찾아가는길______22
사랑,그정체停滯의시간______24
소년의향기______25
미늘______29
공연한허공______31
허무는완벽하게______32
가을에전합니다______34


샤갈의마을에눈이내린다______36
자작나무한그루,길위에멈추다______38
만날수없다______40
사월4______41
사월5______43
사월6______44
은자隱者의기별______45
붓다의숨소리______46
하루에서온편지______47
바다로가는춤______49
예사로운일______51
사발하나가공중에떠있다______53
숲은문이없다______55
노랑에게는의문이생기지않는다______57
영혼의모양2______59


월광______64
공중무덤______66
민들레홀씨2______68
눈사람3______70
페넬로페의수의______72
섬______74
판다______75
흠결없는단어______76
추억느낌______78
이미지1______79
이미지2______80
두려움의절정______81
철갑옷______83
음울한어떤날은죽은가인을
침엽수림에묻는다______86
파경______88


파랑고래______92
어머니의뜰______94
배경______95
노을______96
생명의빛______97
숲이라부를수없는______99
불면증______101
산으로가요______103
행복______105
그리할지라도______106
첫사랑______108
고요한정원2______109
풍경______111
구해줘______112
불의상처를위로하소서______113

┃해설┃이숭원(문학평론가,서울여대명예교수)
음악이환기하는생의정결淨潔과황홀______115

출판사 서평

예술창조의근원을형상화하는시도
어머니의상징과기도의능력

시인은시집을다음과같은「시인의말」로시작했다.

가을이창앞에와
붉은손내민다.
저손잡으면
내아이(詩)들도
온산물들일수있겠다.

산안에계신
어머니께바친다.

가을이붉은손을내민다는것은단풍이물든가을산과하나가되기를바라는마음의표현이다.여기나오는아이들과어머니는실제삶속의아이들과어머니일수있겠지만,그것을넘어서서주변의모든존재가아름다운자연과하나가되기를바라는소망을나타낸것으로읽을수있다.자신이길러낸크고작은물상들이가을의아름다움과하나가되고,자신을길러내고보살핀어머니같은존재들도모두가을의혜택을입는그러한이상상태를시집머리에그려본것이다.모성母性은모든예술의근원적동력이다.어머니같은희생적사랑이없으면예술은잉태될수가없다.그러니“산안에계신어머니”가실제어머니의유택을암시한것이라하더라도그것은예술창조의근원을형상화한것이라고할수있다.정유정시인의시에‘어머니’라는시어가아주많이나오는데,이것은모성에대한시인의지향이그만큼강렬하다는사실을드러낸다.

음악의환상적구조와서정의황홀한승화

멈추라고요청할정도로숨막히는극치의순간은시인에게음악이환기하는환상의선율에서온다.음악은인간영혼을신의영역가까이이끌어주는예술이다.그래서아르투어쇼펜하우어(1788~1860)는음악이어떤표상에의존하지않고인간의의지자체를그대로드러내기때문에모든표상예술이음악을동경한다고말했다.음악은우리의영혼에직접충격을가해영혼을거룩한차원으로직접이끌고간다.정유정시인의의식을주도하는가장큰힘은신앙이요두번째견인력은음악이다.음악의시가여러편이있는데,중요한의미를담은한편을소개한다.

눈을감고,
빗소리를듣고있었을뿐이다
쇼스타코비치의왈츠를
듣고있었을뿐이다

끊임없이
냇물위로떨어지는빗방울따라
춤추며걸으며바다로왔다

파도는지금도맨발,
새빨간노을에잠긴채
파도처럼춤추며바다로왔다

바다는,그래
이리먼곳에있었지

출렁거리며
간간이끊어지는춤
물끄러미,
바다로가는기차도멀어지고,

어디서찾아야할까
신기루처럼사라진푸른숨

점점작아지는빗소리
─「바다로가는춤」전문

‘바다로가는춤’이라는제목부터가상징적이다.그말은인간의운명을상징한다.드미트리쇼스타코비치(1906~1975)는러시아의음악가로19세때첫번째교향곡을작곡하여연주함으로써단번에전세계의주목을받았고,세상을떠나는날까지그명성을유지했다.그는현대음악의여러경향을수용하여새로운스타일의곡을만들었는데,이로인해사회주의리얼리즘운동이전개되던당시소련사회에서비판을받기도했지만,시대에맞는작품으로전환하여소련에서도인정받는작곡가가되었다.15편의교향곡외에현악4중주곡,피아노협주곡,기악곡,발레음악등많은명작을남겼다.특히쇼스타코비치왈츠2번은대중적으로유명해서많은영화의배경음악으로사용되었다.한국영화〈번지점프를하다〉에사용되었고,외국영화〈안나카레니나〉,〈아이즈와이드셧〉등에활용되었다.

이시의영상은소리와음악과파도와바다와기차가어우러진환상의만화경을펼쳐낸다.음악의선율이끝나면환상의장면은신기루의환영과잦아드는빗소리의음영으로마무리된다.영혼에직접자극을주는음악의구성이시의언어로환치된독특한작품이다.
시인의음악지향은다음시편에서조금다른각도에서다시한번시도된다.

─심오해지지않으면
베토벤은귓전스치고지나가는
바람일뿐이라고,

끝없는몽상속
환희의악보는무더기로살아난다
정교하게건져올린
수천조각,빛이두드리는완전한세계

아마도달의변신이었을것
루체른호수의변신이었을것
범람하는달빛으로푹젖은
차마젊은남자여,

후일의슬픔이
그의청춘위에미리와있었을지라도

아무도넘지못할빛에취해
끝없이두드렸을피아노포르테

심오해지지않아도
질기고완곡婉曲한숨소리들린다
무심한시간다스리는,
달의숨소리들린다
─「월광」전문

이시는베토벤의피아노소나타14번‘월광’을소재로했다고시인이주를달아밝혔다.이곡은베토벤의피아노곡중가장많이알려지고대중의사랑을받는곡이다.‘월광’이라는이름은베토벤이사망한후음악평론가루트비히렐슈타프가1악장의분위기를달빛비친루체른호수의정경에비유한데서유래하였다.곡의흐름은단순하면서도우아하고소박해보이면서도깊이가있다.일정한리듬이되풀이되면서고요와격정이교차하는음의연속은월광의아름다움을적실하게그려낸다.시인은베토벤의이음악을제대로이해하기위해서는심오해져야한다고주석을달았다.“정교하게건져올린/수천조각,빛이두드리는완전한세계”는이곡의핵심을요약한구절이다.달빛의부서짐은수천조각으로분해되어정교하게반짝이는것같지만그것이통합되면서완전한빛의통일체로수렴된다.음악은몽상의끝없는연속과같아서피아노의선율에따라신비로운음악의환상은무한히펼쳐진다.호수와달빛의아름다움에취하여훗날사랑의슬픔에몸살을앓는다해도한젊은남자는달빛의환상을음악의선율로창조할수밖에없다.

시인은자신의내부에놓인사랑의고뇌와아픔을완전한빛의세계로승화시키고자한다.그러한생의모순인식과고뇌의파장은사랑의경건함으로상승한다.모순의인식은화해의소망으로이어지고생의갈등은평화의불빛으로전환된다.시인은자기내면에출렁이는세상의무한한파동들을음악의감성으로순화하여평화의빛으로포용하고진정한자유를찾으려는기도의정결함으로승화시켰다.

시와음악은가장밀접한친연관계에있다.인간영혼을리듬있는언어로표현하는시는형이상학적사유도감성적환상으로바꾸어표현하는능력을발휘한다.정유정시인은음악과신앙의정결함에바탕을두고대상에대한의식을조정하고융합하여자신의언어로시를엮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