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적막

꿈꾸는 적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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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박주영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적막과 꿈의 서정적 변주 온전한 사랑의 세계 지향
박주영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꿈꾸는 적막』이 출간됐다. 「적요의 저 온몸이 필기체다」, 「정방사」, 「나를 그리다」, 「사리」, 「빈 유모차」, 「봄이 아프다」, 「빈집」, 「계산동 연가」 등 63편을 실었다. 해설에서 이태수 시인은 “비애나 아픔 너머의 온전한 사랑의 세계를 지향하고 꿈꾸며,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그 꿈의 세계에 이르려는 인간애와 애틋한 연민도 남다르다”고 평했다.

저자

박주영

저자:박주영
대구에서출생,영남대학교인문대학영어영문학과를졸업했다.1993년《문예한국》신인상과1995년《심상》신인상당선으로등단했으며,시집『문득,그가없다』와다수의공저를냈다.대구정화여자중학교글쓰기지도교사를지냈고한국시인협회,대구시인협회,심상시인회회원과대구문인협회이사로활동하고있다.

목차



적요의저온몸이필기체다______12
지리산연리지連理枝______13
동피랑______14
정방사______16
나를그리다______18
기억을묻다______19
화해______20
홍도______22
풍경______24
폭염______25
저녁노을______26
숲실마을에서______27
무섬에서______28
구원______29
봄비______30
늦가을______31



사리______34
사십구재______36
저녁______37
햇볕______38
다리______40
적막______41
행상______42
빈유모차______43
그런이유______44
장마1______45
짧은꿈을만져요______46
아버지______48
홍역______50
너와나는말없어도말이있다______52
엽서______53
하얀꽃______54



봄밤______58
봄이아프다______59
풀잎______60
봄바람______61
관계______62
한낮______63
소나기______64
침입자______65
이틀,또는사흘______66
상처______68
그날______69
지퍼를달다가______70
귀가______72
빈집______74
긴기아______76
달고나______77



그늘______80
첫사랑______82
까보다로까______84
에펠탑______86
발자국______87
계산동연가______88
없다______89
알집______90
태백산맥______92
천국,또는지옥______93
그해겨울______94
굿모닝모텔______95
화분에물주다______96
대구라는섬______98
참이상한나라의중심에대구가있다______100

┃해설┃이태수(시인)
적막과꿈의서정적변주______104

출판사 서평

박주영은쓸쓸하고외롭고상실감에젖어있지만사람들과더불어살아가려는마음자리가포근하고따스한시인이다.외딴섬과같이적막하고그늘진데서자유롭지않을수록그비애나아픔너머의온전한사랑의세계를지향하고꿈꾸며,소외된사람들과함께그꿈의세계에이르려는인간애와애틋한연민도남다르다.
그의시는다채로운무늬와빛깔을띠는것같으면서도그내포에는한결같이잃어버린사랑을회복하고더나은삶으로나아가려는서정적자아가감싸안고있는소망들로채워진다.이때문에어떤풍경이든시인과마주치기만하면그런내면과겹치면서다분히주관화되고내면화된풍경으로변용되게마련이다.
시인의발길은가까운곳의나들이로부터산과바다,전국의명승지와해외로까지이어진다.하지만떠돌다돌아와깃들곳은‘혼자사는집’이다.반복되는일상에서벗어나가까이나멀리가더라도거기서느끼거나깨달은마음만데리고돌아오게되며,길들어진적막속에서그리대단치도않은조짐과낌새에도위안을얻고스스로위무하기도한다.
「지리산연리지」에서는나무와다른나무의가지가서로붙어서나뭇결이하나가된채오랜세월한결같은모습으로제자리에있는이연리지가홀로된시인에게는‘달근한향내’로다가온다.홀로된소외감을꽃에이입해드러내보이는「숲실마을에서」는일정한거리를두고대상을바라보며묘사하고있는것같으면서도꽃의소외감이그자체의것이라기보다화자의내면풍경으로읽힌다.

산수유숲속에끼어든
매화나무한그루
예쁘기는산수유에비할바아니지만
사람들눈길빼앗겨풀죽어있다
샐쭉해진꽃잎이사람들지날때마다
바람을핑계로파르르아양떨지만
산수유꽃이노랗게잡아당기는
숲실마을맨안쪽까지발길이닿는다

산수유숲속에갇힌매화나무
그어깨에불만잔뜩걸친채
바람하고만두런두런하는것같다
―「숲실마을에서」전문

꽃나들이를하는사람들이더예쁜매화에는아랑곳없이산수유꽃에만눈길을주는장면을화자의심경을은밀하게투사해들여다보며,매화나무의더예쁜꽃에마음끼얹으며각별한연민을보낸다.「나를그리다」에서도열차의차창너머보이는젊은남녀의밝고맑게다정한모습을부럽게바라보면서“갑자기눈앞에어룽거리는한사람/오래잊었던그날,그시간이/파노라마처럼밀려”오게한다.그래서그들때문에되살아난지난날에대한애틋한그리움을반추하게되고,부러운시선으로그들이알아차리지못해도마음속으로두젊은이에게‘화이팅’을보내지만,이는자신을향한‘화이팅’이기도하다.

그봄끝무렵정방사갔다
금수산자락에풍경소리데리고
좌정한극락전을오르는데
깔고앉은죄의무게탓일까
몇칸안되는돌계단도버겁다

<중략>

부처님앞에엎드리니
그제야숨소리가가지런해진다
울울하지말고언제든오라는
스님의머리카락한올까지짚는번뜩임에
머리에이고온보따리도
남김없이풀어놓는다
찔레넝쿨걸러낸듯가벼워지고
차한잔에마음따스해진다
―「정방사」부분

시인은극락전의부처님앞에엎드리니숨소리가가지런해지고,머리카락한올까지짚을정도로자신을꿰뚫어보는혜안을가진스님의자상하고너그러운배려에속마음까지다풀어놓는다.더구나스님의자상한베풂으로무겁게얽혔던마음이가벼워지고따스해지게된다.
시인이외롭고우울한현실을뛰어넘고싶은간절한마음은“천사의날개는내가슴높이에있다/한껏날아올라본다/만만치않은세상에서한번쯤은/튀어올라내려다보고싶었다”(「동피랑」)는비상의꿈에이르게하며,이름모를벌레한마리가기어가는모습을보고서도“적요의저온몸이필기체다/벌레한마리회벽아래기어가며/그만의시를쓰고있다”(「적요의저온몸이필기체다」)고에둘러자신의내면풍경을은유하게하는것같다.
박주영시인의일련의시는더불어살았고,살아가는사람들을그러안듯이자신가까이끌어당기는이야기에빈번하게주어진다.

어머니는뼈만남은고등어처럼야위어도
우리남매는쑥쑥자라면서
저마다의시간으로자맥질하느라
깁스한어머니의마음은읽지못했다

<중략>

어머니의한많은평생이
얼마나가팔랐을까
이젠하늘에서빈집을내려볼어머니

아,입만있는것들
입밖에없는것들

엄마가돌아가시던그날에
만져지던그것이사리였구나

―「사리」부분

이시에서일곱남매가“깁스한어머니의마음을읽지못했다”는구절과“아,입만있는것들/입밖에없는것들”이라는대목은자책으로가슴에이게하는회한의절규다.
시인은혈육뿐아니라가까운사람이나일상에서만나는낯선사람들에게도이같은마음을끼얹는건거의마찬가지다.「다리」에서는탑승할열차를기다리며선로(레일)를바라보다가저혈압으로쓰러진친구의불구가된다리를떠올리고,열차가종착역에도착할때까지도줄곧같은생각만하고있었을정도다.
특히사람들이무심하게지나칠지도모를소외되고그늘진사람들에대한따뜻한연민은일련의시에도드라지게아로새겨져있다.세찬바람이부는초봄의담모퉁이행상을바라보면서그세찬바람을“저행상의뜨거운심장소리”이고“아직도겨울과한통속”(「행상」)이며,“저나뭇가지눈풀리는소리/슬며시들려주고싶어진다//곧사월이다”(같은시)라고하는시인의따뜻한마음자리가아름답다.

대구수성도서관뒷길모퉁이에
자그마한좌판을깔아놓은할머니
상추댓바구니,풋고추두어됫박이전부다
오가는사람누구도눈여겨보지않는한나절
꼬박꼬박조는할머니앞에
난데없이스타렉스한대가밀고들어온다
자라처럼움츠려온몸으로좌판을끌어안는할머니
그기습에몸이기울어지면서도필사적으로
놓지않는좌판에서미끄러져흩어지는풋고추들
먼지풀썩날리며쏜살같이달아나는
자동차꽁무니를노려보던할머니
뭉개지지않은고추와상추를애지중지보듬으며
─천하에몹쓸것
다시쪼그리고앉아중얼거리는푸념이
무심한바람소리에실려간다

적막하기그지없는길모퉁이다

―「적막―어느길모퉁이」전문

역시길모퉁이에조그마한좌판을깔아놓고상추와풋고추를파는할머니의가파른세태속의애환을그린시다.고객도없어졸고있는할머니의좌판에밀어닥친자동차는날벼락같을수밖에없다.시인은그장면을연민의시선으로그리고있다.시인은이정황을담담하게그리면서도요즘세태에대한비판과기층민을향한휴머니티를끼얹는다.할머니의“천하에몹쓸것”이라는말은시인의말로도들리며,할머니의푸념이무심한바람소리에실려간다는대목도세태를향한시인의연민때문이라할수있다.
빈유모차를끌고(의지해)가는할머니가조그마한몸피에등까지꼬부라져땅바닥이유모차를끌고가며유모차만저혼자가는것같다고묘사한「빈유모차」,장맛비와벼락에도하염없이공원팔각정아래우두커니앉아소일하는노인을그린「장마1」도오늘날의노인문제에착안한시로보인다.시인은노인문제못잖게실직하거나하릴없이떠도는기층민에대한관심도적지않다.

이른아침공원에
어제본저사내여전히그자리다
고요를흔들어대며부르는
노래또한거기다
한많은이세상이야속하다고,
야속하다고불러대는노래
바로어제그거다
엉덩이옆에세워둔소주병이
장단맞추듯흔들리고있다
<중략>
발화한저사내의고뇌,
참사연이붉겠다

―「홍역」부분

이시는날마다이른아침부터공원에서세상이야속하다는노래를반복해서부르고소주병을비우는사나이와마주쳐야하는안타까움을그리고있다.세상타령의노래와소주로달래는그고뇌(괴로움)를유추하며“참사연이붉겠다”고표현했지만이‘붉음’이내포하는의미를생각해보게만든다.이시에서“엉덩이옆에세워둔소주병이/창단맞추듯흔들리고있다”는표현이그렇듯이,그의시에는이따금해학이곁들여져그넉살이면의슬픔이더욱짙어보이게한다.

대구중앙초등학교담벼락을끼고돌면
저만치화랑공원벤치에그가얹혀있다
특유의삐딱자세,
니코틴의유혹에서벗어나려고
꼬나문전자담배로
아쉬움을달래고있다

나는딱,아흔아홉살까지만살끼다
에고샘요쪼매만더보태보시지예
뭐할라꼬,고거마됐다

허허허허……
호하하……

흰구름이웃음소리따라흘러간다
그웃음소리따라아흔아홉살까지살거라던
그를무심한흰구름이떠메고흘러간다
―「엽서―문인수시인」전문

몇년전76세를일기로세상을떠난문인수시인과의대화몇토막도곁들여그특유의모습몇부분을부각하고있다.화랑공원은그의집부근으로자주소일하던곳이고,벤치에얹히듯이삐딱하게앉던게그의버릇에가까우며,건강때문에이따금전자담배를피우던그였다.시인은그의그런만년의모습을그렇게그리고있다.
이어서등장하는대화는그의모습을해학적이면서도더욱선명하게떠올려보인다.경상도사투리로나누는것도그렇고웃음소리도그렇다.시인은그때함께웃던웃음소리가흰구름따라흘러가고,무심한흰구름이그를떠메고흘러간다고허무와무상감을다시정색하며읊고있다.
잎보다먼저피는봄꽃들은이른봄에그절정으로치닫는꽃들의개화를총질이나폭죽터트리기로회화화하고있다.개나리,목련,매화,벚꽃등봄꽃들이무리지어피어나는봄밤을시인특유의감각으로그리고있는「봄밤」에서는그꽃들을계절에충실한범법자들로야단법석하나의언어로봄밤을아우른다고표현하고있다.희화적인표현이지만,봄꽃들이야단법석이어도“나혼자만목마른봅밤”일수밖에없다는비애는“안을수없는봄이내몸을밀어”(「봄이아프다」)내기때문에커지기도한다.
풀잎에빗대어자신의내면(심중)을표출하는「풀잎」은왜혼자만목마르고봄이자기의몸을밀어냈는지그까닭은밝혀준다.아무도가슴(불덩이같은가슴)이얼마나뜨거운지모르고,알아주며불을댕기는사람이없기때문이라는것이다.
이같이외따롭고시들한삶은“이틀,또는사흘이지나도/빵(먹다남은빵)은그자리에있다”(「이틀,또는사흘」)라는대목도여실히말해준다.또한「지퍼를달다가」에서는아주오래된바지에지퍼를달고마주짝맞춘지퍼가제대로작동되는걸보면서짝이없이살아가는상실감이“내허기를꿀꺽꿀꺽삼키며/아,그와맞물려/나도기꺼이깊어지고있다”는환상속으로들어가기도한다.이역설적표현은그러고싶다는갈망을뒤집어놓은말일것이다.

언젠가먼곳우듬지나뭇가지에서
고운소리뽐내던새한마리가
문득기억을가로질러날아옵니다

그작은새에게홀리고
그곳의한적한풍경에다시이끌려
석달열흘쯤붙어살까하고
꾸려간짐을풀었습니다

겨우초저녁인데짙게깔리는
산그늘이흡사나를끌고가는
저승길의광목천같았습니다
영혼을흔들어대는바람자락같고
어이없는날에꾼꿈과도같았습니다

명쾌하지않은길이내생의
끝자락을흔들어대는것같아
쫓겨나듯이열흘만에
두고갔던세상으로돌아왔습니다

환한새소리가따라왔습니다
저맑고고운새소리는
경건하고눈부신문장같습니다
―「귀가」전문

하지만시인은일상에서벗어나마음끌리는곳에가서살아보고싶어도여의치는않다.한적閑寂한풍경에이끌려석달열흘쯤붙어살까도생각했던곳도초저녁산그늘이저승길의광목천같고삶의끝자락을흔들어대는것같아고작열흘만에“두고갔던세상으로돌아”온다.다만그풍경속의나뭇가지에서지저귀던새소리가따라오고,환하고맑고고운그새소리는“경건하고눈부신문장”같다고여겨지게한다.결국시인은두고갔던세상으로되돌아와자신만살지않으면통째빈집이되는집에서혼자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