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발부비새 (김기연 시집)

푸른발부비새 (김기연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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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대구의 작가상〉 수상 작가 김기연
10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시집
김기연 시인의 네 번째 시집 『푸른발부비새』는 10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1993년 〈한국시〉 작품상으로 등단한 그는 『노을은 그리움으로 핀다』, 『소리에 젖다』, 『기차는 올까』를 펴내며 꾸준히 자신만의 시세계를 쌓아왔다. 제5회 〈대구의 작가상〉을 수상한 이후 오랜 시간 묵혀온 언어를 이번 시집에서 다시 꺼내 놓았다.
『푸른발부비새』는 세월을 통과하며 더욱 단단해진 시인의 목소리를 담은 시집이다. 삶과 사람, 그리고 남겨진 것들에 대한 조용한 기록이 한 권의 책으로 모였다.
저자

김기연

저자:김기연
1993년〈한국시〉작품상을받으며문단에등단했다.시집『노을은그리움으로핀다』,『소리에젖다』,『기차는올까』를출간했다.2014년제5회〈대구의작가상〉을수상했다.

목차

1부

포즈______12
100호아네모네______13
미역귀______15
겸상______16
검은누드______18
모호한안전______20
푸른발부비새______22
둥근배에등을대면______24
세한도______26
호주머니에서커피명가가나왔어요______28
바다문지방에서______30
도마라는나무가있다______32
수레국화______34
온몸이눈이다______35
물방울감옥______36
루시______37
불면不眠______38

2부

만개滿開______40
절차______41
푸른유방______42
낙화______43
너에게가는길______45
우리거서보까______46
결별은생각하지않아요______48
노을이낳은어둠______50
잠깐______51
시월______52
섬______53
땅거죽______55
생강나무가지에새가돌아오면______57
분홍설법______58
바다밑모래사막______59
물렁한둑길______61
자궁______62

3부

거기에있지않은사람______64
봄봄______66
달뿌리풀______67
피차______68
11월______69
끼니______70
꽃잎에눈이쌓이면______71
연애시절______72
어떤인사______73
벌름거린다______74
날지않기로맘먹고______75
낯선남자가지켜보고있다______77
조개의입______79
신속처리해드립니다______80
외출이생포되었다______82
봄과도마뱀______84
장마______85

4부

하지______88
적설량따지지말고______89
목련꽃그릇______91
장마구름이잠깐해를올려놓을때______92
민들레밥______93
슬하______95
노을증후군______97
봄가을______99
세월을방석처럼깔고앉아______101
귀옥______103
밥과무덤______105
질베르호펠스______107
흙마당곱게쓸어나뭇가지로그린그림처럼______109
압축______111
흰눈물______113
슬과픔이출몰할때______114

해설신상조(문학평론가)
범람한저독백의속살에내귀가들어가______115

출판사 서평

범람한저독백의속살에내귀가들어가
-신상조(문학평론가)

머뭇거리거나띄엄띄엄말하거나

시집같은일기를읽는다.글쓴이는강변에자리한집으로부터걸어서약십분쯤거리에있는마을의우체국을다녀오는길이다.날씨가흐리더니그가우체국문을나서는데몇몇눈송이들이허공을가른다.“눈송이들은우체국앞의담뱃집유리창으로하나,그리고그옆잡화점지붕으로하나,잡화점옆의감나무가지위로서너개,이런식이다.”라고일기에는적혀있다.이어지는글은다음과같다.소리없이내리는눈과달리“비가올때는그것이달려오는소리부터날카로워지상의존재들은긴장한다.(…)눈은소리를하늘의심처深處에묻으며오고,몸을새처럼가볍게지상에내려놓는다.”

사람의언어도눈과비에기대표현할수있다면,김기연의시어는날카롭게긴장을불러일으키는비보다는머뭇거리며내리거나띄엄띄엄내리기시작하는성근눈발을닮았다.눈과비에대한사유를기록한일기는시간을뛰어넘어,한낯선시인의시어에무람없이섞인다.

『푸른발부비새』는김기연의네번째시집이다.시인은1993년등단후,첫번째시집『노을은그리움으로핀다』를2001년에펴냈다.만인사에서『소리에젖다』를2006년에,작가세계에서세번째시집『기차는올까』를낸게2014년이니햇수로10년이넘어네번째시집을내는셈이다.과작에속하는시인의시작詩作세계를단순화하자면시집제목에사용된‘젖다’와‘피다’라는서술어,그리고‘그리움’과‘기다림’이라는명사로요약할수있다.‘기다림’은세번째시집의제목‘기차는올까’란질문에서유추한단어다.주지하다시피‘그리움’과‘기다림’은다른말이아니다.젖는다는감각이그리움이란정서와결부된다면,핀다는행위는기다림이라는자세와연결된다.다만시인은그리움과기다림의시학을젖은감각속에숨겨왔다.젖음은표면위로올라오지않고내부로스미는감각이지않은가.젖음은입체적표면의혼란을멀리하며시인의내면으로숨어들어그림자와도같은흔적만을드러낸다.『푸른발부비새』는그젖음의감각마저통어하고지운형태를지향한다.

그런즉『푸른발부비새』에서시인은단순화의시학을더작정한듯싶다.“말은말이반이고침묵이반이다.”라는누군가의말처럼,김기연의시는하다만말같고화자의나직한목소리는속삭임처럼들린다.순수하게정제된시어만을사용한다기에는태생적인‘말없음’과‘말줄임’이다.비약을차단하며간신히몸밖으로밀려나온시어들.그말없음과말줄임사이에난길은소위여백이다.

성글게내리다어느샌가땅의표면을하얗게덮어버리는눈처럼,김기연의시는지표의혼란스러움을지운단순함의여백으로우리앞에놓인다.가령시인은「날지않기로맘먹고」에서산불이지나간산에서알을품은꿩이조무래기들의막대기가위협하는데도날아가지않는어느날의기억을재생한다.시는사건적요소인‘산불과알을품은꿩’,사물적요소인‘꿩과조무래기들’로구성된서사가전달하는‘무엇’이무엇인지를끝내들려주지않은채“꿩도알도먹을수없던그런날이었다”라는진술만으로끝맺는다.목숨을담보한꿩의모성애가전달하고싶은‘무엇’에해당할터이지만,‘무엇’이무엇인가에대한판단은오롯이독자의몫으로남겨진다.

뒷말뭉텅날려버리고도피차통하는

내밀한서사의누설을망설이는행간의여백,그리고시의후반부전체를통째로생략하는방식은『푸른발부비새』에서자주반복되는어법이다.창자를밀어내듯어렵게뱉어내는말들,이미지나인식일부만분절해서드러내는간략함은말하지않아도통한다는‘이심전심’의세계관을반영한다.

전주명가콩나물국밥집의주문은간단명료하다
-콩하나!
뒷말뭉텅날려버리고도피차통하는
뜨거운국밥

날달걀타닥깨어서넣고
반동강난껍데기에
날개몽땅한파리한마리바짝당겨앉는다
왼손손바람으로허그적날리는데
요것봐라
금세다시날아와한사코겸상한다

나는뚝배기에고개들이밀고
저는달걀껍데기에전심전력파고들고

식후돌아갈처소야다르겠지만
숨멎고쉬는일이사뭐
동족이지않겠는가?
-「겸상」전문

전주명가콩나물국밥집주메뉴는‘콩나물국밥’이다.간단명료한“-콩하나!”는“콩나물국밥1인분주세요”라는주문임을손님도알고주인도안다.주목할점은이어지는“뜨거운국밥”의중의성이다.

“뒷말뭉텅날려버리고도피차통하는”게말이가진지시적의미뿐이라면상에놓이는음식이‘뜨거운국밥’임을애써강조할필요는없다.독자나시인모두가아는뻔한사실을위해안그래도짧은시에굳이한줄을할애한건아니다.요컨대명확하거나수다스러운말의지시적기능을생략함으로써오히려손님과주인사이에‘뜨거운’정서적공감대가형성됨을시인은놓치지않는다.그러니1연의마지막행에서국밥이뜨겁다는‘사실’만을읽는다면,김기연시의감성적구축을자칫,모르는채로지나치게된다.그의시를오롯이읽으려면언어의진행을세심히더듬어나가며정서적온도를느낄필요가있다.

김기연시인에게정서적온도는현실이라는감각을통해체험되는리얼리티를의미하고,삶의진실이란그러한리얼리티로부터발명되는또다른현실이다.시인은“뚝배기에고개들이밀고”열심히국밥을먹는자신과,“달걀껍데기에전심전력파고”드는파리가“숨멎고쉬는일”에서나란한“동족”임을인식한다.김기연의시는많은경우,현실에서인지된대상을서술함으로써그대상으로부터비롯된새로운인식을꺼내는과정을거친다.시에서주목할인식은이땅에생존하는모든존재에불어넣어진‘숨’과그숨이멎고쉼에따른‘일’이다.사람인‘나’와해충인‘저’를이분법적으로구분하는이성이힘을행사하지않는내면세계의전개다.화자와파리의“겸상”은김기연시의따뜻한내면을극적으로보여준다.

빈소파에앉았다

딸동미가곁에와앉는다

동미딸채윤따박따박둘사이에들앉는다

쌀알만한아랫니두개뾰조족내밀며웃는다

문득,

삼라만상이만개하네

-「만개滿開」전문

‘빈소파에화자가앉는다’는시의첫행은,‘화자옆에딸인동미가와서앉는다’로시작하는것에비해의미심장하다.이는김기연의시가사람과소파를수평의층위에놓는다는의미이고,소파를대하는시인의태도가사람을대하는태도와거의같음은사실놀라운일이다.소파에앉은화자옆에딸인동미가와서앉고,그옆에동미의딸채윤이와서앉는이무언의‘함께함’은핏줄의끈끈한정을넘어시적연대의실현으로와닿는다.세사람의육체를형성하는뼈와살과피,혼인과출생으로이어지는법적관계가물리적층위라면,서로를대상으로실현되는존재방식은삶의안팎을아우르는정서적층위에해당한다.물리적층위는삶의필연적결과이나정서적층위까지당연하다고할수는없다.때로가족에대한우리의감정이끝끝내화해하지못한견고하고어두운풍경을보여준대도그건놀라운일이아니기때문이다.그러므로“동미딸채윤”이“쌀알만한아랫니두개뾰조족내밀며웃는”모습은한시적인시공간안에서내밀한삶의흔적이순간적으로드러나는김기연시의진경이라할수있다.

한우주를함께돌아보는

봄날오후깜박쉬어가는
나비의잠이라하자
이하룻밤

(중략)

주섬주섬어둠들쳐안고
휘적휘적돌아가는
지상의물고기여
어두운해여

-「바다문지방에서」부분

「바다문지방에서」에서는내면의심미적풍경이꿈꾸듯아름다운김기연시의서정을잘보여주는작품이다.그의시에서풍경(장소)은인식?압축?발견된다.메를로퐁티에따르면물리적환경은일련의변증법을거쳐내부인으로서의‘장소경험’을불러온다.예컨대“나비의잠”은환몽幻夢처럼짧고덧없는삶을상징한다.“하룻밤”꿈에불과한생을끝마치고“휘적휘적돌아가는”존재를시인은“지상의물고기”와“어두운해”라칭한다.물고기는지상에살수없고어두운해는더이상해가아니다.선명한윤곽들이서서히희미해지며해가‘문지방인바다’를넘어가고있다.역설의삶이저무는일몰의풍경이다.

김기연의시는시적대상이놓인하나의국면이내면적심상을거느린서경적구조자체로드러나거나,그서경적구조를개성적으로변주하고자시인의상상력이가미된형태로표현된다.앞서「만개滿開」에서채윤의‘쌀알만한아랫니’가전자에해당한다면,「바다문지방에서」의‘일몰’이나이번에읽을시에서의‘몸짓’은후자에속한다.특히「푸른발부비새」에서형상화된새들의구애는시인의심미안이포착한‘서경’이자그의미적인식이발명한‘사랑’이다.

저구애는죽을때까지란말주춤주춤춤으로쓰는중이랍니다

밝은푸른색물갈퀴발에서춤이나와요
어깨를들썩이며,
들썩이며,느린고갯짓으로다짐을하죠

-너에게나를보내려해

태평양연안바닷바람은찰진박수를쉼없이보내고요
너풀너풀날개를편다는건
맘도펴고몸도편다는것
서로의뒤태를따라둥글게돌아요
한우주를함께돌아보는걸거예요

-내가너를용납할게

자갈밭을뒤지고뒤져지푸라기한올입에물고마주섭니다
정중한예물이에요

저한쌍
비로소고고의관습대로자유로운구속에드네요
죽음이란별고로별거할때까지

-「푸른발부비새」전문

푸른발부비새는이름그대로밝은파란색물갈퀴가특징인바닷새다.이새는멕시코에서페루에이르는남아메리카태평양연안에분포하고,암석연안이나절벽위맨땅에둥지를튼다고한다.그렇지만새를설명하는백과사전어디에도“저구애는죽을때까지”라는구절을뒷받침할만한정보는눈에띄지않는다.구애를죽을때까지한다는건지,죽을때까지사랑하겠다는약속을빌미로구애한다는건지불명확한이구절은,마지막연에서“죽음이란별고로별거할때까지”라는진술로미루어‘죽음이우리를갈라놓을때까지’에해당하는서약임을알수있다.

“밝은푸른색물갈퀴발에서춤이나”온다는문장은가시적이미지에시인의주관적심상이겹쳐서제시된표현이다.푸른발부비새한쌍이추는‘구애의춤’에걸맞게이시는말놀이의요소와의태적심상으로인한율격이두드러진다.“주춤주춤춤”,“어깨를들썩이며,들썩이며”,“별고로별거”한다등의언어유희가연쇄에서비롯되는운율을불러온다면,“너풀너풀”날개를펴고“서로의뒤태를따라둥글게돌”아가는시각적심상은“찰진박수”의청각적심상이불러일으키는생기발랄함속에서리드미컬하면서도우아하게움직이는새들의몸짓을서경적으로묘사한다.

이작품은푸른발부비새한쌍의구애에빗대사랑의발생과정과혼례의예식까지를면밀하게추적하고있다.시인은결혼이라는“고고의관습”이“죽음”이서로를갈라놓기전까지는이별을허락하지않는굳고신성한의식임을밝히려노력한다.신뢰가넘치는사랑과그사랑에대한보증은,우선에로스적낭만과무관한“용납”을필요로한다.“자유로운구속”이라는역설은또어떠한가?김기연의시에서구속과자유는서로대립하지않는다.사랑은상대를있는모습그대로용납하는동시에,자발적으로그에게구속되고자하는능동적무능력이다.조르조아감벤의말을빌리자면“인간은자기자신에게무능해질수있는존재”인것이다.핵심은무언가를할수있는능력뿐아니라,하지않을수있는능력이다.결혼제도로상징되는사랑에관한이러한전제는시인이시적영감의방문을받는순간에도보편적도덕성을중심에놓는다는인상을부추긴다.이도덕성은합리적언어로포착한사회규범적체계로서의도덕적의식이나동정심과는다른,보다근원적이고순정한연민으로의포용이다.

엄마는없고
엄마품은없고
종일토록그립고

꺼칠한시멘트바닥에몽땅분필로
큼지막이엄마그리네
기억의미소까지그리네

터진신발벗어두고
그림엄마의품에드네

땅은엄마라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