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파 (이태수 시집)

은파 (이태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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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태수 시인이 스물두 번째 시집 『은파』(문학세계사)를 냈다. 「느낌」, 「돌부처와 서천」, 「청노루귀」, 「연꽃 한 송이」, 「윤슬과 은파」, 「달빛 따라 걷다」, 「강물」, 「계영배」, 「꿈길에서」 등 지난해 낸 시집 『먼 여로』 이후의 시 78편을 실었다. 자연을 통해 순수를 포착하는 존재 탐구로 섭생攝生과 그 순리에 따르며 침묵의 언어에 천착하는 시인은 간결하고 담백하며 정결하고 고상한 시경詩境을 지향하면서 윤슬과 은파로 상징되는 심미적 경지를 추구한다. 시행의 구문 배치를 음악의 형식에서 가져오거나 대칭구조 같은 시각적 효과를 끌어오는 구성법을 일관되게 구사한다.
저자

이태수

이태수시인은1974년《현대문학》을통해등단했으며,시집『그림자의그늘』(1979),『우울한비상의꿈』(1982),『물속의푸른방』(1986),『안보이는너의손바닥위에』(1990),『꿈속의사닥다리』(1993),『그의집은둥글다』(1995),『안동시편』(1997),『내마음의풍란』(1999),『이슬방울또는얼음꽃』(2004),『회화나무그늘』(2008),『침묵의푸른이랑』(2012),『침묵의결』(2014),『따뜻한적막』(2016),『거울이나를본다』(2018),『내가나에게』(2019),『유리창이쪽』(2020),『꿈꾸는나라로』(2021),『담박하게정갈하게』(2022).『나를찾아가다』(2022),『유리벽안팎』(2023),『먼여로』(2024),시선집『먼불빛』(2018),『짐깐꾸는꿈같이』(2024),육필시집『유등연지』(2012),시론집『대구현대시의지형도』(2016),『여성시의표정』(2016),『성찰과동경』(2017),『응시와관조』(2019),『현실과초월』(2021),『예지와관용』(2024),미술산문집『분지의아틀리에』(1994),저서『가톨릭문화예술』(2011),『대구문학사』(공저,2020)등을냈다.대구시문화상(1986),동서문학상(1996),한국가톨릭문학상(2000),천상병시문학상(2005),대구예술대상(2008),상화시인상(2020),한국시인협회상(2021)등을수상했으며,매일신문논설주간,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부회장,대구한의대겸임교수등을지냈다.

목차


느낌_12/그의시_13/날개1_14/날개2_16/날개3_17/무지無知_18/무지의무지_19/무지의지知_20/날마다가는길_21/도로徒勞_22/묵상_23/낭패狼狽1_24/낭패2_25/낭패3_26/낭패4_27/고향_28/고향,밤길_29/돌부처와서천西天_30/지금,여기_31


청노루귀_34/연꽃_35/연꽃한송이_36/수련睡蓮별곡_37/돌확꽃_38/나리꽃_39/노루발풀_40/맥문동꽃_42/불두화,길_44/유리창너머_45/가을점묘_46/청도,가을하늘_48/낙원_49/늦가을에_50/조락凋落_51/창밖의산딸나무_52/뜬구름_52/섭생攝生_54/담장위의풀_56/맹그로브_57


물,소리_60/요정妖精_61/맑게갠아침_62/맑은날_63/매지구름_64/피서避暑_66/머나먼꿈길_67/황혼_68/먼바다,파도_69/윤슬과은파_70/은파,먼불빛_72/은파,옛꿈_74/덜찬달_75/달빛따라걷다_76/눈길에서_78/한겨울밤의꿈_79/세월_80/왜가리_82/기댈데없어마음은_83/당신_84


유치한상상_88/희미한그림자_89/어떤다리_90/하늬바람_91/너는오지않고_92/별안간_93/너는가도가지않았다_94/강물_95/애수哀愁_96/계영배戒盈杯_98/술이고맙다_100/명정酩酊길_102/소녀의눈물_103/어느날저녁_104/중독_106/옛꿈은멀어져도_108/등불_110/오면간다_111/꿈길에서_112

|해설|이숭원(문학평론가)-존재탐구의소슬한여정_116

출판사 서평

자연통해순수를포착하는존재탐구
담백하며정결하고고상한시경지향

이태수시인은자연을통해순수를포착하는존재탐구로섭생과그순리에따르는삶을추구한다.간결하고담백하며정결하고고상한시경詩境지향하면서이길에이르기위해침묵의언어에천착하고윤슬과은파로상징되는은은한아름다움의세계를모색한다.이심미적경지의추구는번잡한현실의삶에서우리를이끌어올리는정화의힘을발휘한다.
시집의첫머리에배치한시「느낌」은언어가살아움직이는수행처를알려주는하나의서곡과같다.
`
비온뒤하늘같이
풀잎을스치는바람같이

창공을나는새같이
더러는고목의새순같이

잠시머무는느낌

다시스미는느낌

더러는저물녘노을같이
유리벽밖불빛같이

밤못물위의달빛같이
동틀무렵동녘같이
-「느낌」전문

“잠시머무는느낌”,“다시스미는느낌”이라는두어구는둘다정적인느낌을나타내지만‘머무는’보다‘스미는’에동적인느낌이더들어있다.첫연“비온뒤하늘같이/풀잎을스치는바람같이”를보면앞의상황은정적이고뒤의상황은미세하지만움직임을나타내고있어서동적인느낌을준다.두번째연도“창공을나는새같이”는동적인상황을나타내고“더러는고목의새순같이”는정적인상황을나타내고있어첫연과유사한이중구조를보인다.이에비해뒤의연들은일관되게정적인상황을나타낸다.
이시에서느낌을환기하는비유적이미지는동動·정靜의교차에서정靜이강화되는방향으로이동한다.이러한이미지의추이를시인은“잠시머무는느낌//다시스미는느낌”이라고언명했다.머묾과스밈의교차는정과동의교차로이러한이미지의교차를통해자연에대한느낌의변화와거기서오는깨달음의성숙과정을암시한다.
느낌을비유한이미지의구성물은모두자연의청정한정경들로앞의이미지가좀더청신한느낌을주고뒤의이미지는은은하고가라앉은느낌을준다.세상의잡티를벗어낸빈마음으로수행공간에들어가순수의언어를일구어내려는탐구의과정을표현한시는간결하고담백하며정결하고고상해야한다는이상이자본령을다음과같이제시했다.

그의시는담박하고간결하다
군더더기가없고정결하다
말하지않는말이
말하는말보다높고깊은말을한다
그말에다가가려
한참귀를기울이다보면
그비의들이나를들어올린다

그말하지않는듯하는말이
나를들어올리게되는건
시의본령탓일까
그는산문의시대에살고있으면서도
시를살고있는지
그의시에다가가다보면
빙산의일각을떠올리게된다
-「그의시」전문

이시는자신이이상적으로생각하는시의본령을타인의시를거론하는방식으로서술했다.앞의시가이미지로모호함의미학을구사한데비해이시는이미지를배제한관념적진술로시인의생각을뚜렷이제시한다.“말하지않는말이/말하는말보다높고깊은말을한다”와“그말에다가가려/한참귀를기울이다보면/그비의들이나를들어올린다”는구절이그렇듯,말하지않는듯하는말이시의본령이며,말하지않는말이시의본령이기에나를더높고깊은지점으로들어올린다고한다.
말중에가장고귀한말은침묵의언어다.군더더기없고정결한말은수행의사원寺院에서가장늦게깨어나는말이다.마음이비어야순결의언어가탄생한다.그순간순수의언어가탄생하고시가창조된다.이태수시인은이미이길에올랐고탐구의성과를몇권의시집으로엮어낸바있다.그는다시자기탐구의여로에발을디뎠다.
이태수의시에는2018년에펴낸시집『거울이나를본다』부터이번시집까지일관되게나타나는구조적특징이있다.시행의구문배치를음악의형식에서가져오거나대칭구조같은회화적(시각적)효과를끌어오는구성법이다.그의시는행과연의연결이시각적대칭구조를이루도록구성되어있으며,다른한편으로는실내악이나교향악처럼처음과끝이같은‘A-B-A’형식이도입되거나‘A-B-A+C’,‘A-A-B’형식으로변형된경우도있다.이같은행과연의연결이빚어내는형태미는형식을통해내용의맛과분위기를돋우려는의식의결실이며,한결단정하고정결한문체에시상을담으려는예술정신의지향으로보인다.
그는시「무지無知」에서자신의존재에대한회의를짧게드러냈다.“나,지금어디에있지?”,“나,어디로가고있지?”,“나,어디에갔다왔지?”의세마디가그것이다.방안에드러누워있는데도자신의실존이어디있는지자문한다.「무지의무지」에서는내가나를진정으로알고있는지회의하며“내가모르는나”를확인하려고민한다.「무지의지知」에서는내가지금까지살아왔는데“어디서왔다가어디로가고있는지”모르겠다고토로하면서실존의고민을고백하고있다.

누군가내등을떠민다
누구인지는모르지만등을떠민다
아침부터갈데가없는데도길을나선다
떠밀려가다보면길이끌어당긴다
길이끌어당기는데로내가끌리어간다

한참그렇게가다가보면스스로간다
길이나를끌어당기지않아도
등을떠미는사람이없는데도
내가가는곳이어딘지모르면서간다

그제도,어제도그랬지만다시돌아선다
가고또가보아도거기가거기라서
갔던길로되돌아올수밖에없어서이다
하지만내일도,모래도같은길을
가지않을수있을는지
-「날마다가는길」전문

우리가지각하지못하는생의관성을시인이표나게끄집어내주었다.갔던길로되돌아오는것이우리의습관이자운명이다.그래서시인은「도로徒勞」에서“멀리가도거기이고돌아와도거기”인데,가고있는게생의모순이라는상황에서존재탐구,자아탐구의가능성을다음시로대답했다.

처음이자마지막인지금눈이내립니다

이처음도마지막도지나가면서
돌아오지못하고눈에덮입니다

여기는처음이자마지막순간속입니다

마지막은처음이맞물고처음은
마지막과맞물려있을테니까요

나는지금,여기서눈을맞고있습니다

처음이자마지막인이순간들은
끝없이가고오고떠나가는데도

나는여기서,지금이순간을붙듭니다
-「지금,여기」전문

시인은지금을처음이자마지막인상태라고지명했다.모든처음은마지막을예고하고마지막은처음을예고한다.그러므로“끝없이가고오고떠나가는”시간의진행속에서시인은지금여기서이순간을붙들고있다.이러한존재론적사유는존재론적질문의연속속에탄생한다.현재의영원성을인식하면순환의덧없음에서벗어나는영원회귀의철학이시작되고그것은순수의탐구로이어진다.

이른봄야산에서만난야생화
청노루귀

꽃잎이청초해되레슬프다
먼옛날의
소녀가생각나서이런걸까

돌아서도
눈앞에먼저와있는청노루귀
-「청노루귀」전문

시인은야산의야생화청노루귀에서순수를포착했다.먼옛날의소녀가떠오를정도로청초한꽃잎이슬픔을일으킨다.돌아서도그모양이계속눈에떠오를만큼그작은꽃을순수의표상으로받아들인것이다.
그는진흙탕에서피어나는연꽃에서정결한마음을보고(「연꽃」),아침연못에핀수련睡蓮을보면서잠에서깨어나지않고꿈속에머물며너를보리라(「수련별곡」)고다짐한다.“목을길게늘이고고개숙인”(「나리꽃」)나리꽃에서반가운아린마음을만나고,숲속그늘에서노루발풀을보고“솔숲그늘에방울달고등불을켠단심”(「노루발풀」)에감탄한다.풀꽃들이주는기쁨은존재론적인식의차원과는다른감각의기쁨이고순수표상과의만남에서오는환희다.
「맥문동꽃」에서맥문동보랏빛꽃을보고는배롱나무그늘에서자라지만그늘에서기죽지않고꼿꼿이꽃피우면서하늘을지향하는“끈질긴생명력”에감탄한다.「불두화,길」에서는“아무향기도없이,꽃술도없이/한번도벌과나비를불러들이지않고/무덤덤왔다가떠나”는불두화의모습을부질없는상념을가라앉히는각성의표상으로받아들인다.
창밖의산딸나무가묵묵히서있는모습을보면수도하는자세가떠올라마음을더낮추게되고“무릎을꿇고두손모으게한다”(「창밖의산딸나무」).순수의표상은이렇게여러가지각도로다가온다.순수의표상이어머니의영상과겹치는것은당연한일이다.

돌확에꽃몇송이예쁘게피어있네요
고인물에서잘피는꽃들을가꾸는
따스한손길이애틋하게느껴지는군요

옛날어머니손길이그리워
그기억들위에꽃을기르는지
고소한참깨를으깨고매운고추를빻던
어머니를안잊으려하는건지
그마음자리참아름답군요

길을가다가낯선집의담장아래놓인
돌확의물에핀꽃을들여다봅니다
먼옛날어머니생각이간절해집니다
-「돌확꽃」전문

누군가가“고인물에서잘피는꽃들을”골라가꾸었으니그마음이참으로따스하다는시인은돌확을보고어머니가돌확에서일하시던모습을떠올렸다.꽃을기른누군가도“옛날어머니손길이그리워/그기억들위에꽃을”기른것같다고상상했다.돌확에꽃을키운그분도아름답고그것을아름답게생각하는시인의마음도순정하다.이두층위의순수한마음은어머니에대한추억에수렴된다.이모든생각은순수에대한동경으로집약된다.
자연에대한순수함의명상은노자의섭생攝生이라는삶의태도에연결된다.

앞뜰소나무가솔방울을잔뜩달고있다
지난날은이러지않았던것같은데
아마도요즘은살기어려운가보다

대추가많이열리게하려면
대추나무를견딜만큼괴롭혀야하고

위기가닥쳐올때소나무는솔방울을
가지가휘게단다고하던가

염소들이대추나무에매인채계속
고삐당기면서나무를흔들어댄다
누가대추가많이열리도록저랬을거다

우리는언제부턴가위기에맞닿은채
시달리며살아가는게아닐는지
그래서더강인해지지않았는지
억누르면더아름다워진다고한
노자의섭생이란말이문득떠오른다
-「섭생攝生」전문

자기몸을괴롭혀서스스로를지키는자연의생리를여기서배울수있다.대추나무를괴롭히면대추열매가많이열린다고하는것도같은논리다.이태수시인은섭생을“삶을억누른다”는뜻으로보고,소나무를괴롭히면솔방울이많이열리고대추나무를괴롭히면대추열매가많이열리는것을그와관련지어“억누르면더아름다워진다”라고아름답게해석했다.시인은섭생이란개념에관심을보인것처럼순리에따르는삶을추구한다.

물은소리를낮추며흐른다

흘러가면서한없이낮추고낮춘다

아래로만내려가며깊고높아진다

높고깊어져소리를거둔다
-「물,소리」전문

이시의전반부발상은노자의생각과통한다.노자는“모두가꺼리는낮은곳에머문다”라는말에이어서물의덕성을실현하면,좋은곳에머물게되고,마음이깊어지고,남과어울릴때어질고,말에신의가있고,올바르게남을다스리고,일을능숙하게하고,행동이시의時宜에맞고,남과다투지않아허물이없게된다고덧붙였다.
앞의두시행“물은소리를낮추며흐른다/흘러가면서한없이낮추고낮춘다”는노자가말한물의겸허의덕성을달리표현한것이다.“내려가며깊고높아진다”는말은노자가부연한말을달리표현한것이다.“높고깊어져소리를거둔다”는구절은노자의「도덕경」에는없는시인의잠언이다.
침묵이야말로모든덕성의귀결이다.자성과관조의수련을하면대상의아름다움이저절로심경에스며든다.그대표적인정경이윤슬과은파다.시인은강과바다가만나는한적한마을에머물며정경을관조하고묵상에잠긴다.“이제그만집으로돌아가야만하는데도/윤슬과은파를데리고가려고/벌써몇시간째궁리하는중입니다”(「윤슬과은파」)라고,물결에반짝이는아름다움을마음깊이받아들이며그덕성을자신의내부에육화하려고관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