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길

마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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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태수 시인이 스물세 번째 시집 『마음의 길』(문학세계사)을 냈다. 「이 풍진세상에서」, 「내가 나를 찾아」, 「목어木魚 울음」, 「강가의 저물녘」, 「은피리 판타지아」, 「달항아리」, 「겨울 입새에서」, 「한밤의 눈」, 「거울 앞에서」, 「먼 여정旅程」 등 올해 연초에 낸 시집 『은파』 이후의 시 78편을 실었다. 반세기에 걸쳐 ‘현실 초월’을 기본명제로 삶의 근원과 그 의미를 지성적 사유와 감성적 상상으로 모색하고 추구해온 그는 이 시집을 통해 현실적 자아를 비우고 내려놓으면서 내면의 본질적 자아에 도달하는 경지를 보여준다.
저자

이태수

시인 이태수는 1947년 경북 의성에서 출생, 1974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은파』(2025), 『먼 여로』(2024), 『유리벽 안팎』(2023), 『나를 찾아가다』(2022), 『담박하게 정갈하게』(2022), 『꿈꾸는 나라로』(2021), 『유리창 이쪽』(2020), 『내가 나에게』(2019), 『거울이 나를 본다』(2018), 『따뜻한 적막』(2016), 『침묵의 결』(2014), 『침묵의 푸른 이랑』(2012), 『회화나무 그늘』(2008), 『이슬방울 또는 얼음꽃』(2004), 『내 마음의 풍란』(1999), 『안동 시편』(1997), 『그의 집은 둥글다』(1995), 『꿈속의 사닥다리』(1993), 『안 보이는 너의 손바닥 위에』(1990), 『물속의 푸른 방』(1986), 『우울한 비상의 꿈』(1982), 『그림자의 그늘』(1979), 시선집 『잠깐 꾸는 꿈같이』(2024), 『먼 불빛』(2018), 육필시집 『유등 연지』(2012), 시론집 『예지와 관용』(2024), 『현실과 초월』(2021), 『응시와 관조』(2019), 『성찰과 동경』(2017), 『여성시의 표정』(2016), 『대구 현대시의 지형도』(2016), 미술산문집 『분지의 아틀리에』(1994), 저서 『대구문학사』(공저, 2020), 『가톨릭문화예술』(2011) 등을 냈다. 한국시인협회상(2021), 상화시인상(2020), 대구예술대상(2008), 천상병시문학상(2005), 한국가톨릭문학상(2000), 동서문학상(1996), 대구시문화상(1986) 등을 수상했으며, 매일신문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대구한의대 겸임교수 등을 지냈다.

목차

Ⅰ
이 풍진세상에서_12/내가 나를 찾아_14/나를 기다리다_15/길에 대한 묵상_16/새 소리_17/조약돌과 멧새_18/어떤 길조吉兆_20/강물이 흐르듯이_22/내 마음의 행로 1_24/내 마음의 행로 2_25/내 마음의 행로 3_26/내 마음의 행로 4_28/어떤 화음和音_29/말과 길_30/말의 사원_32/밀림에서_33/와불臥佛 앞에서_34/목어木魚 울음_36/꿈과 꿈_38/무덤덤_39

Ⅱ
새봄의 신호탄_42/불발탄_43/산문山門, 이른 봄_44/삼월의 눈_45/벚꽃 사태_46/능수벚꽃_47/백매화_48/이별 노래_49/꿈결_50/봄비 소리_51/곤줄박이_52/갈래머리 소녀_54/튤립, 그 소녀_56/비가悲歌, 장미_58/처가 옛집 목단_60/한여름 풍경_62/마음이 울적하면_63/강가의 저물녘_64/먼 그대에게_66/미련_67

Ⅲ
아침 풀잎_70/외딴섬, 나뭇잎 하나_71/어느 한나절_72/빗소리 판타지아_73/비 판타지아_74/은피리 판타지아_76/솔숲길을 걸으며_78/여름 저녁에_79/별밤에는_80/별, 전언_82/귀뚜라미_83/그믐달_84/로즈마리, 그녀_85/달항아리_86/단풍_88/늦가을 점묘_89/겨울 입새에서_90/내리는 눈_92/한밤의 눈_93/그래도 지금 여기가_94

Ⅳ
돋보기_98/미시微視, 거시巨視_99/갈라파고스_100/읍울悒鬱_101/언덕에 서서_102/중심 잡기_104/숙명_105/눈감고 가다_106/몽블랑 만년필_107/야구 경기를 보며_108/거울 앞에서_110/꽃길-이구락 시인_111/고해告解_112/간절한 기도_113/그의 첼로 연주_114/비토섬에서_115/도로徒勞일지라도_116/먼 여정旅程_117

|해설| 홍용희(문학평론가)-나를 찾아가는 비움의 여정_120

출판사 서평

삶을 지성적 사유와 감성적 상상으로 추구
비움으로 본질적 자아에 도달한 경지 보여

이태수는 등단 이래 50여 년에 걸쳐 23권의 시집을 간행하며 누구보다 활발한 시작 활동을 꾸준하게 펼친 원로 시인이다. 그동안 자신과 세계의 삶의 근원과 의미를 지성적 사유와 감성적 상상으로 추구해온 그의 시편들이 이번 시집 『마음의 길』에 이르면 “마음”을 화두로 삼아 집중적으로 탐색하는 면모를 보여준다.
그에게 “잃어버린 나”는 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현실적 자아의 “비우고 내려놓는” “마음”속에 존재한다. 그래서 “마음”은 물론 “몸”까지 비움의 철학을 생활 속에 내면화할 때 본질적 자아와의 만남은 성사된다. 본질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는 둘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였다. 그래서 현실적 자아와 본질적 자아는 서로가 합일될 수 있는 관건은 현실적 자아의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내면의 본질적 자아를 찾고 만나는 방법론이다.
해설을 통해 문학평론가 홍용희는 “이태수의 이번 시집은 ‘내가 나를 찾아’가는 비움의 여정이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며, 그의 반세기를 훌쩍 넘어서는 시적 삶의 꾸준한 정진이 도달한 한 경지이다.”라고 평가했다.
그에게 “마음의 길”은 “내가 나를 찾아”(「내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며 “하늘”의 “순리”(「한여름 풍경」)를 터득하는 방법론이다. 물론 이처럼 “나를 찾아”간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나를 잃어버렸다는 상실 의식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그는 왜 자신을 잃어버렸으며 “잃어버린 나”(「내가 나를 찾아」)를 찾을 수 있는 “마음의” “길”이란 어떻게 열어갈 수 있는 것일까?

나를 들여다보면 먼지투성이
눈을 돌려봐도 티끌투성이다
어쩌려고 세상이 이리 돌고 있는지

아수라장을 헛도는 것 같아
먼 하늘을 우러르고 있어도
마냥 그런 도가니일 뿐이다

세상이 하늘을 따르는 날이 언젠가
먼 길 돌고 돌아서 올 건지
이 염원도 허당 짚기일는지
새들이 날아가는 하늘을 우러러본다
마음 눈이라도 높이 올라가서
이 풍진세상이 바뀌는 걸 보고 싶다
-「이 풍진세상에서」 일부

시적 화자는 “먼지투성이”와 “티끌투성이” 속에 묻혀 살고 있다. “먼지”와 “티끌”이 “나”와 “세상”의 본모습을 뒤덮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아득한 “먼 하늘을 우러”러본다. 그러나 세상은 “아수라장”이며 “도가니일 뿐이다”. 그야말로 “이 풍진세상”이다. 이때 그는 어느새 “날아가는 새”를 선망하게 된다. “새”는 지상의 중력권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새”처럼 현실의 굴레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날 수 없다. 이때 그는 “마음눈이라도 높이 올라가”기를 바란다.
“마음”은 중력의 지배를 받는 육체가 없기 때문에 존재 초월이 가능하다. “마음눈”, 즉 마음의 감각으로 지상으로부터 “높이 올라가서” “풍진세상”을 조망하고 “세상이 하늘을 따르는 날”로 “바뀌”기를 염원한다. “세상이 하늘을 따르는 날”로 바뀔 때, “먼지투성이/티끌투성이/아수라장/도가니”로 표상되는 현실이 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먼 수평선을 바라보다가
나와 내가 평행선으로만 간다는
느낌이 새삼 든다

지금 여기의 나와
몽매에도 애타게 되고 싶은 내가
만날 때가 오기나 할지

먼 수평선 저 너머까지
만나러 마음은 달려가지만 나는
되돌아오고 말 뿐
-「한여름 풍경」 전문

“먼 수평선”이 마치 “나와 내가” 서로 만나지 못하는 긴장 관계로 이어지는 “평행선”처럼 느껴진다. 앞의 “나”는 “지금 여기의 나”이고 뒤의 “내”는 “몽매에도 애타게 되고 싶은” 자아이다. 이를테면, 일상성 속에 갇힌 현실적 자아와 삶의 원상에 해당하는 본질적 자아의 불연속적 긴장 관계이다. “마음”은 본질적 자아를 향해 “달려가지만” 그러나 “지금 여기의 나”는 다시 현실의 지배 논리 속에 복속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와 내가” 서로 연속성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 앞에 다음 시편이 매우 흥미롭게 다가온다.

잠이 달아난 늦가을 밤입니다
어두운 마음에 순백 달항아리 하나
데려와 앉혔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영상으로 본 적이 있는
둥글고 커다란 그 항아리를
마음의 한가운데 앉혀놓고 싶습니다

마침 창 너머 보름달 둥그렇게 뜨고
귀뚜라미 합창이 한창이며
별들은 내려올 듯이 반짝입니다
그런데 왜 가슴엔 낙엽 지고
마음은 정처 잃은 채 어두워질까요
요즘 세상 탓이기만 할는지요

언제부턴가 순백 달항아리를
마음속에 끌어당기면서 동경했습니다
-「달항아리」 일부

시적 화자는 “순백 달항아리”를 “마음의 한가운데 앉혀놓고 싶”어 한다. “둥글고 커다란” “달항아리”를 “동경”하면서, 어느새 “창 너머 보름달 둥그렇게 뜨고/귀뚜라미 합창”과 “별들”이 “내려올 듯이 반짝”이는 것을 생생하게 느낀다. “달항아리”가 “보름달”과 “별들”을 “끌어당”겨 담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이러한 정황이 가능한 것은 “달항아리”의 내부가 텅 비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달항아리”를 “마음의 한가운데 앉혀놓고”자 하는 것은 마음의 비움을 통해 대자연의 무한을 채우고자 하는 바람으로 해석된다.
이 대목은 바로 장자가 설파한 “허실생백虛室生白”의 감각적 표상으로 해명된다. 마음을 깨끗이 닦아 텅 비우는 심재心齋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감각과 생각을 지우고 비우는 것이 삶의 이치를 터득하고 삼라만상과 하나가 되는 길이며 “하늘을 따르는 날”(「이 풍진세상에서」)에 도달하는 길임을 일러주고 있다.

내가 보고 있는 꽃이
내 것이 아니듯
내가 가진 것이
나를 스쳐 떠나갈 뿐
세상 모든 것도 마찬가지다
한동안 나를 스쳐 지나갈 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또 새기면서도
왜 가지고 싶은 마음까지는
말끔히 비우지 못하고 있는 걸까
-「미련」 일부

등 굽은 소나무는 그늘 드리우며
한결같이 제자리에서만 적선하는지
누가 오든 말든 그저 묵묵히
하늘을 이고 땅을 지킨다

길섶의 소나무들은 하나같이
마음 낮추듯이 등을 구부리고 있다
새기면서 본받아야 할 자세 같다
-「솔숲길을 걸으며」 일부

깊은 산 속에 들면
나는 밀림 속의 한 포기의 풀
울창한 나무 그늘에 조그맣게
흔들리는 한 포기의 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듯이
나무 그늘에 끼어들어
있는 듯 없는 듯한 한 포기의 풀
-「밀림에서」 일부

마음을 “달항아리”처럼 텅 비우고자 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은 “미련”이다. “꽃”은 “바라”만 봐야 할 대상임에 틀림없지만, 어느새 “가지고 싶”은 소유욕을 갖게 된다. 세상사 모든 것이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집착의 “미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솔숲길을 걸으며” 문득 소나무의 모습에서도 깨달음을 얻게 된다. “소나무들은 하나같이/마음 낮추듯이 등을 구부리고 있”지 않은가. “나” 역시 한 그루의 “소나무”처럼 “낮추”어 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깊은 산 속”의 “밀림”은 이 점을 더욱 분명하게 가르쳐 준다.
“깊은 산 속에 들면”, “나는 밀림 속의 한 포기 풀”에 지나지 않음을 스스로 알게 된다. “밀림”의 중심이 “한 포기의 풀”에 있지 않듯이 “나” 역시 세상의 중심이 아니다. 세상 전체로 볼 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낮고 작은 존재일 따름이다. 이처럼 자연의 존재성은 있는 그대로 “세상 이치의 거울”(「겨울 입새에서」)이다.

나무들은 잎새를 벗는다
나무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는데
나무들은 땅을 내려다본다

나도 한동안 땅을 내려다보다가
나무들의 슬기를 새겨본다
비우고 내려서 겨울나기를 하는
나목의 형식을 따라야만
찬 바람 부는 세상에서 살아남고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아야
그윽하게 차오를 수 있을 터이다

한결같이 땅에 힘을 주면서
하늘 우러르는 나무들의 슬기는
세상 이치의 거울과 같다
비우고 지우고 내려놓는 지혜를
새겨보게 하는 겨울 입새다
-「겨울 입새에서」 일부
“나무들”이 가을이 되면서 “잎새를 벗는다”. 스스로 자신을 “비우고 내”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겨울나기를 하는 나목의 형식”이다. 이와 같이 나 역시 “비우고 내려놓아야” “찬 바람 부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봄이면 다시 “그윽하게 차오르”는 나무처럼 나 역시 다시 풍요로워질 수 있다. 여기에 이르면, “비우고 내려놓”는 것은 나무를 나무답게 하고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존재 원리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 “비우고 내려놓”았을 때 나는 본래의 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쓸모가 있다는 것은 그것이 비어있는 공空이기 때문이다. “비우고 내려놓”는 것이 바로 모든 존재자의 본성을 찾고 지키는 과정이라는 가르침이다. 바퀴통이 비어있어야 바큇살이 수레바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릇이나 방 또한 가득 차 있으면 그릇이나 방의 역할을 할 수 없다.
사람도 이 점은 다르지 않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도 “마음이 가난해야 복 받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마음이 가난”하게 비어있어야 자신을 창조한 하느님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집착과 욕망이 채워지면 하느님의 뜻을 담을 공간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창조주가 부여한 자신의 근원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이렇게 보면, “비우고 내려놓는” 과정이 곧 본래의 나를 찾고 만나는 여정이 된다. 여기에 이르면, 시적 화자에게는 “마음”은 물론 “몸”까지도 “비우고 내려놓”는 것이 절실한 바람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