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에녹아든철학의뼈
시인김인숙은철학자가아니다.그러나그의시는철학적이다.우리는여기서“철학은철학자의전유물이아니다”라는명제의타당성을확인한다.직관과통찰과시적자유로무장된시인의상상력은철학적상상력을가히초월한다.시가철학은아니지만,그럼에도불구하고시는철학을포섭한다.
시는집에집을들이는일이다.읽는자는그가가진읽기의집에쓴자의쓰기의집을들인다.시를쓰는자는그가가진쓰기의집에사물이나사태의집을들인다.집을들이는일은집을짓는일과다르지않다.요컨대시를짓는일이나집을짓는일이매한가지라는말이다.집속의집은이집도저집도아닌제3의집이다.바로거기서이해나해석은물론,창작의독립성이성립한다.김인숙의시에대한나의독해는궁극적으로내방식의독해가될수밖에없지만그것을글로쓴해설은김인숙의것도아니고나의것도아니라바로독자의것이다.집이집으로이어지는집의연쇄가읽고쓰고읽기인것이다.
이시집에실린김인숙의시를읽는나의방식은다음과같은다섯개의길잡이말의안내를받는다.
1)팔꿈치가스쳤을까,손등이스쳤을까
2)오전은숲길,의자는몽상가
3)꽃피는라인을읽으며꽃지는부호를발음한다
4)갈비뼈를깎아만든소리
5)내게로오지않아도가득차게되는것이아름다움입니다
이는1936년4월2일,로마에서하이데거MartinHeidegger가행한강연,〈횔더린과시의본질〉에서다섯개의길잡이말을내세운것과동일한방식이며,칸트ImmanuelKant가그의『순수이성비판』에서인식의출발점으로서내세운순수오성개념(12범주)과유사한형식의전개라할수있다.
김인숙의시집『눈부신창문』은시적상상력과철학적사유가정교하게교직交織되어있다.이시집은삶과우주,존재와관계,시간과공간,사랑과초월을넘나드는깊은사유의길을개척한다.시인은익숙한일상적이미지와우주탐사선‘솔라오비터’같은과학적이미지가어우러진독특한조형미를통해우리존재가처한다층적현실을포착한다.
이해설은,시인김인숙의시적사유의핵심과시적의미를중심으로하여,시속에녹아든철학의뼈를발라내는것을목적으로한다.
1.팔꿈치가스쳤을까,손등이스쳤을까─존재의연결과사랑의흐름
시「스쳐가다」는,인간존재의관계성과일시성,그리고우주적연대성을시적으로묘사한작품이다.특히‘스침’이라는행위를통해존재들이서로맞닿고영향을주고받는과정을탐구한다.
솔라오비터가금성을스쳐갔다
팔꿈치가스쳤을까,손등이스쳤을까
아니야
미소만스쳐갔을거야
우주같은호수,
스치면서부력을얻고스치면서부력을얻어무중력의수면으로물수제비떠간다
먼길혼자힘으로는가지못하지
사람이사람을스치면서용기를얻고얻은용기로다음사람을스쳐또다음사람으로건너가는거야
그런데,얼마나건너야끝에닿을까
담방담방태양계를떠서가는솔라오비터
나도모르게나의마그마근처를스쳐간사람,생의어느길목을어느시간대로건너가고있는지
체온을남기고새는
출렁이는
가지의힘을얻어가지를떠나는데
─「스쳐가다」전문
「스쳐가다」라는시의제목은순간적접촉,지나침,그리고그로인한영향과변화를함축한다.시인은유럽우주국ESA과미국항공우주국NASA이공동개발한태양탐사선‘솔라오비터’가금성을스쳐지나가궤도를수정하는과학적사실을출발점으로삼는다.이러한시적이미지에는우주적규모의‘스침’이개별적인간존재와맞닿는지점이있음을암시한다.‘스쳐가다’는‘닿는듯,닿지않는듯지나간다’는말이다.불교적세계관에서는‘옷깃만스쳐도인연’이라고한다.삼라만상이서로를스쳐간다.시간위의모든존재가스쳐간다.시간은변화와운동의근원적차원이기때문이다.원자가원자를스쳐가고,입자가입자를스쳐가며바람이바람을스쳐간다.이념이이념을스쳐가고마음이마음을스쳐간다.그것은짧은마주침이면서동시에,원래부터있었던영원한마주침이다.우연성과필연성의변증법적지양이그것이다.우주의원리가그러하다.시인은이것을말하고있는것이다.‘솔라오비터’라는구체적이미지를시에배치함으로써,‘스침’은단순한물리적접촉을넘어거대한우주속존재들의미묘한상호작용과연결된다.이는한편으로레비나스EmmanuelLevinas의‘타자의얼굴’과의만남,즉타자와의윤리적관계성을상기시킨다.레비나스는타자와의접촉에서‘스침’과같은미세한만남이존재의의미를형성한다고보지않았던가.
“팔꿈치가스쳤을까,손등이스쳤을까/아니야/미소만스쳐갔을거야”라는이부분은물리적접촉이아닌‘미소’라는비가시적이면서도강력한정서적연결을시사한다.여기서‘스침’은단순한우연이아니라존재들이서로에게용기를주고받는의미있는교차점으로확장된다.시인은‘스치면서부력을얻고무중력의수면으로물수제비를뜬다’는비유로,인간관계의힘과그것이삶에미치는영향력을우주적운동으로재해석한다.시에서‘팔꿈치’,‘손등’,‘미소’로표현되는‘스침’은물리적접촉을넘어감정과정신의미묘한전달을의미한다.이는하이데거의‘세계내존재DaseininderWelt’개념과맞닿는다.인간존재는세계속에서타인과끊임없이관계맺으며,그‘스침’을통해자기존재를자각한다.
“스치면서부력을얻고스치면서부력을얻어무중력의수면으로물수제비떠간다”는구절의‘부력’과‘무중력의수면’이미지는존재가관계속에서받는영향을상징한다.이는들뢰즈GillesDeleuze의‘관계론적존재론’과연결되어,개별존재는독립적실체가아니라관계망속에서형성되는유동적존재임을시사한다.
더나아가“사람이사람을스치면서용기를얻고얻은용기로다음사람을스쳐또다음사람으로건너가는거야”라는구절은한개인의경험과감정이타인과공유되고전파되는과정을시적으로그려낸다.그것은곧인간관계의연쇄성과상호의존성을강조하는것이기도하다.이는현대사회의고립과단절을넘어,인간사이의연대와상호작용을새로운시각으로조명한것이다.존재는고립된실체가아니라관계망속에서부력을얻으며흐르는존재임을말한다.
이시는또한‘얼마나건너야끝에닿을까’라는물음을던짐으로써존재의무한성과여정의불확실성을드러낸다.삶은끊임없는스침과이어짐,용기와전이가반복되는여정이며,이과정에서우리는‘나’와‘너’,그리고‘우주’와연결된다.이러한사유는시인이전통적인인간중심서사를넘어우주적스케일에서존재론을확장하고있음을보여준다.
또한,시는‘체온을남기고새는’,‘가지의힘을얻어가지를떠나는데’라는자연적이미지로마무리되며,존재의흔적과생명의연속성을표현한다.이는동양철학의‘기氣’사상과통하는측면이있다.기는우주만물의생명에너지로,흐름과순환을통해존재가유지되고변한다는개념이다.
요약하자면,시「스쳐가다」는미시적접촉에서시작해우주적차원까지확장되는존재론적성찰이다.‘스침’은단절이아닌연결이며,각존재가타자와만나며자기존재를확장해나가는과정이다.인간과우주,미시와거시가어우러진이시는관계성과일시성,그리고존재의유한성과무한성을포괄하는철학적사유를담고있다.그러면서도시의중반부에“나도모르게나의마그마근처를스쳐간사람,생의어느길목을어느시간대로건너가고있는지”라는진술을슬쩍비춤으로써시인은지나간어느사랑을초월적입장에서아련히바라보는견자見者의서정도곁들인다.
스침은나아가숲길과몽상가의스침으로이어진다.
2.오전은숲길,의자는몽상가─시간,성장,그리고모순적존재
시「오전은숲길,의자는몽상가」는,‘오전’,‘숲길’,‘의자’,그리고‘몽상가’라는시적이미지들을통해시간,존재,사유의관계를섬세하게탐구한다.특히‘오전’이라는시간대는‘깨어남’과‘가능성’의순간으로서,존재가잠에서깨어현실과만나기전의미묘한경계상태를상징한다.그러니까‘오전’이라는시간개념을통해사유하고성장하는존재의모순성과시간적중첩을탐구하는것이다.
어둠을건너와반쯤검은물이든오전이의자위에앉아있어반백반흑이네키가작은아이에게정오까지기다려보라고할까성장호르몬은깊은밤잠잘때만나온다는데
오전은숲길,의자는몽상가
사색은허물어질거야
당신은의자를잡고서서운동을하고나는의자위에서서정리를해요싱크대수납장의성장판이닫혔어요우리는각자의의자를들고숲길로갈까요
정오의숲길은의자안에있을까요밖에있을까요
아이가프라하에서셀카를찍어보냈어도로변의아파트가성곽같네성안에서일어나는일은아무도모르지밀크브라운의밝은머리색깔은국내에서뽑은거야근데눈썹만유독검은색이네
석양이내린황금골목길에서카프카를만나봐
더운날의변신은힘들어
키는반드시자라야하는것이아니지
뾰족지붕아래릴케의색바랜의자를치워버릴까
─「오전은숲길,의자는몽상가」전문
“어둠을건너와반쯤검은물이든오전이의자위에앉아있다”는시적이미지는오전이라는시간이빛과어둠,성장과멈춤,현재와미래가혼재된상태임을암시한다.성장호르몬이밤에만분비된다는생물학적사실은시간의층위를드러내며,어둠에서밝음으로나가는정신의성장가능성을상징한다.‘반백반흑’이라는표현은단순히색채의대비를넘어서시간과존재의불확실한상태,즉‘미완성의완성’을뜻한다.또한,백과흑이라는색채대비를통해‘빛과어둠’,‘알려짐과미지’사이의긴장감을현시한다.이는동양철학의음양陰陽사상과도맞닿아있어,존재의이중성,즉상반되면서도보완적인힘들의조화를시적으로그려낸것이라할수있다.
철학적으로‘숲길’은자연과인간존재가만나는공간이며,헤세HermannHesse의『데미안』에서처럼내면의자아탐색과성찰의길로해석될수있다.숲길을걷는다는것은곧존재의깊은층위로들어가는여정이며,이는하이데거가말한‘오솔길holzwege’을연상시킨다.하이데거는인간존재Dasein를‘세계속에내던져진존재’로보고,이존재가세상과관계맺는방식을‘길’과‘걷기’로비유한다.또한이부분에서시인은‘의자’와‘몽상가’를등치시킨다.의자의정지성과몽상의운동성을융합시켜인간존재가가지는사유의무의식성을드러내면서오전을인간존재가세상과관계맺기를시작하는공간으로규정하고있다.
특히“당신은의자를잡고서서운동을하고나는의자위에서서정리를해요”라는구절은서로다른존재의입장과시간경험을대조적으로보여주면서,시간의상대성,개인적성장과정체사이의긴장을표현한다.‘성장판이닫혔다’는말은물리적성장뿐아니라심리적·정신적변화의끝자락을상징하기도한다.
이어지는“정오의숲길은의자안에있을까요밖에있을까요”라는구절의‘정오’,‘숲길’,‘의자’의관계에서,의자는객체이고정오와숲길은주체이다.‘의자’는앉아있는장소이자‘몽상가’라는은유로서의식과무의식,현실과환상을연결한다.시인은‘의자위에앉은’‘정오’와‘숲길’이라는두공간을병치해서사유하는정신적존재(인간)의복합적층위를드러낸다.‘의자’는정지와고요,사유의공간을의미한다.의자에앉아있다는것은‘움직임’에서‘멈춤’으로,‘외부’에서‘내부’로의전환이다.몽상가는현실을벗어나상상의세계에잠기는존재로,이는데카르트ReneDescartes이후‘근대주체’의내면적성찰과닿아있다.몽상은현실의구속을벗어난자유로운사유의상태이며,메를로-퐁티MauriceMerleau-Ponty의‘현상학적경험’에서몸과의식의관계를탐구하는태도와도연결된다.따라서정오는곧몽상과사유의절정으로서의정오가된다.
‘프라하에서셀카를찍은아이’라는구체적이미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