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창

후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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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는 꿈속의 꿈-찰나와 영원에 대한 명상
비움이 채움이라고 깨우치는 역설의 화엄
이태수 시인이 스물네 번째 시집 『후창』(문학세계사)을 냈다. 「함월산含月山」, 「달 판타지아」, 「적멸궁 한 채」, 「풍경, 늦가을 황혼」, 「수선화 필 무렵」, 「지금 여기 2」, 「후창後唱」, 「오래된 탁상시계」, 「맥문동꽃」 등 시집 『마음의 길』 이후의 시 78편을 실었다. 그의 시어들이 펼쳐 보이는 시적 공간은 꿈의 공간 그 자체이다. 삶이 곧 꿈이고 시는 그 꿈속의 꿈이며, 비움이 곧 채움이라고 깨우치는 시인은 찰나와 영원에 대한 명상으로 가역성을 내포한 대상들이 지니는 역동적 힘이 확대돼 조화와 생성의 철학, 궁극적으로는 화엄의 사상에까지 이른다.
저자

이태수

저자 : 이태수
1947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으며, 1974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마음의 길』, 『은파』, 『먼 여로』, 『유리벽 안팎』, 『나를 찾아가다』, 『담박하게 정갈하게』, 『꿈꾸는 나라로』, 『유리창 이쪽』, 『내가 나에게』, 『거울이 나를 본다』, 『따뜻한 적막』, 『침묵의 결』, 『침묵의 푸른 이랑』, 『회화나무 그늘』, 『이슬방울 또는 얼음꽃』, 『내 마음의 풍란』, 『안동 시편』, 『그의 집은 둥글다』, 『꿈속의 사닥다리』, 『안 보이는 너의 손바닥 위에』, 『물속의 푸른 방』, 『우울한 비상의 꿈』, 『그림자의 그늘』과 시선집 『잠깐 꾸는 꿈같이』, 『먼 불빛』, 육필시집 『유등 연지』, 시론집 『예지와 관용』, 『현실과 초월』, 『응시와 관조』, 『성찰과 동경』, 『여성시의 표정』, 『대구 현대시의 지형도』 등을 냈다. 한국시인협회상, 상화시인상, 천상병시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동서문학상, 대구시문화상(문학), 대구예술대상, 예술가곡대상, 대구미술메세나상 등을 수상했으며, 매일신문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대구한의대 겸임교수 등을 지냈다.

목차

Ⅰ
함월산含月山_12/속 달항아리_14/달 판타지아_16/주월사住月寺_18//초승달, 그믐달_20/청잣빛 하늘_21/가을 나무_22/풍경, 늦가을 황혼_23/적멸궁 한 채_24/청단풍 한 잎_25/까치밥 하나_26/첫눈을 기다리며_27/나무의 겨울나기_28/겨울나기_30/크리스마스 무렵_31/포인세티아_32/남천 울타리_33/겨울 화살나무_34/한겨울 망중한_35/한겨울 어느 날_36

Ⅱ
어느 날 아침_40/기억이 나를 들여다본다_42/반반_44/나는 기다린다_46/수수꽃다리 엽흔葉痕_48/잎눈, 꽃눈_49/수선화 필 무렵_50/꽃무릇_52/어제_54/오늘_55/어제 오늘 내일_56/나는 여기 남고_57/지금 여기 2_58/별밤 1_59/별밤 2_60/첫새벽_61/정념情念_62/그림자_63/길을 달리면서_64/그리움 저편에서_66

Ⅲ
만남, 나와 나_70/작은 꿈_72/빈 항아리_73/이상향_74/먼 나라_75/정적靜寂_76/부활절 아침_77/노트르담의 청동 수탉_78/반가사유상_79/절벽 위의 부처_80/열암곡 부처_81/서출지書出池 까마귀_82/숲속의 나무_84/앞뜰의 소나무_85/후창後唱_86/오래된 탁상시계_87/우주와 나 2_88/우주와 나 3_89/착각, 환상_90/방하착放下著_91

Ⅳ
산수유마을_94/막내아우_96/한겨울 바람-누이 영주에게_98/이수 형_100/옛 술친구_101/술친구 생각 1_102/술친구 생각 2_103/뜬구름 1_104/뜬구름 2_105/뜬구름 3_106/맥문동꽃_107/그녀의 눈물방울_108/미묵眉墨_109/명태_110/아는 척에 대해_112/나의 언덕_114/시를 쓰면서_115/나의 시법詩法_116

|해설| 박진임(문학평론가)-물소리 안고 가는 적멸궁 한 채_119

출판사 서평

이태수 시인은 삶이 곧 꿈이고 시는 그 꿈속의 꿈이라는 것을 선명하게 깨우쳐준다. 꿈만이 고단한 우리의 삶을 견뎌 가게 하며, 꿈꾸는 자만이 경직된 사유를 넘어서서 유연하게 넘나들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그의 시어들이 펼쳐 보이는 시적 공간은 꿈의 공간 그 자체이며, 이 제3 행성에서는 시간도 고유한 방식을 지닌 채 흐르면서 시인의 삶과 꿈을 매끈하게 봉합한다. 시인의 텍스트 내부를 구성하는 꿈의 시공간은 한편으로는 삶과 예술에 대한 그의 철학을 반영한다. 찰나와 영원에 대한 명상, 즉 찰나에서 영원을 보고 영원에서 찰나를 다시 찾는 자세는 조화와 생성을 존중하며 물상들이 서로 기대고 어우러지는 모습에서 역동적인 역易의 힘을 찾는다.
해설을 통해 문학평론가 박진임은 “시인의 텍스트를 채우고 있는, 가역성을 내포한 대상들이 지니는 역동적 힘은 보다 확대되어 조화와 생성의 철학으로 연결되고 궁극적으로는 화엄의 사상에까지 이른다”라며, “비우는 것이 곧 채움이라는 것을 알고, 길이 이끄는 길을 나서는 삶, 그 발걸음마다 마주치게 되는 세상의 풍경과 물상들 속에서 때로는 겸손을, 때로는 허무를, 또 때로는 소중한 기억을 찾아내며 멈춤 없이 길을 가는 모습이 이태수 시인의 모습”이라고 풀이했다.

1. 삶이 잠깐 꾸는 꿈이라면 시는 그 꿈속의 꿈

이태수 시인은 아침에 꿈에서 깨어나도 그 꿈이 연장된 공간으로 현실을 바라본다. 꿈에서처럼 세상을 보고 또 그 꿈의 장면들을 직접 다시 연출하듯 하루하루 살아가는 듯해서 삶이 곧 한 편의 시라고 믿으며 시의 나라로 스스로 망명해 간 시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미국 시인 월리스 스티븐스Wallace Stevens는 시인과 작가는 상상력을 제3의 행성으로 여기는 사람이며, 상상력의 힘으로 이 광활한 우주 공간 속에 새로운 행성 하나를 창조해 내고 그 행성의 낯선 공간 속으로 독자들을 이주시키는 개척자라고 보았다. 문학비평가 헬렌 벤들러Helen Vendler는 “상상력의 빛 속에서는 하나의 풍경도 또 다른 제3의 풍경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하며, 독자는 시인이 건설한 새로운 세상의 빛으로 사물을 보게 된다고 이른다.
스티븐스와 벤들러가 일컫는 상상력은 이태수 시인에게는 꿈이라는 단어로 다가온다. 시인은 꿈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왕국에 머물면서 독자를 손님으로 맞는다. 그의 시를 읽는 독자들만이 시인이 꾸는 꿈속 공간으로 초대받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마치 정중한 옷차림을 한 신사가 마차에서 내려 흰 장갑 낀 손을 내밀면 귀부인이 그 손을 잡고 빛나는 황금 마차에 올라타고 함께 길을 떠나는 것과 같다. 꿈보다 현실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아마도 마차에 올라타지 않을 것이며 오로지 꿈의 소중함을 아는 이들만이 그 고귀한 시간대를 향유할 것이다.
이태수 시인의 시어들이 펼쳐 보이는 시적 공간은 과연 꿈의 공간 그 자체이다. 시인은 아침이나 저녁이나 산책하고 배회하며 흘러간 시간의 기억을 쓰고 다가올 날에 대한 기대를 쓴다. 살펴보면 이태수 시인은 일관되게 제3의 행성에 머물러 온 시인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펴낸 시집의 제목들은 시인이 한결같이 꿈의 공간 속에 머물며 꿈속의 꿈을 그려왔음을 보여준다. 1979년의 『그림자의 그늘』, 『우울한 비상의 꿈』, 『물속의 푸른 방』, 『꿈속의 사닥다리』 등이 그렇다. 『거울이 나를 본다』에 등장하는 거울 또한 꿈의 다른 이름으로 읽힌다. 현실에서의 거울은 사람의 모습을 반영하는 매체이지만 이태수 시인은 오히려 그 거울이 시인 자신을 응시한다고 노래했다. 그리하여 거울이라는 객체와 시적 화자인 주체의 자리가 뒤바뀌고 있는 공간을 형성해 냈다. 그 공간에서 거울은 무심한 대상이기를 멈추고 시인과 영혼의 대화를 나누는 인격체로 새롭게 태어난다. 사물이 숨을 쉬며 말을 걸어오는 나라, 그것도 바라보는 자의 모습을 그대로 솔직하게 보여주면서 긴밀한 대화를 소망하는 존재로 거울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의 시선집 『잠깐 꾸는 꿈같이』는 그의 꿈이 지니는 현재적 의미를 명료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삶이 꿈이고 꿈이 삶이며 시는 꿈을 꾸듯 삶을 살아가는 시인이 꿈속에서 다시 꾸는 꿈일 뿐, 그밖에 달리 무엇이겠는가 하고 시인은 묻고 있다. “잠깐 꾸는 꿈” 구절은 그처럼 우리 삶의 유한성을 지시한다. 시인은 진정 소중한 것은 그러한 삶의 한계 너머에 존재하는 꿈의 꿈이라고 이른다. 그러므로 꿈 혹은 꿈속의 꿈이라는 주제어는 그의 시 세계 전반을 설명하는 소중한 시어라 할 수 있다.
이번 시집에서도 이태수 시인의 꿈은 새롭게 모습을 바꾸어 나타난다. 시인은 꿈만이 고단한 우리의 삶을 견뎌 가게 하는 것이며 꿈꾸는 자만이 경직된 사유를 넘어서서 유연하게 넘나들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작은 꿈」은 하나의 꿈에서 또 하나의 꿈으로 이어지는 꿈의 세계가 이태수 시인이 거하는 나라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한다.

나는 이슬방울 같은 거겠지요
풀잎에 맺혔다가 때가 되면
기화하거나 흘러내리고 마는 이슬방울

나도 맑고 깨끗하게 글썽이려 꿈꾸다가
때가 되면 미련마저 버리고
여기에서 떠나야만 할 테지요

나는 꿈꾸는 이슬방울과 같고
이곳은 하나의 풀잎 같으니
이 풀잎은 단 한 번의 내 우주이겠지요

나는 작지만 명징하게 반짝이다 가는
한 방울 풀잎 위의 이슬방울
꿈꾸며 글썽이다 그 꿈에 드는,
―「작은 꿈」 전문

이 시에서 풀잎과 이슬은 곧 이태수 시인의 꿈의 자취이며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이 땅의 이름 없는 풀잎 하나를 “내 우주”라 부르고 그 풀잎 위에 잠시 머물면서 반짝이는 작은 이슬방울 하나로 자신의 존재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풀잎이 시인의 세계이며 이슬이 자신의 분신이라고 노래하는 것이다. 풀잎과 이슬이라는, 그토록 사소한 대상들이 세계와 자아의 상징이 되는 곳에 이태수 시인은 여전히, 오래도록 머물고 있다. 처음부터 그러했듯 여전히 “꿈꾸며 글썽이다 그 꿈에 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꿈에서 꿈으로 이어지는 꿈길의 궤도가 선연히 떠오른다. 「작은 꿈」에 이르러서 이태수 시인 고유의 꿈의 시학이 마침내 이른 곳을 찾아볼 수 있다.

2. 꿈 혹은 제3 행성의 시간과 역설의 미학

이태수 시인의 제3 행성에서는 시간도 고유한 방식을 지닌 채 흐르면서 시인의 삶과 꿈을 매끈하게 봉합한다. 일반적인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의 순서로 흐르는 반면 꿈의 공간에서는 그러한 선조적 양상이 사라지고 서로 뒤섞이고 엉킨다. 마치 피카소의 그림에서 보이는 조각난 형상들처럼 불연속적으로 연결된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시간 개념을 빌려 이야기의 정체를 규명한 바 있다. 선조적 형태로 진행되는 시간의 흐름을 분절하면서 텍스트의 완결성을 강조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간관이 인류가 지닌 시학의 초기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태수 시인의 텍스트는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대척점에서 전개되고 있다. 문학평론가 박진임은 “시작도 끝도 특정하기 어려운 꿈의 시간대를 제시하고, 선조적인 사유 방식에 적극적으로 의문을 보내면서 자신의 텍스트를 전개한다”라며, “시작과 끝이 분절되지 않는 시간대와 선조적인 진행을 거부하고 역진하거나 순환하는 시간대가 그의 텍스트를 지배한다”고 풀이한다.
이태수 시인의 제3 행성에서 시간은 그처럼 단속적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바로 그 점이 이태수 텍스트의 고유성을 담보하는 요소들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오래된 탁상시계」는 이태수 시의 고유한 텍스트성, 그 공간과 시간의 미학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시편이라 할 수 있다.

책상 의자에 앉아 졸다가 깨다 하다가

탁상시계를 보니 가다가 말다가 한다

시간은 같은 걸음으로만 가겠지만

가다가 말다가 하고 졸다가 깨다가 하니

시간이 나의 것이 되는 것도 같다

탁상시계도 나와 보조를 맞추는 걸까

가도 그만 가지 않아도 그만인가 보다
―「오래된 탁상시계」 전문
실용과 효용이 지배하는 공간, 즉 선조적 시간대를 숭상하는 공간에는 오래된 시계를 위한 자리가 없다. 시계는 시간의 흐름을 정확하게 지시하는 것이 그 본질적 기능이다. 그러나 그 오래된 시계가 시인이 거주하는 특이한 공간, 이를테면 제3의 행성인 꿈의 공간에서는 매우 적절한 역할 수행을 한다. “가도 그만 가지 않아도 그만”인 그런 시간대를 시인이 향유하면서 꿈꾸기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다가 말다가 하고 졸다가 깨다가 하니”라는 구절에서 보듯 그 시계는 시인의 꿈의 속도와 보조를 맞추면서 시인의 불연속적 시간성과 비선조적 시간대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장치로 변모해 있다.
시인 또한 “시간이 나의 것이 되는 것도 같다”고 시계의 존재 의미를 긍정한다. 시인이 선조적 시간의 공식에 이끌리는 수동적 존재가 되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꿈의 공간에 스스로를 유폐할 때, 오래된 시계가 그의 동반자가 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오래된 시계는 기꺼이 시인이 지닌 삶의 소품들을 지게에 지고 먼저 길을 나서고 있다. 그리하여 시인이 지닌 고유한 꿈의 시간이 진정 그의 것이 될 수 있도록 돕는다.
충직한 동반자를 곁에 두고 걷고 있는 시인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현실에서는 버림받는 오래된 시계가 시인이 전유한 꿈의 시간대를 온전한 그의 시간으로 변화시키는 소중한 존재로 변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다 말다, 멈추었다가 다시 가곤 하는 시곗바늘이야말로, 현실과 몽상 사이, 길 떠남과 멈춤 사이, 경험과 추억 사이를 넘나들면서 가다가는 멈추고 멈추는가 하면 다시 가는 시적 화자의 불연속적 시간대를 그대로 지시하고 있다.
이태수 시인의 시 세계에서는 시간이 비선조성을 지닌 것이듯 공간도 이항 대립의 구조를 거부하는 공간이다. 상상력의 제3 행성은 역설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 나라에서는 어떤 대상도 견고하게 유지되거나 고착되어 있지 않고, 서로 열려 있으며 순환하고 흐른다. 문학평론가 박진임은 “그처럼 이태수 시인의 텍스트 내부를 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