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벗어나기
“계약자‘갑(김꽃님)’은‘을(염소클럽)’에복수를위임한다.”
주름진손가락이종이에쓰인첫문장을어루만졌다.“어머니가동의해주셔야하는부분이있어요.”
“계약시복수의방법은클럽에전면적으로위임하며,일부부작용이일어날수있음을인지한다.단염소클럽은부작용의회복을위해갑이요구하는사항을통상의범위안에서수용한다.또한계약전후로클럽에관련된모든일에대해,갑은외부에알리지않을것을서약한다.”-29쪽
《당신이사랑을하면우리는복수를하지》에는가정내희생양이된이들의복수를대행하는의문의조직‘염소클럽’이등장한다.sacrificiallamb(희생양)보다오래된표현인scapegoat에연원을둔염소클럽은엄마를독살했다고알려진‘마더포이즈너’사건의소녀하이하와전국가대표수영선수김해찬,그리고아픈과거를지닌개인경호원진선미,세멤버로구성된조직이다.
이들은친한언니의장례식장에서마저남편의밥타령을듣는노년여성꽃님,미디어를이용해아동학대를감행하는부모로부터동생을지켜내려는여자아이수아같은인물의사건을하나씩해결해나간다.가정내희생양이라는소설의주제적관심은수면위로도통드러나지않는가정폭력,아동학대의문제를부조하며,올가미로변질한울타리를낱낱이비춘다.
|울타리두르기
허니.마마는트루데야.마마의손등에있는이그림을보렴.염소의목을조른끈이보이니?끈의끝이어디로이어져있지?그래.손밖으로.마마는이끈을당길수있단다.허니가마마를떠나려고하면,마마는끈을당길거야.허니의목에새겨진이작은점들을떠올려.마마가새긴점들이,끈과연결되어있다는걸기억해.-214쪽
김해찬은과자부스러기가묻은자신의손가락끝을물끄러미봤다.잠들지못한날은그부스러기보다많았다.꼼짝도하지못한채천장에서뻗어져나오는아버지의얼굴과팔을피하지도못한채계속지켜봐야했던그밤들.누군가방에불이라도켜줬으면,방문이라도두드려주었으면하고바랐다.그러나그런기적은일어나지않았고나중에는한시간단위로휴대폰알람을맞추어놓고잠들게되었다.“오빠도가위눌려요?”“가끔.”“그럴때나불러요.그럼내가깨워줄게요.”-356쪽
사건을해결하는영웅적인조직이지만,염소클럽역시멤버개개인은가정의날카로운채찍을겪은희생염소들이다.염소클럽의진선미는어린시절자신을학대한아버지진동수의새로운희생염소진진아의전시회에하이하와함께걸음한다.하이하는진진아의그림너머로,환생을통해신적존재를꿈꾸는어머니의실험체로살아가던제과거를떠올린다.
각자의사정과열망이응집된갤러리오프닝에서염소클럽과그들을제물로삼던인물들은한데조우한다.자신을옭아맨최초의울타리를벗어나온이들염소클럽은,그러나‘클럽’이란낱말이짐작하게하듯전혀다른형태와질감의울타리를그들스스로정립해나간다.이는“당신이사랑을하면우리는복수를하지”라는제목에서알수있듯,극복한울타리(당신)가단수인반면극복의주체(우리)는복수인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