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청교체기엄혹한현실의조선
욕망과사랑,생존과대의사이에서고뇌하고갈등하며
단단히꼬이고꼬여버린세여인의비극적운명!
중국대륙의주인이명나라에서청나라로바뀌던시기,광해군에반하여명을가까이하고만주족을배척하던정책을펼치던인조때의조선.그엄혹한분위기에서이리저리휩쓸릴수밖에없었으나가슴깊이품었던뜻을펼치고할수있는일을어떻게든해보고자,부서질지언정결코굽히지는않았던세여인이있다.
먼저,역관의딸로태어나장남으로키워진딸,애란.애란의아버지는자신의안위와이익을위해딸마저승경도판위의말로보았다.남자가아니기에역과에응시하여역관이될수는없었으나그럼에도불구하고애란은한어와만주어를배우고역관들이보는책을두루익혔다.그리고아버지를따라사행길에동행하여계집인자신만이시도할수있는임무를톡톡히해냈다.
그런애란과얄궂은운명으로얽히게된양반가의딸,은주.은주는청상과부가될팔자라하여한남자의아내가되는교육대신어엿한사내가입신양명하기위한교육을받으며자랐으나,정국의소용돌이에휘말려조선의세자빈이되고만다.“슬플만큼너무영민한”은주는근시안적인권력다툼에만목을매다만주족앞에무릎을꿇고만처참한조선의업보를짊어진채,피로인이되어청나라로끌려간다.
그런은주에게한을품은역적의딸,혜원.본래혜원은세자빈간택이야기까지나온적이있는사람이었다.하지만조선임금이일삼는정치놀음의희생양이되어순식간에역적의딸로전락하고,자신의성도이름도버린채궁녀로입궁하여기어코후궁자리를꿰찬다.혜원이이토록독을품고억척같이애쓰는이유는단하나다.스스로권력의주인이되는것.조선시대에감히,여자의몸으로.
그리고세자빈이된은주를마음에품은채애란또한궁녀가된다.애란은꽃길이든불지옥이든은주를따르고자하나,자신의자리를빼앗아간은주를지독하게원망하는혜원의훼방으로혜원을시중드는처지가된다.나라의앞날이풍전등화처럼위태로운가운데,세여인은각자의욕망과사랑,생존과대의를위해온힘을다해운명에부딪친다.
|“사람을믿고사람에게기대고사람에게기대하는마음을멈추지마.
우리는외면하지않고계속부딪쳐야해.”
배를뒤집을물이되고싶었던,끝까지포기를몰랐던숨겨진여인들의사연이펼쳐진다
명청교체기의조선은이미역사소설과영화,드라마등에서숱하게조명된시대다.그러나거의기록이남아있지않은소현세자부인강빈은그중심에섰던적이단한번도없었다.강빈은조선이병자호란에서패배하고항복한후소현세자와함께심양으로끌려갔다.그곳에서농사를지어벌어들인수익으로포로들을속환하는데혁혁한공을세웠으나,역사서에이름조차제대로기록되지못했다.소현세자의죽음이후인조를저주하고왕의음식에독약을넣었다는죄로죽임을당했다는정도로만기억된다.
《꽃이부서지는봄》은그런강빈을발굴하고싶다는열망에서시작된작품이다.누명을쓴강빈을수사하기위해강빈을따르던궁녀들이줄줄이잡혀갔고지독한고문을받았으나그들중에강빈을고발한사람이단한명도없었다는기록에주목했다.그리하여여인의몸으로이상적정치를꿈꾸고실천하려했던세자빈과그런세자빈을사랑하고따르는궁녀의이야기,즉‘세자빈과궁녀의쌍방구원궁중연애담’이라는뼈대를세웠다.그리고‘역사속여성의이야기’에꾸준히주목해온한켠작가가이뼈대에살을붙여파란만장하고애절한서사를완성해냈다.
작품속세여인,애란과은주와혜원은회피하거나영합하지않는다.끊임없이직시하고몸이부서져라부딪친다.각자의생각과욕망이다르기에그방향이엇갈리고대립하지만,어떤일이있어도좌절하거나포기하지는않는다.진심을다하면사람도,세상도,운명도바뀔수있다는믿음으로.굴욕의역사인병자호란을배경으로한수많은작품들에서주되게부각되지못했던여성들을오로지전면에내세운《꽃이부서지는봄》을읽으며,결기를품고운명에맞선인물들에게공감하고우여곡절이많아한치앞도내다볼수없는이야기의매력에푹빠져들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