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한 번에 한 분의 손님을 초대해 비건 만찬을 차려드려요.
그 대신 손님께서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식탁을 사이에 두고 당신과 나눈 대화를 기록하고 싶습니다”
자기 일도 아닌 문제에 자기 일처럼 화를 내는 게 직업인
여섯 명의 사람들. 이들의 떨리는 목소리, 굳센 목소리,
비뚤어진 목소리, 알쏭달쏭한 목소리, 웃고 우는 목소리를 들었다
그 대신 손님께서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식탁을 사이에 두고 당신과 나눈 대화를 기록하고 싶습니다”
자기 일도 아닌 문제에 자기 일처럼 화를 내는 게 직업인
여섯 명의 사람들. 이들의 떨리는 목소리, 굳센 목소리,
비뚤어진 목소리, 알쏭달쏭한 목소리, 웃고 우는 목소리를 들었다
● 당신의 원 없는 엄살이 듣고 싶어요, 실컷 엄살을 부려봐주시겠어요?
: 진단명 없는 아픈 사람들에게 밥만 먹여 돌려보내는 엉터리 의원
글을 쓰는 안담과 한유리, 사진과 영상을 찍는 곽예인. 세 작가가 ‘엄살원’이라고 간판 붙인 공간을 열었다. 간판 옆에는 ‘밥만 먹여 돌려보내는 엉터리 의원’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리고 이곳에 찾아올 손님을 기다리면서 특별한 초대장을 보냈다.
“한 번에 한 분의 손님을 초대해 비건 만찬을 차려드려요. 그 대신 손님께서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식탁을 사이에 두고 당신과 나눈 대화를 기록하고 싶습니다.”
지난날 동네마다 기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뭐든지 다 달여주는 건강원이 있었다면, 이제 우리에게는 뭐든지 다 들어주는 엄살원이 있다. 엄살원은 말 그대로 ‘엄살’을 실컷 떨 수 있는 곳이다.
엄살은 지금껏 누군가의 입을 틀어막는 데 쓰는 말에 가까웠다. 엄살은 하지 말아야 할 것, 실제보다 너무 지나치게 꾸며낸 것, 그냥 흘려들어도 좋을 사소한 것을 가리킬 때 쓰여왔다. ‘엄살 떨지 마’라는 한마디에 삼켜진 이야기, 부서진 마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엄살원』은 엄살이라는 단어의 용례를 바꿔버린다. 잘 차린 밥과 열린 귀를 준비한 채 손님들을 맞이하는 이곳에서 엄살은 원 없이 듣고 싶은 것, 시원하게 부려놓아도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것,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받아 적고 싶은 것이 된다.
● 밥은 싸우는 이들의 피와 살이 되고, 정책이 되고, 제도가 되고, 역사가 된다
: 함께 밥을 먹어야만 할 수 있는 대화, 함께 밥을 먹어야만 낼 수 있는 힘
엄살원의 손님들은 활동가이다. 자기 일도 아닌 문제에 자기 일처럼 화를 내는 게 직업인 사람들. 여성, 장애인, 성노동자, 퀴어, 빈민, 홈리스, 청소년, 동물의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굳게 믿는 감각이상자들. 비관할 구석이 가득한 세상에서 냉소를 통해 똑똑해 보이기를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 너무 순진한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감수하면서 굳이 어떤 희망을 가져보기로 한 사람들.
엄살원을 찾은 여섯 명의 손님은 모두 내 밥그릇을 스스로 챙길 줄 아는 생활인이자 타인의 밥그릇을 헤아리고 지켜내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다. 해볼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한 번 더 힘을 내보려는 사람들이다.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활동가 ‘여름’과 (전)디지털성폭력 피해 지원 활동가 ‘쪼이’, 국회의원 보좌진 ‘준짱’과 국회의원 ‘장혜영’, 국내 첫 생추어리 ‘새벽이 생추어리’ 활동가 ‘무모’와 (전)기후위기 비상행동 사무국 활동가 ‘미어캣’. 활동가들의 일은 많은 열량을 소모한다. 그래서 엄살원은 이들에게 밥을 든든히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 엄살원은 함께 밥을 먹을 때에만 꺼낼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믿었다. 입장문과 발언문과 질의응답문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활동가들의 아픔과 고민을 받아 적고자 했다. 엄살원의 주인장 안담 작가는 활동가들이 “타고나기를 강건한 영혼의 소유자이거나 남에게 베풀고 남을 만큼 자원과 사랑이 넉넉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에 매번 놀랐다. “도리어 아프고 취약하며 그렇다는 이유로 미움받은 역사 또한 긴 사람들에 가까운 이들”이 왜 “자기를 돌보아도 모자랄 시간에 남을 돌보겠다고” 나서는지 궁금했다. 그리하여 ‘활동가’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한 사람 안에 겹겹이 쌓인 무수한 레이어를 들여다보기 위해 밥상을 앞에 놓고 대화를 시작했다. “고작 나”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투명도를 낮추어 나 아닌 존재들에 포개어보며 “시끄럽고 커다랗고 무수한 나로 살아보려는 일”에 나선 개인의 이야기를 밥상 앞에 불러냈다.
● 끝까지 말하기 위하여, 끝까지 듣기 위하여
: 주인과 손님 모두 전력을 다해 웃고 떠드는 식탁
엄살원은 우리 사회의 깊게 듣는 귀가 되기를 자처한다. 어디에서도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활동가들의 괴로움이 곧 우리 사회의 아픔과 연결되어 있으며, 어디에서나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들의 엄살이 곧 우리 사회의 아픔을 드러내고 진단하는 데 긴요한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엄살원은 마주 앉은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도 상대의 고통에 공감한다며 함부로 고개 끄덕이는 일을 경계한다. 감히 타인의 고통을 참으로 알았다고 하는 오만을 내려놓고, 타인의 고통을 끝까지 듣겠다는 마음으로 질문을 하고 대화를 나눈다. “내가 이입할 수 있는 고통이라고 판단되는 순간 상대를 뚝딱뚝딱 고쳐가지고 그만 아프게 만들려고” 하는 마음도 커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상대의 고통하고 거리두기가 잘되는 상태, 조금 더 오래 그 사람의 증언을 들어줄 수 있는 거리에서 자리를 지키고자 애쓴다. 감히 이해하거나 공감한다고 단언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몰이해의 황무지에 서로를 내버려두지도 않으면서.
노동권 보장과 빈곤 해소를 위한 활동, 반성폭력 운동, 공장식 축산 반대와 동물권 행동, 기후위기 대응, 정치 등 손님들이 활동하는 영역은 저마다 다르다. 그런데도 이들의 이야기는 서로 대화하듯 이어지고 깊어진다. 좀 더 나은 우리, 좀 더 나은 사회를 상상하는 이들에게 인간과 비인간, 식습관과 날씨, 정치와 일상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손님의 고민에서 촉발된 질문은 다음 손님과의 대화로 이어지기도 하고, 또 다른 손님이 지나가듯 토로한 어려움은 그다음 손님에 이르러서 좀 더 또렷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이렇게 엄살원 안에서 이야기가 쌓여가는 사이, 각 활동가 개인의 아픔과 고민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 우리의 밥상을 둘러싼 질문과 고민이 훨씬 더 복잡해지기를 바라며
: ‘우리 모두’의 이야기에서 ‘비건’이라는 주제를 빼놓지 않는 이유
활동 영역은 다르지만, 여섯 명의 활동가 모두 자연스레 비건 지향의 삶을 살게 되었다. 모두가 이 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착취와 폭력과 불평등의 양을 줄여보려고 활동을 시작했고, 그 활동들은 분야가 어떻든 간에 필연적으로 비인간 동물에 대한 착취를 멈추려는 비거니즘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이자 활동가로서 일상과 운동을 병행하는 일은 어렵고 시스템은 부실한 탓에 비건으로 사는 일에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엄살원은 이들의 비건 실패담도 빼놓지 않고 담는다. 한 개인이 더 건강하고 미적이며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게 비거니즘의 전부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밥상을 둘러싼 질문과 고민이 고기 섭취의 유무를 따지는 것보다는 훨씬 더 복잡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건식으로 밥상을 차리며 엄살원의 주인장 안담은 입맛을 돋우고 보기에 즐겁고 만들기에 비교적 손쉬운 메뉴를 세심히 골랐다. 엄살원을 찾은 손님들과 이 책을 읽을 독자 여러분 모두가 엄살원의 문을 닫고 각자의 자리에 돌아가서도 일할 힘이든 이야기할 힘이든 죽지 않을 힘이든 힘을 내고 싶을 때, 엄살원의 이야기와 밥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담아 ‘오늘의 메뉴’ 레시피를 책에 실었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 ‘엄살원’과 같은 공간이 더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소수자의 자리에 서서 작아 보이는 아픔에 귀 기울이고 같이 먹고사는 문제를 궁리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밥상은 더 풍성해지고 질문은 더 날카로워지고 문제는 더 선명해지고 해결은 점점 더 쉬워지리라 믿는다. 누군가의 아픔과 괴로움을 줄이고자 애쓰다가 스스로 아픔과 괴로움을 겪게 된 모든 분들에게 초대장을 보내는 마음으로 『엄살원』을 출간한다. “당신의 원 없는 엄살이 듣고 싶어요. 시원하게 엄살을 부려봐주시겠어요?”
: 진단명 없는 아픈 사람들에게 밥만 먹여 돌려보내는 엉터리 의원
글을 쓰는 안담과 한유리, 사진과 영상을 찍는 곽예인. 세 작가가 ‘엄살원’이라고 간판 붙인 공간을 열었다. 간판 옆에는 ‘밥만 먹여 돌려보내는 엉터리 의원’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리고 이곳에 찾아올 손님을 기다리면서 특별한 초대장을 보냈다.
“한 번에 한 분의 손님을 초대해 비건 만찬을 차려드려요. 그 대신 손님께서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식탁을 사이에 두고 당신과 나눈 대화를 기록하고 싶습니다.”
지난날 동네마다 기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뭐든지 다 달여주는 건강원이 있었다면, 이제 우리에게는 뭐든지 다 들어주는 엄살원이 있다. 엄살원은 말 그대로 ‘엄살’을 실컷 떨 수 있는 곳이다.
엄살은 지금껏 누군가의 입을 틀어막는 데 쓰는 말에 가까웠다. 엄살은 하지 말아야 할 것, 실제보다 너무 지나치게 꾸며낸 것, 그냥 흘려들어도 좋을 사소한 것을 가리킬 때 쓰여왔다. ‘엄살 떨지 마’라는 한마디에 삼켜진 이야기, 부서진 마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엄살원』은 엄살이라는 단어의 용례를 바꿔버린다. 잘 차린 밥과 열린 귀를 준비한 채 손님들을 맞이하는 이곳에서 엄살은 원 없이 듣고 싶은 것, 시원하게 부려놓아도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것,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받아 적고 싶은 것이 된다.
● 밥은 싸우는 이들의 피와 살이 되고, 정책이 되고, 제도가 되고, 역사가 된다
: 함께 밥을 먹어야만 할 수 있는 대화, 함께 밥을 먹어야만 낼 수 있는 힘
엄살원의 손님들은 활동가이다. 자기 일도 아닌 문제에 자기 일처럼 화를 내는 게 직업인 사람들. 여성, 장애인, 성노동자, 퀴어, 빈민, 홈리스, 청소년, 동물의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굳게 믿는 감각이상자들. 비관할 구석이 가득한 세상에서 냉소를 통해 똑똑해 보이기를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 너무 순진한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감수하면서 굳이 어떤 희망을 가져보기로 한 사람들.
엄살원을 찾은 여섯 명의 손님은 모두 내 밥그릇을 스스로 챙길 줄 아는 생활인이자 타인의 밥그릇을 헤아리고 지켜내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다. 해볼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한 번 더 힘을 내보려는 사람들이다.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활동가 ‘여름’과 (전)디지털성폭력 피해 지원 활동가 ‘쪼이’, 국회의원 보좌진 ‘준짱’과 국회의원 ‘장혜영’, 국내 첫 생추어리 ‘새벽이 생추어리’ 활동가 ‘무모’와 (전)기후위기 비상행동 사무국 활동가 ‘미어캣’. 활동가들의 일은 많은 열량을 소모한다. 그래서 엄살원은 이들에게 밥을 든든히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 엄살원은 함께 밥을 먹을 때에만 꺼낼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믿었다. 입장문과 발언문과 질의응답문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활동가들의 아픔과 고민을 받아 적고자 했다. 엄살원의 주인장 안담 작가는 활동가들이 “타고나기를 강건한 영혼의 소유자이거나 남에게 베풀고 남을 만큼 자원과 사랑이 넉넉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에 매번 놀랐다. “도리어 아프고 취약하며 그렇다는 이유로 미움받은 역사 또한 긴 사람들에 가까운 이들”이 왜 “자기를 돌보아도 모자랄 시간에 남을 돌보겠다고” 나서는지 궁금했다. 그리하여 ‘활동가’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한 사람 안에 겹겹이 쌓인 무수한 레이어를 들여다보기 위해 밥상을 앞에 놓고 대화를 시작했다. “고작 나”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투명도를 낮추어 나 아닌 존재들에 포개어보며 “시끄럽고 커다랗고 무수한 나로 살아보려는 일”에 나선 개인의 이야기를 밥상 앞에 불러냈다.
● 끝까지 말하기 위하여, 끝까지 듣기 위하여
: 주인과 손님 모두 전력을 다해 웃고 떠드는 식탁
엄살원은 우리 사회의 깊게 듣는 귀가 되기를 자처한다. 어디에서도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활동가들의 괴로움이 곧 우리 사회의 아픔과 연결되어 있으며, 어디에서나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들의 엄살이 곧 우리 사회의 아픔을 드러내고 진단하는 데 긴요한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엄살원은 마주 앉은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도 상대의 고통에 공감한다며 함부로 고개 끄덕이는 일을 경계한다. 감히 타인의 고통을 참으로 알았다고 하는 오만을 내려놓고, 타인의 고통을 끝까지 듣겠다는 마음으로 질문을 하고 대화를 나눈다. “내가 이입할 수 있는 고통이라고 판단되는 순간 상대를 뚝딱뚝딱 고쳐가지고 그만 아프게 만들려고” 하는 마음도 커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상대의 고통하고 거리두기가 잘되는 상태, 조금 더 오래 그 사람의 증언을 들어줄 수 있는 거리에서 자리를 지키고자 애쓴다. 감히 이해하거나 공감한다고 단언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몰이해의 황무지에 서로를 내버려두지도 않으면서.
노동권 보장과 빈곤 해소를 위한 활동, 반성폭력 운동, 공장식 축산 반대와 동물권 행동, 기후위기 대응, 정치 등 손님들이 활동하는 영역은 저마다 다르다. 그런데도 이들의 이야기는 서로 대화하듯 이어지고 깊어진다. 좀 더 나은 우리, 좀 더 나은 사회를 상상하는 이들에게 인간과 비인간, 식습관과 날씨, 정치와 일상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손님의 고민에서 촉발된 질문은 다음 손님과의 대화로 이어지기도 하고, 또 다른 손님이 지나가듯 토로한 어려움은 그다음 손님에 이르러서 좀 더 또렷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이렇게 엄살원 안에서 이야기가 쌓여가는 사이, 각 활동가 개인의 아픔과 고민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 우리의 밥상을 둘러싼 질문과 고민이 훨씬 더 복잡해지기를 바라며
: ‘우리 모두’의 이야기에서 ‘비건’이라는 주제를 빼놓지 않는 이유
활동 영역은 다르지만, 여섯 명의 활동가 모두 자연스레 비건 지향의 삶을 살게 되었다. 모두가 이 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착취와 폭력과 불평등의 양을 줄여보려고 활동을 시작했고, 그 활동들은 분야가 어떻든 간에 필연적으로 비인간 동물에 대한 착취를 멈추려는 비거니즘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이자 활동가로서 일상과 운동을 병행하는 일은 어렵고 시스템은 부실한 탓에 비건으로 사는 일에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엄살원은 이들의 비건 실패담도 빼놓지 않고 담는다. 한 개인이 더 건강하고 미적이며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게 비거니즘의 전부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밥상을 둘러싼 질문과 고민이 고기 섭취의 유무를 따지는 것보다는 훨씬 더 복잡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건식으로 밥상을 차리며 엄살원의 주인장 안담은 입맛을 돋우고 보기에 즐겁고 만들기에 비교적 손쉬운 메뉴를 세심히 골랐다. 엄살원을 찾은 손님들과 이 책을 읽을 독자 여러분 모두가 엄살원의 문을 닫고 각자의 자리에 돌아가서도 일할 힘이든 이야기할 힘이든 죽지 않을 힘이든 힘을 내고 싶을 때, 엄살원의 이야기와 밥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담아 ‘오늘의 메뉴’ 레시피를 책에 실었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 ‘엄살원’과 같은 공간이 더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소수자의 자리에 서서 작아 보이는 아픔에 귀 기울이고 같이 먹고사는 문제를 궁리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밥상은 더 풍성해지고 질문은 더 날카로워지고 문제는 더 선명해지고 해결은 점점 더 쉬워지리라 믿는다. 누군가의 아픔과 괴로움을 줄이고자 애쓰다가 스스로 아픔과 괴로움을 겪게 된 모든 분들에게 초대장을 보내는 마음으로 『엄살원』을 출간한다. “당신의 원 없는 엄살이 듣고 싶어요. 시원하게 엄살을 부려봐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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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살원 : 밥만 먹여 돌려보내는 엉터리 의원 - 점선면 시리즈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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