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당근마켓 :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도 있다 - 아무튼 시리즈 59

아무튼 당근마켓 :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도 있다 - 아무튼 시리즈 59

$12.00
Description
_이훤 시인이 당근마켓에서 찾은 오래된 물건과 새로운 우정

‘아무튼’ 시리즈 59번째 책은 시인이자 사진가인 이훤 작가의 『아무튼, 당근마켓』이다. ‘당근마켓’(2023년 8월, ‘당근’으로 이름을 바꿨다)은 2023년 8월 기준 누적 가입자 수 3천5백만 명을 넘어서면서 이제는 중고 거래의 대명사가 되었을 만큼 친숙한 플랫폼이다. 이 특별할 것 없는 거래의 장, 일상의 온라인 공간이 어떻게 어떤 한 사람에게는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가 되었을까.
이훤 작가는 물건을 좋아한다. 필요한 물건을 잘 고르는 일에도 재미를 느끼지만, 필요에 관계없이 아름다운 물건을 눈여겨보았다가 큰맘 먹고 들여 애지중지 쓰는 것을 좋아한다. 무엇보다 “경험과 시간이 제한된 세계”에서 “엎질러진 시절을 다시 통과하게” 해주고 “먼 타인과 나의 생활을 포개어”주는 중고 물건에 매료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 쓰던 물건뿐만 아니라 그것을 들이고 내보낸 사람, 그 과정에 담긴 이야기, 그 이야기를 전하는 언어를 아껴 모은다.
『아무튼, 당근마켓』은 손 안에 전 세계를 쥔 것 같은 광활한 온라인 세상 한편에서, 도보 이동 가능한 반경 안의 ‘동네’ 사람들과 물건을 사고팔고 안부를 전하며 ‘이웃’이 되어가는 공간, 당근마켓에 빠진 사람의 이야기다.

저자

이훤

시인.사진가.2014년《문학과의식》에다섯편의시를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너는내가버리지못한유일한문장이다』『우리너무절박해지지말아요』『양눈잡이』를썼다.사진산문집『당신의정면과나의정면이반대로움직일때』를쓰고찍었으며,산문집『사람의질감』(2023)을집필중이다.

텍스트와사진을이용해이야기를만들어왔다.시카고예술대학에서사진학석사를마쳤고,...

목차

거래의현장
우리는그렇게만날수도있다
★☆연락주세요―아이폰11그린☆★
밀고당김의질서
끄트머리와끄트머리
우리를우리답게
한칸씩밀려나는과거
이작은옷은언제나나보다크다
정릉커뮤니티의일들
입에서입으로
‘올해의당근인’인터뷰
당신의온도

출판사 서평

_비슷하게간절한사람들이만나는순간을좋아한다
이훤작가는열아홉의나이에홀로먼나라로이민을갔다.이방인으로서그곳생활에적응하기위해새로운언어를들이는사이한국어가빠르게빠져나갔다.그는한국어를붙들고싶었다.“모국어와타국어사이틈의말을찾아서,나만아는방법으로,세계를다르게경험하고기록하고싶”었기에결국시인이되었다.또그는‘여기’아닌‘저기’,외부에떨어져있기때문에더더욱과거에지냈던곳이그리워서시간에떠내려가는장소와장면들을붙잡고싶었고,그래서사진가가되었다.
당근마켓에는그와비슷하게지나간것,오래된것을붙들고싶어하는사람이많다.반대로뭔가를새로들이기위해익숙한것,아끼는것을내놓는사람도많다.남의손이절실한사정이있고,그사정에응답하는손이있다.저마다다른필요에의해모인사람들사이에서물건과노동의교환가치는새로매겨진다.한쪽에서는열심히내보내고또한쪽에서는신중히들이는동안수요와공급이밀고당기며스스로균형을이루는이자발적인시장에서이훤작가는중고마켓의아름다운효용을발견한다.“나에게더는필요하지않은소유가누군가에게는기다려온바로그물건일수있다.꼭팔아야하는사정과마침그걸찾던손이만날수도있다.고맙잖나,서로의필요를채워줄수있다는감각은.비슷하게간절한사람들이만나는순간을좋아한다.”

_우리는그렇게만날수도있다
‘서로의필요를채워줄수있다는감각’은물건에만국한되지않는다.이훤작가가다양한중고마켓중에서도유독당근마켓을좋아한이유가여기에있다.어른이되고타국에서이방인으로지내는동안,그는동네에속해있다는감각을잃어갔다.대체로혼자일하고혼자시간을보내는것도그럭저럭괜찮았지만이따금가벼운인사와안부속에둘러싸이고싶은날이있었다.자신의‘동네’와‘이웃’이어디까지일지생각하면골똘해졌다.
그런데단순히중고거래를위해시작한당근마켓에서뜻밖에도‘나의동네와이웃’을만났다.어떤날은당근마켓의‘동네생활’게시판을보다가하루가다갔다.“만난적없지만가까이거주하는이들이(그게시판에서)온갖이야기를나누고있었다.친구를만날준비가된것처럼,그렇지만친구가되지않아도괜찮은것처럼,사람의선의를아직능동적으로믿는것처럼.아직도이런데가있다니.”게다가당근은닉네임으로활동하는익명의공간,온라인채팅으로물건과노동을거래하는마켓이지만,‘매너온도’라는아름다운장치덕분에판매자와구매자가공평한위치에서서로를함부로대하지않는다.얼굴을보고이름을부르지않아도서로에게기꺼이도움을주고적절하게개입하고긴요하게도움을줄수있다는것을거기서배웠다.이훤작가는말한다.인간에대한믿음과사랑이식어가는이시대에도,개인과개인이만나물건과관계와이야기를나누며우정을나눌수도있다고.보여주고나누고연결되고싶은마음을주고받으며그날그날필요한유대가그렇게일어나고또시작될수있다고.당근마켓에서“우리는그렇게만날수도있다”고.
『아무튼,당근마켓』의마지막장에는이훤시인이3천5백만‘당근인’들을위해선물한시「당신의온도」를실었다.

책속에서

소개한네가지컵은주로1970년대에만들어졌다.중고가아니면더이상구매할수없다.유구하게양도되어온거다.어느개인의역사가만난적없는타인에게로,어느테이블의역사가다른테이블로이어져왔다는사실이좋다.그곳에담겼을수많은이야기는우리가알수없지만.(17면)

경험과시간이제한된세계에서물건은우리에게중요한매개가된다.엎질러진시절을다시통과하게되고먼타인과나의생활이포개어진다.아주작은물건을손에쥐면서.우리는그렇게만날수도있다.애호의역사를나누며유대감이시작되기도한다.여러공동체가그런방식으로태어났다.어쩌면다른나라에서출발했을전통같은데까지함께가면서.재화가치에관계없이유효한이야기다.(18면)

갖고싶은물건은거의항상내가가진것보다더비싸거나너무많이비싸다.그러나우리에게는당근마켓이라는두번째거래의장이있다.내향적이라이틀동안집밖으로한번도나오지않은사람을걷게만들고,그런개인과개인이만나느슨한친구가되기도하는곳.가본적없는나라의컵을쥐며생경한대륙의식탁이궁금해지는곳말이다.이교환장에어찌매료되지않을까.시간은유한하고생활의촉매는세상에많고우리의욕망은계속자란다.(18면)

그의낭독회는외진곳에자리한작은서점에서예정되었고모객기간이길지않았다.정원도많지않았다.하지만두명이라니.그의시집을아끼고좋아해여러사람에게선물한나는조금허탈해졌다.어쩌면나스스로를향하던어느날의번뇌를거기서보아버렸는지도.자신의세계를움직여먼곳까지와준한사람한사람을환대하는그의얼굴이그려졌다.시장의수요보다백배만큼내어줄준비가된시인이.실로그는웃으며낭독회를잘했을것이다.그것은시장이기억하지않을공급방식이었다.이후에도그날의대화를자주생각한다.삶앞에서꼿꼿한고개를,스스로의일을존중해주고자신을작게만들지않는자세까지전부.(32면)

시는나를위해시작한몇안되는행위다.일일이설명안해도성립되는세계를갖고싶었다.이민자로지내는동안언어앞에서자꾸실패하는기분이었다.발음되지않는것,들어도소리이상의의미로들리지않는것들사이로매일,찢어진낙하산처럼떨어졌다.그럴수록모국어와타국어사이틈의말을찾아서,나만아는방법으로,세계를다르게경험하고기록하고싶었다.(33면)

버려질위기에처한물건들또한한번더기회를얻고중고시장에서있다.재고되기위해.거기서마지막으로새로워질기회를얻는다.모든미물은새로워지고싶다.나에게더는필요하지않은소유가누군가에게는기다려온바로그물건일수있다.꼭팔아야하는사정과마침그걸찾던손이만날수도있다.고맙잖나,서로의필요를채워줄수있다는감각은.비슷하게간절한사람들이만나는순간을좋아한다.(36면)

내가전혀모르는세계에대해그는빠삭했다.그덕분에퍼즐에색이많을수록맞추기쉽다는것도알게되었다.그림속대상을색으로구분하는것만으로자리를빠르게판단할수있다는것도.의뢰한퍼즐은하필나무랑잔디밭이전부녹색계열이어서피스를일일이하나씩다대봐야했을거다.낯선골목과모르는집앞을서성이듯,퍼즐조각의끄트머리와끄트머리를일일이맞대보아야만확신할수있었을거다.사람을찾던시절에꼭맞는비유다.나와어울리는누군가를찾기위해서는돌출된나와움푹한자신부터먼저배워야한다.이후에도나와타인은동시에탐구되었다.끄트머리와끄트머리를일일이맞대보는시간.(44면)

힘의저울이한쪽으로기울지않게,당근마켓은판매자뿐아니라구매자에게도똑같이거울을쥐여준다.양쪽다상대가아니라자신을들여다보게한다.그거울이비춰온오래된풍경을새로만나는구매자와판매자가볼수있다.거기,매너온도밑에상세한언어로우리는남는다.지난태도를조회할수있게하자사람들은친절해졌다.배려도했다.부탁한적없는초콜릿이나과자를주기도하고,거래장소로와주기도하고,여분의물건을얹어주기도했다.쓰지않는물건을무료로나누기도했다.거울은평판으로이어졌다.익명의공간에서도사람들이자발적으로매무새를다듬게하는아름다운장치였다고생각한다.닉네임이라는잠정적호칭너머에서도품위를유지하게만들었다.웹이라는광활한도시에서서로를자신과다름없는존재로인식하게했다.활자와이미지로빼곡한SNS에서,중고거래의장에서당신의이름은무엇인가.그이름일동안당신은얼마큼당신인가.(58-59면)

시간은폐기하게하는성질이있다.대부분의물건은망가지거나구석에처박히거나낡아버려진다.당장버리지않는다하더라도어디있었는지기억하지못하는물건은잃어버린것과다름없는상태다.그렇게한동안빛을보지못하다가이사가는날빈집앞에덩그러니남겨지는물건이얼마나많은가.존재가망각되는것은필요의감각을잃는것.오래된물건대부분은그렇게시간에휩쓸려가고다시만날수없게된다.(65-66면)

나의동네는어디까지일까.무엇이나와이웃의공통의반경을만드는걸까.당근마켓에는‘동네생활’이라는게시판이있다.어떤날은여기게시물을읽다가하루가다가버린다.처음둘러볼땐1990년대이웃들이전부인터넷으로공간을옮겨거기사는줄알았다.만난적없지만가까이거주하는이들이온갖이야기를나누고있었다.친구를만날준비가된것처럼,그렇지만친구가되지않아도괜찮은것처럼,사람의선의를아직능동적으로믿는것처럼.아직도이런데가있다니.(83-84면)

오랫동안내가컵을애호해온건지극히개인적인물건이어서다.사용할때마다입에닿는물건아닌가.우리는매일몸으로우리아닌것들을들인다.몸에무언가를들이는행위만큼내밀한게있나.이야기또한입에서시작된다.입을떠난이야기는듣는사람을통과하며새로워지고생명을얻거나시든다.이야기의속도와호흡,동원되는단어,이야기가멈추는자리.이야기안에서는우리를들킬수밖에없다.(10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