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라는,나에게는일어나지않은일이내동생에게는일어났다
김나무작가의동생원일이는네살에청력을잃었다.열감기를누나와동생이나란히앓고난뒤,동생만청력을잃게되었다.그후원일이에게는장애인이라는새로운단어가따라붙었고,자신에게는장애인동생을챙겨야한다는책임감과함께‘원일이누나’라는호칭이더익숙해졌다.집안분위기도자연스레원일이위주로흘렀다.
장애인가정에서자라며어려움을겪던시절을돌이켜보다가작가는지금자신과비슷한환경에서성장하고있을비장애형제(장애인을형제자매로둔비장애인)어린이들은어떻게지내고있을지궁금해졌다.궁금해지는만큼자신이겪은일들과고민들을꼼꼼히더듬어보려고애썼다.지금의비장애형제어린이들은자신이겪은것과같은어려움과실수를반복하지않았으면하는바람을담아,자신이청각장애인동생과함께보낸날들을구체적으로기록해보려고했다.어린시절에살았던동네,이사한집들,동생과함께놀았던베란다,학교에가던길….흘러온장소들을떠올릴때면장애인이된지얼마되지않은원일이,보청기를끼고도힘차게뛰놀던원일이,자신을챙겨주던든든한원일이,만화와비디오를함께즐겨보던원일이,장애때문에급우들에게괴롭힘당하던원일이,점점지치고화가쌓여가던원일이,부모님과진로문제로자주부딪치던원일이,장애때문에이름을바꿨을때의원일이얼굴이떠올랐다.그리고그런원일이곁에서귀찮거나슬프거나골치아픈일들은외면하고싶어하던자기자신의얼굴도선명해졌다.
●제대로된기억과기록은각자의삶을더깊이알고존중하게만든다
무엇보다‘나’를제대로알고싶어서어린시절을떠올리고그리기시작했지만,기억을더듬어나갈수록비장애인위주로구성된사회에좀더잘자리잡기위해장애인동생원일이와장애인아들을둔부모님이위험을무릅쓰고선택했던길들이제대로보이기시작했다.부모님은원일이가최대한비장애인들속에섞여들어비장애인과비슷하게지내기를기대하면서수어대신구어(구화)를가르치고특수학교가아닌일반학교에보냈다.그결정의결과는원일이혼자서고스란히떠안아야했다.장애인사회와비장애인사회,둘중어디에도속하지못한채중간에어정쩡하게선채로힘든일들을원일이혼자서감당해야했던것이다.
김나무작가는비장애형제로서자신이겪은외로움과어려움을돌아보면서이책을쓰기시작했지만,‘나와원일이이야기’를쌓아나가는동안스스로를가엾게여기던자리를맴돌던것에서벗어날수있었다.온전치가않고이미어딘가나좋을대로수정되어있는기억들을자세히더듬어바로잡고나니,어른으로서앞으로나아가야할방향이분명히보였다.비로소장애인과장애인의부모와장애인의형제,이들각자의삶을더깊이알고존중해야한다는것을배우게된것같았다.언젠가자신이어머니가되었을때,아이에게적어도동정심과이해심을구분해서가르쳐줄수있는사람이된것같았다.
●장애인동생이있어서궁금했던질문들,그러나장애인동생이없어도궁금해해야할질문들을건네는책
장애가없는누나는장애가있는동생과놀때불편했었다.그애는말하는게다른애들의동생같지않고,자기말을잘못듣고,그래서조금만멀리있어도이름을부르는대신뛰어가서어깨를두드려야하니까숨이찼다.장애가있는동생은장애가없는누나와놀때면불편했을것이다.누나는자기같지않게자막없이도영화를재밌게보고,잘들리지않는말을너무빠르게하고,어디선가갑자기뛰어와서는왜자기말을못들었냐면서화를내곤했으니까.그렇지만누나는동생과노는일이좋았다.기억속의동생도누나와노는일을좋아했다.
서로다른두아이가조금불편해도같이어울려지내던시절을함께통과하는동안,어린시절부터김나무작가를줄곧따라다니던질문은이내독자들의마음에도옮겨붙는다.“장애란무엇인지,장애는어디에서오는지,장애가있는사람이장애를어떻게받아들이는지,장애가없는사람은장애를어떻게받아들이는지,어째서세상엔이렇게다른사람들이섞여서살고있는것인지,나와다른사람을어떻게대하는것이맞는지,나자신을어떻게대하는것이맞는지….”이질문들에대한답은이책을다읽고난뒤에독자들이저마다스스로찾아낼수있을것이다.그답이더많이,더다양하게모일수록,‘조금불편해도같이노니까좋은’관계들이더많이이어질수있을것이다.‘나’와‘원일이’처럼.
●책속에서
“장애인가정에서자란나의어린시절은외로움과고요함그리고혼란으로가득차있었다.어려움을겪던그시절이문득떠올라서글퍼지면그사이사이에도즐겁고놀랍고좋았던순간이분명있었다고스스로를달래곤했다.어쩌면소리를제외한채동생과내가몰두하던놀이들이나의고유함을만들었을지도모른다면서.순수하게원일이와어울리던시기로기억을거슬러올라가보면,분명나와원일이가잘보호받았고행복한순간들을보냈다는사실이존재했다.그사실을발견했을때자꾸그런것들을기억해야한다고생각했다.”(6-7면)
“너무외롭던시절에는장애인동생을가져적게보살핌받는누나인나를누가동정하는것같으면그런동정심마저도소중하게느껴졌다.하지만이제나는외로움이나위로받고싶은마음에집중하기보다는각자의삶을더알고존중해야한다는것을알만큼은나이를먹었다.나는내가가여운만큼원일이에게바친엄마의젊은시절과아름다움과눈물을동정했었다.하지만거기엔그저동정만하기엔너무나선명한엄마자신의선택과노력이있었다.장애인아들을어떻게보살필지결정하고선택의결과들을감당해낸실천의시간들이있었다.이상한일이지만그렇게엄마의지나온삶을존중하고이해해보려고하면나의외로웠던시간도위로받는기분이든다.”(34-35면)
“나는알고싶은것이많았다.장애란무엇인지,장애는어디에서오는지,장애가있는사람이장애를어떻게받아들이는지,장애가없는사람은장애를어떻게받아들이는지,어째서세상엔이렇게다른사람들이섞여서살고있는것인지,다른사람을어떻게대하는것이맞는지,나자신을어떻게대하는것이맞는지….장애인동생이없다고하더라도궁금해해야할질문들이었고나는장애인동생이있으니더욱알고싶었는데그땐내가무슨질문을어떻게해야하는지알지못했다.먼저가르쳐주는사람도없었다.어떤질문이나궁금증들은엄마를너무슬프게했고엄마는상처입은마음을감추지않았다.그러면또궁금해졌다.엄마가어느때기뻐하는지,어느때슬퍼하는지….하지만어른의기쁨과슬픔은너무나도알기어려운것이었다.”(75면)
“어린나에게가족은마치자연재해같았다.태풍이나지진같은것,견디거나기도하거나대비하는것,선택할수없으니받아들여야하는것이었다.그래도그속에서내가비바람을맞으며배운사랑을떠올린다.연약하지만분명하게항상존재해왔던것,그것이내가스스로를키우는인간이될때까지나를도왔을것이다.”(179-180면)
“병아리를키우면서배운것은내가선택한사랑이처음만큼사랑스럽지않은순간이와도사랑하는마음이내안에있다는것이었다.병이들거나초라해지거나귀여운모습이사라져도내가선택한이사랑을지킬수있다는것이었다.”(225면)
“나는한국에살면서한국어를능숙하게하는,그러나어떻게해도한국인처럼은말하기어려운내미국인남편을사람들이환대하는것과한국에살면서한국어를능숙하게하는,그러나어떻게해도비장애인처럼은말하기어려운원일이를보고사람들이별감정을느끼지못하는것을(혹시느끼더라도동정이나연민에가까운감정을느끼는것을)동시에본다.교묘하고견고한차별과혐오의높은벽앞에서더아름답고,더건강하고,더부유하고,더활기차고,더나은환경속에서더힘센나라의언어를쓰는사람들이존중받고당신도그런사람이될수있다고용기를북돋는말들은가득하지만당신이덜아름답고,덜건강하고,덜부유하고,힘이없고,어려운환경속에서자신을표현할제대로된언어를갖지못했다고하더라도가치있다고말하는소리들은작아서자세히귀를기울여야만들리는것같다.”(272-273면)
“즐겁게노는일에몰두하던천진하던시절의나는내가이런어른이될줄은몰랐다.오래오래원일이를,원일이와같은이들을존중하고보살피면서자신의사람됨을확인하며사는사람이될줄알았을것이다.원일이가나를보살핀다는것에대해,내가원일이와같은이들에게보살핌을받을수도있다는것에대해선생각하지않고사는사람이될줄은몰랐을것이다.심지어나는원일이가이름을바꾸어현민이가되고,청각장애인이면서청음인들의사회에맞춰진요령들을터득해서쉽지않지만애쓰며살아가는모습을당연하게여기거나때로는부족하게여기기도했다.장애가정에서자랐다고해서주변을더잘보살필수있는사람이되는건아닌듯하다.나처럼.내가어떤사람인지알려면원일이에대해알아야했다.”(321-322면)
“서로의마음을읽을수없어안타깝고화가나기도했지만그래도헤아리려고노력하고상상하고손을잡으면서우리가매일조금씩만이라도더다정한사람이되는일을해왔다고믿을수있으면좋겠다.우리가족을벗어나또다른누군가와그일을반복하면서함께잘살자고말하고싶다.”(32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