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라마처럼펼쳐지는사람과땅의활기찬전경,
천천히,느리게달리면서던지는질문과발견
시작은단순했다.스티븐페이브스는수련의과정을마치고전공과목선택을앞둔시기,전공의가되는확실한길대신자전거세계일주를선택했다.지도를들여다보면감춰진작은길,아무런표시없는빈공간,낯설거나유쾌한이름이붙은작은마을에자꾸눈길이갔다.지도속에서의지껏길을잃고헤매는사이,앞으로의삶또한정해진경로를벗어나펼쳐졌다.
6년간지구두바퀴거리를달리는동안자전거타이어26개,체인14개,페달12세트,바퀴축의롤로프허브5개가닳았다.국경을102번넘었고,길가에서야영한날만도천일이넘었다.추위와더위,비바람과진흙탕,허기와갈증,교통체증과통행금지,모기와빈대에시달리고,낯선이방인을이유없이괴롭히는천진한장난꾸러기들,함께사진을찍자고불쑥다가오는사람들,자전거여행자의허름한행색과무모한여정에의심의눈초리를보내는국경관리인탓에지치는날도있었지만,뜻밖에마주친감격의순간들이훨씬더많았다.길에서만나친구가된동료자전거여행자들,위험지역에서에스코트를자처하는경찰관,그리고무엇보다조건없이응원하고환영하고초대해주고차와음식과방을내주고속깊은이야기를들려준사람들을셀수없이많이만났다.런던에서케이프타운으로,우수아이아에서데드호스로,멜버른에서뭄바이로,홍콩에서칼레를거쳐다시런던으로돌아오기까지,6대륙을가로지르며마주친낯설고도아름다운자연과그곳에서만난사람들의활기찬전경이파노라마처럼펼쳐진다.
페달을밟으며인간의몸과세계의복잡성을탐구하는의학오디세이
페이브스에게자전거여행이란진흙탕속에뛰어들고바람에몸을맡겨감각의홍수를맛보는일,즉모험에뛰어드는일이었다.그와동시에인간의건강을형성하는수많은힘들을이해하기위한여행,그힘들이드러나는장소자체에대한발견을병행하는것이기도했다.자전거로세계구석구석의길,도시,산맥,강,국경을타고넘으면서페이브스는자연스레인간몸속의혈관,맥박,신경망,척추,심장박동,세포막을떠올렸다.그리고의학을공부하면서인체의복잡성을탐구할때와같은경외심을느꼈다.
그복잡한세계를떠도는동안페이브스는복잡한이유로건강을잃은사람들과공동체의노력으로생명을구한사람들을만났다.케냐투르카나의이동식진료소,인도네시아쓰레기산반타르게방,캄보디아톤레사프호수의수상가옥촌,네팔카트만두인근의한센병원,조지아아바스투마니의결핵요양원,프랑스칼레의난민캠프정글등지에서만난아픈사람들의모습에여행을나서기전응급실에서마주한환자들의모습이겹쳐보이면서,그저한사람의아픈몸이라고생각했던환자뒤에숨은배경과이야기들에비로소눈을떴다.그리고그동안정체성과유형에대해,범주와진단명에지나치게집착하면서너무쉽게인간의몸에깃든장대한복잡성을부정했다는것을깨달았다.그깨달음은다시세계의복잡성을부정하는우리의어리석음에대한자각으로이어진다.“지도위에그려진선에너무나깊이빠져들때는반드시뭔가가나타나우리의집착따위에신경조차쓰지않고그선들을지워버린다.화산재구름,전염병,극단적인기후,이데올로기,거짓정보같은것이거침없이국경을넘는순간,우리는그간편리한허구를너무믿어왔음을깨닫는다.”
지금의인류는그어느때보다많이알고,그어느때보다숫자가많으며,그어느때보다서로크게의존한다.하지만여전히우리는모든것을지나치게단순화하고있다.팬데믹이든전쟁이든기후변화든인구의대이동이든,어떤어려움에처했을때우리대부분은그복잡성에대해눈을감고만다.복잡성이또다른불쾌하고두려운삶의진실,즉‘불확실성’을불러들이기때문이다.페이브스는버트런드러셀의말을인용하면서,복잡성이란“고통스럽지만반드시견뎌야하는것”임을강조한다.그리고복잡성을부정하고단순화하는것이야말로세계어디에서나볼수있는,가장오래되고가장인간적인나쁜습관이라고지적한다.그에게자전거로세계를일주하는것은복잡성을받아들이고,스스로의편향에너무집착하지않는것이중요함을생생하게일깨워준일종의수업이었다.
인간애와삶을대하는겸손한태도를보여주는여정,그끝에서건네는질문
“자,이제당신의이야기를들려주시겠어요?”
출발할때세웠던‘육대주를자전거로횡단한다’는희망과목표는길위에서수정됐다.페이브스는자신이일하던런던의병원응급실에서멀어질수록,그곳으로올수밖에없었던사람들을더많이생각했다.여행을하면저절로자신을발견하게된다는것은진부하기짝이없는생각이라는것도깨달았다.괴테가남긴“인간은세상에대해아는만큼만자신에대해알게마련”이라는말을떠올리면서,그는자칫하면오로지자신에게만집중할수있는편협한여행자의눈을바깥세상으로,낯선사람들에게로돌리려는노력을멈추지않았다.
느리고긴여행을끝내고다시환자들이기다리는병원으로돌아오면서페이브스는의사의역할이란단지수수께끼같은질병을분석하고진단하는것만이아니라타인들의삶에귀를기울이는데있다면서,좋은의사가환자앞에서갖춰야할네가지태도를마음깊이새긴다.‘입을닫고,귀를열고,많이알고,진심으로염려하는것.’의사뿐아니라지금여기에서함께살아가는우리모두에게필요한태도다.
다시진료실로돌아온뒤그는마주앉은환자에게,그리고이책을펼쳐들모든독자에게진심을다해말을건다.
“자,제게당신의이야기를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