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야구 (“화가 난다는 건,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무튼, 야구 (“화가 난다는 건,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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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화가 난다면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무튼 시리즈 79번은 예술가이자 독립출판인 김영글의 『아무튼, 야구』이다. 저자 김영글은 피구 공을 두려워하는 어린이, 구기 종목을 달가워하지 않는 청소년을 거쳐 당구공 몇 번 쳐본 것이 전부인 성인이 되었다. 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그에게, 어느 날 야구공이 나타났다. 암 수술을 겪고 남한강을 따라 떠난 어느 겨울밤, TV 속 야구 예능의 한 장면에서 ‘공 하나의 우주’에 매혹된 것이다. 『아무튼, 야구』는 글과 예술 안에 살던 여성이 야구를 만나고 이전까지와는 사뭇 다른 렌즈로 삶을 바라보고 알아가는 이야기다.
저자

김영글

저자:김영글
쓰고만드는사람.몇해전우연히야구팬이된뒤,저녁마다일희일비하며살아가고있다.독일문학과프랑스문학,미술을공부했고『사로잡힌돌』,『모나미153연대기』등의책을썼다.서울에서독립출판‘돛과닻’과‘안녕글방’을운영하고있다.

목차


공이있었다
바보같은스포츠
어떻게구단주까지사랑하겠어
내향인도야구장에간다
축구팬이뭘알아
반항하는야구팬
야구입문자의국어사전
낭만에대하여
아니,우리원팀아니었어요?
야구를뜨는시간
다시만난히데오
여자는어디에있나
야구장이있는삶
승리요정은없지만
집에서집으로

출판사 서평

예측불가능한세계에서,무력한연루자의신세로
그저지켜본다,다만화를내면서

늦게불붙은만학도답게저녁마다야구를공부하고알아가던무렵,저자는어느덧‘한화이글스’의팬이되었다.그렇게팬으로서경기에몰입할수록자신이점점화가많은사람이되어가는것을느꼈다.욕설과비속어가틈만나면입술을비집고튀어나왔다.사직구장그물망에매달려고래고래소리지르는아저씨들과어느새닮아가는자신의모습을부인할수없었다.야구는재밌으려고보는게아니라화내려고보는거라는말이있다.곱씹어보면연령과성별을초월해야구팬의정서를관통하는말이아닐까.김영글은묻고답한다.왜야구팬은이토록자주,그리고유난히화를내는걸까.

“이유는단순하다.화낼기회가많아서다.그런데도야구팬은매일경기를본다.못하면못한다고화를내고,잘하면이렇게잘할수있으면서어제는왜못했냐고화를낸다.경기는늘말도안되는상황을쏟아낸다.감독은이해할수없는결정을내리고,믿었던선수는결정적인실수를저지른다.팀이아무리잘해도,사소한에러하나로경기는뒤집힌다.그리고팬은온마음을쏟아도경기에개입할수없다.”

그럼에도경기를꺼버리지않는팬의마음은뭘까.한번마음을준이상,손바닥뒤집듯팀을바꾸지도않는그심경무엇일까.야구팬은절망을끝까지지켜보며,다시뜰내일의태양을기다리는사람들이다.다만,화를내면서말이다.

“내향인도야구장에간다”

야구장에너무가기싫지만너무나가고싶은마음.그것이내향인야구팬의마음이아닐까.내향인인김영글도마침내마음을내어화와에너지가들끓는그곳으로간다.야구장에서내향인다운방식으로야구를관람하고다른관람객들을조심스레관찰하고돌아온다.한편야구에대해알아갈수록자신에대해서알게되는것이있었다.그는짧게편집된야구경기를못보는사람이었다.“삼진을당한타자의어깨가어떤표정인지,감독의사인을타자가어떻게오해했는지,선발투수의멘탈이흔들리기시작한게언제부턴지,카메라에잠깐잡힌관중석응원판에어떤우스갯소리가적혀있는지”시시콜콜한디테일을직접봐야그서스펜스를온전히느낄수있었다.자신이사랑하는읽기와사랑의본질은애초에효율성을거부하는것일지도몰랐다.야구를통해또하나알게된것이있었다.야구를폄하하는축구팬이라면친구라고해도발끈할수있는사람이자신이라는것.경기를해도화나고안해도화나는,사계절힘든야구팬의마음을십이월에도경기를볼수있는축구팬이어찌알겠냐고생각하면서.

“어떻게구단주까지사랑하겠어,널사랑하는거지”

야구팬이된다는것은팬으로서의기쁨과부끄러움이동시에시작되는일이었다.구단주한화가비윤리적인사업을하는걸알면서도이글스를애정하고응원하는마음의모순앞에서김영글은부끄러움과죄책감을느꼈다.“존재자체로근사한팀을갖고싶다는욕망”이머리를들었다.하지만그는좋아한다는행위자체가이미하나의실천임을깨닫는다.사랑은완전한정당함속에서만지속되는것이아님을,복잡한마음을감내하며끝끝내자신의팀을응원하는일임을,모순과부끄러움과책임감의무게를함께끌어안는일임을.그것이야말로팬으로살아가기로택한자의숙명이었다.

“우러러볼만한아버지밑에서자란사람만을사랑할수있다면,사랑이그런식으로만작동한다면,우리의사랑은참재미없는이야기가될것이다.나와세상사이엔헤아릴수없는인연의끈들이있다.붙잡는것도,끊어내는것도,그것을지지대삼아세상을다시바라보는것도모두나의몫이다.”(33-34면)

“아직도야구해요?”“아직도야구해요.”
:어딘가에는야구를하는여자가있다

김영글은야구와여자의교집합이놀라울만큼작을뿐더러어딘가왜곡되어있는것을알고적잖이당황한다.여성관중이‘패션팬’이나‘얼빠’같은멸칭으로불리는가운데서도여자들은바쁘다.경기를보느라바쁘고,응원하느라바쁘고,굿즈앞에서지갑을여느라바쁘다.타인의평가를판별하느라시간을허비할겨를이없다.
야구를하는여자들을보러울진에간어느날,저자는가늘게내리는빗속에서오랜만에마주친모양인두명의여자선수들이담백하게묻고답하는모습을보았다.
“아직도야구해요?”
“아직도야구해요.”
그짧은대화속에서저자는짧지않은시간에깃든피로와애틋함을짐작했고,다음여자야구대회일정을찾아보느라인터넷을뒤졌다.

제철과일을기다리는마음으로야구를

김영글이만나고이해한야구는단순한스포츠가아니었다.대부분의스포츠와달리야구는전쟁의형식을취하는것이아니라결국은집으로“돌아오는”이야기였다.야구의이런본질은사계절의흐름과잘맞는것일지도모른다.저자는제철과일을기다리는마음으로야구를기다린다.초여름엔초당옥수수를,가을이면단감을,겨울에는귤과천혜향을,봄에는짭짤이토마토를기다리는것은그에게마음이힘들때를위한제철과일대처법이었다.야구가삶에들어온후로그는사계절을감각하는또하나의방식을얻었다.시간의흐름과계절의변화를프로야구리그를중심으로재편했다.그는그짧은순환속에서일상의리듬이달라진것을느낀다.

“야구는내게진정한‘리셋’의쾌감을알려주었다.언땅이풀리고흙내음이스멀거리면야구장은다시문을연다.모든것이제로에서출발한다.0승0패.열개구단이똑같은출발선에선다.선수들은겨우내다듬은몸을천천히풀며시동을걸고,프론트는상대틴전력을조심스레분석한다.봄은희망이허락되는계절이다.다잘될거라는순진무구한믿음이팬의마음속에움튼다.”(137면)

봄이다시찾아오는것처럼야구시즌은해마다어김없이시작할것이다.누구에게는야구시즌의시작이예측불가능한세계속에서도다시시작할수있도록깃대하나를꽂는일이된다.실패를견디며다시내일을기다리는사람들.『아무튼,야구』는그런세계에대한귀여운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