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 천선란 연작소설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 천선란 연작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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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천선란

저자:천선란
1993년인천에서태어나안양예고문예창작과를졸업했고,단국대학교문예창작과에서석사과정을수료했다.동식물이주류가되고인간이비주류가되는지구를꿈꾼다.작가적상상력이무엇인지에대해늘고민했지만,언제나지구의마지막을생각했고우주어딘가에서일어나는일들을꿈꿨다.어느날문득그런일들을소설로옮겨놔야겠다고생각했다.대부분의시간늘상상하고,늘무언가를쓰고있다.2019년장편소설『무너진다리』를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어떤물질의사랑』『노랜드』,장편소설『천개의파랑』『밤에찾아오는구원자』『나인』,중편소설『랑과나의사막』,연작소설『이끼숲』,산문집『아무튼,디지몬』등이있다.제4회한국과학문학상장편대상,오늘의젊은예술가상을수상했다.2022년도한국문학의미래가될젊은작가투표에서1위하였다.

목차

1부
제목소리가들리십니까
-9

2부
제숨소리를기억하십니까
-119

3부
우리를아십니까
-225

작가의말
-295

출판사 서평

“좀비로인한세상의종말이다른종말보다더끔찍한이유가뭔줄알아?(…)사랑하는사람을잊고,사랑하는사람을죽이기위해달려들고,나를기억하지못하는사람을향해총을쏴야해.아름다운마지막모습이아니라시체가되어버린처참한몰골을봐야만해.이게가장끔찍한종말이야.“_1부「제목소리가들리십니까」중에서

“가장비극적인종말은좀비다.”천선란은이문장으로3부작의문을열며,좀비를익숙한공포의상징이아니라잊힘속에서도끝내사랑을붙드는존재로그려낸다.그가말하는좀비의비극은결코먼이야기가아니다.현실에서도폭력과상실,병과장애로인해사랑하는이를잊어버리는일이일어난다.천선란은그상처를지닌자들을좀비로불러낸다.세상이무너지기전부터폐허를살아온그들은대부분의인간이사랑하는이를기억하지못하는상황에서도유일하게기억을붙든다.어떻게든해치지않으려애쓴다.그렇게천선란의좀비는잊혀가는세계속에서도잊지않으려는인간의마지막몸짓을보여준다.

1부「제목소리가들리십니까」는좀비가되어도사랑하는이를지키려는마음,‘너를살려야나도살수있다’는3부작의핵심정서를여는출발점이된다.인류가아직재앙을예감하기도전에지구를떠나새로운행성을향해출항한이주선을배경으로,동면에서깨어난옥주는지구에서감염사태가일어나문명이붕괴했다는사실을뒤늦게알게된다.그러나우주선에서도비극은되풀이된다.좀비가된동료가대부분의선원을죽였고,오직옥주가사랑하는묵호만이죽지않은채좀비가된몸으로남아있다.옥주와묵호는가정폭력속에서자라며일찍부터폐허속을서로에게의지해살아온인물들이다.묵호는좀비가된이후에도옥주를물지않고끝까지그녀를지키려하며,옥주는그마음을느낀다.

“당장죽을것같고,가끔은이미죽은것같은데,당장무너질것같은몸에도이토록단단한뼈가있구나.무너지지않겠구나.나약하지않구나.살아있구나.살아있는걸마음에서죽이지말아야지.살아있는데미리죽이지말아야지.살아있다는것만생각해야지.”
_2부「제숨소리를기억하십니까」중에서

2부「제숨소리를기억하십니까」는멸망이후의지구,그잔해속에서여전히살아있는사람들의이야기를그린다.대부분의인간이다른행성으로떠나거나좀비가되었고,남은이들은좀비가된가족을곁에둔채버텨나간다.‘제비’는의식이있는지조차알수없는엄마를돌보며,자신과엄마를지켜주던아버지‘비둘기’가사라진뒤스스로가장이되어생존해나간다.그리고시간이흘러,다리하나를잃은채딸‘노윤’과살아가는‘은미’를만난다.은미는정신발달장애를가진노윤을보살피며폐허속에서삶을이어가고,제비는그런은미의목숨을구하면서둘의인연이시작된다.자신이사랑하는이를지키기위해지구에남은사람들은,끝내마음속에서도그들을죽이지않으려는,잃지않으려는인간의마지막의지를보여준다.

“천국은바라지도않아.어디든저승의남은땅에같이있게만해줬으면좋겠다.그럼우리가그곳을천국으로만들수있는데.“
_3부「우리를아십니까」중에서

3부「우리를아십니까」는전인류가떠나거나죽어버린뒤오직좀비와동식물만남은지구에서,좀비바이러스에감염되었지만기억과의식을지닌화자가좀비가된아내를리넨카트에싣고바다로향하는여정을그린다.그는자신이혼수상태에빠져있던동안아내가좀비가되기직전까지남긴녹음을길잡이삼아걸으며,두사람이함께돌보던거북이‘장풍’을고향인바다로돌려보내려한다.이마지막동행은도피나생존의발버둥이아니라,이미죽음의세계에발을들인존재가‘그이후의삶’을살아가기위해밟는과정에가깝다.화자는녹음속아내의목소리와자신의머릿속에파편적으로남은기억을통해아내가지키고자했던인간성을되새기며,살아있음이란맥박이나온도가아니라서로를잊지않으려는마음에서비롯된다는사실을체감한다.그리고그마음이야말로모든것이무너진세상을천국으로만드는유일한힘임을이해하게된다.

“살아있는사람을너무오랫동안마음에서죽였다.살길바라면서도내안에서내가죽여버린사람.살아있지만죽은사람.살아있음을너무힘겹게증명해야하는사람.”
_「작가의말」중에서

이번연작은천선란문체의새로운결을드러낸다.그는탄탄한서사보다감각의파편과정서의여운을병치하는방식으로좀비서사를다시쌓아올린다.기억의단면과현재의폐허가교차하며하나의몽타주처럼이어지고,인물들은언어보다먼저다가오는호흡과떨림,시선의잔광으로세계를인식한다.문장은논리보다는리듬에가깝고,독자는사건을이해하기보다감각으로받아들이게된다.이러한리듬은천선란의문장이감정과윤리,서사와감각이교차하는지점까지밀고들어간결과다.

이번작품은좀비장르의외형을빌리되,그속에서인간의내면리듬과감정의미세한떨림을포착한다.폐허속의고요,사랑과상실의경계,살아있다는사실이만들어내는미묘한긴장이전편을지배한다.문장은감정의진폭을좇으며죽음과생존사이의온도차를세밀하게기록한다.그리하여천선란은질문을던지는작가에서감각으로답을내는작가로나아간다.세계가무너진자리에서도문장은숨쉬듯이어지고,그호흡속에서인간의존속이다시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