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덮인 세계를 본 적 있는가 (공희경 장편소설)

몸으로 덮인 세계를 본 적 있는가 (공희경 장편소설)

$17.00
Description
지구는 원래 그랬다. 온 세상이 채집장이다.
2025 제8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작, 공희경의 『몸으로 덮인 세계를 본 적 있는가』가 허블에서 출간됐다. 한국과학문학상은 김초엽, 천선란, 청예 등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SF 작가들의 탄생을 함께하며 국내 최대의 SF 작가 등용문 역할을 해왔다. 특히 올해부터는 응모 자격을 신인 작가에서 기성 작가까지 확대하며 공모의 폭을 확장했고, 그 결과 전년보다 응모작이 늘어난 가운데, 신인 작가 공희경이 김성중ㆍ김희선 소설가와 강지희ㆍ인아영 문학평론가의 꼼꼼한 심사를 거쳐 등단의 영예를 안았다.

작품은 ‘움(AUM)’이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비가 세계를 뒤덮은 이후, 움에 대한 면역 여부로 분화한 두 인종의 문명을 그린다. 이야기는 재난이 인류의 생존 조건을 어떻게 바꾸는지부터 출발해, 세대를 거치며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두 인종과 이 분화를 통해 새롭게 조직되는 인류 문명의 흐름을 찬찬히 짚는다. 공희경은 압도적인 상상력과 문장력으로 인류가 분열과 연대를 거듭하는 과정을 통해 지구 단위의 순환을 그려낸다. 특히 이 작품은 제2차세계대전 생체실험, 토착 원주민 착취, 기후 불평등의 최전선에 놓인 난민 및 노동자 등 지극히 현실적인 역사적, 지역적, 경제적 맥락을 깊이 있게 포착했다.

작품의 여러 장면은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움 내성 유전자를 지닌 아이를 품은 임산부가 일본군에게 처형당하기 전 아기에게 말을 거는 장면, 더럽다는 이유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해 걸어 귀가하는 난민 노동자가 과로사하는 순간까지도 아내를 위해 챙겼던 생수병을 따지 않는 장면, 루시의 과학기술로 인해 입이 없어진 애완 사가르의 슬픔을 다른 사가르가 공감하는 장면 등 작가는 인간이 행하는 폭력들을 노골적으로 서술하는데, 섣부른 계몽이나 감상적 해석에 도취되지 않고 깔끔한 문장으로 인간 사회의 면면을 끈질기게 쫓는다. 이를 통해 폭력과 죽음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인간 사이의 ‘무언가’를 끝까지 탐색하려는 작가의 시도가 돋보인다. “계급과 불평등, 권력의 문제를 다루면서 종말-창세 신화를 새로 짠 작가는 주제와 소재의 무게를 너끈히 감당해 장편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김성중 소설가)라는 평과 함께 만장일치로 장편 대상에 선정됐다.

500살이 된 상어 ‘바나’의 시점에서 시작하는 소설은 붕괴한 세계 속 인류를 인류 밖에서 조망하며 우리 삶에 대한 여러 “질문을 지적인 구도로 성실하게 제기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시적인 이미지로 아름답게”(인아영 문학평론가) 구현한다. 이처럼 거대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적재적소에 배치된 경이로운 장면들은 마치 한 편의 극을 보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하며, “우주의 음악 속 작은 패턴인 인류가 감내해야 할 운명을 가만히 응시하는 경험”(강지희 문학평론가)을 제공한다.
수상내역
★ 2025 제8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작 ★
★ 이의 없는 만장일치 수상 ★
저자

공희경

저자:공희경
1983년생.곡부공씨와남평문씨사이에서태어났다.
검은머리짐승과꼬리달린아이둘을키우고있다.
다음생에음악으로태어나고싶다는원대한꿈이있다.
제8회한국과학문학상장편대상을수상했다.

목차

1장-A.D.2015상어바나,이상한자기력을감지하다
2장-A.D.2028집으로돌아가는유령들
3장-A.D.2035잘생긴남자,말라키
4장-A.D.2338혹은A.L.300개동의시작
5장-A.L.450깊은밤을날아너에게
6장-A.L.451입속의꽃
7장-개동151~172검은강
8장-새벽의춤

작가의말
심사평

출판사 서평

모든생물을증발시키는비의출현과함께
두개의종으로분화한인류

“사피엔스의역사는고기의역사다.서로가서로를고기로만들었다.
예쁜고기.힘센고기.맛있는고기.우리는서로가가진불꽃을보지못했다.
이역사를끝내야한다.”(291쪽)

2015년,이국의작은섬에폭우가내렸다.비에젖은섬의생명체는단한명의생존자를제외하고흔적도없이사라졌다.이특이현상이세계로퍼지며인류는사상최대의재난,‘움’을마주하게된다.곧움연구가시작됐고,그과정에서생존자의유전자를이용한유전자편집기술이개발된다.이렇게완성된움에대응하는면역시술은죽기전까지키가자란다는부작용이있었지만재난속에서살아남을수있는사실상유일한선택지였기에상용화됐다.그러나비용이지나치게높았기때문에시술은부유층의전유물이되었고,세대를거치며시술여부는곧사회적?경제적지위를구분하는신체적표식이됐다.그결과신장의격차는단순한외형차이를넘어구조적불평등의상징으로굳어졌다.

먼미래,시술받은인류의후손이‘루시’라는새로운종으로정의되며호모사피엔스는두종으로분화하게된다.신인류루시는대대로이어진부를통해돔으로도시를덮어그들만의문명을이룩했다.반면구인류사가르는돔밖에서움을피해땅이나동굴속에서그들만의공동체를만들어살아야했다.사가르가돔안에서살기위해서는애완목적으로루시에게입양되거나,루시를모시는노동계층이되는방법뿐이다.

신체적특성이다르다는이유만으로사가르를열등한종으로규정하는루시들의행보는마치인권에대한인식이과거로회귀하는듯한모습을보여준다.거대재난이라는변수앞에서인류가오랜시간쌓아올린인권이무너지는과정은,우리의자유와평등을보존하기위한다짐과양심이얼마나중요한지를상기시킨다.하지만이야기는여기서멈추지않고채도높게생동하는인물들의생존을위한몸부림과순리대로흘러가는자연의거대한순환을묵시록적으로묘사하며주제를색다른방향으로승화시킨다.

“그들이우릴길들였다.루쿨렝?이름도거창하다.진보한생명체란다.우리는그냥꺽다리루시라부른다.그들이하는모든행동에는구린내가배어있다.”(100쪽)

시술부작용으로거대해진신체를앞세워번성하던루시문명은역설적이게도그육체가무한히급속도로팽창하는‘집단거대화’로인해멸망한다.뒤늦게발현한부작용인루시들의거대화는돔을부수고나서도멈추지않았으며,루시들은“새로이탄생하는생물처럼”(212쪽)자아를잃고“자신들이이룩한지상최대규모의건축물들을조금씩침식시켜나가며”(222쪽)끊임없이이동했다.루시의애완사가르소녀‘카’는노동계층소년‘아난’과함께돔에서빠져나와도망친다.카는루시문명이멸망하고나서야그들로인해얼마나많은사가르들이목소리를잃고살아왔는지알게된다.카는착취당해증발한작은존재들을외면하지않으리라결심하는데,이후도달한사가르들만의공동체‘개동’에도계급과폭력이존재하는것에충격을받는다.그들의우두머리‘회’는신분제에이의를제기하는카를다음과같은말로설득한다.“인류의발아래는언제나희생의강이흐른다.우리는희생을통해영원히살아간다.버림으로써또다른생이이어진다.모든존재가연결돼있다.”(270쪽)

김성중소설가는심사평에서카의시선을통해자가포식이라는자연의엄정한법칙이제시되었음에주목했다.“만드는것이상으로파괴되는것이있어야유지되는생명의엔트로피”는이소설의결말을“새로운지구를위한창조적파괴”로이끌었다고그는평했다.존재를위해파괴가불가피하다는이철학적함의는독자로하여금존재의본질을다시금사유하게하며작품에묵직한깊이를더하는핵심적인요소로작용했다.

증오와사랑을반복하는인류문명의순환
영혼의숨을보는소녀가읊는종말과창세의역사

“증발하는모든것이하늘로올라가네.
그들은부서진대지를유영하며하늘끝에서
점차로경계가허물리고비눗방울과같은덩이가되어,
대기를타고빠르게상승한다.”(248쪽)

강지희문학평론가는심사평에서“극단에이른계급갈등이어떻게하위계층에서억압적인신흥종교를탄생시키는지,상위계층에서는시술의부작용으로인한붕괴가어떻게무정부상태를발현하는지”치밀하고현실적으로그려내며,생을좇아살아가는“인물들이만드는화려하고생생한이미지와서로다른계급으로만난소녀와소년의사랑이불러일으키는정동”이라는두축을중심으로이작품을바라봤다.

싸움과연대를반복하는인류의모습처럼이별과화해를반복하는카와아난사이의일화들은작품바깥에있는독자의시선으로볼때사소한작은점으로보인다.여기서우리는“작가가의도하는건이모든폭력과죽음과이별을순간적인과정으로전환시키는지구행성적차원의순환을보여주는데있다”(강지희문학평론가)는것을알수있다.인간이규정한사회·문화적구별과그로인해발생하는차별과사건들은결국우주적순환의관점으로볼때무의미한하나의점이며모두같은‘존재’라는점을강조하는것이다.작가의의도는“슬퍼하지마.우리는아름다운패턴이야.우주의음악이야”(320쪽)라는문장으로응축된다.이소설이다루는거대한연대기를따라가는동안,독자는인간중심의폭력적질서를넘어선근원적질문과마주할수있을것이다.


이이야기는연결되는우주의얘기이며
음악에대한찬가이며
세상모든작은것들에대한사랑의노래다

별빛은이야기를보낸다.이야기는뚝뚝끊긴다.밤하늘속에는많은이야기가떠다닌다.아직해독되지못한많은얘기가있다.나는별빛에게기도한다.너의이야기를들려달라고.네가하고싶은말을전달해주겠다고.네가사랑하고있는이세계의누군가에게.(…)

환기미술관맨위층에앉아그림을보고있었다.계단을올라오는사람들의눈에그림이닿을때면아,깊은감탄에서나오는자연스러운탄식이들렸다.그들은약속한것처럼하나같이마지막맨위계단을밟을때탄성을내뱉었다.허영도가식도없는순수한감동의표정이었다.그들의눈에푸른빛이차오르는게느껴졌다.나는그들의얼굴을관찰했다.

너무아름다운것에는공평의꼬리표가달려있다.그런글을쓰고싶다.
이야기를캐는고고학자처럼,매일한점한점감춰진이야기를발굴한다.
땅을파서돌을건져올리고흙과먼지를털어내고아래감춰진거대한,공룡의뼈대같은것을,
새하얀뼈를만져본다.
새하얀것이있다.
이제아주조금드러났다.
그뼈대가모두드러나는날을기다린다.
누구나알아볼수있을만큼아름다운이야기를.
-「작가의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