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전쟁 : 네 총대주교, 세 황후, 두 황제와 5세기 교회사

예수 전쟁 : 네 총대주교, 세 황후, 두 황제와 5세기 교회사

$28.00
저자

필립젠킨스

저자:필립젠킨스(PhilipJenkins)
글쓴이필립젠킨스는케임브리지대학클레어칼리지를졸업하고미국베일러대학역사학교수와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인문학석좌명예교수로있다.“미국최고의종교학자”(포브스)로알려진젠킨스의주요저서로는「숨겨진복음서:예수탐구는어떻게길을잃었는가」,「차세대기독교세계:세계기독교의등장」,「기독교의잃어버린역사」,「그리스도의다양한얼굴」을비롯해35권이있다.<더월스트릿저널><더워싱턴포스트><크리스천센추리><크리스채너티투데이><디애틀랜틱>등에오랫동안글을기고하고있다.

역자:유재덕

목차

옮긴이머리말:기독교역사를영원히바꾼사건들
프롤로그:너희는나를누구라하느냐?
들어가면서:용어와정의

1.문제의본질
예수전쟁/만약하나님이우리중하나였다면?
살아계신그리스도/세상의절반을잃다/다시카타콤으로
새로운세계의획득/또다른세계를상상하며/누구의권위로?
교회의정신/폭력적신앙/폭력의독점/기독교와이슬람

PART1.하나님과카이사르

2.두본성전쟁
그리스도를이해하기:대략30년부터300년까지
4세기/예수전쟁의선포:5세기

3.네기수:교회의총대주교들
총대주교와교황/뜨는별과지는별/로마황제
로마의후퇴/알렉산드리아의파라오들
콘스탄티노플과안티오키아/요안네스크리소스토모스의몰락

4.황후,장군,그리고황제
황제들을넘어서서/국가로서의교회,교회로서의국가
하나님의전사들/거룩한여성들/풀케리아/불관용의시대
참된그리스도인과거짓그리스도인/왜증오했을까?

PART2.혼돈의공의회

5.하나님의어머니가아니라고?
총대주교/위기/하나님의어머니/적들/이집트로부터
킬릴로스대네스토리오스/키릴로스의십자군
에페소스의뜨거운여름/출구의모색/콘스탄티노플로/여파

6.하나님의죽음
최후의로마인들?/에우티케스/밀어붙이기
세속의전쟁/에우티케스의반격/다시에페소스로
로마인레오/깡패들/동부전선

7.칼케돈
반혁명/공의회/신조의결정/신앙의선포
칼케돈신앙정식/새로마와옛로마/칼케돈이후
알렉산드리아의비극/로마

PART3.잃어버린세계

8.교회는어떻게절반의세계를잃었을까
칼케돈의적들/단성론제국/칼케돈의수호/대분열
유스티니아누스/5차공의회/새로운단성론교회/탄압
동방에닥친위협/의지의실패/성문밖이슬람

9.무엇이구원받았을까
끝없는부활/오늘날의그리스도/신조인가,혼돈인가

주요등장인물들
색인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지난2천년동안그리스도인들은‘위로부터의그리스도론’과‘아래로부터의그리스도론’사이에존재하는이끝없는긴장을해결하려고부단히노력했다.하지만5세기공의회들만큼이논쟁이기독교의핵심사안이었던적은결코없었다.수십년동안교회는그리스도의인성에대한믿음을거의포기하고압도적으로신적존재로만묘사하는게거역할수없는흐름처럼보일정도였다.이야기의대략적인윤곽은비교적간단하다.모든지적논쟁배후에는교회를대표하는총대주교좌간의강력한경쟁관계가자리잡고있었다.한쪽에는알렉산드리아,또다른쪽에는안티오키아(안디옥)가있었고,가장치열한싸움터는콘스탄티노플이었다.안티오키아는그리스도의인성이지닌실재성을강조했고,알렉산드리아는신성과인성을분리하는주장은무엇이든맞서싸웠다.420년대에는수도사네스토리오스(386?-451?)가콘스탄티노플대주교로임명되면서안티오키아의교리를도입했고,그렇게해서재앙이뒤따랐다.1차에페소스공의회(431)에서네스토리오스는신성과인성을구분하는양성교리를가르쳤다는이유로이단으로정죄받고파문되었다.”
---p.39

“칼케돈공의회까지계속된논쟁의상당부분은기독교의두심장부이자지성의중심지였던알렉산드리아와안티오키아간의수십년에걸친전쟁이포함되었다.두도시모두가장오래된신앙의중심지였고,유구한역사와전통에대한자부심이대단했다.5세기전반에걸쳐두도시의권력과위상은크게성장했다.서방에서야만족이갈리아와에스파냐,아프리카를강하게몰아칠수록,위축된제국은정치적으로나경제적으로시리아와이집트,그러니까안티오키아와알렉산드리아에한층더의지했다.게다가두도시는본성논쟁에서특정해석을대변하게되었다.알렉산드리아는단일본성교리를고수했고안티오키아는두본성사상에개방적이었다.네스토리오스부터철저히안티오키아의산물이었고,알렉산드리아사람들은그의가장강력한적이었다.알렉산드리아의고유한신학유산은3세기초반학자오리게네스에게로거슬러올라간다.그는장차그리스도론을형성하게될수많은이론과용어(우시아와휘포스타시스까지)를만들어냈다.게다가오리게네스는알렉산드리아의신학을상당히철학적인방향으로강력하게이끌었고,성경을상징이나영적으로해석하는방법을개척해이후로이집트신학자들의특징으로알려졌다.”
---p.113

“5세기초에이르러교회들은도시마다확고한권위를갖춘세력으로자리잡았는데,세속권력의상징들과맞먹거나오히려그것을압도할때도많았다.제국은사제들별도의사법제도를인정하고,그들이자신들만의특별법정에서재판받을권리를부여해교회의존엄성과독립성을인정했다.동방에서는이권리가주교에게만주어졌지만,서방에서는계급과상관없이모든사제에게적용되었다.주교는이제정부의중요한통로가되었고,종교적역할뿐아니라정치경제적업무에도적극적으로참여했다.서방에서로마제국이붕괴하자도시와지역권력이지방장관과주교간동맹으로넘어갔고,이런방식은아주오랫동안지속되었다.제도화된기독교는동방과서방을막론하고교회건물과수도원이라는물리적존재를통해권위를강력하게드러냈고,제국과세속유력자들의후원을받아대대적으로건축을진행했다.마침내교회는거대한신전과경쟁했고,심지어그높이를압도하기시작했다.신전건축에필요한석재가교회건축에사용되기도했다.”
---p.186

“첼레스티노는키릴로스의고발건에조사를명령했다.책임자는그의부제레오였다.430년8월,지역공의회를소집하고난뒤에교황은네스토리오스에게구체적으로기한을명시한최후통첩을보냈다.네스토리오스는열흘이내에‘성경이결합한것을분리하려고하는그불신앙적인새로운교설을서면으로공개적으로취소하고,’로마와알렉산드리아교회가고백하고있고,그가총대주교가되기이전에콘스탄티노플이그랬듯이그리스도에관한교리를가르치겠다고동의해야했다.그렇지않으면그는파문될수있었다.그해11월,로마를확고한우군으로확보한키릴로스는네스토리오스에게세번째편지를보냈다.어느때보다공격적이고극단적인말투로자신의견해를제시했다.키릴로스는사실상전쟁을선포한것과다름없었다.‘심판날에누가우리를도울수있겠는가?또는그대가그리스도를모독한일에대해우리가이토록오랫동안침묵을지켜온것을어찌변명할수있겠는가?만일당신이그것들을가르치고주장해서당신에게만해를입혔더라면,그일은덜중요했을지모른다.그렇지만당신은전체교회에엄청난충격을안겼고,사람들가운데이상하고새로운이단이라는누룩을던져넣었다.’자주인용되는이세번째편지에서키릴로스는모든그리스도인이인간성과신성의어떤분리도거부하는위격적연합의교리를받아들이도록요구했다.”
---p.243

“457년,마르키아누스가세상을뜨자알렉산드리아시민들은프로테리오스에게반기를들었다.‘경건한백성들이다시숨을돌리고구세주그리스도께감사드렸다.’그들은주교들을모아‘족제비’티모테오스를총대주교로선포했다.군대는질서를유지하려했지만실패했다.제국군은반대파의본거지였던교회를습격해‘다수의평신도와수도사,수녀를살해했다.’분노한군중은순교의열정에사로잡혀매일군대와맞섰고,도시는사실상내전과같은유혈사태에빠졌다.이번에는군대도프로테리오스가신성한순교의선물을받는것을막지못했다.‘알렉산드리아사람들가운데일부는티모테오스의선동을받아성스러운세례당으로도망친프로테리오스를발견하자그의배를칼로찔러죽였다.그들은시체를밧줄에매달아테트라필론이라불리는구역에전시하고이자가프로테리오스다!,라고조롱하며외쳤다.그러고는시신을도시전체로끌고다닌뒤불태웠고,심지어맹수처럼그의내장을맛보는것조차주저하지않았다.’다른기록에따르면‘그들은그를길위에돼지나개처럼내버려두었다.그의성품과잔혹함이그것들과다르지않았기때문이다.’”
---p.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