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무엇을 위해 수고하고, 무엇을 기뻐하며
어떻게 오늘을 살아갈 것인가?
불혹이라지만 여전히 흔들리는 마흔에게
전도서가 건네는 삶의 지혜!
내일도 해야 할 일은 많겠지만,
오늘은 잠시 걸음을 멈추어 보자.
그리고 …
애써 온 날들의 의미를 묻고,
창조주가 주신 오늘의 기쁨을 발견해 보자.
전도서의 첫 장을 펼치면 시작부터 만만하지 않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위로를 기대했는데 헛되다는 말부터 쏟아진다. 가뜩이나 지친 사람에게 너무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조금 더 읽다 보면 이상한 안도감이 찾아온다. 전도자는 우리가 쉽게 입 밖에 내지 못했던 질문을 피하지 않는다.
열심히 일했는데, 왜 남는 것이 없는가?
지혜롭게 살려고 애썼는데, 왜 일이 어긋나는가?
내가 쌓은 것을 다른 사람이 가져간다면, 이 수고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즐거운 일을 다 해 보아도, 왜 마음 한편은 비어 있는가?
전도자는 독자의 입을 서둘러 막지 않는다. 좋은 생각을 하라거나 감사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쉽게 결론 내리지도 않는다. 삶에는 설명되지 않는 일이 있고, 노력과 결과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순간이 있으며, 옳게 살아도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바라본다. 그래서 그의 말은 때로 서늘하다. 그러나 바로 그 정직함 때문에 우리는 그 앞에서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된다.
전도서에서 ‘헛되다’로 옮긴 히브리어 ‘헤벨’은 본래 입김이나 수증기처럼 붙잡을 수 없는 것을 가리킨다. 눈앞에 있는데 손에 쥐어지지 않고, 분명 존재하지만 오래 붙들어 둘 수 없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젊음도, 인정도, 성취의 기쁨도 내 곁에 영원히 머물러 주지 않는다. 계획을 아무리 촘촘히 세워도 그 안에 담기지 않는 일이 생긴다.
그렇다면 인생이 헛되니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할까? 전도서는 그 자리에서 다시 우리의 손을 움직이게 한다. 오늘 주어진 음식을 기쁘게 먹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사랑하고, 손에 맡겨진 일을 힘써 하라고 말한다(전 9:7-10). 앞날을 다 알지 못해도 씨를 뿌리라고 권한다(전 11:6). 삶을 붙잡아 내 뜻대로 만들 수 없다는 사실과 오늘을 소중히 살아야 한다는 권면이 이 책 안에 함께 있다.
이러한 전도서의 지혜가 마흔의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 책은 전도자의 지혜를 따라 마흔의 일상으로 들어간다. 비교와 분노, 돈과 관계, 수고와 쉼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살피고, 무엇을 붙들며 살아갈지 함께 묻는다. 여기서 말하는 마흔은 단순히 숫자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마흔이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만으로는 앞으로의 삶을 감당하기 어렵겠다고 느끼는 때, 자신 있게 내놓던 대답보다 정직하게 붙들어야 할 질문이 많아지는 때를 뜻한다. 서른 중반에 이 자리에 설 수도 있고 쉰이 넘어서야 비로소 멈추어 돌아볼 수도 있다.
전도서를 읽는다고 내일의 일정이 가벼워지거나 오래된 문제가 단번에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마음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모든 결과를 내 책임으로 짊어지던 자리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남의 삶을 바라보느라 놓쳤던 내 삶의 선물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하루를 허락하신 창조주를 다시 기억할 수 있다.
혹시 요즘, 불을 끄고 누운 뒤에도 마음속 질문이 좀처럼 잠들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제 그 질문을 품고 전도서를 펼쳐 보자. 내일도 해야 할 일은 많겠지만, 오늘은 잠시 걸음을 멈추어 보자. 오래전 전도자가 붙들었던 질문 속에서 지금 우리 삶을 비추는 지혜를 만나 보자.
어떻게 오늘을 살아갈 것인가?
불혹이라지만 여전히 흔들리는 마흔에게
전도서가 건네는 삶의 지혜!
내일도 해야 할 일은 많겠지만,
오늘은 잠시 걸음을 멈추어 보자.
그리고 …
애써 온 날들의 의미를 묻고,
창조주가 주신 오늘의 기쁨을 발견해 보자.
전도서의 첫 장을 펼치면 시작부터 만만하지 않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위로를 기대했는데 헛되다는 말부터 쏟아진다. 가뜩이나 지친 사람에게 너무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조금 더 읽다 보면 이상한 안도감이 찾아온다. 전도자는 우리가 쉽게 입 밖에 내지 못했던 질문을 피하지 않는다.
열심히 일했는데, 왜 남는 것이 없는가?
지혜롭게 살려고 애썼는데, 왜 일이 어긋나는가?
내가 쌓은 것을 다른 사람이 가져간다면, 이 수고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즐거운 일을 다 해 보아도, 왜 마음 한편은 비어 있는가?
전도자는 독자의 입을 서둘러 막지 않는다. 좋은 생각을 하라거나 감사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쉽게 결론 내리지도 않는다. 삶에는 설명되지 않는 일이 있고, 노력과 결과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순간이 있으며, 옳게 살아도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바라본다. 그래서 그의 말은 때로 서늘하다. 그러나 바로 그 정직함 때문에 우리는 그 앞에서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된다.
전도서에서 ‘헛되다’로 옮긴 히브리어 ‘헤벨’은 본래 입김이나 수증기처럼 붙잡을 수 없는 것을 가리킨다. 눈앞에 있는데 손에 쥐어지지 않고, 분명 존재하지만 오래 붙들어 둘 수 없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젊음도, 인정도, 성취의 기쁨도 내 곁에 영원히 머물러 주지 않는다. 계획을 아무리 촘촘히 세워도 그 안에 담기지 않는 일이 생긴다.
그렇다면 인생이 헛되니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할까? 전도서는 그 자리에서 다시 우리의 손을 움직이게 한다. 오늘 주어진 음식을 기쁘게 먹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사랑하고, 손에 맡겨진 일을 힘써 하라고 말한다(전 9:7-10). 앞날을 다 알지 못해도 씨를 뿌리라고 권한다(전 11:6). 삶을 붙잡아 내 뜻대로 만들 수 없다는 사실과 오늘을 소중히 살아야 한다는 권면이 이 책 안에 함께 있다.
이러한 전도서의 지혜가 마흔의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 책은 전도자의 지혜를 따라 마흔의 일상으로 들어간다. 비교와 분노, 돈과 관계, 수고와 쉼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살피고, 무엇을 붙들며 살아갈지 함께 묻는다. 여기서 말하는 마흔은 단순히 숫자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마흔이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만으로는 앞으로의 삶을 감당하기 어렵겠다고 느끼는 때, 자신 있게 내놓던 대답보다 정직하게 붙들어야 할 질문이 많아지는 때를 뜻한다. 서른 중반에 이 자리에 설 수도 있고 쉰이 넘어서야 비로소 멈추어 돌아볼 수도 있다.
전도서를 읽는다고 내일의 일정이 가벼워지거나 오래된 문제가 단번에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마음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모든 결과를 내 책임으로 짊어지던 자리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남의 삶을 바라보느라 놓쳤던 내 삶의 선물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하루를 허락하신 창조주를 다시 기억할 수 있다.
혹시 요즘, 불을 끄고 누운 뒤에도 마음속 질문이 좀처럼 잠들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제 그 질문을 품고 전도서를 펼쳐 보자. 내일도 해야 할 일은 많겠지만, 오늘은 잠시 걸음을 멈추어 보자. 오래전 전도자가 붙들었던 질문 속에서 지금 우리 삶을 비추는 지혜를 만나 보자.
마흔에 읽는 전도서 (마흔, 이제 무엇을 붙들고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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