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날개가 있으니까 (이유정 시집)

괜찮아! 날개가 있으니까 (이유정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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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 시집은 「취꽃」의 시다. 시인이 겸허하게 ‘생각 없이 주물러 만든’ 볼품없는 화병이라 칭한 그릇에 바다를 품은 ‘소금꽃’이 피었다. 생각을 여윈 생각으로부터 ‘내일이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 숨결들이 모였다. 생각 없음이 자유를 주기도 하는구나. ‘창문을 통과한 빛이 거실에 닿아 유리컵이 움찔하는’ 「카메라 옵스큐라」의 결정적 순간들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한낱 구르는 「동전」으로부터 교환가치와 사용가치가 지배하는 질서 너머에서 빛나는 심미적 가치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눈은 또 얼마나 참신한가. 시인에게 시는 천사의 온도를 읽을 수 있는 열감지기 같은 것이었나 보다. 너무 작고 희미하고 여려서 인지하기 힘든 것들의 눈짓과 신호를 경청하는 자세로부터 「괜찮아, 날개가 있으니까」 같은 다감한 위무의 말들이 일상의 소음들마저 웅숭깊게 품어주었나 보다. 세상은 “물고기는 발성기관이 없어”라고 가르치나 시인은 “없는 게 아냐 아무도 노래를 듣지 못할 뿐/물속에 집중하고 있는 왜가리를 봐”(「물고기와 장미」)라고 노래한다. 탕그릇 바닥에 마지막 한 점까지 우려내 보잘것없어진 「물고기 대가리」 같은 비극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두고 간 눈알 하나’ 들고 생의 바다를 향하며 나를 돌아보는 우주적 성찰의 시간대가 펼쳐진다. 「목련의 방향」을 나침반으로 품은 자의 지도 속엔 매일 빵을 뜯어먹어야 하는 지상의 수고를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신의 제단을 향하여 학을 접는 은수자의 외로운 초상이 있다. 그리하여 활자의 관 속에서 극한 세계를 관통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긴 목을 뽑아 북쪽산을 쪼아대다 어둠을 따라 다시 물속으로 사라지는” 시여. “나무가 제 안으로 새겨 넣은 빛의 파동, 휘몰아치는 시간 속에 돋을새김으로 빛나는 눈들”을 가슴으로 옮겨놓고자 하는 「시간 공작소」의 수고들이 향기롭다. 작가 미상의 보물로 알려진 「백자 철화끈무늬 병」처럼 하마터면 미상에 그칠 뻔 한 시들을 돌무덤을 쌓듯 끌어모은 글벗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제도의 승인이나 호출을 받지 못했으나 윤동주 없는 한국시를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나는 이제 이유정 시인 없는 시를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추천사(손택수 시인) 중에서

저자

이유정

저자:이유정
광주에서태어나전남대학교독어독문학을전공했다.〈생오지문예창작촌〉,〈시가흐르는행복학교〉에서시문학을공부하였다.〈치치시시〉시동인.유고시집으로『괜찮아!날개가있으니까』가있다.

목차

1부아직별일은없고붉은달도울음도그런대로좋아

매발톱꽃은피고19
괜찮아!날개가있으니까20
백자철화끈무늬병23
목화밭검은별26
열시이십분28
명옥헌까마귀장롱32
붉은계곡33
백수에월식34
한꼬마인디언두꼬마인디언36
시간공작소38
오늘의날씨39

2부너를사랑하는방법

꿈43
수렵생활44
목련의방향46
그림자취향49
맨드라미52
뒷장54
날마다여행56
꼬리에택배스티커가붙은고양이58
눈은희고장미는붉고60
OverThere63
대설후66
둘레길68
증후군70

3부작고작아아름다운영혼의집이흔들린다

반사경75
유리나방의집78
여름을위한레시피80
루루82
물고기대가리83
동전86
월산공원식당88
귀산댁91
변주92
거미의집94
취꽃96
얼음위에발자국98
수국이자라는아침100

4부끝까지는다시새로운각오가필요한말

바다터미널107
꽃피고지는사이110
멀구슬나무해변112
상원사에서114
그대의섬117
블루118
셀카120
카일라스가는길122
카일라스가는길123
발가락탱글링124
물고기와장미127
카메라옵스큐라130

발문_이유정시인을기억하며133
박순원김성철엄지인이서영

추천글_손택수

출판사 서평

시인의말

내가사랑한것들은대부분날개가없었지만
완전한포옹을위해서여기겨드랑이한쪽을남겨둡니다.

책속에서

<시간공작소>

이야기를듣다가우리를보고있는시선을느꼈다둘러보다마주친기둥속에눈,나무가제안으로새겨넣은빛의파동,휘몰아치는시간속에돋을새김으로빛나는눈들,자작나무를좋아한다산에서든사막에서든크고검은눈으로자작나무는나를,제비꽃한들거리는봄을마르고쇠한잎사락사락떠나가는것을가만히지켜보고,창문덜컹거리던밤,잠을뒤채며내가보고있던것은무엇이었을까?단단하다고믿었는데시간에는어떤법칙도없었다한뼘자라다부러져나가고한마디인사도없이떠나보내야하는순간,네손을꼭잡고한줌온기라도쥐여보내야했었다농담처럼흘린지킬수없는약속을후회한다진액으로상처를봉합하고기다리는시간,앞에서톱날이돌아가도감을수없는눈이뜨이고

나무의눈을가만히쓰다듬는다

죽을때까지감을수없는눈을
가슴으로옮긴다

<괜찮아!날개가있으니까>

아침에천사를만났어바쁜출근길에묻어와서내앞에툭떨어졌지베를린천사*도이렇게왔어그래도추락하는표정이라는게있었는데

어쩌다여기까지와버렸어요?존재에대한예의라는게있어허리도다리도접고앉아물었어대답이없었어괜찮았지어떤존재가지상의언어에금방익숙해지겠어

대신가만히눈을들여다봤지혼돈의밤을막통과해도착한길고긴여행이좀지루하다는눈빛

안되네,왜안되지큰소리로웃었어사람들이쳐다봤지

세상에어떤열감지기가천사의온도를읽을수있겠어궁금한것이자신의온도인지세상의감응능력인지천사는계속열감지기를기다리고

내가아는천사는두종류야옷을입은천사와옷을벗은천사신과다르다면가끔인간을위해좋은일도한다는정도자전거를타고빵을배달해도콧노래를부르던베를린천사

날개를가진존재가
사람들과너무가까워지면날개를잃게돼

천사는천사들이있는곳으로가야해서가야할방향을알려줬는데바쁜나를가만히잡아끄는손이있었어너무작아서기분이

좋았지바닷가로밀려나온작은조개껍데기처럼귀에갖다대면사락사락바닷속이야기를들을수있을것같은

계단은사람들이나익숙해조심스럽게내려보내고

기우뚱멀어지는모습이힘겨워보여뒤에대고소리쳤어
무거워보이는데괜찮아요?

“괜찮아”

처음들어본것같은말,괜찮아
내가전혀쓴적이없는것같은말,괜찮아

*영화‘베를린천사의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