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쉼표를 찍고 싶을 때 (명인숙 시집)

문득 쉼표를 찍고 싶을 때 (명인숙 시집)

$12.00
Description
명인숙 시인의 시집 『문득 쉼표를 찍고 싶을 때』는 슬픔이 침잠해 있는 삶의 면면을 자연에서 터득한 따뜻한 시선과 사랑의 마음으로 감싸안는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삶이란 마치 초록빛 숲속에 숨겨진 보랏빛 꽃처럼 은근히 아름다우면서도 그 속에 아련한 슬픔을 품고 있음을 말없이 얘기해 준다.
표제작 「문득 쉼표를 찍고 싶을 때」는 삶의 무게와 복잡한 생각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버리고 싶으면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가자"라는 구절은 복잡한 마음과 아픈 기억들을 자연 속에서 조용히 내려놓으라는 따뜻한 권유로 읽힌다. “걷기만 해도 비워지는 숲길”은 생각을 멈추고 침묵과 고요 속에 쉼표를 찍으라는 다정한 위로이며, 동시에 다시 채울 힘을 얻기 위한 소중한 쉼의 공간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
이 시집의 첫 작품 「명주달팽이」는 느리지만 견고한 사랑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며, 우리의 삶 속에서 느끼는 사랑의 모습이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는 따뜻한 시선이 감동적이다. 사랑이 반드시 뜨겁고 격정적일 필요는 없으며, 느리고 작지만 진심 어린 삶의 자세로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여름 숲 도라지꽃」 역시 자연 속에서 삶의 고통을 위로하고 슬픔을 조용히 어루만지는 시인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나무와 별을 키우는 일이란 ‘그늘의 눈물을 다독이는 일’이라고 말하는 시인의 시선은 맑고도 따뜻하다. 남보랏빛 꽃처럼 삶의 조용한 아름다움을 소중히 여기는 시인의 감성이 인상적이다.
자연과 소통하는 시인의 섬세한 감성은 「씨방의 고백」과 「꽃샘」에서 더욱 깊어진다. 아주 작은 씨방 하나가 꽃으로 피어나듯 미세한 삶의 감정도 놓치지 않는 시인의 관찰력이 빛을 발한다. 특히 「꽃샘」에서 꽃샘바람에도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새들의 집을 짓게 만드는 자연의 손길은 삶에서 겪는 슬픔마저도 의미 있게 만드는 따뜻한 시선이다. 「그녀가 피었다」에서는 잊고 지냈던 꿈과 자아를 다시 발견하는 여정을 그린다. 삶의 무게에 눌려 꿈과 희망을 잊고 살았던 일상이 작은 꽃들로 피어나 다시 의미를 회복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자연을 매개로 상실과 회복, 사랑과 꿈을 섬세하게 연결하는 시인의 온기가 돋보이는 시집이다. 「어디쯤에서 파도가 불어올까요」와 「그리움을 그리워하다」는 상실과 그리움의 정서를 더욱 깊이 있게 담아낸다. 섬과 바다가 서로를 갈망하듯, 내면의 그리움과 슬픔은 시인의 따뜻한 언어로 승화되며 독자에게 위로를 전한다.
이 시집 『문득 쉼표를 찍고 싶을 때』는 자연을 단순한 배경으로 사용하지 않고 인간의 삶과 슬픔, 사랑과 그리움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자연과 삶의 경계를 허물고, 슬픔마저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세계는 독자에게 깊은 위안과 공감을 선물한다. 이 시집은 삶이란 때로는 꽃샘바람처럼 매섭고 때로는 바람에 흔들리는 꽃처럼 연약하지만, 결국 이 모든 순간이 삶을 이루는 소중한 조각임을 따뜻하게 일깨워준다. 자연과 삶, 슬픔과 사랑을 따뜻한 시선으로 어루만진 이 시집은 오래도록 독자의 가슴에 깊이 남을 것이다.
저자

명인숙

전남여수출생
시·그림책『결혼하지않은여자』
시집『문득쉼표를찍고싶을때』
2025년전남문화재단창작지원금수혜

목차

1부달빛이더오래비치는곳에서품는바다

명주달팽이/마지막의시작/한사람만을위한나침반/결혼에필로그/
징하게끝나지않는노래/사월아포리즘/여름의문장열음/그여름숲도라지꽃/
기억끌어안기/zgm,우리는/곶감단상/달의신앙/꽃밥

2부꿈꾸던풍경에들었다나온오후

씨방의고백/시인의식탁/꽃샘/거짓말끼리추는춤/딸에게/그녀가피었다/
로또의에피소드/어머니의방/시앓이/봄을빌리다/흰벽을깁는여자/
다시,봄을닦는중입니다/여백을읽어주는숲

3부어디쯤에서파도가불어올까요

소원을돌고돌아/시나브로어디선가/꽃보기로보는세상/결혼하지않은여자/
어디쯤에서파도가불어올까요/공자를만난아침/그림자의집/인형손/내구월의남자
주문이완료됐습니다/그리움을그리워하다/기억을부치는시간/치매꽃피니기억꽃지고

4부오래도록지워지지않는물밑의말

찰랑거리는눈빛한모금/고목의옹알이/문득쉼표를찍고싶을때/첫시/
살랑이는봄으로고백/엄마의장롱/그때그대로그대를/여수를활짝펴서읽으면/
꽃무릇사랑법/우리가끔은곡선에서쉬어가자/한다발의슬픔으로/양자리여자
통도사/오래도록지워지지않는물밑의말


해설_‘문득’이라는흐릿한경계에서마침-쉼표를찍는일
정재훈(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해설중에서

지금까지시인이몸담근여로의끝이어딘지는누구도알수없다.눈빛이머문시적인순간들이그러했듯이것이잠깐의휴식인지,아니면정말로여정의끝자락인지는아마시인자신조차도도무지알수없는불가해한사건이다.

흐르다보면당신의끝자리
진짜얼굴을감춘시간

이별앞에나를세운줄도모르고
오늘당신앞에서있습니다

늘똑같은모습으로온다고생각했지만
늘다른모습으로와나를깨웁니다

한번도온전히가져본적없는시간이
되돌아와흐릅니다

우리는
한방울의눈물

삼백육십오일개미쳇바퀴돌듯
소란스러운언어잠재우고

12월로
우리를다시피우겠습니다
-「마지막의시작」전문

인생의행간에서당신과나의자리는과연어디쯤에있는것일까.명인숙시인의시들에는미지의여정에발을내민시적몸짓들이있지만,아직채워지지않은여백들도함께엿보인다.불시착에가까웠을“이별앞에”가까스로멈춘무수한한숨과머뭇거림은다시금피어난오늘의“당신앞에”완성되지못한채로전해질것이다.아마도이방인의어눌하고어두운목소리처럼들렸을수도있다.하지만그말투는“소란스러운언어”틈으로낯선침묵을불러왔을것이며,마치한겨울의폭설처럼모든것들을하얗게뒤덮게될것이다.익숙함의일시적종말,한해의시린분기점인“12월”의하얀어둠속에서희미하게약속된“다시피우겠습니다”라는말은“한방울의눈물”과함께당신에게전해진다.이것이당신과나의여정에서쉼표가될지,마침표가될지는아직알수없다.
이것은그저당신과나의관계에서만비롯된문제가아니다.하얗게깔린백색위의원고에서시적인몸짓에서비롯된불시착한언어들의흔적은당장에이곳의문법으로어찌할수없는‘한방울의눈물’과도같다.명인숙시인에게당신의것이면서도동시에시의“진짜얼굴”은이눈물로써유일하게증명되는것이며,그얼굴을마주한다는것은곧이곳세계의가장끝자락에서겨우마주할수있는특별한사건이라하겠다.특히나이존재적사건은‘이별’이라는상황까지얹어져서더욱더날카롭게일상의감각을가로지른다.날벼락과도같은이별의냉혹한선언앞에서그동안쌓아올린시간과인연이모조리무너질지라도그사건은시적인힘으로써나에게다가와조금씩“온전히가져본적없는시간”으로탈바꿈된다.

버리고싶으면
월정사전나무숲길을가자

아픈마침표들의얼굴이
새잎을열어곧게가지를뻗는다

걷고걷다보면
놓쳐버린침묵사이에
당신이라는쉼표를찍는다

감추고싶은생각들
비워져야채워지는마음
생각을멈추면

맑은물에
발소리조차고요하다
걷기만해도비워지는숲길

채우고싶으면
월정사전나무숲으로가자
-「문득쉼표를찍고싶을때」전문

쉼표와마침표의차이가한눈에발견되기란쉽지않다.시인의행간과여백에서이것들은문법으로써의역할이주어지지않기때문이다.눈빛의머뭇거림은지금까지한번도예고된적이없었고,인연이끝났다고하여그상상의끈을매몰차게절연하지도못했다.쉼표와마침표는행간과여백의카오스위를떠다녔다.시인에게는분명‘문득’이라는시간의경계가모호했을것이며,마찬가지로쉼표와마침표의틈또한확연히드러나지않는일종의여백이다.시적으로건져올린말들도일상에서의다른말들과별다른차이가있지않았다.하지만그럼에도시인은하루하루를결연하게나아간다.쉽게버릴수없는것들도과감하게버리기위해숲속이라는어둡고이질적인행간으로몸을넣는다.비워짐과채워짐의경계가숲속의어둠으로희미해진다.그늘진마음깊숙이흘러내린“슬픔의수맥”(「여백을읽어주는숲」)은언젠가다시환희로피어나게될것이다.
시인에게슬픔이란‘한방울의눈물’처럼너무나희미하고작기에한눈에발견될수없는것이다.하지만응축된눈물의그한방울은존재의시간과사건으로써쉼표로도읽히고,마침표로도다가올수있다.비록작은점과같더라도,이것들의힘은서로의마음을꽉붙드는역할을한다.눈물로부터시작된‘슬픔의수맥’은또다른눈물을불러올것이고,마음과마음사이의쉼표와마침표는또다른문장을불러오면서조금씩숲처럼울창하게될것이다.“한행한연”(「여수를활짝펴서읽으면」)이합쳐져서“바다”가되고그것은당신을향한“긴편지”로전달되어결국우리모두가“시인”이자,“하나의물”을이룬다.누군가의눈물로부터시작된슬픔의수맥이물과숲의풍요를가져온다는시적인상상에는무한한힘이담겨져있다.그렇게명인숙시인은‘시인’으로서이세상의모든말들의물꼬를터서숲속의어둠과바다의깊이를무한하게펼쳐놓는다.
…(중략)…
명인숙에게시는곧누군가의얼굴을만나는상상의통로이며,존재적사건의장場이다.이것은가희‘종교’에버금간다.“눈물꽃”(「달의신앙」)이필때마다“아름다운신앙”은더욱더그교리를환하게비추게될것이다.그엄숙함과처연함앞에서시인은매일같이“하루를더듬는손끝”(「흰벽을깁는여자」)에서“날마다새로운표정을”건져올리고그때마다우리는서로의얼굴을보게될것이다.시를쓰는손에는머뭇거림이지배하고,시를읽어나가는얼굴에는늘똑같은표정이란없다.하루의무게를견디면서시를쓰는손은겸손하다.자신의시를언젠가읽게될누군가의표정이곧‘시인’인자기자신에게는하나의존재적몸짓이며신호처럼다가오게될것이다.그렇기에시인의손끝에는지금이순간도간절함이묻어날수밖에없다.현실의험악한격랑속에서서로를놓지않으려“꽉붙들고”(「오래도록지워지지않는물밑의말」)있겠다는간절한믿음은앞으로도결코지워지지않을것이다.이것이야말로당신과나사이에놓인유일한흔적이며,인간다움을보여주는강력한증거이기때문이다.-정재훈(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