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유미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느끼고 사유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순수함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어른이고 싶어요. 따스한 그림과 글로 감동을 주는 그림책을 좋아했기에, 첫 그림책 《감자와 두더지》의 이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분들도 감자와 두더지처럼 본인만의 아름다운 뿌리를 찾길 바랍니다.
그림 : 섬
사라지는 것과 잊혀져 가는 순간을 그립니다. 그래서 좀 더 천천히 세상을 바라보며, 그 시간들을 이미지로 담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쉽게 지나치는 장면에 시선이 많이 머물고, 특히 자연과 동물에 관심이 많습니다. 인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존재들과 함께 사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합니다. 《감자와 두더지》는 언니와 함께 만든 첫 그림책입니다.
한곳에 오래 살아서 변화가 두려운 두더지. 본의 아니게 집단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갈 곳을 못 찾은 감자. 어느 하나 접점을 찾기 힘든 두더지와 감자의 만남은 전혀 새로운 세계로 독자를 인도한다. 두더지는 감자를 먹지 않는다. 감자는 동물도 아니고 스스로 몸을 움직이기 쉽지 않다. 이 넓은 세상에서 어쩌다 두더지 한 마리와 동글동글해서 무리에서 뚝 떨어진 감자 하나가 어느 땅속에서 딱 만났다.
신인 작가 유미와 섬은 언니 동생 사이이다. 언니가 글을 쓰고 동생이 그림을 그렸다. 둘이 처음으로 만든 그림책이 『감자와 두더지』이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에게 관심이 많은 자매는 자연과 동물을 좋아하고, 휙 지나가면 보이지도 않을 작은 것들에게 시선을 준다. 수천수만 개의 감자 중 하나, 한 줌 정도밖에 안 되는 두더지에게 포커스를 맞춘 것도 이들의 시선이 낮고 깊은 곳에 가 닿아 있기 때문이다.
뿌리를 내리러 같이 갈래?
도시는 점점 커졌고 매연도 심해지고 숲도 많이 사라졌다. 그래서 지렁이 같은 먹이가 줄어들었지만 두더지는 자기 동네에서 떠날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배가 고픈 어느 날 두더지는 우연히 땅속에서 감자를 만났다. 자신의 발톱 때문에 상처가 난 감자에게 미안했던 두더지는 어쩌다 이 땅속에 혼자 있는지 물었다. 감자는 가족 집단에서 떨어져 나온 사연과 이 도시의 흙은 너무 척박하여 뿌리를 내릴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뿌리를 내린다는 말을 처음 들은 두더지는 감자에게 그 뜻을 물어보았다. “뿌리를 내린다는 건, 그곳이 좋아서 아주 오래오래 살게 된다는 뜻이야.” 사실 ‘뿌리를 내린다’는 건, 감자와 두더지에게 동일한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둘에게 마침 필요한 것이 뿌리를 내리는 것이기도 했다. 동네를 떠나 본 적이 없는 두더지에게 감자는 새로운 가능성의 씨앗을 던져 줬다.
감자와 두더지, 이종 간의 단단한 우정
비인간을 다루는 콘텐츠가 많아졌다. ‘비인간’은 2023년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이기도 했다. 비인간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건, 인간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선으로 낯설게 보자는 적극적인 의지 표현이다. 비인간이란 말 그대로 인간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다. 생물, 인공지능, 로봇, 자연물 등등. 나와 다른 이종과의 만남은 왜 필요한 걸까? 나와 너무 다른 존재를 통해 새로운 세계로의 문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두더지에게 감자가 그랬듯, 감자에게 두더지가 그랬듯. 『감자와 두더지』는 이종 간의 우정을 통해 새로운 화학작용(케미)을 보여 준다. 삐끄덕대다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기도 하고 뒤에서 밀어 주기도 하면서 둘은 뿌리를 내리러 가는 여정을 떠난다. 긴 여정 끝에 둘은 한 곳에 도착한다. 그동안 감자는 여기저기 상처와 흠집이 많이 생겼다. 상처와 흠집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듯 감자는 거기에서 싹을 틔우고 뿌리를 뻗는다. 두더지도 감자의 뿌리 내림을 보고 자기만의 안식처를 만든다. 그리고 감자에게 숲의 여러 이야기를 보고 와 들려준다. 감자가 꽃을 피우자 주위에 벌레와 나비, 거미 등이 많아졌다. 그 덕에 두더지의 먹이가 늘어났다. 감자와 두더지는 서로에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도움을 줬다. 이 세계에는 홀로 우뚝 서는 존재는 없다. 작은 미물에도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다. 감자와 두더지의 여정은 여러 독자들에게 새로운 세계로의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섬 작가는 만화가이다. 특히 그림을 잘 그린다는 평을 듣곤 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2026년 〈다양성만화 제작지원 사업〉의 지원금을 받아 연말에는 만화책도 나올 예정이다. 섬 작가에게 그림책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그림책의 기본이 되는 그림이 너무 아름답다. 감자와 두더지의 잔잔하고 아름다운 여정에 물 흐르듯 편안한 그림이 함께하여 이야기에 천천히 스며들게 해 준다.
감자와 두더지 (양장)- 온그림책 3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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