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신의 예언자)

무함마드 (신의 예언자)

$22.02
Description
탐욕, 오만, 불의에 맞선 정신의 혁명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종교의 창시자,
이슬람의 이상적 인간 무함마드의 매혹적인 초상!
대다수 종교에는 인간의 모습으로 그 신앙의 이상을 표현하는 상징적 인물이 있다. 기독교의 예수와 불교의 붓다가 그러하다. 신자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탄생과 죽음의 이야기를 안다. 붓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기독교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종교 집단, 약 19억 명이 믿는 종교인 이슬람을 대표하는 인물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예수와 붓다에 비해 역사적 자료가 많은데도 무함마드의 이야기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오늘날 서구 문화권에서 무함마드는 위대한 인물이기는커녕 ‘테러리스트’ ‘미치광이’라고 비난받기 일쑤고, 무함마드가 일으킨 ‘이슬람’은 본래 광신적이고 폭력적인 종교로 적대시된다. 그러나 과연 그런 인물이 1400여 년 동안 변함없는 존경과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을까? 이 책은 이슬람과 예언자 무함마드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무지와 뿌리 깊은 편견을 해소하려는 첫걸음이다.

세계적인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무함마드》에서 이슬람 초기 역사 기록, 이슬람 경전 ‘쿠란’, 여러 문헌 자료 들을 통해 서기 6세기부터 7세기까지 예언자 무함마드가 등장한 아라비아 반도의 사회적, 문화적 상황과 무함마드의 삶을 매우 설득력 있게 재구성한다.
610년경 신의 계시를 처음 받았을 때 무함마드는 마흔 살의 가장이자 아라비아의 부유한 상업 도시 메카에서 성공한 상인이었다. 이후 무함마드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약 23년 동안 비폭력과 관용의 정신으로 영적 공동체를 건설해 세계사의 흐름을 바꿀 종교의 토대를 닦았다. 무함마드는 폭력을 앞세운 사람이 아니었다. 개종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신학적 논쟁이나 형이상학에는 관심이 없었다. 대신에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을 바꾸려 노력했다. 무함마드의 삶은 탐욕과 불의와 오만에 맞선 ‘지하드’, 즉 끊임없는 내적 투쟁이었다.

저자는 신비주의자로서 무함마드뿐 아니라, 과감한 결단력과 뛰어난 판단력을 갖춘 정치가, 사회 정의를 위해 헌신하는 개혁가로서 무함마드를 더없이 생생하게 그려낸다. 열정적이고 복잡하며 실수를 저지르는 인간, 정치적 재능과 영적 재능을 두루 갖춘 카리스마적 지도자, 일신교적 비전을 통해 대중의 가장 깊은 불안과 갈망에 응답한 예언자 무함마드가 이제 우리 눈앞에 되살아난다.
저자

카렌 암스트롱

(Karen Armstrong)
영국의 종교학자. 1944년 잉글랜드 우스터셔에서 태어났다. 1962년 열일곱 살에 로마가톨릭 교회 수녀원에 들어갔다 7년 만에 환속했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런던대학에서 현대 문학을 강의했다. 종교학자로 삶의 방향을 바꾼 이후 《축의 시대》《신의 역사》《신의 전쟁》 같은 논쟁적 저작을 발표했고, 《마음의 진보》 같은 울림이 큰 성찰적 저작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최고의 작가가 되었다.
2008년에 종교 간 화해와 평화를 위해 활동해 온 공로를 인정받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자유 메달’을 수상했으며, 개개인의 동정심 회복을 위한 전 세계적인 비전을 제시하며 ‘테드(TED) 상’을 받았다. 2013년에는 문화 간 이해를 증진하는 데 공헌한 바를 인정받아 ‘나예프 알-로드한 세계문화이해 상’의 첫 번째 수상자가 되었다. 2015년에는 ‘대영제국훈장’을 받았고, 2017년에는 에스파냐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아스투리아스 공주 상’을 받았다. 암스트롱의 저작은 지금까지 전 세계 45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목차

들어가는 글
1장 메카 _ 신성한 도시
2장 자힐리야 _ 폭력과 공포의 시대
3장 히즈라 _ 추방당한 예언자
4장 지하드 _ 불의에 맞서는 투쟁
5장 살람 _ 평화와 화해의 이름 ‘이슬람’

■ 무함마드 가계도
■ 용어 설명
■ 주석

출판사 서평

“끔찍한 재난을 피하려면 서로 관용을 베푸는 것을 넘어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슬람에 대한 터무니없는 오해와 편견을 넘기 위한 첫걸음

오늘날 이슬람은 기독교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신자(약 19억 명)를 보유한 거대 종교이다. 한국에서도 무슬림(이슬람교도)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몇 년 전에 이미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까지 합치면 우리나라의 이슬람교도는 2018년 기준 약 26만 명”이고 그중 “한국인 무슬림만 6만 명”(한국이슬람교중앙회 추산)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이슬람은 여전히 터무니없는 오해와 편견에 포위되어 있다.
지난 7월 29일 영국 잉글랜드 북서부 사우스포트의 어린이 댄스 교실에 괴한이 침입해 흉기를 휘둘러 어린이 3명이 사망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의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건 직후 체포된 범인이 무슬림 이민자라는 가짜 정보가 온라인에 퍼지면서 영국 전역에서 극우 세력의 반이민, 반이슬람 시위와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 범인은 영국 웨일스 태생이었고 무슬림도 아니었다.
한국의 경우는 2018년 제주에 예멘 난민 5백여 명이 입국하면서 일어난 찬반 논쟁이나 2021년 대구 북구에서 이슬람 사원 건축을 두고 건축주 쪽과 반대 주민들 간에 벌어진 갈등에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이슬람 공포증(Islamophobia)’을 확인할 수 있다. 반대 주민들은 공사를 방해하고 “이슬람은 사람을 죽이는 악마 종교” 같은 혐오 문구를 쓴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대구 이슬람 사원을 둘러싼 갈등은 4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슬람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세계 곳곳에서 사회를 분열시키는 혐오 폭력의 불씨가 되고 있다. 이 문제를 과연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종교 간 상호 이해의 다리를 놓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온 비교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의 삶을 알고 이해하는 데서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무함마드는 신의 대변자로서 자신이 전한 신의 계시를 실천함으로써 스스로 이슬람의 이상이 되었다. 모든 무슬림은 평생에 걸쳐 예언자의 통찰과 실천을 본받아야 한다. 따라서 무함마드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아는 것이야말로 이슬람과 무슬림들을 이해하는 첫걸음이 된다.

무슬림들의 경전 쿠란은 그들에게 모든 구성원이 존중받는 정의롭고 훌륭한 사회를 만들라는 사명을 내렸다. …… 예언자 무함마드(570~632)의 삶은 처음부터 줄곧 이슬람의 이상을 펼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왔다. 무함마드가 걸어간 길은 불가해한 신의 활동을 이 세상에 드러냈고 모든 인간이 신을 향해 실천해야 하는 ‘완전한 내어줌’(‘이슬람’이 아랍어로 ‘내어주다’라는 뜻이다)을 보여주었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살아 있을 때부터, 무슬림들은 예언자의 삶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 의미를 자신의 삶에 적용하기 위해 힘써야 했다. (9~10쪽에서)

서구 문화에는 십자군 전쟁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가 오랜 ‘이슬람 공포증’이 있다. 12세기에 유럽의 기독교 수도사들은 이슬람이 칼을 앞세운 폭력적인 종교이며 무함마드는 상대 세계가 원하지 않는데도 무력을 앞세워 자신의 종교를 강요한 사기꾼이라고 주장했다. ……
우리는 더는 이런 편견을 방치할 여유가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주장을 이용해 서구 세계가 이슬람 세계에 맞서 새로운 십자군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는 극단주의자들에게 그런 편견은 선물이기 때문이다. 무함마드는 폭력을 앞세운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는 무함마드의 중요한 성취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그의 삶에 균형 잡힌 방식으로 접근해야만 한다. (14~15쪽에서)

“계시를 받을 때면 언제나 내 영혼이 나에게서 찢겨 나가는 듯했다”
폭력과 불안의 시대, 아라비아 반도에 나타난 예언자

카렌 암스트롱은 무함마드가 활동한 서기 6세기~7세기 아라비아의 사회적, 문화적 상황을 살피는 데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라비아 반도의 험한 지형과 기후 때문에 아랍인들은 대대로 유목 생활을 하며 가난하게 살았다. 그러다 6세기에 변화가 일어났다. 상업이 발달하면서 시장 경제가 흥성하고 물질적 진보가 이루어진 것이다. 무함마드가 살았던 도시 메카는 아라비아에서도 번성하는 상업 중심지였다. 하지만 부를 향한 냉혹하고 탐욕스러운 경쟁 속에서 공동체가 약자들을 보호하려고 노력하던 오랜 전통이 사라지고 불안이 널리 퍼졌다. 유목민 시절에 유익했던 다신교 신앙은 이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무함마드는 그렇게 오래된 가치들이 사라지는 폭력적인 사회에 살았다. 메카의 성공한 상인이었던 무함마드는 무모함, 오만, 이기주의가 사회를 파멸로 몰고 갈 수 있다고 우려했고 일찍이 새로운 영적 해결책의 필요성을 알아차린 사람이었다. 그리고 서기 610년경 신의 계시를 처음으로 받게 된다.

그 일을 체험한 후 무함마드는 극심한 고통 속에 바위투성이 비탈길을 내달려 아내에게 갔다. 후에 돌이켜 보니 그 일을 말로 설명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엄청난 힘을 지닌 존재가 자신이 잠들어 있는 동굴 속으로 들어와, 압도적인 힘으로 몸을 부둥켜안고는 숨 한 모금도 남김없이 모든 걸 쥐어 짜내려는 듯했다. …… 무함마드는 서기 610년 ‘라마단’ 달에 이 놀라운 체험을 했으며, 나중에 이 체험을 ‘라일라 알-카드르’(운명의 밤)라고 불렀다. 이를 계기로 해서 자신이 아라비아 최고신 알라의 말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22쪽에서)

자초지종을 들은 와라카는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외치며 크게 기뻐했다. “만약 내게 한 말이 진실이라면, 카디자, 전에 모세에게 왔던 위대한 신이 그에게 온 것이니, 보아라, 그는 그의 사람들의 예언자이다.” 그 후 와라카는 하람에서 무함마드를 만났을 때, 무함마드의 이마에 키스하며 그의 과업이 쉽지 않을 거라고 경고했다. …… 무함마드는 절망감을 느꼈다. 메카 밖에서의 삶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정말로 쿠라이시족에게 쫓겨날까요? 무함마드는 절망감 속에 물었다. 와라카는 무함마드에게, 예언자는 언제나 고향에서는 존경받지 못한다고 슬프게 말했다. (54쪽에서)

내면의 변화에서 시작되는 진정한 사회 개혁
불평등과 오만을 비판하고 자비와 겸손을 설파하다

처음에 무함마드는 소수의 친구와 가족에게 자신이 받은 계시를 알리면서 조용히 활동을 시작했다. 그들은 무함마드가 아랍이 오랫동안 기다려 온 신의 예언자임을 확신하고 열정적인 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런 이들은 소수였고 무함마드는 곧 메카 기득권층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무함마드가 받은 계시가 메카의 불평등과 사회 분열을 비난하고 완전히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함마드가 받은 계시는 메카에 잠재해 있던 단층선을 드러냈다. 수년 동안 젊은이와 노인, 부자와 가난한 이들, 남자와 여자 사이에 걱정스러운 분열이 생겨나고 있었다. 위험한 일이었다. 한 구절씩, 한 수라씩 무함마드에게 계시된 경전은 이러한 불평등을 비난했다. 한 파벌은 필연적으로 다른 파벌의 손에 고통받을 것이었다. 스스로 분열하는 사회는 세상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기에 파멸할 것이다. …… 무함마드는 만약 쿠라이시족이 태도와 행동을 개혁하지 않으면 그들 역시 세상을 집어삼키려 하는 무질서와 혼란의 먹잇감이 되리라고 확신했다. (64~65쪽에서)

당시 쿠라이시족은 약자를 멸시했다. 실패와 가난은 본질적으로 고귀함의 결여를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하며 가난한 사람, 고아, 과부에 대해 아무런 책임감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삶의 모든 순간에 자신이 알라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이해한다면, 자신도 약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며 경외심과 경이감으로 오만함을 누그러뜨릴 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생명체, 인간, 신 앞에서도 고개 숙이기를 거부하는 교만한 태도와 오만한 자립심을 내려놓을 것이다. (75쪽에서)

“쿠란을 듣고는 마음이 평온해졌고 나는 울었다.
그리고 이슬람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개종자 우마르)
‘이슬람’과 ‘쿠란’의 의미

무함마드의 종교는 ‘이슬람(islam)’이라 불리게 된다. 이슬람은 아랍어로 ‘내어주다’라는 뜻이며 이슬람을 믿는 사람(무슬림)은 곧 신에게 자신의 삶을 존재론적으로 내어놓은 사람이다. 이슬람의 중요한 의례인 ‘살라트’(기도)는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무함마드는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자신을 따르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태도를 길러줄 의례적 행동을 가르쳤다. 첫째는 함께 만나서 기도하는 것(살라트)이었다. 그들은 경건하게 엎드림으로써 자신의 진정한 상태를 매일 떠올릴 것이다. …… ‘살라트’의 신체적 반복 행위는 자신의 존재 전체를 알라에게 내어주는 것(이슬람)을 상징했다. 그것은 이성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그들의 몸을 가르쳤고, 거만하게 행세하고 싶은 자기 중심적인 충동을 내려놓도록 가르쳤다. (75~76쪽에서)

무함마드는 610년경부터 63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약 23년 동안 자신이 신에게서 직접 메시지를 받는다고 말했고 그 메시지가 모여서 ‘쿠란’이라고 불리는 텍스트가 되었다. ‘쿠란’이라는 단어는 ‘암송’을 뜻한다. 쿠란은 혼자 읽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전처럼 큰 소리로 낭송하게 되어 있었고, 소리도 중요한 의미의 일부였다. “개종한 이들은 처음에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낭송하고 나중에는 숙련된 쿠란 암송자들이 낭송하는 신성한 음성을 들었을 때 알라와 즉시 대면하고 있다고 느꼈다.”

무함마드의 개종자들은 새로운 계시가 내리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무함마드가 새로운 계시를 암송하면 그들은 그것을 암기했고, 글을 쓸 줄 아는 이들은 글로 적었다. 그들은 경전의 절묘한 언어에 감동과 흥분을 느꼈고, 그 정도로 훌륭한 말은 신에게서 올 수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아랍어를 모르는 사람은 쿠란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번역해서는 그 아름다움이 거의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67쪽에서)

쿠란은 의도적으로 반복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