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덜트서사의새로운프리즘,‘위아영’시리즈04
“처음과끝이모두있던어느봄을떠올린다.”
봄처럼상대적이고절대적인계절이있을까.파릇파릇싹이움트는생명의기운이샘솟는다지만,겉옷을더욱싸매야하는매서운꽃샘추위를얕볼수없다.따사로운햇살에한껏마음이나긋해지다가도,별안간멜랑콜리한기분에휩싸여사는게다별로라는생각도든다.온화하면서도날카롭고,따듯하면서도잔혹한‘봄’의세계는끝과시작이맞닿아있는생의꼭짓점인듯하다.그래서일까,봄은삶을포괄하는가장익숙한메타포로우리에게다가온다.시작하고,이별하고,사랑하고,싱그럽고,찬란하고,잔혹하고,새롭고,끝내잊힐,가슴시린……찰나에뒤바뀌면서도끝없이반복되는봄의시간들.
『봄,시작하는마음』은그찰나와영원속의기억을한조각씩꺼내모은앤솔러지에세이집이다.시리즈전작인겨울방학,여름방학,야자시간에이어이번책의테마는‘봄,시작하는마음’이다.서점MD,교사,문화기획자,감정사회학자,작가,커뮤니티운영자,기자로살아가는여덟명의작가가봄처럼다채로운시작의마음을털어놓는다.온라인서점MD로일하며글을쓰는이주호,『이장면,나만불편한가요?』등의청소년교양서와『그림의말들』등의에세이를두루쓰는작가이자교사태지원,다양한영역을넘나들며문화기획자로활동하는김해리,한국사회에서벌어지는감정갈등에대해기고하고강의를해오고있는감정사회학자이자『다소곤란함감정』의저자김신식,『어른이되면고민이끝날까?』『나만의콘텐츠만드는법』등의책을썼고일하는여성들의커뮤니티‘뉴그라운드’를운영하는황효진,『이건우리만의비밀이지?』『감히내가너를사랑하고있어』등의시와에세이를쓰면서제주에살고있는강지혜,기자로일하며다른일도많이하고있는채반석,인간의내적·외적공간에관심이많은소설가이승주.하는일도살아온환경도저마다다른여덟명의작가가꺼낸봄의조각들은‘과거의나’를통과해서로맞물리며이곳에한데모아진다.
누구에게는그리움과이별이었고,누구에게는반성과발견과새로움이었으며,누구에게는잊고싶은순간이었을그시간들을건너‘지금의나’를마주하는용기와다정의고백들이애틋하다.글을읽으며,독자여러분도봄이건네는자기만의메타포를발견할수있기를.잊었거나잃어버렸던씨앗하나씩을찾아낼수있기를.다가오는새봄을마주할수있기를.
출발선에다시선용기와다정의순간들
“내손으로짓고허물수있는세계를처음으로발견한,그런봄이었다.”
첫번째에세이「봄은발끝으로부터」의이주호작가는‘새봄에는어떤책이나올지궁금해하며’지내는온라인서점MD다.주위를아무리둘러봐도책뿐인일을하고있는그가이렇게글가까이머물며사는건운명이었을까?만약운명이맞는다면,좌절의시간이뒤따른운명에가까울테다.글쓰고책읽는삶을오래도록갈망했지만그‘시작’을선뜻실천하지못하고학창시절을보냈던까닭이다.지망하던학교와학과에못갈바엔차라리취직과진로가유망한경영학과에가기로결정했고,얼른입시에마침표를찍고싶기도했던그였다.
하지만“언제나부끄러움이”따르는일상이었다고이주호작가는고백한다.그런그를묵묵히지켜보고다독여주었던‘늙은선생님’은이미알고있었던걸까?행로가틀어진채어딘지헤매는마음이었던그가선생님을떠나보내고비로소‘시작의마음’을품으리라는것을.찬공기가서린3월의입학식에처음만나다시보지못할작별을마주하기까지,선생님이내어준조건없는신뢰와애정이차곡히스며든이야기.어쩌면,작가가선생님께보내는헌사이자늦지않은봄의안부이기도.
두번째에세이「그해,봄의톤」의태지원작가는학교는조금따분하고유치한곳이라생각해왔지만열일곱의봄은달랐다.여자중학교를졸업하고남녀공학고등학교에입학했기때문이다!순정만화를즐겨보던그는호기심과환상을잔뜩품었지만입학후며칠지나지않아금세‘현타’를느끼고만다.하지만그와상관없이3월의학교는설렘과흥분의기운이감돈다.들썩이는분위기는‘동아리신입생모집’덕분.밴드부,풍물부,RCY와같은선배들이자신의부서를홍보하려쉬는시간마다1학년교실에찾아오는광경을조용히지켜보며“동아리활동하나한다고보람차고즐거운학교생활이정말가능한걸까?”의아함을품던그는홀로만화그리기를즐기며시간을보낸다.
그러던3월의어느날,‘만화동아리’라고소개하는한무리의선배들이교실에찾아온다.‘만화부’라는이름에솔깃하면서도불안한마음,아니솔직히두렵기도하지만그는만화동아리면접을보고합격한다.그후이어지는나날은태지원작가가마주하는‘새로운세계’의도입인셈이다.싱그러운톤으로펼쳐지는그해봄의이야기.
세번째에세이「나는그냥나이기로했다」의김해리작가는“넌꿈이뭐니?”라는질문을되물으며이야기를시작한다.왜어른들은자꾸“커서뭐가될래?”를물었던걸까,어린이가그걸어떻게안다고!“반쯤은농담삼아묻는것같지만,자꾸질문받다보면뭔가가되어야할것같은생각이”들었던그는계속해서뭔가가‘되기를’꿈꾸었다.하지만무엇이든말해도괜찮았던날들이흘러가니점점꿈을말하기가쉽지않았고,꿈자체가재능있는친구들을위한사치처럼느껴져서단어가싫어졌다.
작가는‘나다움’을하나씩누르고‘남들처럼’살아가는게맞는다고도생각했지만조금씩자신의마음을따라가며다시꿈꾸기시작한다.그리고그기억의한편엔‘동생’이있다.그는여섯살차이나는동생의관심을위해각종놀잇거리를직접구상하고만들며‘나자신’을마주하게된다.새로운것을상상하고그것을현실로구현해함께나누는일을좋아하는‘나’를.
네번째에세이「데뷔만세번째」의기억은무력감이마음속을지배하던고등학교시절에서비롯된다.김신식작가는고교시절동안“1학년1학기콤플렉스라부르는괴로움”에시달렸다.낯섦과두려움,허탈을동반하는‘처음’의증상을유독앓았던시기였던것.대략아이돌생활에비유하면A라는이름으로데뷔했다가다음해다시데뷔하는일이다.즉,고등학교2학년은A로보내는아이돌2년차가아니라,B라는이름으로재시작하는1년차.그러므로작가는“내고교시절은해마다데뷔해데뷔만세번째”인것같았다고김신식작가는말한다.
그런그가‘마야와키사쿠라’(르세라핌멤버)를주목하게된것은우연이아닐지도모른다.한토크쇼에서‘데뷔’에관해심층적인대화를나누다가“미야와키사쿠라라는게힘들었어요.”라는사쿠라의솔직한심경을듣게되면서,작가는자신이겪었던‘1학년1학기콤플렉스’의근원을되돌아본다.현상과감정을꼼꼼하게톺아보며명료한이치를발견해가는작가의‘또다른데뷔’를환영합니다!
다섯번째에세이「스무살,일을시작하다」의황효진작가는커뮤니티운영자,팟캐스트진행자,작가등그야말로동시에여러일을하며‘요즘트렌드에맞게’살아가는모습이다.하지만그런그역시도“일을조금도하지않고살수있다면그러고싶다”는마음의소리를간직하고있다.가능하다면일을적게하는삶을누가마다하겠는가!그렇다고“일하는걸싫어하냐고누군가묻는다면”막상그렇지는않다.일하는데있어성취감과우정,연대의과정을누구보다좋아하기때문.그가이렇게“일의이런부분은좋아하고저런부분은좋아하지않는다”고선명하게바라보기까지는적지않은시간이걸렸다.
황효진작가는처음일을시작했던‘스무살’의기억으로우리를이끈다.과외,스파게티집서빙,카페알바등밤낮쉬지않고일하는동안친구들도각자의첫번째일자리에서고군분투중이었다.누가무슨일을하는지,어디서일하는지에관계없이일은공평하게고통스러웠지만그과정을통해궁극적‘일의즐거움’또한하나둘배워간시절.“내가일해서직접돈번다.”는문장에담긴일터의생생한현장감을맛볼수있다.
여섯번째에세이「2000년,서넛의지혜들」의강지혜작가는자신의이름인‘지혜’를좋아하지않았다고고백한다.대체1980년대에무슨일이있었기에‘지혜’라는이름이그리많았던건지작가는궁금하다.그가가장많은지혜와보낸시간은중학교1학년.지극히평범한‘중닭지혜’중한명이었던그였지만,열네살가슴속에는날마다폭풍이몰아치고전쟁이벌어지고있었다.“집에는부모가없고돌봐야할동생과가사노동이있었다.학교도그다지재미있진않았지만집보다는낫기때문”에그나마학교를꾸역꾸역다녔을뿐.
자신에게부여된‘착하고’‘어른스럽고’‘듬직한딸’이라는역할에충실하고자열네살의지혜는스물네살인척,마흔네살인척지냈다.그러기에열네살의기억들을잊고만싶었고다행히망각의선물로많은것이홀연히바래져버리기도했다.이후시간이흘러강지혜작가는“실패를기록하는사람이되었다.”고말한다.이실패에대한끄적임이누군가에게는지도가되리라는마음으로,삶의첫페이지에존재한열네살지혜를아낌없이안아주는마음으로써내려간이야기.
일곱번째에세이「포식자의봄」의채반석작가는봄의낭만에과감히반기를든다.익숙함이편한사람들에게봄처럼잔인한계절이있을까묻는다.추위가여전한3월이지만,“봄은아직움츠리는사람들이여며잡고있는익숙함이란겉옷을강제로벗겨”낸다.낯선등굣길,다른층의다른반으로이동,친구와짝꿍이바뀌는일이한꺼번에이루어진다.빳빳한교과서,차가운교실,새담임과어색한친구들.“그렇게싫어하며보낸몇번의봄들사이에서도”작가의최악은중학교로진학한중1시기다.
초등학생때까지만해도키정도만차이날뿐그저다같은어린이들이었는데,중학교에서는“도저히하나의정체성으로묶을수없는”학생들이우글우글하다.학기초가지나면학급과학교내싸움서열이잡혀간다.이과정에서일진과양아치들이촘촘하게형성되고,이들의앞뒤없는폭력과무차별한폭행에대다수평범한학생들이고통을겪는일이생겨난다.‘끝내목도하고,겪어내야했던’폭력의굴레였던사춘기의봄.결코‘과거’라말할수없을이기억의복원은지금의현실에도시사하는바가적지않다.
여덟번째에세이「무슨일이있겠지」는천천히글의호흡을따라읽게되는이야기다.사람과사람사이의공간,장소로서의공간,기억을공유한장소에마음이간다는이승주작가는초등학교6학년,열세살로돌아가읽는이에게기억을나누자고의자하나를내어주는듯하다.막상한장한장페이지를펼치다보면정작이야기속의그는앉아있기보다서있거나어딘가로걸어가곤한다.큰오빠방에서서조용필LP를들여다보거나,하룻밤도못넘기고집에들어갔지만말없이혼자집을나온날.“한번도가보지않은길,모르는사람들,낯선공기,이곳저곳에서흘러나오는현란한불빛들”을실감하며거리를걸었던기억.담임선생님이읽어준『폭풍의언덕』을학교와집근처헌책방에선찾을수없어걷고또걷다가괴한을만났던아찔했던날도.
열세살의그가보고느끼고걸었던시공간이아련하게펼쳐지는가운데또렷한음성이들려온다.일기를하루도거르지않고잘써서,너무착하고예뻐서만나고싶었다는교장선생님앞에‘앉은’그의대답은“나가고싶어요.”.이후그는아무에게도일기를보여주지않는다.두권의일기장을쓰며이야기를‘짓기’시작한다.뭐든직접손을대보며나자신의세계로걸어나간연둣빛의회고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