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레리뇽 고원 (선함의 뿌리를 찾아서)

비바레리뇽 고원 (선함의 뿌리를 찾아서)

$25.41
Description
무엇이 목숨을 걸고 타인을 지키는 선함을 가능케 하는가?
폭력과 전쟁의 와중에 평화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1939년에서 1945년까지, 프랑스 중남부 비바레리뇽 고원 주민들은 나치 점령으로 인해 쫓겨온 수많은 난민을 수용했다. 덕분에 많은 마을 사람들이 나치에게 끌려갔고 목숨을 잃었다. 그 어떻게 한 공동체 전체가 합심하여 커다란 위협을 무릅쓰고 이러한 일을 행할 수 있을까? 인류학자인 저자는 그곳으로 떠나 ‘평화’를 연구하기로 한다.
비바레리뇽 고원의 과거를 더듬고 현재를 지켜보는 과정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난민 어린이를 위한 보호소 ‘레 그리용’을 관리하던 다니엘 트로크메라는 인물이 저자에게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저자는 오늘날에도 고원에 도착한 망명 신청자들을 만남과 동시에 다니엘의 행적을 추적해나간다. 다니엘은 레 그리용의 아이들을 열렬히 사랑했고,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게 된 최후까지 아이들에게 신의와 사랑을 보여주고자 애썼다.
이 책은 선함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인류학 연구서이자, 홀로코스트에 관한 역사서이자, 다니엘 트로크메에 관한 회고록이자, 저자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이다. 폭력적인 역사와 기억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이 책은 그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 흔들림을 온전히 담아냈다. 이 섬세한 책을 통해, 독자들 역시 자신의 내면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타인의 존재가 얼마나 놀라운 가능성이 될 수 있는지 깨닫기를 바란다.
저자

매기팩슨

(MaggiePaxson)
인류학자이자작가.전쟁과혁명에서살아남은러시아마을을현장조사한『솔로비요보:러시아마을의기억(Solovyovo:TheStoryofMemoryinaRussianVillage)』을썼고,「워싱턴포스트」,「이온Aeon」등에칼럼을기고한다.러시아어와프랑스어에능통하며러시아북부,캅카스,프랑스북부의시골등에서연구했다.

목차


1장대답없는
2장경외일
3장대탈출
4장로프맨앞에서
5장작은귀뚜라미들
6장손과발
7장사냥
8장봄의찬가
9장라뷔를
10장다른곳으로
11장아이들을오게하라
12장체렘샤의노래
13장거미가따라왔다
14장마샬라
15장나무의열매

감사의말
출처에관하여

출판사 서평

목숨을걸고타인을지킨평화의공동체,
비바레리뇽고원을찾아가다

러시아와우크라이나,이스라엘과팔레스타인에서매일같이참혹한소식들이들려오고있다.멀리있는우리는전쟁의실상에몸을움츠릴뿐이다.이런세상에서인간의선함이라는가치는연약하고보잘것없어보이고,그것을제일가치로두고살아가기란거의불가능해보인다.

러시아의작은산골마을에서인류학자로서머물던저자역시이러한어려움을겪고있었다.‘집단기억’을연구하던저자는각종폭력을겪은사람들의끔찍한기억을파헤치다가,결국자신이“툭부러졌다”고느낀다.러시아·체첸전쟁으로외국인연구자에대한탄압이심해지면서결국러시아를떠나게된저자는이제‘평화’를연구해보기로한다.구체적인사례를찾던그의앞에나타난보물같은곳이바로프랑스중남부의작은고원비바레리뇽이다.

1939년에서1945년까지,비바레리뇽주민들은제2차세계대전의나치점령으로인해쫓겨온수많은난민을수용했다.구조활동에참여한이들은농부,상인,성직자,교사,정치인등평범한사람들이었다.그들이행한일은가벼운친절이아니었다.그들은목숨을걸었으며,실제로일부주민은처벌받거나목숨을잃었다.비바레리뇽고원은지금도망명신청자들을보호하며거처를제공하고있다.어떻게한공동체전체가합심하여위험을무릅쓰고이러한일을행할수있을까?저자는그곳으로떠나인류학자로서평화를연구하기로한다.

이책은저자가고원주민들과그곳에서지내는망명신청자들을만나대화하고함께시간을보내며남긴기록이다.이방인을보호해주는고원주민들의모습을통해,저자는선한바탕위에서이방인을존중하고받아들일길을우리에게보여준다.조건없이타인을환대하고보호한고원이품은이야기를들어보자.폭력과혐오에관한이야기가공기중을가득채운것처럼보이는상황에서도타인을수용하고사랑하는법을비로소배우게될것이다.

생을구원하고이끄는사랑의힘
다니엘트로크메와‘작은귀뚜라미들’

비바레리뇽고원의과거를더듬고현재를지켜보는과정에서,다니엘트로크메라는인물이저자에게중요한길잡이가된다.다니엘은비바레리뇽고원에서난민어린이와청소년을위한보호소레그리용과메종드로슈의관리자를맡았던이로,저자의의붓증조할머니의남동생이기도하다.

뿌리가탄탄한귀족가문인트로크메가에서태어난다니엘은꿈많은청년이었고,여러선택지중원하는미래를선택할수있는프랑스귀족출신이었다.그러나전쟁의분위기가고조되던1930년대,그는안락한국가와계급,직업에서벗어나떠돌기시작했다.다양한인종의친구들과교류하고,어떤사상을좇아살지열정적으로고민했으며,서구문명을비롯한기독교가유일한진리가아니라고믿게되었다.

여러방황을거쳐결국그가다다른곳은비바레리뇽고원이었다.난민어린이들을교육하고수용하는‘레그리용’(귀뚜라미들이라는뜻)의관리자를맡기로한것이다.다니엘은보온용물주머니를어디서구할지,따뜻한수프를어떻게산자락까지옮길지등귀한신분으로서상상하기어려웠던일까지맡게되지만기쁘게받아들인다.다니엘은아이들하나하나와깊은사랑에빠지고,아이들의얼굴은다니엘에게특별한의미가된다.

학생들을보호하다가결국끌려간수용소에서도다니엘은레그리용에있는‘귀뚜라미들’을사무치게그리워하고,보호하려하고,가능한모든방법을동원해사랑을전한다.다니엘에게이아이들은어린왕자에게자기행성의장미와도같은존재였다.꽃한송이를사랑하게되면수백만개의별에서그꽃한송이만피어나도그별들을바라보며행복해진다.수용소에서어려운나날을겪던다니엘에게도아이들의얼굴만이하늘을환하게비추었을것이다.

저자는앙투안드생텍쥐페리역시프랑스난민이었다는사실,생텍쥐페리가홀로코스트로고초를겪고있던유대인친구레옹베르트를위로하려고『어린왕자』를썼다는사실을짚으며역사적,문화적맥락을풍부하게더한다.어린왕자가비행기조종사인‘나’에게양을그려달라고하고위로를구한것처럼,다니엘의‘귀뚜라미들’도다니엘에게수학을가르쳐달라며,책을읽어달라며그에게도움과위로를구했다.그러나다니엘이야말로그아이들에게형언할수없는위로를받았으며,이어지는그의삶은아이들에대한신의와사랑을지키기위한여정이었다.

어린왕자는말했다.“꽃한송이를사랑하게된다면,수백만개의별에서그꽃한송이만피어나도그별들을바라보며행복해질거야.그사람은이렇게생각할거야.‘저기어딘가에나의꽃이있어….’하지만양이그꽃을먹어버린다면그순간별들이전부빛을잃을거야….”
아름다움이우리를구원하는이유는,그것이우리에게일종의미학적휴식이나기쁨을줘서도,우리를고통에서구해줘서도아니다.아름다움이우리를구원하는이유는,밤에고개를들었을때한별에사는그아름다움이밤하늘의모든별을환하게밝히기때문이다.한얼굴의아름다움이모든얼굴을환하게밝히기때문이다.
─12장<체렘샤의노래>중에서

다니엘의이야기는고원에서시간을보내는저자의이야기와병렬적으로배치된다.이야기의시작부터다니엘이수용소에서죽게된다는사실이예견되지만,그럼에도다니엘의마지막행적은가슴을저미며깊은슬픔을남긴다.그것은다니엘이유대인이아니었기때문도,귀한가문출신이었기때문도아니다.우리가결국다니엘이라는아름다운얼굴을사랑하게되었기때문이다.귀뚜라미들에대한사랑이다니엘을이끌었듯이,우리도결국사랑으로행동하게되리라고저자는강조한다.

인류학자라는모자를내려놓고
구도자로서겸허하게나아가다

고원에도착한저자는주민들에게그들의부모나조부모가행한선한일을듣고자하지만그들은‘자신이한일이아니다’라며그저침묵한다.벽을맞닥뜨려난감하던차에,저자는고원에‘망명신청자환영센터(CADA)’가있다는것을알게된다.저자는과거부터이어지는고원의구조활동을조사하려고이센터의거주민들과인연을맺기시작한다.그들은취약하고불안한상황에놓여있고끔찍한폭력의기억에시달리지만,자신들만의기쁨을간직한채일상을살아간다.아이를잃은부모는푸드뱅크에서받아온음식으로맛있는음식을만들어내저자에게대접하고,서류없이불안정하게지내는상황에서도어린이들은열심히자라난다.프랑스에와서이루말로할수없는끔찍한일을겪은체첸인여성은좁고불편한공간에서도깔개하나를펼쳐자신의신께기도를올린다.저자는이러한작은움직임들이야말로그들을더욱빛나게한다고느낀다.

사실저자는유대인이자바하이교인으로,노련한사회과학자로서의경력을쌓고있지만신과영혼을믿는사람이다.모든종교가동등하다는전제를바탕으로‘성스러운것’까지사회과학의영역으로가져온에밀뒤르켐의혁명이후,저자가경험한바사회과학계에서연구자가신을믿는다는것은유별난일로받아들여진다.그래서저자는신앙을드러내면서도교묘히숨겼다.고원에와서도저자는인류학자로서의태도를유지하고자스스로를다잡는다.

그런데망명신청자들을바라보며저자는인류학자,사회과학자로서의태도를조금씩내려놓는다.저자는여전히과학을신뢰하지만,과학의어떤부분이믿기어려운이타심이나희생,고통을견디는힘을납작하게누른다는사실을절감한다.또과학으로는진정으로성스러운것을절대로논할수없음을깨닫는다.이제고원에서의시간은탐구하고파고들어야할것이아니라그저느끼며함께하는시간이된다.
결국저자가이연구를어떻게끝냈는지,어떤태도를가지고살아가기로하는지등은책의말미에언급되지않는다.그저저자는고원과의인연을소중히붙잡은채주민들과함께새로이들어오는난민들을돕는다.어쩌면우리가할수있는최선의선택역시사려깊은시선으로세상을바라보고현재위치에서할일을하는것이아닌지,책은조심스럽게이야기한다.

고원에서사람들을만나며저자의마음이사정없이흔들리고역동적으로변화한결과,이책은선함은어떻게가능한가에대한인류학연구서이자,홀로코스트에관한역사서이자,다니엘트로크메에관한회고록이자,저자자신의내밀한이야기를담은에세이가되었다.폭력적인역사와기억앞에서인간은한없이흔들릴수밖에없는존재다.이책은이를겸허히받아들이고그흔들림을온전히담아냈다.이섬세한책을통해,우리들역시자신의내면깊은곳을들여다보고타인의존재가얼마나놀라운가능성이될수있는지생각해보는계기가되기를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