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의입장에선다는것에관하여,
용감한도덕철학자가건네는날선성찰
경계가흐릿하다.우리는소위‘깨어있으면(staywoke)’좌파라생각하고,좌파라면‘깨어있다’고생각한다.정말그러할까?이시대가장중요한목소리중하나인도덕철학자수전니먼은그렇지않다고힘주어말한다.오히려“아주중대하고위험한실수”라는것이다.오늘날의자칭좌파,요컨대“워크(woke)”라는낯선수식어를단이들과본래의좌파는“아주다르기”에한데묶여서는안된다고역설한다.좌파진영과언뜻서있는입지가겹쳐있을뿐,애초그들을형성하고실천으로이끄는지적뿌리와자원이서로충돌하고있다는데주목한다.
여기,분노와절망을넘어깊은연대로의회복을꾀하는책이출간되었다.“왼쪽에선다”는것의의미를망각한시대에건네는강렬하고도도발적인비평과성찰을담은《워크는좌파가아니다》이다.기실많은것들이오른쪽으로기우뚱기울고있다.우리사회가그러하고,지구전체가그러하다.이때야말로좌파의역할이중요하다고책속문장들은강조한다.요몇년미국사회는“워크논쟁”으로뜨겁다.‘정치적으로올바른일’은분명중요하다.그러나정치적으로올바른일에만매달리느라,다른위험에처하는일은또다른문제다.이과정에서좌파가가졌던사상과정신의회복이절실하다고책은말한다.한국사회라고해서다르지않다.무언가잘못되고있다는것은피부로감지했지만,어디가어떻게그러하냐는대목에서는속시원한모색이어려웠던독자들에게참으로시기적절하게도착한저작물이다.대단히지성적인동시에열정과희망이흘러넘치는이시대가장날카롭게빛나는선언문이뜨끔아프면서도갈증이해소되는맹렬한읽기의체험으로독자를이끈다.
보편주의,진보,정의의가능성을부정하는
워크는좌파가아니다
미국조지아주에서태어나고자란후일생대부분을독일에서보냈으며포츠담에있는아인슈타인포럼의이사로재직중인니먼은오랜시간도덕철학,계몽주의,형이상학,정치에관한글을쓰며철학이현실세계에적용될때어떻게삶을변화시킬수있는지연구해왔다.그는이책역시“철학서”라고몇차례에걸쳐강조한다.워크를분석하거나사례를나열해비판하는책은시중에많이나와있으며,이작업이갖는중요성에는그도십분동의한다.하지만《워크는좌파가아니다》는생각과사상의문제에천착한다.저자의관심사는‘하나의이상으로서의좌파’로,좌파가오늘날까지자주내걸어왔으며또여전히열망하는철학적이상에관한명확한개요를제시하는것이다(34쪽).
니먼은초판출간직후홍보차유럽을순회하던중호주언론〈퀼레트(Quillette)〉와가진인터뷰에서이번집필이“아주시급하면서도꼭필요한작업”이었다고밝힌다.그간좌파진영의많은이들은워크의부상을두고,우파진영의공격또는음모론의산물이라고만여겨왔다.그러나니먼은좌파의시각에서워크의과도한행태를명확히문제삼아야한다고주장한다.애초좌파와워크가한데묶이며사람들에게혼란을낳는이유중하나는워크또한전통적으로좌파의것으로여긴감정들,요컨대주변으로밀려난이들과의공감,억압받는이들의어려운처지에대한분노,역사적으로저질러진잘못은바로잡아야한다는굳은결의등에서태어났다는데있다.그러나워크의실천과담론의밑바탕에자리한“이론”이모든좌파적입장에서핵심이되는철학적사상과충돌한다는데중대한문제가있다.부족주의가아닌보편주의의지향,정의와권력의확고한구별,진보의가능성에관한강력한믿음이그것이다.눈깜짝할사이진보좌파의주류담론자리를차지해버렸고,이제국경을넘어전세계담론지형에서확산되고있는워크가이렇듯좌파의기본가치이자최종목표를해체해버리고있다는것이저자의주장이다.오늘날워크는보편주의의가능성,정의,진보에대한신념을잃은채끝없는분열과경쟁의먹이가되고있다.니먼은책에서많은지면을할애해워크의사유방식을떠받치고있는이론을파헤치며,워크식탈식민주의가좌파혹은리버럴이견지해온모든원칙을뿌리째뽑아내버렸음을똑똑히직시하도록이끈다.
미셸푸코는어쩌다
워크좌파의대부가되었는가
책이출발점으로삼는것은계몽주의로,워크에따르면이는유럽중심주의와식민주의와인종주의와동의어이다.니먼은이를두고“전혀사실무근”인데다가,계몽주의사상가들은오히려유럽중심주의를비판했다고역설한다.보편주의적사상에기초하여식민주의에공격을감행한최초의사람들이라는것이다(75쪽).그러나미국대학들에서시작된“계몽주의때리기”로인해,계몽주의는속절없이세상모든원흉으로지목되기에이르렀다.워크는18세기계몽주의의유산으로내려온인식론적틀과정치적전제를거부하는데,저자의지적에따르면이들은계몽주의사상을형성한역사적배경에대해서도또사상가들의저작에대해서도무지하다.모든진보적지식인이그러하듯계몽주의사상가들도모든전투에서승리를거두지는못했지만,저자는매서우면서도섬세한눈과손으로장막에가려져있던계몽주의의지적유산을펼쳐보인다.루소,디드로,칸트와같은계몽주의사상가들은인종주의에반대하는모든투쟁이기초로삼았던보편주의의이론적기초를닦았다(97쪽).또한이들은진보의가능성을착실하게믿었고,진보를향해나아가는작업을결코멈추지않았다(198쪽).니먼은계몽주의철학자들에대해표준처럼자리잡은독해방식이얼마나엉터리인지폭로하는데공을들여왔는데,이는그들이오늘날지배적철학보다훨씬더강력한진보,정의,연대의개념을제공하는까닭이다.
한편워크가계몽주의사상을그릇되게해석하는데에는20세기사상의두거장푸코와슈미트의공이크다고저자는혹독하게지적한다.책은실로다양한저작물을함께살피며,이들의학문적여정을검토한다.이들이미친악의적인영향력을집요하게추적한다.이들의사상은근대세계에서의권력을이해하는데에는도움이되었을지모르지만,정의와권력사이의관계에관한새로운관점을제시하지는않았다.오히려진보에대한개념을축소하고훼손했다.푸코의서술을따라가다보면진보를이루려는많은노력,세상을개선하기위한그모든노력이종국에는더나쁜결과를가져올뿐이라는결론을피하기어렵다.학교든,집이든,감옥이든,다른기관이든우리가진보라고생각하는것은실제로훨씬더미묘한형태의지배와통제라는주장을들으면,억압메커니즘에맞서싸우고자무엇을하건우리또한그일부에지나지않는다는느낌을지울수가없다.진보에대한희망은꺾이고,결국허상이라는확신에사로잡히게된다.나치의법이론가였던슈미트는또어떠한가?그는인간이라는보편주의적개념은유대인이비유대인사회에서권력을얻으려는특정이익을은폐하려는의도에서발명해낸것이라말한바있다.이는계몽주의가내세우는보편주의라는것이점점비백인화되고있는세계에서권력을놓지않으려는유럽의특정이익을은폐하고있다는오늘날의주장과위험할정도로가깝다.워크안에슈미트의정신은그대로살아있다는것이니먼의주장이다.
포기하지않고,안주하지않고,
함께더많은희망을열망하기위하여
애초워크의기원은1930년대로거슬러올라가는데,블루스가수레드벨리(Leadbelly)가1938년발표한노래〈스코츠보로소년들(ScottsboroBoys)〉에서“깨어있으라(staywoke)”라는구절로처음등장했다.억울하게강간죄를뒤집어쓰고사형선고를받았다가오랜국제적항의로누명을벗게된아홉명의흑인소년에게헌정된노래였다.이후워크는불의에맞서깨어있고차별의여러증후를언제나감시하자는의미로쓰여왔지만,2016년미국대통령선거이후전성기를맞으며활활불타올랐다.오바마집권기에성년을맞은젊은이들에게오바마가족은‘당연한규범’이었다.그런데바로그자리에들어선트럼프가족은이들에게서그규범과그것이이끌던모든가능성과기대를빼앗았다.이렇듯낙담한젊은이들이대학캠퍼스에서워크운동을일으켰고,시대에뒤처질것을두려워하는출판사와대학교수와대기업이허둥지둥이운동에올라탔다.
워크는그시작점은주변화된개인에대한관심과염려였지만,이제는여러정체성가운데에서도가장심하게주변화된부분에만초점을둔다.그결과모두가“트라우마의숲”에빠져피해자의자리를선점하고자한다.워크는부당한피해와상처를바로잡아회복하려했지만,권력의불평등에초점을맞추다보니정의의개념은옆으로아예밀어젖혔다.워크는스스로저지른범죄의역사를제대로보라고요구하지만,그과정에서모든역사는범죄의역사라고결론을지어버리고말았다.니먼은워크가“우스꽝스러운동시에공포스러운것”이라역설하고,우파적일수밖에없는일련의이데올로기에식민화당한상태인워크운동과는다른방향으로나아가야한다고강력히촉구한다.그러나그의주장은여기에서끝이아니다.파시즘의모태라고할만한세력들이전지구적으로발호하여도처에서정치적권리를위협하고있는지금,이들에맞서동맹체를이루는것이절대적으로필요하다.여러정치적권리를보존하고자하는이들이라면그정치적입장의이름이무엇이되었건모두힘을합쳐야하는때라는것이다(248쪽).따라서진지한민주주의자라면누구나찬성하고뭉칠수있는철학적아이디어를제시하고자하는게이책의궁극적인목표이며,지면에서내내부르짖은진보,정의,보편주의의가능성에대한신념이바로그것이다.
총5장으로구성된책은빼앗긴‘좌파’라는단어를되찾아오기위한여정을담고있다.재차강조하건대《워크는좌파가아니다》는철학서이다.우리사회가맞닥뜨린이모든혼동과뒤엉킴은철학을통해풀어낼수있고,그과정에서우리의정치적실천도강화할수있다는희망에서이책은태어났다.철학의쓸모는아주여러가지가있지만,그중하나는우리가가장소중히여기는생각이어떤전제를깔고있는지발견하고다른가능성에대한감각을더크게확장하는데있다.책은독자들을바로그발견과확장의순간으로이끈다.지구전역에걸쳐분노의함성이높아지고있다.우리선땅도마찬가지이다.그러나니먼은절망으로손을놓아버려서는안된다고말한다.우리보통사람들은더많은희망을열망할의무가있다고목소리높인다.이시대가장신중하고원칙적인좌파사상가가좌파의미래에있어가장중요한책을들고링위에올라섰다.간결하면서도논쟁적이고정열적이면서도냉철하게빛난다.워크는좌파가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