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망해도이상하지않은나라에서
이제껏없던새로운논의를펼치다
쉬지않고울려댔다.‘망국’이란이름의요란한꽹과리이야기이다.한국사회는이래서망하고,저래서망하고,그래서종내망할것이라는주장이사방에서왁왁쏟아져나왔다.숱한망국론의터널을지나쳐오는동안언제망해도이상하지않은나라에살고있다는심상이우리안에자리잡았다.질타와훈계는세트로따라왔고날이갈수록강도가높아졌다.이시대를살아가는사람들대다수는내나라의망국에무언가특별히기여했다는혐의가없는데도‘결혼하지않는다’고,‘아이를낳지않는다’고,‘개인의미래와나라의미래를포개지않는다’고공범신세가되었다.그러니무력하다.
여기,‘곧망할나라’에서그나라를분석한다는것의의미를진득히해득하는책이출간되었다.망국론을습관적으로읊조리기에앞서,‘한국이란무엇인가’란질문부터해명해야한다고주장하며실제로그과업을완수해낸《상식의독재》이다.20대에는한국사회의청년세대문제,미디어문제,현실정치에관한글을써왔고30대엔여론조사기관과선거컨설턴트업체에서일하며홀로또함께우리사회의좌표를찾는일에매진해온논객한윤형이갓벼린칼날같은단독저서로7년만에돌아왔다.여전히꽹과리소리만울릴뿐아무도문제에대처하지않아진정한망국이실현될판인지금,그간아무도보지않고보려하지도않았던한국의특수성을파헤친작업물을들고독자앞에섰다.그리고‘대충만들어져서분석할거리도없는나라’라는기존인식체계에정면으로대항한다.한국만의고유한성질은존재하는까닭이다.
두터운탐구여정을앞에두고,저자는‘상식의독재’라는개념을제안한다.한국사회에서말하는‘상식’이란무엇이며,그것은어쩌다‘독재자’의위치를점하게되었는지진단한다.‘한국적삶’이란무언지규명할가치조차인정받지못했던지난기나긴세월에보내는대서사시이자엑소시즘이펼쳐진다.
왜‘상식의독재’인가?
‘하나의상식’이지배하던나라에서
쪼개지고분화하여투쟁하는‘상식들’의나라로
‘한국적삶’이란무엇인가.책의시작점인동시에도착점인질문이다.오랜시간한국은‘중국비슷한나라’,‘일본비슷한나라’,또는‘그둘을적당히섞은나라’로여겨졌다.우리의심정깊숙한곳에자리한각종망국론의심리적배경이여기였다.그러다최근들어설핏유명세를탔다.소위‘K-열풍’을모두목도했다.저자는“특수성을규명할가치를간신히인정받았다”고표현하고이기회를놓치지않는다.특유의번쩍이는통찰력과강기를무기삼아종횡무진텍스트를누비며한국사회의특수성이만들어낸우리삶의풍경은어떠한지,그특징은무엇인지묻고답한다.책을이끌어가는화두는‘상식’이다.
‘한국적삶’의특성및장단점을분석하고,그것을어떻게개선할수있을지를고민하던어느날,‘상식(常識)’의문제를만나게됐다.진보주의자로서의나는반복해서한국사회가주류·표준·평균에속하지않은소수자에게지나치게잔인하다는문제를지적해야만했는데,문제를지적하면할수록사람들이그것을문제라고받아들이지않는경우도많더라는현실에맞닥트렸기때문이다.따라서‘주류·표준·평균에속한이에게제공되는엄청난편의성,그리고그바깥다양한삶의양태에대한철저한무신경함’이란현상의기반에는우리가지식과배움을받아들이는방식,어떤지적토양에기본적으로문제가있다는착상에이르게됐다.나는여기에‘상식’이란이름을붙였다.한국은‘상식이지배하는나라’이며,한국적삶의특징은이러한‘상식의지배’로부터도출된다는착상이었다._‘서론’중에서(28쪽)
표준국어대사전은‘상식’을두고“사람들이보통알고있거나알아야하는지식”으로정의한다.영어에대응하는말로는‘커먼센스(commonsense)’가있다.그러나정작우리는‘상식’을그리대하지않는다.한국사회에서의상식이란,‘공통의감각’이나‘모르면괄시당할수준의지식’차원을넘어서사실상‘따라야할도덕기준’이란의미까지갖는다.나아가남들을‘몰상식하다’고규탄할수있는지위를갖는다.거대양당과그의지지자를떠올리면이해가쉽다.정당이건지지자건모두본인이‘상식’의위치에있고,상대편은‘몰상식’하다고믿고있지않은가.선거시즌이면결과여부에따라“상식이승리했다”라거나“상식이패배했다”라고말한다.저자는바로이부분에주목한다.상식은결과에승복하지않으며,결과가상식에승복하기를욕망한다는것이다.그래서‘상식의독재’이다.
구체적으로어떠한개념인지소개하고자든예시가운데몇년전커뮤니티에오르내리며화제가된어느일본인의게시글이있다.“일본은주변에독재국가밖에없어괴로운데,다름아니라대한민국도그명단에있으며구체적으로말하면‘국민독재’의나라라는것”이다.누리꾼들은조소하는반응을보였다.“쟤들은민주주의의개념을모르나?”민주주의란국민의지배,통치를의미하는데이무슨얼토당토아니한말인지의아해했다.그러나저자는‘국민독재’를‘국민정서법’이나‘대중독재’란말로바꿔보면우리나라에서도사용하는사람들이꽤있다고지적한다.2017년박근혜전대통령탄핵국면,그과정에서절차적문제가있었던것은아니지만한국정치문화의특수성가운데하나인소위‘민심’이란것에국회와헌법재판소가순응하는방식으로절차가작동했다는것이다.‘상식의독재’는바로이‘국민독재’,또는‘국민정서법’이나‘대중독재’라고부르는현상에저자가새로이붙인이름이다.
한국은다른사회에비해지역과계층의격차가크지않고사실상‘하나의상식’이지배하는사회다.혹은적어도‘하나의상식’이우리사회를규율하는것이마땅하다고믿어의심치않는사회다.한국에서‘상식’이란말은다른나라에비해너무많은것을규정하고있고,심지어정치적인측면에서도그역할이과도하기때문이다.그러나현재상식의지위는위태롭다고저자는주장한다.여전히많은이들이‘상식의독재’를희구하지만,과거에비해‘상식’은한결분화되었고서로투쟁하고있다.어느한쪽에서‘상식’이라주장하는것들이더는모든한국이공유하는‘상식’이아니게된것이다.이에저자는최근20여년간누적된한국사회의정치적혼란을이‘분화하는상식들의투쟁’이란관점에서바라볼것을제안한다.우리시대를둘러싼상식의형성과분화를탐구하는일은현대한국사회의정치·경제·문화양식을규명하기위해꼭필요한작업이라고역설한다.우리는지금어디에서어떻게어긋나고있는가.저자는책장을넘기는독자를향해계속해서묻는다.
“우리는왜이렇게살고있는가”에관한
전방위적고찰과비평
책은‘한국인의상식’을살펴보고자전근대까지추적해올라가면서과거와오늘을잇는일에매진한다.많은이들은우리가전근대역사로부터이어진존재가아니라,‘단절된존재’라고상상하는경우가많다.저자는‘단절사관’,‘청산사관’,‘부채상속사관’등새로이이름붙인역사의식,혹은역사적무의식을논박하면서우리가역사와단절된존재가아니라는점을논증한다.또한동서양을넘나들며동아시아주지주의와유럽주지주의의특성을비교하여한국이‘상식의독재’사회인데에는동아시아주지주의의특수성이있음을역사적맥락과철학적논의로서드러내보인다.
책은총9장으로구성됐다.1장에서는한국민주주의에대한상투적인비판의목록을점검하면서왜‘한국민주주의’에아무도만족하지않는지살펴보고,지금의정치적위기는그러한비판보다는‘상식의독재’사회에서‘상식이분화’하면서발생한‘상식간의대격돌’에의한것이라진단한다.2장에서는한국의근대가단지미국과일본의짜깁기에불과한것은아니며전근대사의영향력안에서형성되었다는점을주장하면서,한국인들이‘상식’에집착하게된이유역시이틀위에서살펴본다.3장에서는해외에서바라보는한국의전근대사정체성이오랫동안중국과일본사이에서인정되지못했던사실을상기하면서,특히조선사에대한폄훼의시선에대항한다.이과정에서‘조선노예제사회논쟁’을검토하는데,주로이영훈이발표한논문과단행본을재료로살펴본다.4장에서는조선왕조후기의‘무기력하고게으른조선인’이라는오랜편견에서현대한국인의역동적인산업화와민주화의성공이어떻게연결될수있었는지를심층적으로검토한다.‘한말외국인기록’을중심으로하되,‘벼농사’와‘토지’라는키워드가중요한역할을한다.
이렇듯한국의전근대사와근현대사사이의연결을복구한후5장에서는한국문화의특수성,요컨대‘상식’의역할을구체적으로규명한다.한국사회의좌표적특성이어찌하여이전에는‘성리학의나라’를지지했다가이제는‘상식의나라’로이동하게되었는지해명한다.6장에서는‘상식의나라’에사는한국인들이자국의역사에대해가지고있는‘민족피해자서사’를검토하면서한일관계의역사논쟁까지두루검토하고한국사회가‘상식의독재’를벗어나기위한길을제언한다.7장에서는시선을넓혀동아시아와유럽이어떻게역사적으로상이한길을걸어갔는지검토하고,이두개의전략을한국의근대가어떻게수용하여3.1운동이라는대한민국의근본을수립했는지논한다.8장에서는불평등문제를살펴보면서,역사적으로한국의능력주의와평등주의가어떻게형성했는지검토해보고불평등심화가‘상식의나라’를해체하지는않을것이라는결론아래불평등문제에대처하는방법을제시한다.9장에서는대한민국소멸시계의분침이자정을향해이동하는지금,‘저출생으로사라질나라’가될지도모르는한국이지정학이부활하는시대에다시금‘지정학적지옥’이되고있음을밝히면서극복의가능성을탐색한다.
‘상식’은‘독재자’의위치를벗어날수있을까?
한쪽눈을감은채상대를재단하는한국사회극복하기
상식의복원,한국사회를통치하는‘상식’에대한엄밀한탐구끝에저자가얻은하나의깨달음은바로이것이다.다만이때의‘상식’은지금처럼역사전쟁,혹은상식끼리의전쟁에동원되는상식보다훨씬느슨한개념이어야한다.‘상식’이라는이름의영역으로는너른품으로넓은부분을인정하고,‘몰상식’이란이름으로는매우좁은영역만을규탄하는게타당한일이라는것!이는한국인들이오랫동안말해왔던‘상식’의모습이기도했다.물리적으로건비유적으로건두쪽으로나뉜한국사회,국민의힘과민주당으로대표되는양극단의대립이서로를몰아내기위해‘상식’의범위를좁힌채그외모든것을‘몰상식’으로밀어내는지금,뜨끔아프면서도양팔벌려받아들여야만하는제언이다.
저자는‘화폐’이야기로끝을맺는다.우리나라화폐를보라.신사임당,세종대왕,율곡이이,퇴계이황,충무공이순신등여전히조선시대위인들이그려져있다.다른나라화폐를보면,그보다앞선시대는물론이거니와근현대인물또한많이올라있다.그렇다면우리나라의현대사인물은왜화폐에올라갈수없을까?한국인들이유난히조선왕조를숭앙해서?저자는말한다.현대사인물을넣자고한다면,“도저히합의할수가없어”서라고말이다.윤치호,이승만,박정희의얼굴이그려진화폐도,안중근과김구,김대중의얼굴이그려진화폐도“절반의국민을화나게하리”라는것이다.
책은뜨겁지도차갑지도않다.미지근하다는의미가아니다.부제에적힌‘변호하다’라는표현에서어떤애국적반박을기대한독자가있을지도모른다.또는‘독재’와‘망국’등의키워드에서호령과설교가주를이루리라짐작한독자도있을지모른다.“한쪽눈을감은채”상대를바라보는오늘날한국사회에는대한민국의성취도한계도균형있게직시하는‘상식’이필요하고,책은선결적으로그역할을감당해냈다.“한국이란무엇이고,한국인이란누구인가”란질문을던지고,단행본504쪽분량으로답했다.책은절절하다.날카롭게적확한분석을찬찬하고도성의껏들려주며대안모색에도부지런하다.추천사를쓴국회의원김한규의말마따나“‘상식적으로’적지않은분량”이지만,지금가장매섭고시급한문제제기를담았기에우리사회가기꺼이손에들고호응해야할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