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의이야기-
어느한시절을함께찬란하게보냈던그곳모령에서,
내가읽지못했던너의시간
「펑서토니의마임이스트」
대학교자퇴후모교에발을끊은지오래된어느날,서이는우연히참여한친목파티에서대학교후배이자마임동아리동기였던다울의사망소식을듣게된다.이후복잡한기분에휩싸인채다울의장례식참석을위해서둘러모령으로향한다.한때서울과모령을오가며방황했던서이에게다울은,유난히혹독한모령의겨울을견디게해준사람이었다.서이는어째서다울이죽게되었는지,무엇도알수없는채로얼어붙은길을힘겹게지나장례식장에도착한다.
나는모령이처음부터마음에들지않았다.작고초라한터미널은그규모에맞지않게어수선한행객으로가득했고,곳곳에서불쾌한냄새를풍겼다.
다울을기억하는조문객들을만나고여러생각에잠겨잠에들었던서이는장례식장이아닌어느벤치에서눈을뜨게된다.그런서이의눈앞에영정사진속얼굴이아닌,15년전의모습으로다울이서있다.서이는아무데서나잠들지말라는다울의핀잔을기분좋게들으며,지금의상황이꿈일거라고여기면서도그동안자신이다울을얼마나그리워했는지느낀다.
다울을보느라주변을살필겨를도없었지만이미내몸의오감이일러주고있었다.15년전이라고.15년전의모령이라고.신록의한가운데,4월의캠퍼스.가장찬란하고가장암담했던모순의시절.그때의나날로돌아왔다고.
서이는다울이살아있었던15년전의시간을마주하면서,홀로모령을떠나온후오랫동안다울에대해품었던죄책감과후회를떠올린다.그마음은과거의선택을달리바꾸어다울을살려내겠다는다짐으로이어진다.
하지만서이는마치한조각이빠진미완성퍼즐처럼,다울이말해주지않는속마음에쉽게가닿지못한다.당시다울을둘러싼또다른인물지강과오선을비롯해,시간을돌리지않고서는확인할수없는일들까지.서이는자신과다울이애틋하게나누었던15년전이야기의결말을바꾸기위해기꺼이진실을마주하려한다.
다울의이야기-
시간의틈을메꾸어
모든가정법이해피엔딩이되기까지
「엔딩을통과하는중」
다울의시점으로이어지는두번째챕터에서는다울이아닌지강의부고메일로이야기가시작된다.다울은모령대영문과를오래전자퇴했지만,지강의이름과부고라는단어를본순간어떤확신을느끼고장례식에가기로결심한다.이때15년전의모령과마임동아리,그와관련된이들의이야기가여러버전으로전개되면서서이의관점에서알수없었던다울의서사가더욱흥미롭게펼쳐진다.
지강을처음만난건열네살,엄마를따라모령의낡은임대아파트에들어가던날이었다.(...)그어떤희망도내안으로비집고들어오지못할거라고생각했던그때.마치어렴풋한구원의가능성을흩뿌리듯지강이내세계속으로걸어들어왔다.
어려운현실속에서,서로만이서로를구원할수있으리라믿었던것도잠시그들의관계는위태로운방향으로변하기시작한다.다울은이기적으로달라져가는지강의곁에서자신의세계를온전하게지킬수없음을알게되지만그에게서쉽게벗어나지못한다.그러나타임루프가작동되는,또다른가능성의세계에서서이는다울에게다시한번마음을내어주는사람으로등장한다.
모든시간의구멍을메꿀수있는마음.
그마음이야말로서로의세계를움직일수있는힘이라고,
서이가홀로남았던세계에서는확인할수없던다울과관련된진실이선명해지면서,서사는한차례새로운국면을맞는다.이제서이는어떤누구보다위로가되는존재였던다울에게더욱솔직한모습이되길,다울은서이에게건네지못했던약속을포기하지않기로한다.기꺼이서로의구멍에빠지겠다는마음,시간을되돌리고싶을만큼간절했던그마음은우리에게어떤질문을남기게될까?
허진희가꾸려낸섬세하고도환상적인지도를따라가는동안,독자는그끝에서자신만의가정법을마주하게될것이다.만약,으로시작되는세계가어떻게멈춰있던마음을움직이는지,기꺼이『엔딩을통과하는중』의첫장을펼쳐경험해보길바란다.
책속으로
다울이죽었다는소식을들었다.우연찮게건너건너전해들은비보였다.대학동문인다울의사망소식이내귀까지들어온건신기하다면신기한일이었다.스물두살,다시입시를준비하기위해자퇴서를내고난뒤모령대에는더이상연고가없었으니까.
---「펑서토니의마임이스트」중에서
“혹시다울이과후배예요?”
“네?아,네…”
남자는당황한듯보였지만습관처럼공손한자세를취했다.
“모령대영문과나오셨구나.이름이…?”
“오선입니다,장오선.”
“전한서이라고해요.마임이스트알죠?같은동아리였어요.”
마임이스트는모령대마임동호회의이름이었다.내입으로그이름을불러보는것도참오랜만이었다.
---「펑서토니의마임이스트」중에서
모령에서의1년반.그나마도서울과모령을오가며보냈던시간.나는지독하게방황중이었다.과거의내보잘것없는성취가한심스럽고,현재의내모습에불만밖에없었고,미래의나에대해의심만가득했던그때.나는내인생빼고는단한명에게만관심이있었다.
---「펑서토니의마임이스트」중에서
“뭐야,언니.여기서자고있었어요?”
아는목소리가나를깨운다.아직꿈속인게분명해.내가아는그목소리라면현실에서는들을수없어야했다.
---「펑서토니의마임이스트」중에서
15년전으로돌아왔는데,왜나는서른일곱살의모습그대로인지.젊어지지도않았을뿐더러장례식에서바로건너온듯옷차림도그대로였다.하지만다울은내모습이이상하다고생각하지않는것같았다.
---「펑서토니의마임이스트」중에서
나는용기가없었다.애써얻은신망을잃을용기도,나에대한몰이해를감수할용기도없었다.아니,용기가없었다는건핑계인지도모른다.그저아무것도잃고싶지않았을뿐.그래서그냥다괜찮을거라고생각했다.무엇도하지않음으로써다울을놓아버리고,그렇게영영잃게될줄도모르고서.
---「펑서토니의마임이스트」중에서
우리는함께시곗바늘을돌렸다.
시침이움직이자분침도움직였다.
마침내시간이거꾸로움직였다.
시간이되돌아가는소리가들렸다.
점점더크게.
“도망가자.”
---「펑서토니의마임이스트」중에서
모령.한사람의약점이된다는것이어떤의미인지배운곳.
그곳으로돌아갈것이다.
---「엔딩을통과하는중」중에서
지강과나는첫만남이후급속도로친해졌다.서로옆집에사는데다가내가지강의학교로전학을가기까지했으니친해지지않는게이상할정도였지만우리의관계는보통의친구사이보다조금더은밀했다.
---「엔딩을통과하는중」중에서
짧은침묵이이어졌다.서이언니는분명이런저런말들을삼키고있을터였다.내가언니의목소리를듣고미리생각해두었던거짓말을하지못했듯언니는금방이라도쏟아져나올것같은솔직한말들을눌러내고있었을것이다.한집에사는동안우리는서로를길들이는방법을터득했다.어려운일은아니었다.약간의세심함과인내심만이필요했을뿐이다.
---「엔딩을통과하는중」중에서
-그럼시간을되돌려15년전으로타임리프한다면...
캠퍼스내열기가무르익었던축제의밤.언니는내팔을잡고말했다.떠나고싶다면떠날수있어.도망쳐야한다면도망치는거야.원한다면내가도울게.
-만약그순간으로돌아간다면...다른선택을할거야?
---「엔딩을통과하는중」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