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전쟁의시대,
단순중개를넘어전략자산의핵심축으로변신한종합상사
사양산업으로낙인찍히며한때무용론에시달린일본종합상사가다시주목받고있다.이들은인터넷거래가확산하며설자리가좁아지자,무역중개를넘어자원과공급망을확보하는전략적투자자로변신했다.그결과현재순이익기준상장사상위30위권을휩쓰는강력한기업군으로거듭났다.이같은변화를가장먼저포착한인물이바로워런버핏이다.그는2019년부터일본5대종합상사(미쓰비시상사,미쓰이물산,이토추상사,스미토모상사,마루베니)에투자를이어오고있다.거품붕괴와30년에걸친디플레이션속에서이들은어떻게사업모델을다각화하고체질을근본적으로바꾸었을까?
신간『다시쓰는나의이력서』는일본이세계의중심에서밀려나있던시절,무대뒤에서벌어진기업들의대전환과정과생존전략을파헤친책이다.저자는5대종합상사중하나인마루베니에서서울지점연수생으로시작해본사종합직으로발탁되어34년간세계를무대로활약한한국인이다.인생의절반은서울에서,나머지절반은도쿄에서살아온저자가위기를넘어사업체질개선에성공한일본기업의속사정을내부자의시선으로해부한다.일본경제를강타한장기불황의원인은무엇이고,기업은어떻게새로운성장모델을구축해갔으며,기존질서가무너진일본사회는어떤변화를모색했는지입체적으로분석한다.나아가일본기업고유의비즈니스룰과조직문화를이해하고실질적협력을끌어내는현장감넘치는가이드를제시한다.
우리는흔히‘잃어버린30년’이라는프레임으로일본을재단하곤한다.하지만일본에그지난한세월은결코멈춰있던시간이아니었다.밖에서장기침체를말할때,그안에서는과거하드웨어중심의철갑을벗어던지고소프트웨어와데이터중심의생태계로거듭나기위한처절한체질개선이이어지고있었다.30년의뼈아픈담금질을거친일본종합상사들은모든것을움켜쥐려는미련을버리고,가장잘할수있는핵심에집중하며전략적진화를이루어냈다.감정적폄훼나맹목적적대감을넘어그들시스템의본질을직시해야하는이유다.이책은저성장과고령화의길목에선한국사회와기업에미래의해법을찾아갈날카로운통찰과묵직한화두를던진다.
갈라파고스현상은
일본경제호황기가남긴위험한유산이다
태평양한복판의외딴섬갈라파고스는육지와단절된채생물들이저마다독특한형태로서식하는곳이다.찰스다윈에게진화론의영감을준이낙원의이름은,오늘날일본사회에서글로벌흐름과동떨어진국내전용규격,이른바‘갈라파고스제품’을지칭하는대명사로쓰인다.
휴대전화에내장된전자지갑오사이후게이타이(お財布携?)가대표적이다.소니의모바일기술덕분에일본에서는2000년대초반이미터치한번으로결제할수있었지만,글로벌시장에서이를받아주는나라가없었다.이동중에도TV시청을가능하게해주는디지털방송원세그(1seg)도혁신적기술이었으나,일본바깥에서는신호조차잡히지않았다.요즘사용되는교통카드스이카(Suica)와파스모(Pasmo)역시뛰어난편리성에도불구하고,글로벌표준과호환되지않아규모의경제를이루지못했다.일본만의독자규격이글로벌시장과의연결을가로막고,위기앞에서는공급망의취약성을드러내는걸림돌이된것이다.
그러나저자는일본사회를지배하는갈라파고스현상을단순한무능이나실패의결과로만치부하지않는다.1980~90년대호황기에는내수시장만으로도충분한수요와수익이보장되었다.여기에디테일의완벽을추구하는장인정신‘코다와리(こだわり)’문화와까다로운소비자취향이맞물리며,기업들은과도한기능경쟁에몰두했다.경쟁사와차별화된독자적사양으로내수시장을장악하면,불확실한해외진출없이도수익이보장되었기때문이다.그사이세계는특정기기가아닌범용인터넷과데이터통신으로연결되는생태계를준비했고,유튜브와넷플릭스가주도하는스트리밍의거대한파도에올라탔다.결국일본의기술은최고수준이었음에도시대의흐름을읽지못한,고립된리더십의한계를고스란히드러냈다.
저자는이러한갈라파고스현상이야말로‘잃어버린30년’의결정적원인중하나라고짚는다.세계가인터넷과소프트웨어중심으로빠르게전환할때,일본은자신들이구축한하드웨어의성벽안에갇혀있었다.여기에인구감소로인한수요위축으로기업의성장이한계에봉착하면서,그골든타임을놓친대가는장기침체라는참혹한결과로돌아왔다는것이다.과거의성공방정식이어떻게미래의발목을잡는위험한유산이되었는지,그리고고립된리더십이초래하는한계가무엇인지를선명하게보여주는대목이다.
감정적우월감을넘어
일본산업재편의전략적의미를직시하기
일본종합상사에있어투자는오랫동안트레이딩을보조하는수단에지나지않았다.과거에는거래선을다지고신규물량을확보하기위한소액출자가전부였지만,‘상사무용론’과거품경제의붕괴는이오래된관습을여지없이깨뜨렸다.저자가조명하는미쓰비시상사의체질개선은그자체로역동적이다.단순중개수수료모델의한계를직시하고‘사업투자와직접경영’이라는진화된비즈니스모델로축을옮긴과정,목표수익률에미달하면핵심자산이라도과감히매각하는모습은무역중개상을넘어철저한투자회사로탈바꿈한일본종합상사의단면을선명하게보여준다.최근편의점로손을상장폐지하고통신사KDDI와공동경영체제로전환한사례는이러한‘순환형성장모델’의정점을압축해서제시한다.
흥미로운것은자본의방향이다.자원개발과해외프로젝트로대표되던종합상사의시선이최근일본국내로회귀하고있다.저자는이를단순한엔저착시현상으로치부하지않는다.지정학적리스크속공급망재구축의필요성,잃어버린30년의디플레이션터널을빠져나와완만한인플레이션이정착되며실물자산가치가오르는거시환경,여기에재생에너지전환ㆍ반도체부흥ㆍ데이터센터확충이라는정책호재까지맞물린결과라는분석이다.정교한정보망을갖춘종합상사들이자국시장에자본을쏟아붓는현상이야말로일본시장의숨은잠재력을증명하는가장확실한신호라는저자의진단은설득력있게다가온다.일본의이러한변화는한국기업에도새로운통찰과전략적과제를제시한다.
한류열풍과한국의위상변화속에,우리를바라보는일본의시선은무관심에서호기심과경계심이뒤섞인복합적감정으로변했다.저자는이에대해문화적ㆍ감정적승리감에도취하는것을경계해야한다고강조한다.국가적위상이아무리달라졌을지언정,글로벌비즈니스현장을지배하는셈법은예나지금이나지독하리만치냉혹하기때문이다.저자는우리를향해일본을‘낡은경쟁국’이라는프레임에서벗어나‘새롭고매력적인선진투자처’로재조명할것을촉구한다.일본기업특유의까다로운기준이어디서비롯되었는지,그들의시선이어디를향하고있는지를전략가의눈으로읽어낼때비로소우리가파고들결정적틈새가보인다고설파한다.
일본기업의체질개선과재도약과정을담은이책은현장을누빈경제인에게는깊은공감과통찰을주고,글로벌무대를꿈꾸는청년에게는시행착오를줄여줄이정표가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