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꽃보다도 적게 산 나여 : 나희덕, 젊은 날의 시

그러나 꽃보다도 적게 산 나여 : 나희덕, 젊은 날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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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나희덕

저자:나희덕
1989년중앙일보신춘문예로등단했다.시집『뿌리에게』『그말이잎을물들였다』『그곳이멀지않다』『어두워진다는것』『사라진손바닥』『야생사과』『말들이돌아오는시간』『파일명서정시』『가능주의자』와시론집『보랏빛은어디에서오는가』『한접시의시』『문명의바깥으로』,산문집『반통의물』『한걸음씩걸어서거기도착하려네』『저불빛들을기억해』『예술의주름들』등이있다.
김수영문학상,오늘의젊은예술가상,현대문학상,이산문학상,소월시문학상,지훈상,임화문학예술상,백석문학상,영랑시문학상,대산문학상등을수상했다.현재서울과학기술대학교문예창작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

목차


시인의말

1.
서시序詩
푸른밤
뿌리에게
땅끝
오분간
저숲에누가있다
그복숭아나무곁으로
살아라,그리고기억하라
그런저녁이있다
마른물고기처럼
사랑
어두워진다는것
나서른이되면

2.
일곱살때의독서
못위의잠
누에의방
어린것
저녁을위하여
허공한줌
연두에울다
기러기떼
저물결하나
벗어놓은스타킹
이복도에서는
너무늦게그에게놀러간다
방을얻다

3.
귀뚜라미
살아있어야할이유
고통에게2
11월
엘리베이터
돼지머리들처럼
꽃병의물을갈며
음지의꽃

뜨거운돌
떨기나무덤불있다면
그말이잎을물들였다

4.
상수리나무아래
포도밭처럼
풍장의습관
어떤출토出土
사라진손바닥
섶섬이보이는방
야생사과
사흘만
그곳이멀지않다
산속에서
꽃바구니
다시,십년후의나에게

발문_‘젊은날의시’를다시읽는저녁_안희연시인

출판사 서평

“꽃인줄도모르고잎인줄도모르고
피어있던시간이내게도있었다”
등단35주년에펴낸‘연둣빛시절’의시모음
나희덕-젊은날의시

나희덕의시선집.곁에‘젊은날의시’라는부제가붙었다.첫시집『뿌리에게』부터『그말이잎을물들였다』,『그곳이멀지않다』,『어두워진다는것』,『사라진손바닥』,『야생사과』에이르기까지,초기시집여섯권에서시인이직접고른시들을한데묶었다.
나희덕은산문에서밝힌적있다.‘어두운허공에드러난뿌리처럼갈증과불안에허덕이던그나날들이시인으로서는가장파닥거리며살아있었던시기’라고.방황과해찰의시간,상처받고혼란스러운현실,모든것이낯설고혼자라는상념에빠져있던날들,미뤄둔질문들과맞닥뜨린경험이,‘꽃인줄도모르고잎인줄도모르고피어있던시간’이투명하고깊은50편의시속에오롯이담겼다.

슬픔이많은사람이반드시슬픈사람이되는것은아니다.크고작은슬픔이나를통과해갔지만,오직시들만이시간이벗어놓은허물처럼여기저기흩어져있다.슬픔에기대어시를쓰게되었고타자의슬픔곁에머물수있었으니,슬픔이라는식솔에게감사할따름이다.(중략)시선집을꾸리기위해오래전에쓴시들을다시읽으며,내가시인으로걸어오는동안땅에떨어뜨린것이무엇인지돌아보곤했다.젊은날에는피어있는것자체가목적이었다면,이제는잘시드는것이삶의목적이되어간다.그럼에도불구하고시속의나는여전히파릇하다.모쪼록독자들께도이연두의시절이지닌생기와온기가오롯하게전해지기를바란다.
-시인의말중에서

“내가실패했다는생각이들때마다
나희덕의시집을곁에두어왔습니다”-안희연시인
지금함께,다시읽고싶은나희덕의시

「땅끝」,「푸른밤」,「방을얻다」,「음지의꽃」,「뿌리에게」,「귀뚜라미」,「그복숭아나무곁으로」,「일곱살때의독서」,「섶섬이보이는방」,「그런저녁이있다」,「어떤출토」…….중고등학교국어교과서에수록된나희덕의시들이다.그의시를한편도읽지않고어른이되기란쉽지않다.그의시는단정하고그윽한언어의참맛을우리내면에꺾꽂이하듯심어주고떠난다.
시간이지나도공감이가는시들이있다.나희덕의시가그러하다.그는소외되고아픈사람과끝없이추락하는세상을향한눈길을거두지않는다.현대문명에대한비판적사유와생태적감수성,사회구조의불합리함과불평등,삶의모순과서글픔을담아내면서도,그안에서따뜻한어머니의목소리로사람과세상모두를감싼다.
발문을쓴안희연시인의말처럼나희덕의시는‘잠못이루는고통과혼돈의날들속에서도또박또박사랑을말’하며,‘죽음의악력에끌려가지않고기어코삶쪽으로무게중심을이동해내는시’다.시읽기의즐거움을처음느끼기좋은무해한영혼들에게,스무살에읽었던시집을마흔에다시펼칠이들에게,연둣빛청춘의시기를통과하는이들에게이시선집은오랜친구처럼곁에자리할것이다.

우리는언제시를읽을까.정해진법칙이있는것은아니겠지만마음이벅차오를때보다는가난할때,맑은날보다는흐리고탁한날시를찾게되는것도같다.질문을이렇게바꿔볼수도있겠다.당신은언제나희덕의시를읽습니까.이또한정답이있을리없는물음이겠지만나의경우이렇게말해볼수있겠다.내가실패했다는생각이들때마다그의시집을곁에두어왔습니다.
그의시는박자가딱딱들어맞고,모든것이순조롭게이루어지는풍경과는멀리있었다.어긋나고,잡아먹히고,구부러지고,늙고,터지고,기어오르고,잠못이루는고통과혼돈의날들속에서도또박또박사랑을말했다.죽음의악력에끌려가지않고기어코삶쪽으로무게중심을이동해내는시였다.어떻게그럴수있나그게정말가능한일인가반문하면서도동아줄처럼그의시를붙들던날들이있다.삶이가혹해질수록더세게그의시를붙들었던날들이.
-안희연시인의발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