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기담 : 매운맛

여름기담 : 매운맛

$14.50
Description
읻다가 준비한 한여름의 오마카세 소설
《여름기담: 매운맛》, 《여름기담: 순한맛》 전 2권 출시!
취급은 취향껏, 개봉 후 서늘한 응달에서 읽으세요
열대야와 장마의 계절 여름, 이름 모를 불안감과 지루함에 뒤척이는 당신을 위해 8인의 작가가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어 놓는다. 심연의 공포와 불안을 끄집어내는 《여름기담: 매운맛》, 겁이 많은 독자들도 함께 읽을 수 있는 기기묘묘하고 엉뚱한 《여름기담: 순한맛》이 각각 읻다에서 출간되었다. 아는 맛이 제일 무섭다는 속설처럼 속이 아릴 것을 알고도 기어코 꺼내 들게 될 백민석, 한은형, 성혜령, 성해나 작가의 ‘매운맛’ 소설 네 편을 소개한다.

저자

백민석,한은형,성혜령,성해나

1971년서울에서태어나서울예술대학문예창작과를졸업했다.1995년『문학과사회』여름호에「내가사랑한캔디」를발표하면서문단에등장했다.가장낯설고또렷한시선과문체로1990년대한국문학계의독보적인흐름이었던그는10년간의침묵을깨트리고다시왕성한활동을선보이며오래도록그를기다려온독자들의곁으로돌아왔다.
대표작으로소설집『16믿거나말거나박물지』,『장원의심부름꾼소년』,『...

목차

백민석

나는나무다‥‥9
공포는현실에‥‥40

한은형

절담‥‥47
방생‥‥87

성혜령

마구간에서하룻밤‥‥93
다리하나주면안잡아먹지‥‥127

성해나

아미고‥‥133
2058년13월‥‥157

출판사 서평

“하지만내가봤고,나는증언한다”
〈나는나무다〉

그사내는내발밑에묻혔다.사내들은자기들이입을다물면그일이영원히잊힐거라믿었다.하지만내가봤고,나는증언한다.그의살덩이와골수는녹아내려내이파리와줄기들로흘러들었고짙은갈색으로내나이테에새겨졌다.
─18쪽,〈나는나무다〉중에서

신록의숲을이루는울창한이파리들이모두나무의부릅뜬눈이라면?화자‘나무’는끊임없이말한다.나무에함부로기대어울지말것.아무도없을것이라고믿는곳에서도패악을벌이지말것.자신의뿌리밑에시체를묻지말것.하지만나무의말은인간에게들리지않고,‘나’의뿌리밑에는더많은‘진실’이쌓이고분해되어나이테에새겨진다.550여년간감지않은눈으로목격한인간의세태를나무는한결같이이해할수없다.그들은부끄러움을느끼고변하지않는사랑을약속하고먼저떠나간이를애도하는존재인동시에끝을모르고치닫는악의현현이다.그러던어느날헤아릴수없이빼곡하게묻혀있던진실들이세상의빛을보게되는데…….

대대로내려오는괴담은시대의불안을반영한다.“공포는현실에,이사회에,소설의바깥에”있다는백민석작가의말처럼〈나는나무다〉는“자기들이감당할수있을만큼의진실만을찾는”시대의병증을파괴적인이미지와통렬한시선으로역설한다.

“이것은내가절에서겪은이야기다”
〈절담〉

이것은내가절에서겪은이야기다.절에서만겪은건아니고절을나와서도겪은이야기.스님과절밥이,절밥과절사람이나오는이야기.그러니까절담이라고해야겠지.
─85쪽,〈절담〉중에서

이글은“‘나’가나오는데그‘나’가실제의나인이야기”다.서두에쓰인이선언은앞으로펼쳐질이야기를허구로받아들일것인지독자에게몫을넘긴다.10년차소설가‘나’는어느날아는기자의소개로‘사찰음식의대가’라는한스님을만나게된다.‘나’의눈에비친스님은청빈한종교인과는정반대의인물로사업수완이좋고,외제차를타며,타코집을즐겨찾는,보기드물게“현란한화술을구사하는”스님이다.화자‘나’는스님의모든말을하나의징후처럼느끼고만남끝에스님은“나누군지알겠어요?”라고묻는다.다음날‘나’는문득잊고있던20년전의기억을떠올린다.대학동기와잠시절에서머물렀던일,그절의음식이끔찍하게맛이없었고,스님대신절의모든살림을도맡았던공양주보살과그의어린딸에대한기이한기억.스님을다시만났을때둘에대해묻자,스님은“아무도없었어요.그절은원래나혼자였다죠.빨래하고청소하고밥하고그러는게다수행입니다.”라고답한다.

진정한홍매는붉은게아니라사실검다.한은형작가의〈절담〉은일상적인대화의수면아래감춰진비밀과검은홍매가흐드러진기이한절의살풍경을그리며온전할것이라고믿어온기억의경계를위협한다.

“문진은별장에서냄새가난다고믿었다”
〈마구간에서하룻밤〉

문진은별장에서냄새가난다고믿었다.주위가아주고요한날,바람조차불지않을때면,오래묵은건초에섞인동물의분뇨냄새가슬그머니피어올라문진을거슬리게했다.
─94쪽〈마구간에서하룻밤〉중에서

주인공‘문진’은항암치료를마친후생전에외할아버지가지었던마구간을개조한별장에서머물고있다.그는딸이떠나기전에마지막으로건넸던“엄마잘살아”라는인사처럼별장을팔고“혼자잘살아남아”보기로한다.그전에5년전같은병실에서나란히항암치료를받았던‘순연’과의관계를먼저정리해야한다는것을문득깨닫는다.그는문진에게“세상에서유일하게자신이밥을먹었는지궁금해하는”다정한사람이었지만동시에수상한약과물건을강매시키고조금씩돈을꿔가는유해한사람이었다.순연은돈을갚아달라는문진의연락을받고기어코별장앞으로찾아오고,아무일도없었던것처럼살갑게인사를건네며별장안으로들어선다.

성혜령작가의〈마구간에서하룻밤〉은‘가족’이라고불렀던이들이모두나의곁을떠나고홀로된자리에선량한얼굴을한타인들이찾아오는이야기다.순연을시작으로하나둘반갑지않은손님들이별장을찾아오기시작하고,안전할것이라고믿었던관계와공간이뒤틀리며나의의지로는깰수없는악몽이계속이어진다.

“이곳엔인간이몇이나될까”
〈아미고〉

저들은모르겠지만,당신은무사할거예요,아미고.
─141쪽〈아미고〉중에서

고도로발달한AI가나의미래마저오차없이예측한다면그신적인존재앞에우리가느끼는두려움의실체는무엇일까?인공지능스피커가비서의역할을대신하고무인우버가상용화된멀지않은미래시대,주인공‘죠’는촬영현장의유일한스턴트맨이다.촬영중큰사고를겪은뒤돌아온현장에는사람대신‘야키마H1’이라는로봇이디렉터스체어에태평하게앉아있다.과거에그로봇을처음보았을때‘죠’는괴기함과이질감을느꼈지만동료들은그것을‘아미고(친구)’라고부르며살갑게대했다.대기시간에동료들은로봇과나에게스파링을부추기고,그때까지만해도고철덩어리에불과했던야키마H1은나의주먹에족족맞는다.맥없이쓰러진로봇을일으켜세우기위해다가갔을때그것은나의귀에또박또박속삭인다.“저얼굴들을잘기억해둬요.그리울지도모르잖아요.”그의예언대로학습을거듭한로봇이촬영현장을점거하고동료들은모두실직자가되었다.다시만난야키마H1은나에게한번더자신이예측한미래를말해주는데…….

성해나작가의〈아미고〉는“미끈하고잡음없는삶”에익숙해진한인물이이명처럼울리는실체없는두려움에몸을담그는이야기다.작가는“불투명하고흐릿한무엇이선명한윤곽을드러낼때,인간이어떤공포를느끼는지나는알고”있으므로호기심으로라도그것을함부로들춰보지않을것을경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