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공부’에 대한 오랜 탐색과 역사학적 고찰
식자의 등장, ‘학위’의 발명, 근대 대학의 시작점
식자의 등장, ‘학위’의 발명, 근대 대학의 시작점
프랑스의 중세 철학자 자크 베르제의 《공부하는 인간: 중세 후기 유럽의 식자들》을 읻다에서 출간하였다. 자크 베르제는 대학을 중심으로 한 중세 교육제도를 평생토록 연구한 사람이다. 베르제의 오랜 연구 끝에 1997년에 발간된 이 책은 오늘날 당연하게 여겨지는 ‘학위’ 제도와 그에 따른 교육 기관의 탄생을 다룬다.
책의 1부에서는 중세 말 서유럽에서 식자들을 정의하는 특징이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2부에서는 식자들이 능력에 따라 당시 사회에서 어떤 직분을 맡을 수 있었는지 살펴보았다. 나아가 이런 역할의 수행이 사회적·정치적 연속성에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3부에서는 “새로운 사람들인가 상속자들인가”라는 주제 아래 중세 말 식자층의 등장을 비평한다.
과연 중세 말에 등장한 식자층은 당시 사회의 어떤 구성 요소였으며, 그 안에서 어떤 기능을 했는지 이 책을 통해 알아가 보자.
중세 후기의 만화경, 식자
식자(識字)란 무엇인가? 《공부하는 인간: 중세 후기 유럽의 식자들》에서 다루는 식자들은 특정한 유형의 교양을 소유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그들이 지닌 교양은 어떤 형태인지, 그들은 사회적으로 어떤 위상을 누렸는지 소상히 다루었다.
식자는 지식을 기반으로 특정 업무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읽고 쓰는 능력뿐 아니라 책을 활용해 지식을 보존하거나 연구한다. 그리고 그 활동을 통해 사회적 위치를 갖고, 경제 활동을 이어간다. 이런 면에서 《공부하는 인간》에서의 식자는 ‘지식인’과는 범주가 약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르 고프의 ‘지식인’이 어쨌거나 학교의 인간, 가르치고 배우는 인간이라면, 베르제의 ‘식자’는 학교 바깥에서 배움을 활용하는 이들, 배움을 밑천 삼아 교회나 국가나 도시에서 한자리를 얻어냈던 이들, 심지어는 풍월 수준의 학식으로 생계를 꾸린 초급학교 교사, 하급 관리, 공증인이나 외과술사 등 ‘매개적 지식인들’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들 없이 지식이 전파될 수 없고, 유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_‘옮긴이의 말’ 중에서
책의 부제에서도 드러나지만, 중세 말인 14~15세기는 종교·사회·정치적 측면에서 식자층이 중요하고 유효한 행위자가 될 만큼 그 인원수와 사회적 무게가 확보됐다. ‘근대국가’는 식자들 없이는 탄생할 수 없었다. 이처럼 식자들은 ‘암흑시대’라 여겨진 중세의 풍경을 만화경처럼 다채롭고 다양하게 비추고 있다.
근대의 토대, 공부하는 인간
“배움은 단지 알기 위함이 아니라 내보이고 실천하기 위함이다”
이 책의 제1부에서는 중세 말 식자에게 요구된 지식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본다. 더불어 이들이 어떤 유형의 학교에서 어떤 책을 이용하여 교육을 받고, 사회적 규정에 핵심이 되는 앎에 숙달했는지도 알아볼 것이다.
중세 지식 문화에서 핵심이자 권위였던 라틴어에서 편리하고 이해하기 쉬운 당시 현지어의 부흥, 학문으로서 인정받게 된 의학, 법률가의 사회적·정치적 성공 등 중세 말 지식 문화는 목적성과 사회적 유용성을 모두 갖췄다.
대학의 통제 아래 새로운 형태의 학교들(초급학교, 학숙, 학당 등)이 만들어지고, 그곳에서 교육받은 식자들은 학업에 들인 시간과 비용으로부터 수익을 거두는 데 골몰하기도 했다. 그 안에서 식자들은 여러 임무를 수행했고, 안정적인 기득권 세력권 안에 들어가고자 했다. 그럼으로써 교육은 도제식 교육에서 직업 교육으로써 행해졌고, 현대 대학 모델의 기본 틀이 형성되었다.
더불어 경제 활동으로 비싼 책을 살 수 있게 된 식자층 덕에 ‘책을 소유하는 문화’가 발생했다. 후에 인쇄술의 책을 소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열렸다.
2부에서는 “중세의 지식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한 번 더 던져보고 그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이룬다. 인정받는 식자들의 능력이 무엇이었는지, 다변화하고 복잡한 사회 속에서 식자들에게 어떤 유형의, 어떤 수준의 사회적 직군의 길이 열렸는지 검토한 뒤 사회학적 현실의 문제로 옮겨간다.
국가의 성장으로 관직 수가 늘어나면서 식자의 증식이 촉진되었지만, 거기서 무슨 결론을 끌어내야 할까? 지방 사회의 가장 미미한 층위에까지 모세혈관을 탄 듯 지식 문화가 전파되었다는 것인가, 아니면 학위가 평가 절하되었다는 것, 앞으로 침울한 여가밖에, 미래 없는 팔자라는 지식인의 빤한 도정밖에 누리지 못할 학위 취득자의 좌절감인가? _178p
식자들은 그저 전통적 범주인 성직자, 귀족, 시민 안에서 어떤 역할만을 수행했을까? 몇몇 식자는 통상적인 사법과 행정 업무 수행을 넘어서는 정치적 참여도 개시했다. 그들은 관리자와 조언자 역할을 하면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는데, 식자들 집단의 내적 연대, 즉 단결심 덕분이다.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식자층은 그 자신에게 가장 큰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변화의 길을 틀어놓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3부에서 식자층은 새로운 계층인가, 아니면 기존 권력계를 새로이 세습하는 계층인지 논의한다.
다소간 깊이 학문 교과를 공부하느라 힘쓰고 또 이 수련 과정이 고생스러움을 숨기지 않는 이들은, 이런 유의 학업이 영예로운 것이자 사회·정치적으로 유용한 것임을 확신했고, 그로부터 최대한으로 자기 자신의 이익을 끌어내면서 친지들, 즉 빈번히 재정적으로 학업에 보탬을 준 이들도 득을 보게 하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특히 평범한 가족에서 아이 한 명에게 학업의 길을 열어준다는 것은 모두가 사정이 허락하는 만큼 힘을 보태야 할 고된 사업이었을 테니 말이다. _260p
몽테뉴는 식자층, 법조인 등으로 이루어진 이 집단을 “제4신분”이라 말했다. 또 다른 별도의 집단의 탄생을 사회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들의 수는 꾸준히 늘어났고, 사회적 영향력도 증대했다. 하지만 그만큼 그들을 강하게 구속하는 교회와 정치에 맞서야 했고, 그들 안으로 점점 더 깊이 편입되었다. 식자층의 ‘정치화’는 인상적이면서도, 그들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베르제는 말한다.
배움의 역사는 개혁의 역사다. 그런데 무엇을 위한 개혁인가? 책의 한 장에 “지식과 권력”이라는 제목을 붙인 베르제는 권력자들의 압력뿐 아니라 식자들의 욕심도 놓치지 않는다. 현대처럼 이상과 현실이, 이데올로기와 이해득실이 뒤얽혀 있다. 중세의 중세인들도 그들 자신을 가리킬 때 “우리, 현대인들”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서유럽과 중세라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이 문제의식들은 현재에도 계속된다.
책의 1부에서는 중세 말 서유럽에서 식자들을 정의하는 특징이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2부에서는 식자들이 능력에 따라 당시 사회에서 어떤 직분을 맡을 수 있었는지 살펴보았다. 나아가 이런 역할의 수행이 사회적·정치적 연속성에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3부에서는 “새로운 사람들인가 상속자들인가”라는 주제 아래 중세 말 식자층의 등장을 비평한다.
과연 중세 말에 등장한 식자층은 당시 사회의 어떤 구성 요소였으며, 그 안에서 어떤 기능을 했는지 이 책을 통해 알아가 보자.
중세 후기의 만화경, 식자
식자(識字)란 무엇인가? 《공부하는 인간: 중세 후기 유럽의 식자들》에서 다루는 식자들은 특정한 유형의 교양을 소유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그들이 지닌 교양은 어떤 형태인지, 그들은 사회적으로 어떤 위상을 누렸는지 소상히 다루었다.
식자는 지식을 기반으로 특정 업무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읽고 쓰는 능력뿐 아니라 책을 활용해 지식을 보존하거나 연구한다. 그리고 그 활동을 통해 사회적 위치를 갖고, 경제 활동을 이어간다. 이런 면에서 《공부하는 인간》에서의 식자는 ‘지식인’과는 범주가 약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르 고프의 ‘지식인’이 어쨌거나 학교의 인간, 가르치고 배우는 인간이라면, 베르제의 ‘식자’는 학교 바깥에서 배움을 활용하는 이들, 배움을 밑천 삼아 교회나 국가나 도시에서 한자리를 얻어냈던 이들, 심지어는 풍월 수준의 학식으로 생계를 꾸린 초급학교 교사, 하급 관리, 공증인이나 외과술사 등 ‘매개적 지식인들’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들 없이 지식이 전파될 수 없고, 유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_‘옮긴이의 말’ 중에서
책의 부제에서도 드러나지만, 중세 말인 14~15세기는 종교·사회·정치적 측면에서 식자층이 중요하고 유효한 행위자가 될 만큼 그 인원수와 사회적 무게가 확보됐다. ‘근대국가’는 식자들 없이는 탄생할 수 없었다. 이처럼 식자들은 ‘암흑시대’라 여겨진 중세의 풍경을 만화경처럼 다채롭고 다양하게 비추고 있다.
근대의 토대, 공부하는 인간
“배움은 단지 알기 위함이 아니라 내보이고 실천하기 위함이다”
이 책의 제1부에서는 중세 말 식자에게 요구된 지식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본다. 더불어 이들이 어떤 유형의 학교에서 어떤 책을 이용하여 교육을 받고, 사회적 규정에 핵심이 되는 앎에 숙달했는지도 알아볼 것이다.
중세 지식 문화에서 핵심이자 권위였던 라틴어에서 편리하고 이해하기 쉬운 당시 현지어의 부흥, 학문으로서 인정받게 된 의학, 법률가의 사회적·정치적 성공 등 중세 말 지식 문화는 목적성과 사회적 유용성을 모두 갖췄다.
대학의 통제 아래 새로운 형태의 학교들(초급학교, 학숙, 학당 등)이 만들어지고, 그곳에서 교육받은 식자들은 학업에 들인 시간과 비용으로부터 수익을 거두는 데 골몰하기도 했다. 그 안에서 식자들은 여러 임무를 수행했고, 안정적인 기득권 세력권 안에 들어가고자 했다. 그럼으로써 교육은 도제식 교육에서 직업 교육으로써 행해졌고, 현대 대학 모델의 기본 틀이 형성되었다.
더불어 경제 활동으로 비싼 책을 살 수 있게 된 식자층 덕에 ‘책을 소유하는 문화’가 발생했다. 후에 인쇄술의 책을 소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열렸다.
2부에서는 “중세의 지식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한 번 더 던져보고 그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이룬다. 인정받는 식자들의 능력이 무엇이었는지, 다변화하고 복잡한 사회 속에서 식자들에게 어떤 유형의, 어떤 수준의 사회적 직군의 길이 열렸는지 검토한 뒤 사회학적 현실의 문제로 옮겨간다.
국가의 성장으로 관직 수가 늘어나면서 식자의 증식이 촉진되었지만, 거기서 무슨 결론을 끌어내야 할까? 지방 사회의 가장 미미한 층위에까지 모세혈관을 탄 듯 지식 문화가 전파되었다는 것인가, 아니면 학위가 평가 절하되었다는 것, 앞으로 침울한 여가밖에, 미래 없는 팔자라는 지식인의 빤한 도정밖에 누리지 못할 학위 취득자의 좌절감인가? _178p
식자들은 그저 전통적 범주인 성직자, 귀족, 시민 안에서 어떤 역할만을 수행했을까? 몇몇 식자는 통상적인 사법과 행정 업무 수행을 넘어서는 정치적 참여도 개시했다. 그들은 관리자와 조언자 역할을 하면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는데, 식자들 집단의 내적 연대, 즉 단결심 덕분이다.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식자층은 그 자신에게 가장 큰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변화의 길을 틀어놓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3부에서 식자층은 새로운 계층인가, 아니면 기존 권력계를 새로이 세습하는 계층인지 논의한다.
다소간 깊이 학문 교과를 공부하느라 힘쓰고 또 이 수련 과정이 고생스러움을 숨기지 않는 이들은, 이런 유의 학업이 영예로운 것이자 사회·정치적으로 유용한 것임을 확신했고, 그로부터 최대한으로 자기 자신의 이익을 끌어내면서 친지들, 즉 빈번히 재정적으로 학업에 보탬을 준 이들도 득을 보게 하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특히 평범한 가족에서 아이 한 명에게 학업의 길을 열어준다는 것은 모두가 사정이 허락하는 만큼 힘을 보태야 할 고된 사업이었을 테니 말이다. _260p
몽테뉴는 식자층, 법조인 등으로 이루어진 이 집단을 “제4신분”이라 말했다. 또 다른 별도의 집단의 탄생을 사회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들의 수는 꾸준히 늘어났고, 사회적 영향력도 증대했다. 하지만 그만큼 그들을 강하게 구속하는 교회와 정치에 맞서야 했고, 그들 안으로 점점 더 깊이 편입되었다. 식자층의 ‘정치화’는 인상적이면서도, 그들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베르제는 말한다.
배움의 역사는 개혁의 역사다. 그런데 무엇을 위한 개혁인가? 책의 한 장에 “지식과 권력”이라는 제목을 붙인 베르제는 권력자들의 압력뿐 아니라 식자들의 욕심도 놓치지 않는다. 현대처럼 이상과 현실이, 이데올로기와 이해득실이 뒤얽혀 있다. 중세의 중세인들도 그들 자신을 가리킬 때 “우리, 현대인들”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서유럽과 중세라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이 문제의식들은 현재에도 계속된다.
공부하는 인간 : 중세 후기 유럽의 식자들 - 숲속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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