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없는 날들 (양장)

위로 없는 날들 (양장)

$15.00
Description
프란츠 카프카 타계 100주년 기념
위로 없는 행복의 기록, 취라우 파편집
프란츠 카프카 타계 1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란츠 카프카의 취라우 파편집 《위로 없는 날들》이 읻다에서 역자 박술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카프카는 1917년 8월 11일 새벽, 삶의 운명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큰 각혈을 겪고 나서 폐결핵 진단을 받으며 병가를 얻은 34세의 젊은 카프카는 여동생 오틀라가 있는 프라하 서쪽의 시골 마을 취라우에 머물게 된다. 역자 박술은 해제에서 “나중에 카프카가 취라우에서 보낸 이 시절을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회상한다”고 말하면서, “행복? 결핵 진단을 받고서야 얻은 행복은 어떤 것일까. ‘위로 없음’을 ‘선함’이라고 느끼는 시간은 어떤 휴식이었을까” 하고 이어서 질문한다. 이 시기 취라우에서 카프카는 내면의 더러움, 상처, 심연과 대결하고자 하는 결심을 세워놓았던 듯하다. 카프카는 철학이나 신학의 영역에 속하는 질문들, 죄와 타락, 낙원에서의 추방, ‘파괴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에 대한 사유를 전개하게 된다. 개념적이면서도 은유적이고, 우화적인 동시에 모순적인 텍스트, 현대문학에서 가장 특이한 작품 중 하나인 《취라우 파편집》은 그렇게 탄생한다.

취라우 파편집의 작업 과정은 매우 특이했다. 카프카는 얇은 편지 용지를 네 조각으로 잘라서 쪽지를 한 묶음 만든 다음에, 109번까지의 번호를 할당하고 단상을 하나씩 적어 넣었다. 빠진 번호도 있고, 두 개의 번호를 단 쪽지도 있었고, 취라우를 떠난 이후 몇 개의 단상을 추가하거나 삭제 줄을 그은 텍스트도 생기지만, 카프카는 모든 쪽지를 원형 그대로 보존한다. 일종의 자기만의 비밀 프로젝트였던 것. 카프카는 생전에 이 단상들을 보여주지 않았고, 출판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취라우 아포리즘(Zürauer Aphorismen)》 같은 제목 또한 후대에 붙여졌다.

《위로 없는 날들》은 아포리즘이나 단상 등 기존의 어떤 분류에도 잘 들어맞지 않는다. 역자 박술은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시작이자 불완전한 치유였던 날들의 기록이며, 위로 없는 날들의 어두운 행복이 내어준 생각이기 때문일 것이다. 취라우의 나날들에서 기록된 이 사유는 그렇기에 자유롭다.”

카프카의 ‘위로 없는 날들의 기록’인 《위로 없는 날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의 ‘위로 없는 날들’을 한 번쯤 돌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저자

프란츠카프카

저자:프란츠카프카
1883년체코의프라하에서태어났다.아버지는유대인상인이었으며,부유한집안출신의어머니와결혼하여카프카와엘리,발리,오틀라라는세여동생이태어났다.1901년프라하대학교에서법률학을공부한카프카는1906년에법학박사학위를받았다.이시기「어느투쟁의기록」을쓴카프카는1908년부터1922년7월퇴직할때까지스스로‘기동연습생활’이라일컬을정도로고된,낮에는일하고밤에는글을쓰는생활을이어나갔다.1912년9월여덟시간만에「선고」를완성하고,12월에「변신」을탈고하여프라하에서첫번째공개낭독회를가졌다.그로부터삼년뒤인1915년에『변신』을,1916년에『선고』를출판한다.1917년폐결핵진단을받은카프카는집필을계속하여1919년에『유형지에서』를출판하고,이후1922년『성』을집필하였으나병세가악화되어1924년에키어링요양원에머물다가6월3일사망했다.이후나머지작품을모두없애달라는카프카의유언에도불구하고친구막스브로트가보관하고있다가카프카의작품들을출판했다.

역자:박술
뮌헨대학교에서철학,수학,문학을공부했다.육군사관학교철학과조교수로근무했으며,힐데스하임대학교철학과에서박사학위를취득했다.현재힐데스하임대학교철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2012년《시와반시》신인상을수상했으며,옮긴책으로비트겐슈타인의《전쟁일기》,니체의《비극의탄생》(공역),노발리스의《밤의찬가/철학파편집》,트라클의《몽상과착란》,횔덜린의《생의절반》이있다.

목차

1~109
해제:위로없는행복의기록

출판사 서평

프란츠카프카타계100주년기념
위로없는행복의기록,취라우파편집
프란츠카프카타계100주년을기념하여프란츠카프카의취라우파편집《위로없는날들》이읻다에서역자박술의번역으로출간되었다.
카프카는1917년8월11일새벽,삶의운명적인변화를맞이한다.큰각혈을겪고나서폐결핵진단을받으며병가를얻은34세의젊은카프카는여동생오틀라가있는프라하서쪽의시골마을취라우에머물게된다.역자박술은해제에서“나중에카프카가취라우에서보낸이시절을가장행복했던시간으로회상한다”고말하면서,“행복결핵진단을받고서야얻은행복은어떤것일까.‘위로없음’을‘선함’이라고느끼는시간은어떤휴식이었을까”하고이어서질문한다.이시기취라우에서카프카는내면의더러움,상처,심연과대결하고자하는결심을세워놓았던듯하다.카프카는철학이나신학의영역에속하는질문들,죄와타락,낙원에서의추방,‘파괴될수없는것’과같은것에대한사유를전개하게된다.개념적이면서도은유적이고,우화적인동시에모순적인텍스트,현대문학에서가장특이한작품중하나인《취라우파편집》은그렇게탄생한다.

취라우파편집의작업과정은매우특이했다.카프카는얇은편지용지를네조각으로잘라서쪽지를한묶음만든다음에,109번까지의번호를할당하고단상을하나씩적어넣었다.빠진번호도있고,두개의번호를단쪽지도있었고,취라우를떠난이후몇개의단상을추가하거나삭제줄을그은텍스트도생기지만,카프카는모든쪽지를원형그대로보존한다.일종의자기만의비밀프로젝트였던것.카프카는생전에이단상들을보여주지않았고,출판하려고도하지않았다.당연히《취라우아포리즘(ZurauerAphorismen)》같은제목또한후대에붙여졌다.

《위로없는날들》은아포리즘이나단상등기존의어떤분류에도잘들어맞지않는다.역자박술은그이유에대해이렇게말한다.“새로운시작이자불완전한치유였던날들의기록이며,위로없는날들의어두운행복이내어준생각이기때문일것이다.취라우의나날들에서기록된이사유는그렇기에자유롭다.”

카프카의‘위로없는날들의기록’인《위로없는날들》을통해,오늘날우리의‘위로없는날들’을한번쯤돌아보는것도좋지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