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도 정형 미학 2

민병도 정형 미학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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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대학 시절 어느 교양 잡지에 실린 이영도 선생의 시조(「영위」)를 읽고 시조의 매력에 빠진 지 5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이름을 선보인 지도 50주년에 이르렀습니다. 사숙으로 이영도 선생께 3년, 정완영 선생께 1년을 배울 때까지도 시조의 고지가 가시권에 있는 줄만 알았습니다.
형식을 이해했나 싶으면 율격이 가로막고 가락에 접근하면 주제가 빈약하여 적잖은 시간을 혼돈에 휩싸였습니다. 가까스로 주제와 메시지에 정착하면 현대적 미학의 갈증에 목이 마르고 표현의 기교에 집중하면 가치 질서에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오랜 기간 탈선하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붙잡아준 시선과 손길들이 있었으니 작품 해설과 작품론, 작품 평설評說이 곧 그것입니다.
자신의 눈높이에서 관찰하고 헤아려서 작품의 또 다른 의미 확장을 꾀한 글들로부터 새로운 방향성을 읽어내어 길라잡이의 역할을 감당한 글들에 이르기까지 그 접근방식 또한 다양하였습니다. 50년이 넘는 긴 여정이고 보면 여러 번의 돌진과 여러 번의 좌절과 여러 번의 시행착오가 여과 없이 드러난 결과일 터이니 일관된 맥락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스스로 돌아봐도 겹겹 한 고봉준령일 뿐입니다. 그러한 행간에서 나 자신의 생각을 꿰뚫어 보고 가는 길에 대한 믿음과 용기를 주는 글을 만났을 때의 안도감은 적잖은 위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편수나 분량이 쌓여감에도 자신의 작품에 대한 평설을 독자들에게 늘어놓거나 강요하는 모양새가 마뜩잖아 밀쳐두었으나 반세기의 만행을 돌아보는 것도 새로운 길라잡이라는 생각에서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모두 세 권 정도의 분량이었으나 두 권으로 추려서 책으로 묶어본 것입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이 자신이 편집하고 다른 사람의 명의를 빌려 내는 모양새를 취하는가 봅니다. 저에게도 그렇게 권하는 이들이 있었으나 편저라는 의미가 글을 모아서 낸 책에 불과하기에 자신의 이름으로 묶기로 하였습니다. 남의 이름을 빌린다고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돌아봅니다. 무엇이 그토록 오래 나를 꼼짝할 수 없도록 옭아맨 시조는 나에게 무엇이던가를 말입니다. 우리 민족 고유의 독자적 정형시, 시조에는 장부의 한 생애를 바칠만한 어떤 매력이 있었던가를 말입니다.

시조는 우리 민족이 지향한 시대 미의식의 창조적 기록이자 미래지향적 가치질서의 금고라는 믿음 때문일는지 모르겠습니다. 처음 대했을 때는 감정에 진심인 자기 해소인가도 싶었지만 나이테처럼 드러나는 진단과 처방을 위한 다양한 모색에 이르러서는 시대의 지성이 선택한 가장 경건한 축복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은 정지적 가치가 아니라 끊임없는 진단과 새로운 가치의 모색을 통한 아름다운 숨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며 오늘의 제 시조를 특화할 수 있는 차별성에 골몰해 온 것이 어이없게도 스물다섯 권의 시조집과 다섯 권의 평론집이었으니 턱없는 연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간 영글지 못한 작품을 톺아 읽으시고 과분한 평가와 기대를 동시에 보내주신 많은 시인, 평론가들에게 마음 조아려 감사드립니다. 더러는 격려성으로 안내해준 길라잡이였을지라도 그로 인해 독자가 생기고 저에게는 지금껏 붓을 놓지 않고 오늘에 이르게 한 힘이 되었습니다. 다만 저의 비재菲才가 그 같은 기대를 충족할만한 걸작이나 명작으로 보답하지 못하여 유감일 따름입니다.
다만 그러함에도 민족의 유장한 정신을 관류하여 서정성과 미의식을 계승해온 시조만큼은 가깝고도 먼 신앙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금 옷깃을 여미고 시조에 바쳐온 제 삶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2026년 6월
민 병 도
저자

민병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