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15.64
저자

정지아

1965년전라남도구례에서태어났으며,중앙대학교문예창작학과박사과정을마쳤다.1990년『빨치산의딸』을출간했고1996년「고욤나무」로조선일보신춘문예소설부문당선되었다.소설집『행복』,『봄빛』,『숲의대화』,『자본주의의적』등이있다.이효석문학상,한무숙문학상,올해의소설상,노근리평화문학상을수상하였다.그밖에저서로는청소년소설『숙자언니』,『어둠의숲에떨어진일곱번...

목차

1부
나는너의정체를알고있다
첫술은아빠
시바스,변절과타락의시작
청춘은청춘을모른다
우리들의축제의밤
너의푸른눈동자에건배!
먹이사슬로부터해방된초원의단하루
세상의모든고졸을위하여
오병이어의기적남원역전막걸리

2부
천천히오래오래가만히
계란밥에소주한잔!
블러디블라디
나의화폐단위는블루
샥스핀과로얄살루트그리고찬밥
타락의맛,맥켈란1926
그?그녀?아니그냥너!
호의를받아들이는데도여유가필요하다
존나빠른달팽이작가입니다

3부
존나무서웠을뿐…
내인생에빠꾸는없다
흩날리는벚꽃과함께춤을
다정의완성
초원의모닥불이사위어갈때
우리는그때서로사랑했을까
춤바람고백기-추억의제이제이
오래있었습네다
술이소화제라

4부
관계는폐쇄적으로,위스키는공격적으로!
어느여름날의천국
내가너에게,네가나에게스며든시간
노골노골땅이녹는초봄,마음이노골노골해서
여우와함께보드카를!
관계의유통기한
나의블루공급책

에필로그

출판사 서평

“세월이지날수록깊어지는,영아닌것같다가좋아지는,
그런관계도세상에는있는것이다.위스키가그러하듯이.”
시공간을뛰어넘어서로를이해하고보듬게만드는술,그리고사람의온기

구례간전은해가짧다.앞으로는지리산이,뒤로는백운산이높이솟아있어금세날이저문다.쭈뼛거리던뒷산그림자가슬그머니집앞마당을삼키고섬진강에다다를때쯤이면고라니울부짖는소리만이산에서저산을오간다.그리곤이내완전한어둠.가로등도없는섬진강변도로를간혹뜨내기여행객들의차가소리없이지날뿐이다.
하지만어둠이짙어질수록환하게빛을발하는집이있다.바로‘문학박사정지아의집’이다.정지아작가의집은불이쉬이꺼지지않는다.낮보다는밤에글을쓰는작가의습관때문이다.작가를비롯해고작네가구가머무는작은마을에서는밤새소쩍새소리보다도더길게,타닥타닥작가의타자치는소리를들을수있다.그야말로긴긴밤이다.
그기나긴밤을외롭지않게하는건‘술’이다.정지아작가는소문난애주가다.술을많이마신다기보다는마셔야할때마실줄안다.“바람이좋아서,비가술을불러서,저찬란한태양이술을마시라해서,눈발이휘날리는데맨정신으로있기힘들어서…”그리고사람이있어서.정지아작가의집에는손님이끊이지않는다.그만큼밤늦게불이켜져있는시간도길다.어렸을적고향에서,수배길에서,강단에서,그리고먼이국에서술한잔을사이에두고벽을허문사람들.이책은정지아작가가그오랜시간마주했던술과사람에대한이야기다.

“그날로부터나의변절과타락이시작되었다.
참으로감사한날이지아니한가!”
자본주의종주국의위스키를들고지리산을누비는빨치산의딸,정지아

사회주의자아버지와어머니사이에서태어난늦둥이딸이처음술을입에댄건열아홉의크리스마스이브,눈이펑펑쏟아지던겨울날이었다.집에서친구들과밤새놀기로한딸에게부모님은직접담근매실주를내어주곤화투를친다는핑계로집을비운다.그렇게소복소복눈쌓이는소리를들으며십대의마지막겨울을보낸정지아작가는세상을뒤덮은백색의순수속에서이런생각을한다.“이토록순수하게,이토록압도적으로살고싶다”고.
그러나빨치산의딸에게세상은녹록지않았다.독재정권으로부터늘감시의대상이되었던작가는,결국수배를받고긴도망길에오른다.자본주의종주국의술위스키를처음맛본건수배중다른이의눈을피해오른지리산에서였다.위스키를챙겼던건오로지가볍고빨리취할수있기때문이었다.하지만한겨울늦은밤,뱀사골산장에모인사람들사이에서작가는남몰래패스포트를꺼내어마시다그만정체가발각되고만다.그런데정지아작가를알아본사람들역시각기다른방식으로군부독재에저항하던전사들이었고,그들은그렇게위스키에취해잠시나마자유와연대의밤을보낸다.
몇년뒤,세상으로나온작가는“가난과슬픔과좌절로점철된”지난날들과작별하고오늘을살아가는사람들틈으로스며든다.과거의끄트머리를잡고있기보다는아버지의말씀처럼앞으로의역사에도움이되는일을하자고,소설을통해자신의역할을다하자다짐한다.그래도작가는외롭거나슬프지않았다.그의곁에는언제나좋은술이있었고,그보다좋은사람들이있었으니까.

“나는당신이좋다.좋은사람이니까.
당신도나도술꾼이니까.”
재미와감동을동시에,사람과사람사이의벽을허무는도수높은이야기들의향연

사실정지아작가는“친구사귀는데참으로긴시간이필요한사람이다”.“10년쯤은만나야아,친구가될수있겠구나”생각한다.그래서때로는사람이가까이다가오기도전에지레겁을먹고벽을세운다.그런작가에게술은단순히취하기위한도구가아니다.내셔널지오그래픽에나오는아프리카초원어딘가의사과나무처럼,그사과나무의열매를먹고취해사자의대가리를밟고날아오르는원숭이처럼,술은자신의한계를깨부수게하는날개다.좋은술과함께하는날이면정지아작가는겁없이한걸음더사람곁으로다가간다.
『마시지않을수없는밤이니까요』에는그렇게술잔을부딪히며벽을허문사람들과의이야기가담겨있다.가장찬란했던시절의추억을공유한채지금은제각기서로다른비극을마주하며살아가는고향친구들,날실과씨실처럼오해와이해를반복하며우정을쌓아온오랜선후배들,무심한표정으로뜨거운손을내밀었던은사님들과그들처럼제자들의손을잡아주고싶었던스승으로서의바람,사랑과그리움사이어느지점을같이거닐었던인연까지.페이지를넘기다보면분명독자들도가슴깊이보고싶은누군가를떠올리게될것이다.
이야기는사람과사람사이에만머물지않는다.멀리일본으로,베트남으로,몽골로날아가우리가외면하고살아가는역사의비극적단면을떠올리게한다.북한에서『아버지의해방일지』에등장하는김선생님의소식을듣고,보위부간부와술대결을펼쳤던장면은이책의백미다.술과사람이있는곳은어디든다비슷하단걸,“그금단의땅북한에서도”그럴수있다는걸작가는알려준다.
정리하자면『마시지않을수없는밤이니까요』는술에관한이야기지만,그보다는술을둘러싼사람에대한이야기다.그사람은이책의저자인정지아작가이기도하고,지금이서평을쓰는편집자이기도하고,이글을읽는당신이기도하다.그래서장담컨대,당신이이책의마지막장을덮을때쯤이면분명빈술잔을매만지며술꾼으로서의당신을발견하게될것이다.오늘은당신에게‘마시지않을수없는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