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 : 마치 세상이 나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 : 마치 세상이 나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16.80
Description
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쪼개 책을 쓰고,
책을 쓰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쪼개 일기를 쓰는 작가가
남의 일기까지 읽으며 쓴 일기
이 책은 ‘애서가들이 사랑하는 작가’ 금정연의 첫 일기집이다. 2021년 겨울부터 2023년 가을까지 약 2년간의 일기를 모아 계절별로 실었다.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의 일기에 과거 다른 작가들의 일기를 현재적으로 포개어 일종의 ‘평행 세계’를 펼쳐 놓는다는 점이다.
몇 년 전부터 서평보다 일기를 더 많이 쓰는 것으로 알려진 ‘서평가’(?) 금정연의 일기에는 역시 그답게 엄청난 독서 이력이 배어 있다. 거의 매일 글 마감을 하고, 유치원에 갓 입학한 딸을 비롯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글 동료들과 만나 마음을 나누는 저자의 일상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요나스 메카스·최승자·비톨트 곰브로비치·프란츠 카프카·실비아 플라스·버지니아 울프·수전 손택·황정은·알베르 카뮈·너새니얼 호손·조지 오웰·롤랑 바르트·미셸 투르니에·찰스 부카우스키·발터 벤야민·오한기·정지돈·유미리·조르주 페렉·아니 에르노·김환기·김지승 등 시대를 풍미한 전 세계 작가들의 일상과 만나 공존한다. 유머러스하면서도 더없이 진지하며, 웃기면서도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나는 금정연과 작가들의 일기 모음은, 책을 사랑하고 ‘뭐라도 쓰는 삶’을 꿈꾸는 오늘날의 수많은 독자들에게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저자

금정연

저자:금정연
읽고쓰는사람.『서서비행』,『난폭한독서』,『실패를모르는멋진문장들』,『아무튼,택시』,『담배와영화』,『그래서...이런말이생겼습니다』를쓰고,『문학의기쁨』,『우리는가끔아름다움의섬광을보았다』등을함께썼다.『글을쓴다는것』,『동물농장』,『수동타자기를위한레퀴엠』등을우리말로옮겼다.

목차

겨울
일기?그거야시간문제지/백미터만앞으로나아갑시다
매닉스LP를샀다,그리고많은것이달라졌다/크리스마스이브?그런데내전재산은
트위터에“올해책다섯권내야지”라고적었다/월요일나.화요일나.수요일나.
말하자면모든것이필요했다/우리에게는필요한시간이모두주어져있다


금정연_ㅅ.hwp/글쓰기외의직업을갖고싶다는소망
이책은이렇게나올운명인모양/내책은출판에임박해떨고있으며
한마디로,너무피곤하다/‘은신처’라는책을펴낼생각이야

여름
내책이한권도없는서점에서/한밤에책이쓰러지는소리에
언제까지이런메일을써야할까?/돈편지(moneyletter)의저주
그모든것들을버리고나는무엇을?/네가말한모든것을기록하고싶다

가을
마흔둘의생일이이렇게지나간다/나에게필요한것은그옛날의박력
상금이라도받지않으면못견딜자리/내가‘노벨상가능자’인것은사실이다
이런어린이가어디있냐/진짜걱정은어른들의얼굴높이에있다

겨울
그야말로중년의연말이다/조심조심쓰는건죽음과같은글쓰기
그런데어디로가지?/시계는‘떠남’을가리키고있다
근데다그냥될거같은데?이센스가노래했다/이제아빠는우주로돌아가는거야?

다시,봄
발등은타고있는데어째서마음이편한거지?/안가라앉는날이있나!
오늘도자라느라고생이많은나윤이는/너도아이처럼그냥계속뚝딱거려봐
나는미쳤다,나는글들을지배한다/어떤……막막함이……중첩되었다

여름
나는쓰레기인가?직업윤리가없나?/쓰고싶지않았다,도망치고싶었다
남들다하루치늙는동안나혼자/마이크에이야기한다,나혼자서
내생각엔,그게바로작가인것같다/그문장을아예지우기로했다

가을
그렇지만나는쓰지않을수없고/세상을말로옮겨놓는단순한습관
그렇다면일기는내가아는최고의핑계/나는살고싶기때문에

출판사 서평

“일기?그거야시간문제지!그리고내게는시간이없다.
일기만쓰기에도하루가부족하다.”

저자가요즘쓰는일기는크게다섯종류다.독서일기,육아일기,오디오일기,어둡고축축한마음의바닥에대한무삭제판(unabridged)일기….그리고이책은‘일기를읽으며적는일기’,줄여서‘일기-일기’,‘더블다이어리’라고할수있다.
저자는‘책깨나읽는사람들의서점’알라딘의인문사회MD로처음알려지기시작했고,2012년‘생계독서가’라는인상적인수식어와함께데뷔했다.그뒤로도‘서평가’,‘서평을쓰지않는서평가’등의모순적인네이밍으로계속해서글을쓰고책을냈다.영화,음악,문학,세상사등에조예가깊으면서도유머러스한글들이었지만,그렇다고어느한분야의비평은아니었다.장르를한마디로정의내리기힘들었음에도그의글을좋아하는마니아는점점더늘어났으며,책을사랑한다면서그의이름을모르는독자는이제거의없을정도다.
그리고10년도더지난지금,그는비교적명확하게이름할수있는글을쓰고있다.일기.지금그는일기를쓰는사람이다.어쩌면그가써온모든글이일종의‘일기’였을수도있다.
이책은그자신의일기이면서,동시에남들의일기에대한일기이다.이일기-일기에서그는책,영화,육아,음악,강연,노화등자신의생활과주요관심사에대해이야기하지만,이책이그중어느한가지에대한일기라고할수는없다.일기란본디주제가없기때문이다.그는그저하루하루살아가고,그과정을적고,남의일기에서자신과비슷하거나다른삶을읽으며,또그것을적을뿐이다.

어제의작가와오늘의작가가만나면무슨이야기를나눌까?

“쓰고싶지않았다,도망치고싶었다,사라져버리고싶었다”-유미리
“그렇지만나는쓰지않을수없고”-금정연

이책은글을쓰는삶,매일뭐라도쓰는삶이란어떤것인지끊임없이되묻게한다.‘작가의삶이란이렇다’고가르쳐서가아니라,저자의날것그대로의일상과,그와겹쳐지는과거대문호들의속마음을가감없이담아냈기때문이다.평생쓰기를멈추지않았던마르그리트뒤라스는죽기1년전작품에서“쓴다는게겁나,그게다야”라고말한다.최승자시인은금정연과비슷한나이즈음아이오와에서“전재산은50달러”,“이모든게책값때문”이라고자조한다.역시그나이즈음세상을떠난카프카는죽기1년전“모든단어들은유령의손안에서방향을바꾸면서화자에게로끝을겨누는창이된다”라고토로한다.존파울즈는“모르겠다,인생을낭비하고있다,돈도없고야망도없다”라고자신의현재를표현한다.스스로죽음을선택한실비아플라스는“내가살아있는지,살아있었던적이나있었는지”자문하며“글쓰기외의직업을갖고싶은소망”을언급한다.버지니아울프는자신이“작가로서실패했”으며,“유행에뒤처졌고,나이도먹었고,더이상뭘잘할수도없으며,머리가나쁘다”라고자평한다.당시이미주목받는작가였던수전손택역시“내가불완전하기때문에매력도없고사랑받지도못한다”,“잘못된건나라는사람자체가아니고,내가‘그이상’이못된다는사실이다”라고털어놓는다.스톡홀름에서문학을가르치던악셀린덴은도시생활을접고목장으로내려가양을치기시작한뒤에이렇게일갈한다.“이세상에지속가능한것은아무것도없다.이세상이지속가능했던적도없다.그런데다들별일아닌척한다.”
이렇게쓸수도없고쓰지않을수도없는,이대로살수도없고살지않을수도없는운명으로어제의작가와오늘의작가는이어져있다.그저주이자동시에축복인시간을견디기위해작가들은오래전부터지금까지작품세계하고는별개인‘일기’를꾸준히써왔는지도모른다.

“사람들은대부분남의일기에관심이없다.
그런데왜나는계속낯모르는타인들의일기를읽으며
내일기를남들에게보여주는걸까?”

이책은우리는왜일기를쓰는가,남의일기를읽는가,내일기를남에게보여주는가자문하며일기의본질을탐구하는일기이기도하다.저자가책속에서다양하게인용하는이런저런시대의일기작성자들또한그와똑같이자문했을게틀림없다.사람들은대부분남의일기에관심없다,그런데왜나는?
하지만이책을읽다보면자연스럽게느끼게될것이다.이부족한시간에왜굳이매일일기를,일기라도쓰는가라는질문은,이렇게매일이똑같고지루하며때로고통스러운데왜굳이또하루살아가는가라는물음이라는사실을.
세계에서가장유명한일기작성자,15세의안네프랑크는이렇게썼다.“전쟁이끝나면난반드시‘은신처’라는제목의책을펴낼생각이야.실현가능한일인지는아직잘모르겠지만,적어도내일기가그책을위한초석이되어줄것은분명해.”그로부터석달후아우슈비츠로끌려가세상을떠난안네는결국‘은신처’라는책을펴내지는못했지만,안네의일기는자신의소중하고유일했던존재를증거하며여전히우리에게읽히고있다.
일기로인한,일기를위한,일기에대한이책은독자들에게도똑같이질문할것이다.당신은왜일기를쓰나요?누구를향해말하고있나요?

“우리는우리에게주어진시간을배우고욕망하고느끼고행동하며살아가야한다.그것이내가하고싶은말이다.물론해야하는일이기도하고.”(본문2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