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번트가든의 여자들 : 18세기 은밀한 베스트셀러에 박제된 뒷골목 여자들의 삶

코번트가든의 여자들 : 18세기 은밀한 베스트셀러에 박제된 뒷골목 여자들의 삶

$22.00
Description
무려 25만 부나 팔린,18세기 영국 신사들의 필수품
‘매춘부 리스트’
“가장 수치스럽고도 성공적”이었던 출판물에서
당대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읽다!
★ 2019 영어권 최고 논픽션-베일리 기퍼드상 수상작
『더 파이브』의 저자 핼리 루벤홀드의 데뷔작(개정판)

18세기 영국의 ‘가장 수치스럽고도 성공적인 출판물’
‘매춘부 리스트’에 박제된 여자들, 그리고 그 책을 만든 사람들
동정의 대상이면서 경멸의 대상이었던, 잊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되살려 내다

여기 한 권의 책이 있다. 1757년 초판 이후 세기말까지 꾸준히 개정되며 무려 25만 부의 판매고를 올렸다.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였지만, 공공연하게 들고 다닐 수는 없었다. ‘매춘부들’의 특기와 전공, 신상 명세를 기술한 남부끄러운 책이었던 탓이다. 바로 『해리스의 코번트가든 여자 리스트Harris’s List of Covent Garden Ladies』다.

이 책은 그 ‘리스트’에 관한 책이다. 리스트의 표면이 아닌 행간에 파묻힌 사람들에 관한 책이다. 『해리스 리스트』에 얽힌 세 사람이 이 책의 주요 인물이다. 허영심 많고 가난한 시인, ‘잉글랜드의 포주 대장’, 마담의 사생아로 태어나 어머니의 전철을 되밟고 만 ‘품위 있는’ 고급 매춘부. 리스트의 저작권자인 이 세 사람의 굴곡진 삶을 파고들다 보면, 우리는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이 당대 최고의 환락가 ‘코번트가든’, 그리고 사회의 변두리에서 위태롭고도 치열하게 살아가던 여자들임을 알게 된다. 그들은 “거리의 여자”, “애첩”, “님프”, “작부”, “갈보”, “비너스의 후예” 등으로 불린, 이른바 ‘매춘부’였다.

저자 핼리 루벤홀드는 우리에게 알려진 빛나는 역사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천착해 왔다. 그가 세심하게 읽고 구축한 유려한 내러티브를 통해, 오늘날 읽기에는 불쾌한 이야기로 가득한 옛 문헌이 생생한 내러티브를 품은 시대의 거울로 재탄생한다.

저자

핼리루벤홀드

저자:핼리루벤홀드
미국매사추세츠주애머스트대학에서역사학을전공하고,영국리즈대학에서영국사와예술사,역사학으로석사학위를받았다.학술적탐구와서사적재미를결합할줄아는역사가소설가로서활발한저술활동을이어가고있다.주목해야할젊은저술가로평가받으며,방송,팟캐스트,자문등여러분야에서폭넓게활동하고있다.
루벤홀드의전문분야는18~19세기의영국역사,그중에서도미시사여성사다.대영제국의햇살이밝게비치는대로변보다는기존에충분히조명되지못했던어두운골목골목이그의주된관심사다.평범한사람들이나날의삶을꾸려가는방식에세심한애정을기울이면서,알려진역사로부터새로운역사를길어내는작업에꾸준히천착하고있다.
그의데뷔작인『코번트가든의여자들』은18세기의“가장수치스럽고도성공적인”출판물이었던‘해리스리스트’를파고들며당대런던의성풍속을가감없이드러낸다.성을구매했던사람들과판매했던사람들,그리고양자를중개해주는사람들의맨얼굴을루벤홀드는세심히들여다본다.『코번트가든의여자들』은BBC에서〈매춘부의핸드북TheHarlot’sHandbook〉이라는제목의다큐멘터리로제작되기도했으며,드라마〈할롯〉의모티브가되었다.
국내에먼저소개된저자의대표작『더파이브:잭더리퍼에게희생된다섯여자이야기』는2019년영어권논픽션을대상으로한영국최고권위의베일리기퍼드상을수상했고,《선데이타임스》베스트셀러1위,2020년울프슨역사상최종후보작으로선정되는등큰반향을불러일으켰다.그밖에『레이디워슬리의변덕LadyWorsley’sWhim』(2008)은2015년〈더스캔들러스레이디W〉로영화화되었고,지금은영국역사상가장악명높은범죄사건중하나인‘크리펜살인사건’을다루는책『살인이야기StoryofaMurder』(2025년출간예정)를작업하고있다.

역자:정지영
고려대학교영어영문과를졸업했으며,글밥아카데미수료후바른번역소속번역가로활동하고있다.오랫동안사회운동단체에서활동하면서정치적·사회적이슈를분석하고노동,여성등의문제를다뤘다.인간과지구가모두평화롭게지낼수있는세상을바라며,더나은세상을만드는데도움이될글을옮기고알리는번역가가되려한다.

해제:권김현영
여성학연구자이자활동가이다.대학과광장에서여성학을연구하고가르치고배우는일을하고있다.「병역의무와근대적국민정체성의성별정치학」으로석사논문을,「성폭력피해자대리인연구」로박사논문을썼다.『여자들의사회』(2021),『늘그랬듯이길을찾아낼것이다』(2020),『다시는그전으로돌아가지않을것이다:진화하는페미니즘』(2019)등을썼다.『피해와가해의페미니즘』(2018),『한국남성을분석한다』(2018)의편저자이며,『대한민국넷페미사』(2017)등을공저했다.한겨레에서「권김현영의사건이후」를,여성신문에서1공화국여성정치인에대한「S언니정치사」를연재하고있다.

목차

개정판저자서문
책에관하여

1장막이오르다
2장잭해리스의전설
3장아일랜드시인
4장비너스의탄생
5장잉글랜드의포주대장,잭
6장그럽스트리트의글쓰는노예
7장사랑의복잡함
8장영감
9장해리스의숙녀들소개
10장『해리스리스트』
11장포주,대가를치르다
12장플리트교도소와오켈리라는남자
13장해리슨의귀환
14장킹스플레이스의산타샤를로타
15장배스의작은왕
16장“창녀를키울까,경마를할까”―암말을키우는법,또는어리석은망아지를이해하는법
17장원점
18장품위있는켈리부인
19장『해리스리스트』의최후
20장『해리스리스트』의여자들

부록:
코번트가든애호가목록
18세기용어집

해제:시인,웨이터,‘창녀’의신분상승기(권김현영)

출판사 서평

가혹한삶의조건에내던져진,이를어떻게든극복하려는보통사람들
그들의치열한분투가벌어지는18세기영국의할리우드,‘코번트가든’

코번트가든은오늘날런던의주요관광지다.잡화점이늘어선아치형지붕아래로북적이는관광객들이지나다니고,거리예술가들이버스킹을준비하느라분주한곳이다.광장의오른쪽으로뻗은보우스트리트에는런던을대표하는공연장로열오페라하우스가자리잡고있으며,반대쪽거리인베드퍼드스트리트에서는소박한외관의세인트폴교회가왕래하는방문객들을느긋하게바라보고있다.

그러나1700년대에교회에서바라본코번트가든의경관은지금과는많이달랐을것이다.밤에는특히더그랬다.거리곳곳에즐비한유곽겸술집들이밤마다문전성시를이뤘다.은근히성매매를알선하거나대놓고유곽도겸하는음란한가게들이었다.지금은오페라하우스가있는거리에위치한사법부는꿔다놓은보릿자루신세였다.귀족과부자,작가와군인,배우와부랑자들이거리낌없이뒤섞이는코번트가든에서는“누구든하고싶은대로했고아무도뭐라고하지않았다”.

『코번트가든의여자들』은이런사람들의이야기다.마구돈을써도지갑이마르지않던상류층남자들과그들의지갑을호시탐탐노리던여자들.그런남자들과여자들에게어떻게든빌붙어서한푼이라도뜯어내보려던또다른여자들과남자들.이들대부분은“18세기영국사회의변두리에서목숨을간신히부지하던사람들”이다.저자는그중에서도특히세명의인물에초점을맞춘다.“새뮤얼데릭,존해리슨(잭해리스),샬럿헤이즈는이런범주의사람들을대표하는인물들이다”.

젊은데릭은아일랜드출신의방탕한작가지망생이다.포목상을운영하는친척집에서중간계급으로성장했지만,옷감을파는일엔흥미가없었다.아직‘잭해리스’가되기전의젊은존해리슨은베드퍼드스트리트의술집에서태어난유망한포주다.친척어른들어깨너머로일을배우며,합법적인일보다불법적인일이돈이된다는걸경험으로익혔다.악명높은마담워드의딸헤이즈는아버지없는사생아다.워드부인은딸의‘처녀성’을비싸게팔고자하고,다른여자들을착취하여딸의앞날을열어주려한다.저마다주어진환경속에서나름대로의미래를꿈꾸던세젊은이의삶은마침내‘코번트가든’에서뒤얽힌다.

당시의코번트가든은단순한유흥가가아니었다.18세기중반의코번트가든은,말하자면20세기의할리우드같은곳이었다.그곳에서는멋들어진가명을지어낼수도있고,비극적인인생사를꾸며댈수도있었다.세사람은각자원하는방식대로자신의이야기를꾸며냈다.데릭에관한어떤기록에서도그의부모이야기는찾아볼수없고,해리스가떠나온뒤의해리슨가족이야기도마찬가지다.샬럿이어머니의성대신선택한‘헤이즈’라는이름에얽힌사연도우리에겐전혀알려지지않았다.

그들은각자의역사를되는대로꾸며내지만,저자는세심한시선으로그들의삶을둘러싼거짓들을파헤친다.저자의사려깊은서술을통해우리가알수있는것은,그들이꿈과욕망을품고사회에서살아남으려분투하는보통사람들이었다는사실뿐이다.

‘해리스리스트’,잊혀진베스트셀러

오늘날중요하게간주되는18세기의저술로는어떤책들이있을까?루소의『에밀』,볼테르의『캉디드』,괴테의『젊은베르테르의슬픔』...범위를영국으로만좁혀봐도애덤스미스의『국부론』부터,최초의소설중하나로간주되는새뮤얼리처드슨의『패멀라』같은작품들이모두이시기에출간되었다.그러나이중어느책도『해리스의코번트가든여자리스트』(이하『해리스리스트』)보다많이팔리지는않았다.40여년간줄기차게개정·재판된이리스트는무려25만부나판매된것으로추산된다.대체어떤‘리스트’였기에이렇게나많이팔렸고,또어마어마한상업적성공에도불구하고완전히역사에서지워진것일까?

1757년처음출간된『해리스리스트』는다름아닌‘매춘가이드북’이었다.‘매춘부’의프로필과특기등이빼곡히적혀있는,당대신사들의안주머니에꽂혀있던필수품이었다.실제로쓴사람은데릭이지만,위대한시인이되기를꿈꿨던그는죽을때까지부끄러운이력을감췄다.책의이름은런던뒷골목을주름잡고있던포주이자정보통의이름을빌린‘해리스리스트’가되었다.해리스는(가짜)이름과여자들의목록을빌려주고서도정작수입은제대로챙기지못했다.책이그정도로오랫동안많이팔릴줄몰랐던것이다.헤이즈는한창때이책에직접이름을올렸고,나중에는저작권자명단으로이름을올린다.저자는이들의굴곡진인생사를매개로당대인들이살아갔던치열한삶의현장을되살려낸다.이로써오늘날읽기에는불쾌한이야기로가득한옛문헌이생생한내러티브를품은시대의거울로재탄생한다.

데릭은어쩌다이런책을쓰게됐을까?데릭은속에입는셔츠는고작한벌이면서도비싼겉옷은여러벌장만하는허영심많은남자였다.안정된생계수단과보장된유산을내팽개치고환락의거리인코번트가든에정착했지만,지갑사정은늘쪼들리기일쑤였다.부유한남자의정부(情婦)였던여자들에게기생하던그는언젠가채무자감옥에갇혔고,그곳에서해리스의여자들리스트를출간하자는아이디어를떠올린다.

기실여자들을목록화하자는아이디어는그자체로그다지새로운것은아니었다.당대포주들은이미각자의목록을지니고있었고,해리스는가장방대한목록을가지고있었을것이다.데릭의독창성은단순한카탈로그에불과했던이글을사실적인오락물로바꾸었다는데있다.작가로서의정체성을지니고있었고,코번트가든의생리에누구보다훤했기에가능했던일이었다.게다가실용성도놓칠수없었다.꿈만큰‘매문가’로서근근이생계를유지하던데릭은리스트를매년갱신해야한다는점을놓치지않았고,마침내꾸준한수입원을창출해낸다.

데릭의사후에도『해리스리스트』는여러출판업자와저작권자들에의해꾸준히재판된다.그러나18세기후반에이를수록책의성격은변질되고만다.후기판본들에는최하층매춘부들의이야기는의도적으로누락된다.그대신그리스고전에서빌려온아름다운이미지로권두삽화가채워지고,중간계급이상의매춘부들의이야기가실린다.데릭이후의저자들은뒷골목의사실적인이야기보다는삶이“위태롭고불안정했”던중간계급사람들의역설적인호기심을자극할만한글로리스트를채웠다.심지어는이전판본들을아무렇게나짜깁기하기도했다.

더구나시대도변하고있었다.사회는점점도덕주의적으로변하고있었고,『해리스리스트』와같은음란한출판물을더는용납하지않았다.결국『해리스리스트』는1795년을끝으로종간된다.그러나사회가실제로도덕적으로변화한것은아니었다.‘매춘’은여전히필요악이었고,당대의정치인들이나유력인사들은실상매춘업의주요고객층이기도했다(핼리루벤홀드는이책의말미에그런남자들의목록을따로마련해두었다).

‘매춘’을둘러싼지워진여자들의목소리
저자가되살려내는그여자들의삶과희망

뒷골목의풍경을사실적으로그려낸데릭의필력은『해리스리스트』의성공에중요한요소였다.그러나이‘리스트’는충분히사실적이지는않았다.이름이적힌당사자인여성들의목소리는전혀반영되지않았기때문이다.키티피셔양이보내온편지는하나의사례에불과하다.리스트의작성자들은‘뇌물’을동봉한편지까지보내면서리스트에서이름을빼달라고간청하는키티피셔양의항목을지우는대신,편지의전문을그대로실었다.

무엇보다도,“『해리스리스트』에등장하는많은여성(일부는소녀라고해야맞다)은강간이나아동성착취의피해자였다”.저자가지적하듯이,당대남자들은“여성의곤경에도말로만공감하는태도를보인다”.여자들에게많은빚을졌고,그들에게나름의연민과동질감을느꼈던데릭도예외는아니었다.『해리스리스트』는어디까지나남자들을위한책이었다.대부분의매춘부들이어쩌다그일을하게되었는지,그여자들이어떤심정으로손님을받는지는관심사가아니었다.“따라서『해리스리스트』에오른여성들은자신의관점으로이야기할기회를얻지못했다.많은사례에서여성들의이야기는『해리스리스트』제작자에게고객들이들려준이야기와상당히달랐을것이다”.

저자의서술에따르면,당시에는많은여자들이일이없는기간에임시방편으로‘매춘’을했다.멀쩡한가정의하녀들도언제일자리를잃을지알수없었고,다른업종들이라고크게다르진않았다.성폭력을당한탓에하릴없이매춘을시작하게된여자들도부지기수였다.중간계급은이즈음새롭게형성되기시작한계층이었고,그런만큼유동성도굉장히심했다.물론위로올라가는건어려웠지만,누구나조금만삐끗하면사회의밑바닥으로떨어질수있었다.리스트는그러한사회의모습을반영하고있는것이다.

저자는말한다.“이런현실을고려한다면,사람들이왜매춘에희망을품었는지이해할수있다”고.실제로‘매춘’은많은여자들에게신분상승을꿈꿀수있는거의유일한길이었다.그들중몇몇은실제로드라마틱한신분상승을이뤄내기도했다.영화〈귀여운여인〉에서의줄리아로버츠처럼.사회는여성들에게허황된신데렐라스토리를약속하고,젊은여자들을서슴없이낚아올린다.물론신분상승을일궈낸여자들은극소수이고대부분은술에절거나성병에걸려초췌해진몰골로공동묘지에서비참하고한많은삶을마감했지만,사회는언제나낭만적인성공담만을선전할뿐이다.여기에는순기능도없지는않다.저자의말마따나,“이런가능성조차없었다면,그토록어두컴컴한삶을그녀들이어떻게견뎌낼수있었겠는가”.

이책은섣부른도덕적비난의유혹에빠지지않으면서,가혹한세상에맞서어떻게든삶을일궈야했던보통사람들의속사정을들려준다.“그저주어진순간을”버티며“더나은삶을”꿈꿨던사람들과,현실의무게에짓눌려결국엔가라앉고만이들의“씁쓸하면서도달콤한이야기”를.저자와함께세문제적인물의삶을따라가다보면,마침내이책의진짜주인공을마주치게된다.그들은‘코번트가든의여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