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 오해와 와전, 왜곡으로 얼룩진 말들의 이상한 생애

그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 오해와 와전, 왜곡으로 얼룩진 말들의 이상한 생애

$18.80
저자

박강수

저자:박강수
1992년생.《한겨레신문》기자.인용없이는글을쓰지못하는병을앓다가증상이악화하면서기자가됐다.‘좋은저널리즘이란세상을향한덕질이다,고로인류의미래는덕후들에게달려있다’라는모토를기자소개페이지에새기고,업계에서의쓸모를모색중이다.이책외에읽을거리로‘스포츠인사이드’,‘미디어잔혹사’등온라인연재물을썼다.

목차

머리말:이해불능의망망대해에서

1부.오해받는인간
1.〈무한도전〉유니버스의뒤틀린민족주의_신채호
“역사를잊은민족에게미래는없다”
2.그래도지구가돌지않았던이유_갈릴레오갈릴레이
“그래도지구는돈다”
3.신화가된프로파간다의악마_요제프괴벨스
“한문장만달라.그러면누구든범죄자로만들수있다”
4.사과나무를심든말든_베네딕투스데스피노자
“내일세상이멸망하더라도오늘나는사과나무를심겠다”
5.파시스트도당과소비에트인민에게죽음을_이오시프스탈린
“한명의죽음은비극이지만,백만의죽음은숫자다”

2부.오독되는고전
6.회색분자를위한지옥은없다_단테알리기에리
“지옥의가장뜨거운장소는도덕적위기의순간중립을지킨자들을위해예약되어있다”
7.어느반민주주의자의이상향_플라톤
“정치를외면한대가는자기보다못한자에게지배당하는것이다”
8.바다는비에젖고인간은파멸한다,그러나_어니스트헤밍웨이
“바다는비에젖지않는다”
9.‘악법도법’이라는집단적오독에관하여_소크라테스
“악법도법이다”
10.악의복합성에대한소고_한나아렌트
“악은평범하다”

3부.와전되는서사
11.적폐청산의윤리학_알베르카뮈
“어제의범죄를벌하지않는것은내일의범죄에용기를주는것이다”
12.‘시네필3법칙’에대한소소한반론_프랑수아트뤼포
“영화와사랑에빠지는세단계가있다”
13.‘이것도예술인가’라는오래된질문_앤디워홀
“유명해지면똥을싸도박수받는다”
14.‘런승만’으로부터의탈주_이승만
“여러분,서울은안전합니다”
15.정언명령과클리셰_스탠리
“큰힘에는큰책임이따른다”

4부.왜곡되는세계
16.노화,보수화,그리고전향_윈스턴처칠
“젊어서사회주의자가아니면심장이없는것이고,늙어서도사회주의자면머리가없는것이다”
17.인생을낭비하고세상을망치는_알렉스퍼거슨
“SNS는인생의낭비다”
18.내통계가이렇게엉망일리없어_마크트웨인
“거짓말에는세종류가있다.거짓말,새빨간거짓말,그리고통계”
19.권력을견디는정치,정치를견디는권력_에이브러햄링컨
“권력을쥐여보면인격을알수있다”
20.‘당신의말할권리’와싸우는사람들_볼테르
“나는당신의말에동의하지않지만,당신이말할권리를위해서라면목숨걸고싸우겠다”

출판사 서평

말은어떻게명언이되는가
그리고어떻게거짓이되는가
우리를속이고감동시켜온,
우습고도서늘한인용과왜곡의역사

이책에는플로베르가나오지않는다.그래도플로베르에서한번출발해보자.다른이유는없고,단지나무위키의‘명언’항목이플로베르의인용으로시작하는까닭이다.“격언:결코새롭진않지만언제나위안을준다.(MAXIME:Jamaisneuvemaistoujoursconsolante.)”플로베르의사후발표작『통상관념사전』에서.
격언에관한정의로서는이만한것이없어보인다.‘나도마침그렇게생각했는데!’하는말,느낌표를띄우는말이격언이된다.누군가나와비슷한처지에놓였다는사실을떠올리는것만으로도퍽위로가되는데,어록까지기억될만큼유명한양반이나의가려운곳을긁어준다면더더욱.거기다약간의운율과유머까지곁들이면금상첨화다.
문제는플로베르가썼다는이‘사전’의진짜성격이다.이번에는국내에이책을번역한책세상출판사의도서소개를인용해보자.“상식적으로분명하고명쾌하다고생각되는추론방식이나정의(正意)의모순을드러냄으로써인간의지식과사고체계가얼마나어리석은지를깨닫게해준다.”영문위키피디아의해당항목에서는이책을“자동적으로떠오르는생각과상투적인표현(cliche)들을모아놓은사전”이라고요약하고있다.
이름모를인터넷필자의초점은‘위안’에맞춰져있다.그런데플로베르의방점은‘진부함’에찍혀있었다.플로베르는격언을,아니격언을되는대로가져다쓰는동시대부르주아들의지적게으름을비웃으려했다.사유를생략하고기분만소비하는말의유통방식을.그가오늘날우리의언어생활을본다면과연뭐라고할까?

경구,명언,격언,아포리즘…
현란한말들의난장판속에서
오해가번식하는말의생태계를탐구하다

잠깐의위로로그칠따름이라면달리트집잡을일도없을것이다.문제는우리가‘명언’을사용하는방식이기운을북돋아주는위무에그치지않을때가잦다는점이다.
무엇보다도명언은우리의막연한믿음을확증해준다.단지유명한사람이그런말을했다는이유로,말의권위는정당화되고널리퍼진다.누군가는의도적으로말을바꾸고,또다른이는무심코와전된말을옮긴다.그과정에서원래의맥락은어느새지워져버리고,그말을끌어다쓰는현재의형편또한흐려지고만다.그러다보면우리는어느새생각보다문장을,문장보다이름을기억하게된다.그리하여오해는상식이되고,날조는교양이된다.
『그들은그렇게말하지않았다』는이처럼왜곡된통념의역사를파고든다.저자박강수는6년차기자로,인턴기자시절몸담았던팩트체크전문매체《뉴스톱》에서‘가짜명언팩트체크’시리즈를연재한바있다.닳고닳은말의소비와유통에관한일련의문제의식은줄곧이어져,이후《한겨레신문》에서‘박강수의허언록’시리즈로확장되었다.그오랜탐색의결과물을깊이있게보강하여묶어낸것이바로이번책이다.
그러나단순히명언의진위를판정하고,‘사실은이렇습니다’하는투로오류를바로잡는것은이책의목적이아니다.재미있는사실들을추려놓은트리비아모음집도아니다.이전에연재했던원고들을다시살피면서,저자는오해를일소하는일은가능하지도않을뿐더러,“오해를이해하는일이더중요하고,또한재밌다는점”을배웠노라고고백한다.“명언의진가(眞假)를가리는작업은일종의맥거핀이나다를바없다”는저자의말처럼,우리를호리는멋진문장들보다중요한것은그것을소비해온우리의서투른태도일지모른다.
이책에서소개하는‘말들의이상한생애’를따라가다보면,듣고싶은말을사실로,믿고싶은바를진실로만들어온인간의오래된습벽에실소가새어나오고,이내멋쩍은마음에머리를긁적이게될것이다.그야물론남의일이아닌까닭이니,부디저자의말마따나,“여러분의사려깊은독해를당부한다.”

그럴듯한말을지어내고
있어보이는말에취하는
우리의서글픈자화상

그렇다면우리가상식이라믿어의심치않았던유명인들의말뒤에는과연어떤진짜맥락이숨어있을까?저자가집요하게추적해낸'오해의연대기'는자못흥미진진하다.책은동서고금의유명한어록20개를해부대에올린다.
어떤말은주인이아예틀렸고,어떤말은원작자가맞지만뜻이완전히뒤집혔으며,또어떤말은허위인줄알았으나사실로밝혀지기도한다.저자는이집요한탐색을통해,오랜세월상식의탈을쓰고행세해온말들의생애를하나씩복원해간다.
예컨대갈릴레오갈릴레이가종교재판장을나서며“그래도지구는돈다”고속삭였다는일화를살펴보자.대체누가혼잣말을엿들었을까?저자는이의심스러운전언(傳言)이,종교를비판하고갈릴레이를진리의투사로숭상하고자했던후대작가의창작임을밝혀낸다.그러나파이어아벤트와같은일부과학철학자들은,갈릴레이더러증명을요구한당대교회의처분이야말로오히려‘과학적’이었다고반박한다.갈릴레이의사례는때로는진실보다우리가믿고싶어하는이야기가오래살아남는다는것을보여준다.
그밖에도이책은이승만이나카뮈,단테의‘가짜어록’처럼역사의해석과정치적행로에끼어드는말들부터,정성일이지어낸트뤼포의‘시네필3법칙’처럼열정에서비롯한귀여운실수로읽힐법한말들,앤디워홀이나〈스파이더맨〉의사례처럼오늘날우리의문화적풍경을비춰보는말들까지폭넓게다룬다.링컨이나볼테르의말처럼그뜻은옳으나실상은아전인수격으로사용되는말들도빼놓을수없다.

우리를게으르게만드는명언들,
우리는왜생각을멈추고남의말에기대어쉬는가

이처럼복잡한말들의생애를통과하고나면우리는이상야릇한지점에서게된다.진위너머에서도무성히자라나는각양각색의서사앞에서,해방감과서늘함이묘하게소용돌이치는자리다.화로의불이꺼진뒤에도굴뚝에는연기가피어오른다.이제우리가짚어야할것은‘이연기가진짜인가’가아니라,연기를보고도불씨를확인하려들지않는우리자신의게으름이다.
한나아렌트가'악의평범함'을논하며경계했던것도바로그런나태함이었다.입에서입으로옮겨다니며닳아버린말들을아무의심없이그대로삼켜버리는사유의정지.명언의수풀을헤치고다다른곳에서,우리는자신의마음속을떠다니는게으른말들의불씨를보게될것이다.
괴벨스를다루는장에서저자는프랑스의사상가자크엘륄의다음문장을인용한다.어쩌면이책의문제의식을가장선명하게압축한문장일지도모른다.

“선전자는선전을필요로하지않는사람을사로잡을수없다.(…)잠재적피선전자가없다면,선전자도없다.(…)선전은피선전집단의필요속에뿌리내리고있다는의미에서,엄격하게사회적현상이다.”

비효율적이고도성의있는이기나긴탐색을끝내고나면,우리는마침내저자의전언을이해할수있을것이다.“이것은행복에이르는방법을찾는탐구는못되어도덜불행해지기위한공부는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