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을 품은 자연 (록명헌 견현여행)

인문을 품은 자연 (록명헌 견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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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자연의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美不自美因人而彰). 자연도 인문의 향기가 스며야 울림을 준다는 말이다.

소세양은 송순이 만든 정자 면앙정(俛仰亭)에 와서 “산과 물은 무정하여 반드시 사람을 만나 드러난다. 산음(山陰)의 난정(蘭亭)이나 황주(黃州)의 적벽(赤 壁)도 왕희지(王羲之)와 소동파(蘇東坡)의 붓이 없었더라면 한산하고 적막한 물 가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고 반문했다. 중국 사오싱(紹興)에 있는 난정을 가보니 과연 그러했다.

내가 견현사재(見賢思齋)할 곳을 찾아 여행하는 이유는 선현(先賢)들의 발자취를 살펴 새 길을 만들어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록명헌을 부산역과 크루즈 터미널이 맞물린 곳에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정영석



국내외 사적(史蹟) 여행기 『인문을 품은 자연』은 시간을 내어 사적지를 찾아가 어떠한 역사가 전해지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찬찬히 살펴본 적이 있었는가 라고 되돌아보게 한다. 책에 소개된 각 사적지에 대한 기본 정보는 물론 사료(史料)적 가치와 역사적 의미 등을 상세히 싣고 있으며, 이러한 사적과 유물에 대한 설명에서 저자의 전문가적인 안목과 수준이 엿보인다.

책엔 현장 관리하시는 분의 친절한 안내와 해설을 그대로 옮기고 있어, 사진과 함께 읽다 보면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오늘은 인근에 밥집들도 쉬는 날이라 찾는 이가 거의 없어 좋다. 이렇게 방문객이 적은 날에는 사랑채 아래 창고 문부터 열어 보고 싶었다. 빠듯이 닫힌 문을 도둑질 하듯 삐쭘이 열고 들어가 원하던 남근석 사진을 운 좋게 찍고 나오니 관리 하시는 분이 다가온다. 송구하다 말씀 드리니 그걸 어떻게 알았냐며 안채, 대청마루, 곳간, 사당, 침모방(?), 사랑채, 안사랑채를 세세하게 안내 하신다. 호사를 누린 것이다.” - 01 백세청풍 일두고택

어느 고찰(古刹)이든 고승(高僧)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그러나 그곳을 방문했더라도 그러한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기 쉽지 않다. 애써 찾아보거나 알아내려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천년 고찰 직지사에 전해 내려오는 사명대사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사명대사(1544.10.17~1610.8.26)가 출가하기 전, 사천왕문 앞 바위에서 잠자는 모습이 참 선하던 주지의 눈에 승천하는 황룡으로 보여 제자로 삼았다고 하거니와 임란때는 승병을 이끌었고, 강화사절단으로 에도 막부에 가서는 도꾸가와의 간담을 서늘케 한 담판을 해 두고두고 회자된다. “그대는 어느 산에 사는 잡새이길래 감히 봉황의 무리 속에 찾아 왔느냐”고 하자 “나는 본시 청산에 놀던 학으로 오색 구름과 놀았는데 잘못되어 들판 닭무리 가운데 떨어졌노라”라고 대꾸했다고 전한다. “사흘 동안 벼슬살이 한 것은 임금의 명을 어길 수가 없는 까닭이요, 한밤중에 산으로 돌아온 것은 스승의 가르침을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남겼다. - 06 직지사 수미산방 방초정

곧이어, 저자는 가깝지만 먼 나라, 바다 건너 일본으로 발길을 돌린다.

조선과 명나라를 침탈하기 위해 축조한 거대한 히젠나고야성(肥前名護 屋城)을 우중에 둘러보니 만감이 교차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의 고향 나고야와 같은 발음의 성을 축조하고 야심을 불태우던 곳. -중략-
임진왜란 선봉에 섰던 히라도(平戶) 번주 마츠라 시게노부가 퇴각하면서 조선인 도공들을 끌고 온다, 그 중에 진해 웅촌 도공들도 있었다. 이들이 만든 백자는 1650년 네델란드 동인도회사의 주문을 받아 수출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독일의 마이센 자기 탄생의 계기가 된다. 당시엔 그런 자기 제작 기술을 우리와 중국만 가지고 있었으나 우리는 눈여겨보지 못했으니 안타깝다. -0 07 이마리(伊万里)의 조선도공들

그리고 부산에서 배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의 대마도에 관한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백제에서 건너온 비구니 스님이 연 슈젠지(修善寺)에는 이곳에서 순국하신 최익현 선생의 기념비가 모셔져 있고 헌종때 병조판서 김학진의 낙관이 있는 수선(修善) 현액이 있다.
백제스님이 심었다고 전하는 1,500년이나 된 은행나무는 낙뢰, 태풍으로 중앙이 꺽이고 비어 있으나 둘레 12.5m 높이 23m나 되는 거목의 모습으로 왕성하게 버티고 서 있다.
고종의 막내딸 덕혜옹주는 일본으로 끌려가 일본식 교육을 받고 고종이 점지한 정인을 둔 채로 대마도주 아들 소 다께유끼와 정략결혼 하게 된다. 결혼 후 대마도를 방문한 흔적이 기념비로 남아 있다. 외동딸이 실종된 후 실어증, 조현병으로 이어져 이혼하게 되고 해방 후 20년이 다 돼서야 우여 곡절 끝에 1962년 귀국한다. 그분의 지난한 아픔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슬픔으로 남아 있다. - 08 대마도와 조선통신사 문위행

그리고, 조선통신사의 방일 루트 마지막 종착지 도쿄 동본원사를 소개하며, 일본 곳곳에 남아 전해지고 있는 우리 한민족의 유적과 일본에 미친 영향력 등을 찾아볼 수 있다.

1811년까지 200년 동안 12차례 파견된 조선통신사는 일본땅에 한류를 퍼트린 한일 교류의 선구자들이었는데 이 사찰(도쿄 동본원사東本願寺)이 최종 숙뱍지였다. 현재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 법주의 부인은 한국인이라고 한다. - 09 조선통신사 종착지 도쿄 동본원사

여행은 이제 중국 심양을 향해 방향을 튼다. 저자는 2019년에 심양사범대 여름학기 수강신청을 하였고, 이는 우리의 아픈 역사 흔적들을 찾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라 밝히고 있다. 그리고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따라 길을 안내한다.

명나라 군대가 임진왜란 원병으로 조선으로 간 틈을 이용해 여진족이었던 누르하찌가 후금(청)을 세우고 1625년 심양에 도읍을 정한다. 누르하찌의 8남 홍타이지가 청으로 국명을 바꾸고 명과 우호적이던 조선을 침공하여 무려 30만 포로를 끌고 온 곳이 이곳 심양 남탑 주변이었다 - 16 열하일기 심양(盛京)

심양을 출발한 연암은 신민, 북진을 거쳐 금주 지나 산해관에 닿는다. - 17 열하일기 산해관(山海關)

산해관은 만리장성의 동쪽 기점이며, 서복이 진시황의 명을 받아 불로초를 구하러 출항한 곳으로도 알려졌다. 그리고, 사당 맹강녀 묘에 전해 내려오는 슬픈 전설과 건륭제 지었다는 라마산장에서 연암과 티벳 승려 반선의 만남에 관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등이 이어진다.

책 후반부에 실린 몽골 여행기가 눈길을 끈다. 그리고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이태준 선생의 이야기에 고개가 숙여진다.

이곳에 까지 오셔서 독립운동 하다가 순국하신 몽골의 슈바이처 이태준 선생 기념관은 둘러보고 와야 한다.
함안 군북 출신인 이태준 선생은 세브란스의학교를 나와 안창호의 권유로 비밀청년단체인 청년학우회에 가입한다.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고 난징에서 김규식과 상의 끝에 몽골(고륜) 에서 동의의국을 설립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다 39세에 순국한다. 여운형 선생은 몽고사막 여행기에서 ”이 땅에 오직 하나인 이 무덤은 이 땅의 민중을 위한 조선 청년의 헌신과 희생의 기념비이다”라고 적었다. - 21 울란바타르와 이태준기념관

책에 실린 모든 여행기엔 영예(榮譽)와 오욕(汚辱)이 공존하는 우리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가 담겨 있다. 비록 그 모든 역사를 다 담고 있지는 않지만, 여행의 목적지를 정하는 기준은 언제나 우리 민족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그곳에 남아있는 우리 조상들의 흔적을 하나하나 되짚어 가며 확인하고 있다. 미추(美醜)를 따지지 않고 역사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대하는 저자의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시각과 세심한 기록이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정용석 작가는 서문에서 견현사재(見賢思齋)할 곳을 찾아 여행한 기록임을 밝히고 있는데, ‘견현사재’는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다른 사람의 어진 모습을 보면 그와 똑같아지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의 어질지 못함을 보면 안으로 스스로 반성해야 하느니라. 子曰(자왈) 見賢思齊(견현사제)하며 見不賢而內自省也(견불현이자성야)니라.”는 내용의 논어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즉 다른 이의 어진 모습을 본받고자 하는 마음을 뜻한다.

국내외 사적지나 유적지를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낀 바를 글로 옮김으로써 “선현들의 발자취를 살펴 새 길을 만들어 알리고 싶었다.”는 저자의 간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글 속에 녹아 있다. 또한 전문적이지만 지루하지 않고, 흥미로우며, 상세하면서도 숨은 의미 또한 놓치지 않는 저자의 안목이 돋보인다.

저자 향천 정영석은 부산의 독립유공자 동봉 이인희 선생의 사위로서, 전 부산 동구청장을 지냈으며, 부산역과 크루즈 터미널이 맞물린 곳에 ‘록명헌鹿鳴軒’ 이라는 역사와 문화가 함께 하는 공간을 열어 내외국인들에게 부산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으며, 현재 부산에 거주하고 있다. 록명헌은 ‘사슴이 우는 곳’이라는 뜻으로 시경의 한 구절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사슴이 울 때는 먹이가 있을 때이고, 반드시 친구와 함께 먹이를 나누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저서 『록명헌견현여행』, 『지중해 낙양 교토』
저자

정영석

저자:정영석
행정고시로공직에입문하여부산광역시기획관리실장환경공단이사장민선동구청장을거쳤다.동구청장재직시이바구길을만들었고퇴직후에는선친이만든부산항4부두인근에록명헌鹿鳴軒을열고크루즈시대에대비한새길을열어가고있다.저서로는록명헌견헌여행지중해낙양교토등이있다.

목차

01백세청풍일두고택006
02양동마을과동강서원016
03회재독락당과옥산서원026
04도산서당학봉종택임청각032
05단하통천길봉평신라비홍패040
06직지사수미산방방초정046
07이마리(伊万里)의조선도공들052
08대마도와조선통신사문위행058
09조선통신사종착지도쿄동본원사068
10메이지유신태동지하기(萩)076
11송광사대원사가는길082
12미황사와대흥사090
13화엄사남원만복사저포기098
14고려임시수도옥주진도106
15단양신라적성비와온달산성114
16열하일기심양(盛京)120
17열하일기산해관(山海關)124
18열하일기열하청더(承德)132
19무이구곡과무이정사(武夷精舍)134
20흉노족훈족몽골144
21울란바타르와이태준기념관148
22영덕이숨겨놓은전통문화156
23포항분옥정과용계정164
24성북동길상사심우장수연산방174
25박태준기념관과반구대천전리벽화180
26조각건축자연의만남뮤지엄산(SAN)190
범어사의국보와보물202

출판사 서평

국내외사적(史蹟)여행기『인문을품은자연』은시간을내어사적지를찾아가어떠한역사가전해지고있는지관심을가지고찬찬히살펴본적이있었는가라고되돌아보게한다.책에소개된각사적지에대한기본정보는물론사료(史料)적가치와역사적의미등을상세히싣고있으며,이러한사적과유물에대한설명에서저자의전문가적인안목과수준이엿보인다.

책엔현장관리하시는분의친절한안내와해설을그대로옮기고있어,사진과함께읽다보면생생한현장감을느낄수있다.

“오늘은인근에밥집들도쉬는날이라찾는이가거의없어좋다.이렇게방문객이적은날에는사랑채아래창고문부터열어보고싶었다.빠듯이닫힌문을도둑질하듯삐쭘이열고들어가원하던남근석사진을운좋게찍고나오니관리하시는분이다가온다.송구하다말씀드리니그걸어떻게알았냐며안채,대청마루,곳간,사당,침모방,사랑채,안사랑채를세세하게안내하신다.호사를누린것이다.”-01백세청풍일두고택

어느고찰(古刹)이든고승(高僧)에관한이야기가전해내려온다.그러나그곳을방문했더라도그러한역사가있다는것을알기쉽지않다.애써찾아보거나알아내려하지않는다면말이다.천년고찰직지사에전해내려오는사명대사에관한이야기가소개되고있다.

사명대사(1544.10.17~1610.8.26)가출가하기전,사천왕문앞바위에서잠자는모습이참선하던주지의눈에승천하는황룡으로보여제자로삼았다고하거니와임란때는승병을이끌었고,강화사절단으로에도막부에가서는도꾸가와의간담을서늘케한담판을해두고두고회자된다.“그대는어느산에사는잡새이길래감히봉황의무리속에찾아왔느냐”고하자“나는본시청산에놀던학으로오색구름과놀았는데잘못되어들판닭무리가운데떨어졌노라”라고대꾸했다고전한다.“사흘동안벼슬살이한것은임금의명을어길수가없는까닭이요,한밤중에산으로돌아온것은스승의가르침을저버릴수없기때문이다.”라는귀거래사(歸去來辭)를남겼다.-06직지사수미산방방초정

곧이어,저자는가깝지만먼나라,바다건너일본으로발길을돌린다.

조선과명나라를침탈하기위해축조한거대한히젠나고야성(肥前名護屋城)을우중에둘러보니만감이교차된다.도요토미히데요시가그의고향나고야와같은발음의성을축조하고야심을불태우던곳.-중략-
임진왜란선봉에섰던히라도(平戶)번주마츠라시게노부가퇴각하면서조선인도공들을끌고온다,그중에진해웅촌도공들도있었다.이들이만든백자는1650년네델란드동인도회사의주문을받아수출하기시작했고그것이독일의마이센자기탄생의계기가된다.당시엔그런자기제작기술을우리와중국만가지고있었으나우리는눈여겨보지못했으니안타깝다.-007이마리(伊万里)의조선도공들

그리고부산에서배로한시간반정도거리의대마도에관한역사를소개하고있다.

백제에서건너온비구니스님이연슈젠지(修善寺)에는이곳에서순국하신최익현선생의기념비가모셔져있고헌종때병조판서김학진의낙관이있는수선(修善)현액이있다.
백제스님이심었다고전하는1,500년이나된은행나무는낙뢰,태풍으로중앙이꺽이고비어있으나둘레12.5m높이23m나되는거목의모습으로왕성하게버티고서있다.
고종의막내딸덕혜옹주는일본으로끌려가일본식교육을받고고종이점지한정인을둔채로대마도주아들소다께유끼와정략결혼하게된다.결혼후대마도를방문한흔적이기념비로남아있다.외동딸이실종된후실어증,조현병으로이어져이혼하게되고해방후20년이다돼서야우여곡절끝에1962년귀국한다.그분의지난한아픔의역사는우리민족의슬픔으로남아있다.-08대마도와조선통신사문위행

그리고,조선통신사의방일루트마지막종착지도쿄동본원사를소개하며,일본곳곳에남아전해지고있는우리한민족의유적과일본에미친영향력등을찾아볼수있다.

1811년까지200년동안12차례파견된조선통신사는일본땅에한류를퍼트린한일교류의선구자들이었는데이사찰(도쿄동본원사東本願寺)이최종숙뱍지였다.현재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법주의부인은한국인이라고한다.-09조선통신사종착지도쿄동본원사

여행은이제중국심양을향해방향을튼다.저자는2019년에심양사범대여름학기수강신청을하였고,이는우리의아픈역사흔적들을찾아보고싶었기때문이라밝히고있다.그리고연암박지원의『열하일기』를따라길을안내한다.

명나라군대가임진왜란원병으로조선으로간틈을이용해여진족이었던누르하찌가후금(청)을세우고1625년심양에도읍을정한다.누르하찌의8남홍타이지가청으로국명을바꾸고명과우호적이던조선을침공하여무려30만포로를끌고온곳이이곳심양남탑주변이었다-16열하일기심양(盛京)

심양을출발한연암은신민,북진을거쳐금주지나산해관에닿는다.-17열하일기산해관(山海關)

산해관은만리장성의동쪽기점이며,서복이진시황의명을받아불로초를구하러출항한곳으로도알려졌다.그리고,사당맹강녀묘에전해내려오는슬픈전설과건륭제지었다는라마산장에서연암과티벳승려반선의만남에관한알려지지않은이야기등이이어진다.

책후반부에실린몽골여행기가눈길을끈다.그리고우리에게널리알려지지않은독립운동가이태준선생의이야기에고개가숙여진다.

이곳에까지오셔서독립운동하다가순국하신몽골의슈바이처이태준선생기념관은둘러보고와야한다.
함안군북출신인이태준선생은세브란스의학교를나와안창호의권유로비밀청년단체인청년학우회에가입한다.이후중국으로망명하고난징에서김규식과상의끝에몽골(고륜)에서동의의국을설립하고독립운동자금을지원하다39세에순국한다.여운형선생은몽고사막여행기에서”이땅에오직하나인이무덤은이땅의민중을위한조선청년의헌신과희생의기념비이다”라고적었다.-21울란바타르와이태준기념관

책에실린모든여행기엔영예(榮譽)와오욕(汚辱)이공존하는우리한민족의유구한역사가담겨있다.비록그모든역사를다담고있지는않지만,여행의목적지를정하는기준은언제나우리민족의발자취를찾아떠나는것이었음을알수있다.저자는그곳에남아있는우리조상들의흔적을하나하나되짚어가며확인하고있다.미추(美醜)를따지지않고역사의진실을있는그대로대하는저자의공평무사(公平無私)한시각과세심한기록이묵직한여운을남긴다.

정용석작가는서문에서견현사재(見賢思齋)할곳을찾아여행한기록임을밝히고있는데,‘견현사재’는“공자께서말씀하시기를다른사람의어진모습을보면그와똑같아지려고생각하며다른사람의어질지못함을보면안으로스스로반성해야하느니라.子曰(자왈)見賢思齊(견현사제)하며見不賢而內自省也(견불현이자성야)니라.”는내용의논어에나오는한구절이다.즉다른이의어진모습을본받고자하는마음을뜻한다.

국내외사적지나유적지를여행하며보고듣고느낀바를글로옮김으로써“선현들의발자취를살펴새길을만들어알리고싶었다.”는저자의간절한마음이고스란히글속에녹아있다.또한전문적이지만지루하지않고,흥미로우며,상세하면서도숨은의미또한놓치지않는저자의안목이돋보인다.

저자향천정영석은부산의독립유공자동봉이인희선생의사위로서,전부산동구청장을지냈으며,부산역과크루즈터미널이맞물린곳에‘록명헌鹿鳴軒’이라는역사와문화가함께하는공간을열어내외국인들에게부산을알리는일을하고있으며,현재부산에거주하고있다.록명헌은‘사슴이우는곳’이라는뜻으로시경의한구절에서그이름을따왔다고한다.사슴이울때는먹이가있을때이고,반드시친구와함께먹이를나누는특징이있다고한다.
저서『록명헌견현여행』,『지중해낙양교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