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가 노만

영화사가 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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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최초의 한국영화사 통사를 출간한 영화기자이자 영화사가인 노만(魯晩)의 회고록으로 후배 영화사 연구자인 유창연이 정리했다. 본명이 노만길(魯萬吉)이며 1935년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출생했다. 서울중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한 그는 대학 1학년 시절인 1954년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영화기자, 편집장, 편집주간으로 일했다. 그가 활동한 영화잡지로는 《영화세계》, 《국제영화》, 《스크린》, 《영화예술》 등 1950년대 주요 영화잡지들이 망라되었다. 1961년 이후에는 한양대학교, 중앙대학교, 한국배우전문학원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강단에 서기 시작하면서 영화사 교재의 필요성을 절감한 그는 1963년 최초의 한국영화사 통사인 『한국영화사』를 출간했다. 어느 사람도 한국영화의 걸어온 길에 크게 주목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원로 영화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도서관에 보관된 한국영화 관련 자료들을 섭렵하며 한국영화의 본질을 탐구하였던 그는 한국영화가 걸어 온 고난과 영광의 역정을 기록하여 후배 영화인들에게 귀감이 되도록 했다. 1970년대 초반 이만희 감독의 걸작 〈만추〉의 미주 흥행권을 획득하여 수출을 꾀하기도 했던 그는 이후 영화와 무관한 사업가로 평생을 살았다.
영화계를 떠난 후 50년의 시간이 흘러 털어놓는 그 시절 이야기는 1950-60년대 한국영화계의 풍경을 살피고 망각의 시간 속으로 흘러 들어갈 뻔한 영화계 비사를 역사의 무대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그 가치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저자

유창연

(兪敞淵)
영화사연구자.서울예대영화과를졸업하고2024년2월한양대학교대학원에서영화를통해본한국대중문화형성과정연구:해방기,한국전쟁기를중심으로(1945~1953)」로박사학위를수여받았다.주요관심분야는한국영화사를비롯한한국대중문화사이다.저서로는『안종화「한국영화40년약사」』(공저,두두북스,2024),『사탄탱고:벨라타르에들어가기앞서』(공저,코프키노,2025)등이있다.

목차

개인사영역넘은한시대의증언/김종원(영화평론가)

『한국영화사』60년

용강(龍岡)에서의어린시절
해방공간의서울,채플린과키튼의매혹
서울중학교에입학하다
피란시절
문청(文靑)만길(萬吉)
서울고문예반과교지《경희》
학도호국단,대학입시,고교졸업

문학사(文學史)와몽고어수업
‘씨네팬’이동렬과동도극장
잡지《영화세계》입사
명동휘가로다방,영화인들을만나다
〈단종애사〉와이진섭
유현목감독과의‘발칙한’인터뷰
담론과현실,《영화세계》를떠나다
《국제영화》로옮기다
시나리오작가이정선과《스크린》
《스크린》의필진들
영화홍보와시나리오번역
학사논문「씨나리오문학론」과대학졸업
《영화세계》강인순사장과조미령필화(筆禍)
친구에게보낸편지
『한국영화사』를쓰다
『다시보고싶은영화』와필명‘만(晩)’
《영화예술》창간
『세계의배우70인』
정릉(貞陵)시절

한국영화비평가협회창립멤버로참여하다
대학출강과한국영화사강의
영화예술의본질,한국적이란무엇인가
한국영화사의서술과기점의문제
〈광야의왕자대징기스칸〉의제작투자
뉴스타뉴앵글
금성센터운영,사업의길
한국영화평론가협회재발족과영화평론활동
이경손,방콕에서온엽서
칠성영화주식회사와〈만추〉
청계천7가,기아혼다와내강면옥
은빛둥지와〈커피의향기〉

노만저작총목록(1952~2023)

출판사 서평

-학생으로겪은해방과전쟁
평안남도용강에서맞은해방의기억과월남하여정착한서울에서겪은좌우대립의풍경,남산과학관에서본채플린영화에관한이야기를담았다.또한한국전쟁이터지자부산으로피란하여미군부대노무자로종군하며평양의김일성관저까지들어갔던이야기,1.4후퇴이후부산의국제시장에서만화책대여점을열었던기억,피란지부산의피란학교등한국전쟁의생생한기억을보여준다.

-1950년대영화잡지와영화기자
전쟁이끝나고서울에는영화붐이인다.때마침영화잡지들도하나씩그모습을드러냈다.1950-60년대영화잡지를대표하는《영화세계》의인턴기자로입사한노만은이후여러영화잡지에서편집장과편집주간을맡아일했다.이책에는처음으로월급을받았던양조회사가주인이던《스크린》에관한이야기를비롯해그가겪었던영화잡지계의열악한상황과취재비화,영화잡지계의인물들에대한이야기를수록했다.

-영화교육의현장에서
1950-60년대영화교육기관으로4년제로한양대,중앙대학교와2년제서라벌예술대학,그외영화배우전문학교가있었다.그는1961년한양대학교를시작으로1971년까지강단에섰다.제대로된영화교재가부재하던시절그가쓴한국영화사는영화학도들의필독서였다.5.16군사쿠데타이후정부의대학일부학과폐지조처로영화학과가폐지대상이되자그가직접관계당국을대상으로진정서를작성한이야기는초기영화학과관련비화이다.

-최초의한국영화사를쓰다

1959년대학졸업논문“씨나리오문학론”의집필을계기로한국영화를둘러싼여러질문들에대해탐구했다.노만은한국적인것은무엇인가?,한국영화의역사적흐름과정체성은어디에서찾아야하는가?라는질문에대한대답으로영화유입부터해방에이르는시기를다룬한국영화사를집필했다.이책은이후이영일,김종원,이효인등영화사가들이쓴한국영화에대해쓴저작의모범이되었다.

-사라진영화,만추의해방은?
이만희의대표작이자한국영화최고의걸작으로꼽히는〈만추〉의마지막이노만에의해확인되었다.그는칠성영화사를세운후외화수입쿼터를위해〈만추〉의일부장면을재촬영하여미국으로수출했다.그렇게수출된〈만추〉는미국현지로보내진후일부극장에서상영된이후행방이확인되지않는다.〈만추〉의필름은미국어디엔가보관되어있는것은아닌지?

그외에태국으로이주한이경손감독이보낸엽서,친구처럼대해주었던전창근감독,청년시절의유현목감독등그와교분을쌓았던영화인들에관한흥미로운이야기와1950년대의영화계풍경을노만의눈을통해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