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노래를 거둬 갔으면

슬픈 노래를 거둬 갔으면

$12.00
Description
“발꿈치 뚫린 양말 구멍이 무심코 나에게 들켰을 때
발이 오지의 저녁을 끌어당긴다”

파도치듯 차오르는 생의 슬픔
타인의 눈물에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어 주는 시
1996년 《심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창균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슬픈 노래를 거둬 갔으면」이 걷는사람 시인선 95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생(生)이란 끊임없는 상실의 기록이다. 상실과 이별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삶의 잔인함에 적응하며, 무감해진다. 그러나 상실에 대한 외면은 슬픔을 지연시키는 면피에 불가한 것이라, 일상의 아주 작은 순간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마주하고 싶지 않아 했던 마음과 기필코 대면하게 된다. 이렇듯 일상적인 사물과 장면 속에서 공연한 한 생애의 심연을 포착하는 것에서 김창균의 시는 시작된다. ‘미역’, ‘먹태’, ‘문턱’, ‘밥상’, ‘골목’과 같은 지나치기 쉬운 대상들을 들여다보는 김창균의 시적 태도는 비단 개인의 경험뿐 아니라, 경험하지 못한 “누군가의 눈물/뒤편을 촘촘하게 깁는다”(「구멍 많은 집」).
“독을 품고” 살아가는 현시대의 사람들에게 만남은 서로에게 “천배 만배의 독을 옮기”(「복어」)는 행위이다. 여러 시편을 통해 시인이 고백하는 것처럼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수많은 만남에도 불구하고 늘 공허하고 사무친 밤을 홀로 맞이하는 까닭이다. 높고 한랭한 ‘고랭지’에 놓인 듯, 각자의 깊고 어두운 방 속에서 타인이 헤아릴 수 없는 고독을 키우며, 우리는 독으로 자신의 배를 부풀리는 ‘복어’처럼 스스로를 처벌한다. 이러한 연유로 당신과 나는 서로에게 독을 옮기지 않기 위해 기어코 고독해진다. 가면을 쓴 채로 “몸 밖에 무수히 많은 나를 세워”(「몸집」) 둔다. 그러나 생물은 필연적으로 일렁이는 존재라, 시인은 “한쪽으로만 돌아가는” 고집 센 세상에서 “좌로 돌고” “우로 돌”(「골뱅이, 골뱅이」)며 기꺼이 당신에게로 몸이 기운다. 이러한 움직임은, 세계에 종속되는 몸짓이 아니라 당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겠다는 일종의 다짐이다. “한시도 쉬지 않고 지나가고 오는” “무성했던 발걸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시인은 “허리를 숙이거나 오래 서 있”으며 기꺼이 “휩쓸린다”(「산책」). “오랫동안 나는 나를 기다린다”(「풋사과 속, 방 한 칸」)라고 말하면서도 기어코 타인의 슬픔에 자신을 내어 주는 행위는 바쁘게 돌아가는 시간의 톱니바퀴 속에서 빠져나와 한 생애에서 어떤 식으로든 발생하는 이별을 손쉽게 외면하지 않겠다는 시적 결심이다. 김창균의 미학은 자신의 육신을 폐허가 된 터미널로 두는 것에 있다. 폐허가 된 터미널이 되어 그 안에 “수많은 이별을 배차”(「잃어버린 소읍」)하는 것이다. “어깨가 아프도록/먼 곳의 당신을 앓는 일”(「다비茶毘」)이다.
삶이란 “웃음 끝에” “긴 울음”(「먹태를 두드리며」)이 오는 무수한 양면성의 층위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웃음 뒤에 울음이 온다는 것은 울음 뒤에 웃음이 오기도 한다는 것. 시인은 타인의 슬픔을 끌어안음으로써 무수한 이별과 생의 슬픔 뒤에 올 웃음의 가능성을 들춰낸다. 지워질 줄 알면서도 “주술 같은 문장 몇 개”를 모래 위에 “써 놓는”(「모래에 적는 말」) 시인의 태도가 각자의 삶에 서린 슬픔의 가능성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연유다.
저자

김창균

강원도평창에서태어나1996년《심상》으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녹슨지붕에앉아빗소리듣는다』『먼북쪽』『마당에징검돌을놓다』를,산문집『넉넉한곁』을냈다.제1회선경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1부눈물너머구멍저편
쇠미역
할복
북쪽
바다로간늙은애인들
랜턴을켜고걷는밤길
먹태를두드리며
미역한타래
구멍많은집
당신과먹는점심
녹·2
거미의집
풋사과속,방한칸
가래몇알

2부고랭지
골뱅이,골뱅이
마중
복어
가루가된말
몸집
고랭지
4월
속빈나무
발자국이오는골목의시간
인형에게
비린내가풍기는골목에대한기억
냉장고속에십이월벌판을들이다
발효의시간
구석

3부라디오를싣고달리는국도
길의감식가
라디오를싣고달리는아침
날씨에묻다
풍문
모래시계,사막
한증막
시월의말
선인장
녹·1
가뭄·2
꽃피는시절
눈물있던자리
산책
서쪽

4부잃어버린소읍
간절한안쪽
아궁이에매일매일공양하는사람
마른꽃
공동묘지
해바라기의최후
점자를만져본다
잃어버린소읍
뿔잃은달팽이
소나기쏟아지는오후
헌옷수거함에옷을버리며보는풍경
다비
모래에적는말

빌려쓴슬픔,동백

해설
존재함이라는호혜
-박동억(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