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이인 - 걷는사람 시인선 102

동명이인 - 걷는사람 시인선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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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걷는사람 시인선 102
김태우 시집 『동명이인』 출간

“나와 닮지 않은 목소리가 희미하게 나를 부른다.”

인간을 탐구하는 깊은 침묵과 사색
서로의 이름을 불러 주는 사랑의 (불)가능성
대전에서 태어나 2015년 《시인수첩》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태우 시인의 첫 시집 『동명이인』이 걷는사람 시인선 102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같은 이름으로 불릴지라도 저마다의 고유한 세계가 있듯, 각각의 온도와 고유한 색을 가진 57편의 시가 ‘동명이인’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였다.
김태우의 시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아프고 견뎌내는 나의 ‘이름’ 따위가 쓸모없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했던 날들”(유현아 시인, 추천사)이 고요하게 떠오른다. 삶과 죽음을 둘러싼 불길한 징후를 집요하면서도 핍진하게 그려내는 시인의 시 세계에선 “내 이름과 점점 멀어”(「동명이인」)지는 것만 같은 상실감과 “버려진 이름들로 휴지통이”(「소문들」) 넘치고야 마는 비극적 풍경이 펼쳐진다. 이렇듯 위태로운 분위기 속에서 “비가 오면/젖는 것”보다도 “비가 와도/젖지 않는 사실”(「폐소공포증」)이 더 무섭게 느껴지는 것은 일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도처에 널린 “죽음을 목격한” 채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기억”(「원치 않아도 일어나는 일들」)을 예감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는 작지만 분명한 형태를 가진 “세상의 얼룩”(「고고(呱呱)」)으로 규정되며, 김태우는 바로 이 지점을 놓치지 않고 부조리하고도 불합리한 세계에 대한 끈질긴 사유를 거듭한다. 그러니 현실의 불충분함은 인간을 탐구하려는 사색적 모험의 동력이 되며, 이 치열하고도 불확실한 세계는 ‘불면’과 ‘꿈’이라는 망각의 얼굴로 반복해서 형상화된다.
그렇다면 비정한 사회와 유한한 생애를 손에 쥔 우리는 어떻게 삶을 지속할 수 있을까. 시인의 화자들은 그 방법론을 포착하기 위해 사랑에 골몰하는 듯하다. 이 움직임은 의미심장한 결말을 내포하는데, 이들이 “인간은 사랑에 취약한 종족”(「늙은 애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까닭이다. “사랑을 할 때/이별 노래를 들으며/서로가 모르는 이름을”(「내가 모르는 나의 이름들」) 불러 주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사랑의 불가능성을 비롯한 타자와의 불화를 내포하는 한편, 현재의 시도가 실패할지언정 또 다른 가능성이 시작된다는 사실까지도 함축한다. “사랑이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완성”(「벌 3−감정기계」)된다는 속삭임은 ‘우리’가 지금−여기에서 세계와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자체로 유의미함을 내포한다. 그러니 “당신이/특별한/한 사람이 되는 순간”(「시인의 말」)을 기억하고자 하는 시인이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소문들」)라고 선언하는 순간, 더없는 충만함이 피어오르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양병호 문학평론가(전북대 국문과 교수)는 해설에서 김태우 시인이 “실체와 이름의 불일치 현상을 통해 정체성 상실의 현대적 상황을 부각하고 싶”어 하고 있다는 점을 예리하게 분석한다. 무엇보다도 “시인이 인간의 본성, 삶의 가치, 인생의 의미 등을 진지하고 투철한 사색을 통해 직접 검증을 하는 과정이 바로 시집 『동명이인』의 진정한 가치”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한 권의 책을 펼친다면, “깊고 고요하고 적막한 겨울 숲” 같은 풍경 속에서,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갈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또렷한 언어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김태우

대전에서태어나2015년《시인수첩》신인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1부처음본울음의이름은당신
고고
베이비박스
생존일지(?~?)
간성
나+너≠우리
동명이인
나쁜위로
딱지왕
주먹의맛
무용담
폐소공포증
오래된미래의인형극
미아들
소문들

2부불길한이름
호명
내가원한건이게아니었다
벌1
벌2
벌3
벌4
벌5
불청객
기원전고소공포증
원치않아도일어나는일들
환절통
유산
침묵의모양
빨강은잡종
내가모르는나의이름들

3부내가모르는이름
내게너무무거운이야기
비극의후예들
어색한분장으로만나
나만부를수없는노래
늙은애인
이종교배
네안데르탈인세레모니
누가내악몽을키웠나
플라워
거꾸로그린자화상
전당포에가면
간이식당
눈물은슬픔이흘리는몸짓이다
늦은저녁

4부무명
어르신유치원
불면증1
불면증2
악수례
옆집에과일이산다.
행복의나라
빈손
무명배우
몸값
부고문자
꿈값
부당한일
해질녘먹는사탕
반칙한슬픔

해설
불길한존재,인간의본성에관한명상
―양병호(시인,전북대국문과교수)

출판사 서평

시인의말

당신이
특별한
한사람이되는순간,
그순간을
우리잊지말아요.

2023년늦가을
김태우

추천사

골목이많은동네에살던아이였을때내가꾸던‘꿈’들은도대체이골목어디에숨어있을까를생각했다.하루가지나고십년이흘러도골목에서스스로나오는꿈은없었다.아프고견뎌내는나의‘이름’따위가쓸모없어지기를간절히기도했던날들의연속이었다.그래,아이였던나의‘이름들이떨어졌’기를바라며한뼘씩자랐던꿈.슬픔의유래는아마도아이였던시대의꿈이아닐까.김태우의시를읽으면서‘아직일어나지않은기억’을기억한다.시인은그늘을닮은꿈을꾸며걷다가힐끗보이는절망과슬픔을애써지우려하는하염없는이름이다.‘네가붙여준이름’을가지고시인으로살아가는일이란‘서로가모르는이름’을부르는것이다.김태우는이시집을통해흔들리는겁쟁이에게박수를보내고있는것이아닐까.어쩌면아무말도하지않는것이‘아름다운불청객’이한시인의처음을응원하는것이며,이제그늘의슬픔을걷어내려하는첫시집에손바닥의온기를덧대고싶은마음을드러내는것이다.
유현아시인

책속에서

세상의얼룩인당신,울음에서격리된채첫눈물을분실했나요더이상울지못해울음마저배설했나요당신이쏟은세상에는얼룩하나없네요당신의방향에서우리만나요출출한애착이선택한텅빈울음에서당신을찾을게요얼룩이흐려지면좀더울수있을까요당신에게적응하면흔적이될수있을까요세상에서당신을지울테니당신의자국도함께숨겨요처음본울음의이름은당신,잉태한대가는눈물인데아무것도할수없네요차라리세상에서우리가마르면당신의결말을지울게요삭제된세상의얼룩에서,당신이뱉은내가당신을뱉을때까지.
―「고고(呱呱)」전문

나보다늦게작명소에서태어난이름이있었다.
보자기에곱게싸인채
이집저집기웃거리던이름이었다.
한번은학교에서나와다른옷을입고있는
내이름을처음보았다.
친구들은내이름주위에몰려와
내이름을귀찮게했다.
나는내이름을구하려친구들에게다가갔다
친구들은내이름을데리고흩어졌다.
나는내이름과점점멀어졌다.
선생님이내이름을불렀다.
내가일어나기도전에
낯선아이가선생님앞으로걸어갔다.
친구들이손뼉을치며나를흘깃쳐다보았다.
나는내이름을보자기에싼채
선생님과낯선아이옆을
조용히지나교실문을나섰다.
나를잡는이들은없었지만
내이름을연신부르는소리가복도끝까지울렸다.
―「동명이인」전문

비가오면
젖는것은무섭지않아요.
비가와도
젖지않는사실이
무서울뿐이죠.
―「폐소공포증」부분

우리는폐교에모여서로의별명을불렀다굳이서로의이름을부르지않아도운동장에서빈그네가우리를불렀다운동장에는아무도없었다끊어진그네가있었다우리는학교를학교라읽지않았다수업종이울렸다

나는출석부에있는이름들을지웠다처음으로칭찬을받았다버려진이름들로휴지통이넘쳤고칠판에는끊어진낱말들이보였다분필을보자부러진모음들이떨어졌다우리는고개를숙이고서로의이름을생각했다
―「소문들」부분

우리는예쁜옷을입고
절대로찾지않을사진을찍었다.
사랑이이루지못한사랑으로완성되었다.
―「벌3?감정기계」부분

우리는사랑을할때
이별노래를들으며
서로가모르는이름을부른다
밤이앉은골목을홀로걷다
우연히다음생의이름을들었다
그것은부르는사람이없는이름
나도모르고아무도모르는이름
그래서좋은이름
―「내가모르는나의이름들」부분

인간은사랑에취약한종족이다.
(중략)
직감은얼마나울어야가질수있는감각인지
얼마나간직해야벗어날수있는육감인지
인간을사랑한죄가이별앞에서선명해진다

나는이별에가장익숙한족속이다.
―「늙은애인」부분

지금도전당포입구에는긴줄이줄어들지않는다.이시간에도저멀리서그림자무리들이다가와기나긴줄이된다.긴줄은지금까지찾아가지않은그림자다.아직도전당포에가면그앞을기웃거리는그림자가있다.비닐봉지를싣고도출발하지못한자전거들도있다.
―「전당포에가면」부분

눈물없이울어본사람들은
슬플때흘리는몸짓이있다
아무것도
담을수없는몸짓에는
슬픔을달고
떨어지는꽃잎이있다
―「눈물은슬픔이흘리는몸짓이다」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