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되기 연습

나무 되기 연습

$12.00
Description
“썩고 헐고 곪고 나면 새살이 돋을 거야
꽃은 어미의 배를 가르고 나온 모진 슬픔이야”

스프링처럼 탄성 가득한 몸짓
세상의 격랑을 받아치는 호기로운 목소리
2005년 《시와 정신》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고명자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나무 되기 연습』이 걷는사람 시인선 103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대담한 상상력과 짙은 호소력 담긴 고명자의 시는 이번 시집에서 더욱 밀도 있게, 리드미컬하게 독자들의 시선을 가로챈다. 평화는 없고 폭력과 착취가 남발하던 스무 살 무렵 여공 시절의 날을 ‘처녀들의 난’이라는 제하(題下)에 팽팽한 긴장감으로 그려내는가 하면, 자연에 깃들어 생동하는 삶과 죽음의 내연관계를 예리하게 포착해내기도 한다. 고명자는 “독하게 붙어사는”(「장미의 방향」) 존재들의 강인한 활력에 주목하며, ‘가시’를 넘어 ‘환부’를 넘어 봄물 터지는 ‘춤’의 세계로 가겠다고 다짐한다. 그리하여 이 시집 속에서 “휩쓸리면서 함께 휩쓸려 헤쳐 나가는”(「야야, 자갈치 가자」) 자갈치 아지매들의 목소리는 파도 소리마냥 쟁쟁하고, “걷잡을 수 없는 처녀들아/그래,우리 춤추러 가자”(「처녀들의 난 2」) 노래하는 청춘은 비릿한 초록빛으로 우리를 이끈다. 세상의 격랑을 다 받아내겠다는 호기로움이 펄떡 살아 숨 쉬며, 고통조차도 활기로 충만하다. 특히 「야야, 자갈치 가자」에서 “없는 바다 없고/없는 나라 없어”라고 하며, ‘베트남 필리핀 인도 몽골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이주 여성 노동자의 모습을 표착하는 부분에서는 어떤 해방감마저 느껴진다. 정치인도 대통령도 허물지 못하는 국경을 저 의연한 ‘자갈치 아지매’들이 몸으로, 삶으로 허물어 가는 장면은 얼마나 통쾌한가. 얼마나 장엄한가.
우리는 또 이 시집에 놓인 개개 여성의 서사에 주목하게 된다. 평화시장 노동자들을 위해 국수를 삶은 어머니(「국수 2」)가 있고, 일생을 무명실 꾸러미같이 굴러왔다는 김순분 할머니(「김순분 할머니」)가 있고, “내일이라는 수렁”은 모르던 처녀들(「처녀들의 난 3」)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 그리고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연약한 존재에게도 결코 버릴 수 없는 삶의 열망과 고투는 숨어 있다는 자각, “금지를 모르는 상승과 분출과 도약하는 정념”(이명원 문학평론가)이 바로 고명자의 시가 가진 미학이라 할 것이다.
시집 곳곳에는 스프링처럼 탄성 가득한 몸짓, 유연하고 흥겨운 목소리, 슬픔을 넘어선 명랑한 태도가 펼쳐져 있다. 추천사를 쓴 김사이 시인은 이 시집에 대해 “생채기투성이임에도 “내버릴 것 하나 없고, 내버리기 너무 아까워”(「배춧잎 문장」) 삶에 대한 애착을 놓지 않은 시는 애틋하고, 그래서 더 인간적이다.”라고 표현한다.
저자

고명자

서울에서태어나2005년《시와정신》신인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술병들의묘지』『그밖은참,심심한봄날이라』를냈다.

목차

1부불협화음이어서좋아
처녀들의난1
파행
먹이사슬을위한랩소디
야야,자갈치가자
국수1
국수2
손가락열개의구부림과뻗침으로
김순분할머니
낮게허밍으로
처녀들의난2
처녀들의난3
버티컬세상
삼각우유를추억하다
1989.3.노동문학창간호에대한보고서

2부꽃은어미의배를가르고나온모진슬픔이야
귀뚜라미가울지않으려고웃는시월의밤
입동무렵
귀뚜라미가늑골아래에서운다는십이월의밤
늦여름에
황간역에서
쌔그랍다는말
복숭아나무는언제나말이없고
가죽자반이야기
장미의방향
벼라별것들은정말별이되었다
컵라면과나무젓가락
손쉬운바다
나무되기연습
없는사람을위한에스프리

3부넝쿨덤불이슬어놓은거짓말
비누의나날
떼굴떼굴홍옥
귀뚜라미가웃지않으려고우는구월의밤
거기,폐곡선으로남아
죽음을가르쳐준교과서

보수동헌책방골목
금빛퀼트가걸려있는거리
간혹,태풍의그림자로와서
수정동산복도로
그런방한칸
소리가흘러가는방향
코리아는온통코로나
헝겊인형

4부햇볕염불햇볕고해성사햇볕주기도문이필요해
황해도해주여자

짐승의발바닥은진달래꽃빛을닮아
배춧잎문장
고요
귀뚜라미가눈동자속에서운다는십일월의밤
우리의코가점점피노키오의코를닮아갈때
의붓어미의도둑딸
햇볕공원
안개커튼은올올이풀어지고

해설
강인한정념의활력과발산
-이명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