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과 사랑하는 겨울 - 걷는사람 시인선 106

죽은 사람과 사랑하는 겨울 - 걷는사람 시인선 106

$12.00
Description
“우리는 숲에서 종종 피크닉을 열었다
서로의 온몸을 파먹으며
긴 잠에 빠져들기 전까지”

이상하리만큼 아름다운 물성의 향연
물결과 꿈결을 닮은 로맨틱한 세계
2015년 광주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임주아 시인의 첫 시집 『죽은 사람과 사랑하는 겨울』이 걷는사람 시인선 106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전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며 문화와 개인을 연결하는 문화 기획을 다채롭게 선보여 온 임주아 시인은 “겨울의 한가운데서 도망치지 않고, 깊고 깊은 어둠을 오래 바라보고 품다가 마침내 어둠에서 눈의 흰빛을 발견하는”(안미옥, 추천사) 사람이다. 시인 임주아가 골몰해 온 하나의 치열하고 아름다운 세계가 마침내 우리에게로 당도했다.
임주아의 시 세계는 물결을 닮아 있다. 몽환적이고도 환상적인 감각에 기인한 작법은 자아와 세계를 연결 짓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물속은 꿈결 꿈속은 물결”을 닮은 이 세계는 “사랑하는 것과 망가진 것 무너진 것과 돌아선 것”들로 가득하다. 이상하리만큼 아름다운 물성을 빚어내는 마음과 사건이 시집 곳곳에서 눈을 반짝이는 것이다. “이곳의 기묘한 환대 넓고 깊은 밤의 무한한 짙음 느슨한 사랑과 늘어난 마음”을 살피다 보면, 끝내 “잠깐 바람결에 사랑을”(「백행」) 두는 법을 깨닫는 순간에 이르고, 그 방법론이 임주아의 시 세계를 아우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은 언제나 절망과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많은 것을 함께하려 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어두워”(「물속에 빠뜨리면 투명해진다」)지는 순간을 대면하는 일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기에, 임주아의 화자들은 불안을 느끼면서도 “몰래 울다 나올 수 있는 길”(「두 귀는 조금 떨어져」)을 염두에 둔다. 인물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다”(「죽은 사람과 사랑하는 겨울」)라는 의미심장한 진실을 곁에 둔 채 “살고 싶지도 죽고 싶지도 않아 좋다고”(「피크닉」) 생각하면서도 “눈 감으면 엎질러진 빛이 있”(「징조」)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다만 덜 절망하고 덜 미워하며”(「울며 살아난」) 살고 싶다는 소망을 놓지 않는다. 그러니 불안을 꼭 껴안은 채로 울면서도 달려 나가고자 하는 움직임이 곧 사랑의 다른 이름이며, 시인 임주아가 일러 주는 “살아남아 사랑을 돌보”(「폐업」)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인물들이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시 세계에서는 다채로운 마찰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유년기에 겪은 애증의 감정과 그에 기인한 이별의 서사는 “비명인지 환호성인지 모를”(「지각」) 얼굴을 하고 있으며, 사랑은 결국 “서로의 온몸을 파먹”(「피크닉」)는 일과 다름없을지 모른다. 파도에 부서지는 햇살만큼이나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풍경들, 잔혹한 동화 같은 장면이 겹겹이 쌓여 이 세계를 일구어낸다. 이로부터 시작되는 파동이 임주아의 시가 가진 아름다운 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해설을 쓴 양재훈 문학평론가는 “이 시집은 고통 속에 머물고자 하는 마음과 그것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 고통을 즐기는 자신에 대한 두려움 등이 뒤섞여 있는 상황에서 고통 속에 머물기를 선택한 주체 내면의 드라마를 담고 있”음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또한 이 시집을 “불안한 사랑에서 불안을 위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여정의 기록”이라고 정의한다.
이 책을 펼친다면, “성실하게 빛나고/홀로 가라앉”(「산책」)는 자리에 기꺼이 가서 “치열하게 애도하”(안미옥, 추천사)는 한 시인의 마음에 당신도 같이 깃들게 될 것이다.
저자

임주아

경북포항에서태어나대구에서자랐다.2015년광주일보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으며,전주에서책방물결서사를운영하고있다.

목차

1부당신이내처음이야
아오리

복숭아
지각

걷는연습
세탁기소리듣는밤
백행
나를관찰하는장미
산책
호수만들기
무성인
ㅍㅍㅍ

2부생일이적힌종이

토토
포도
사전
2011
죽은사람과사랑하는겨울
묘지에서
옷장
여기서이러시면안됩니다
망종
밤의공터
징조

3부서로의온몸을파먹으며
전단지

피크닉
빈집
하지
저녁의눈빛
좋은사람
부고
이름늦음
김오순전
물결무늬

4부어디선가폭죽터뜨리는소리
폐업
아이와어른
놀이공원
두귀는조금떨어져
밀밭의연인
빗소리
그런날

일일
울며살아난
물속에빠뜨리면투명해진다

해설
불안한사랑에서불안을위한사랑으로
―양재훈(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우리는아오리처럼젊었다얼마나흰지모르는채단단한연두로살았다반으로갈랐을때우리는하나가아닌여러개라는사실을알게되었다하나안에나는하얗게질려있었고하나안에너는까만씨를물고있었다우리는모르는척서로를나누어가졌다사이좋게양손에쥐고언덕으로달리고달렸다서로의머리위에꼭지가자라나는것을바라보면서뒤통수도없이아무말없이돌아선연두들이머리를짓찧으며굴러오고있었다
―「아오리」전문

그러다세탁기앞에까치발을들고더러운양말을꺼내신는아이가떠오르고스무켤레도넘는새양말을머리맡에두고나간사람도툭생각난다

죄책감에사온그양말들이어둑어둑모여한밤중경쾌하게돌아가면누군가돌아오는소리들은듯평온해지고

세탁기초인종울리면주인목소리를알아챈강아지처럼한달음에달려가베란다에솟아오른꽃향기를들이마시곤했다
―「세탁기소리듣는밤」부분

매일살기위해서
매일호수를만드는
매일걷기위해서
매일호수를짓는다
호수에빠져들지않기위해서
호수에서나오지않기위해서
호수를만든다
호수를지운다
호수를완성한다
―「호수만들기」부분

이유없이눈물이날때가있다.마음한구석이부서진느낌이들때가있다.(중략)이상한곳으로질주할것같아마음을다내놓을때가있다.세상이너무커다란구멍속으로사라져뒤쫓아통과하고싶지않을때가있다.아무것도느끼고싶지않아책장을넘길때가있다.(중략)아무와도말하고싶지않아언덕에서굴러떨어진적있다.떨어져맨홀속으로들어간적있다.뚜껑이잘닫히지않아다시닫으러올라간적있다.
―「홀」부분

내가사랑하는사람들은겨울에태어나겨울에죽었다.그래서겨울이좋다.입을다물수있어서.죽은사람은죽은뒤에말을꺼내고등으로벽을치며입술을문다.겨울은웃지않는사람들의것.그런사람들이자주뒤돌아보는곳.

겨울에는주머니가자주터진다.길을잘못든다.잘넘어진다.보고싶어사라진다.보이지않게돌아선다.내가나를던지지않고아무도나를밀지않아서눈이떨어진다.어깨에떨어진사람들이꿈을꾼다.꿈에서성벽보다높은난간을바라본다.내가사랑하는사람들은더이상태어나지않는다.
―「죽은사람과사랑하는겨울」전문

앞숲으로천천히
그가산책을가자고했다
가파른길위를천천히
도착한숲에는작은무덤이
무덤옆에는일인용텐트가있었다
들어가향을피우고촛불을켰다
우리는숲에서종종피크닉을열었다
서로의온몸을파먹으며
긴잠에빠져들기전까지
―「피크닉」부분

같이느낀단한번의즐거움을쪼개고쪼개나빠지려하는마음에이어붙이면조금아물수도있을까.오늘이좋대도내일은모르겠고,앞으로어떻게먹고살아야할지알수없지만.다짐도싫고각오도싫고계획도싫지만.다만덜절망하고덜미워하며살고싶다.(중략)나는매일달라서오랜만에크게웃고떠들며갑갑한껍질을벗고한달에한번신중하게울며살아난사람이될수도있다.
―「울며살아난」부분

많은것을함께하려했던마음이순식간에어두워졌다.모든관계에서하나부터열까지라는건존재하기어려운일이다.다섯이라도가면다행이니그것으로고마워하는게좋다.(중략)어느누구도내마음같을수없고그속도도맞을수없다.그것을인정하게될때까지얼마나많은착오를거름으로착각해야할까.아무것도갖지마.내가좋아하고열성적으로해왔던노릇도끝나는날이오겠지.
―「물속에빠뜨리면투명해진다」부분

*시인의말
쓰는오늘속에존재하며거의혼자
2023년12월
임주아

*추천사
임주아의시를읽으면겨울의한가운데서도망치지않고,깊고깊은어둠을오래바라보고품다가마침내어둠에서눈의흰빛을발견하는한사람이떠오른다.멀리서바라보기만하는것이아니라다가가고함께뒹굴고“흙묻은울음을꺼내입속에넣고”걷고또걷는한사람말이다.임주아의시는“물자국처럼사라지고싶”(「빈집」)은고통과비애속에서도목소리를낸다.그것은‘비명’과‘환호성’이같은무게를지녔음을아는사람의목소리다.쉽게울음을터트리지않고,그렇다고아픔을부정하지도않는다.세상을슬픔으로만뒤덮어보려고하지않는다.임주아의시는‘살아있음’을본다.치열하게애도하며“성실하게빛나고/홀로가라앉”(「산책」)는자리에기꺼이가서,사랑하는사람들을본다.곁에있던사랑을본다.
안미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