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말
한걸음뒤로두걸음앞으로.두걸음뒤로그리고세걸음앞으로.실패를자책하지않고나아가다보면,작은좌절쯤은익숙해질까.걷다보면덜웃고,덜울겠지.감정도무뎌지고매사에머뭇거림도없어질테고.첫발을뗄때의그마음은서서히더러운발자국으로지워질것이다.이발자국을따라걷겠지.돌처럼나는굴러다닐것이다.길을지나는누군가가나를아득한곳에집어던져주었으면,그먼데서길을잃었으면,할때도있을것이다.하나나는잘안다.원점으로되돌아오리라는것을.그러면서도내가어떤‘근사치’에도달하고있다는느낌.그느낌이무섭다.그게말뿐인시밖엔안된다는게섬뜩하다.
2024년1월
책속에서
의자는그의유일한벗
죽으려는뜻마저온몸으로지지해주었지만,
살아보려고뭐라도하려는인간과
죽어버릴까,망설이는인간은한통속이어서
그를위해마련된단하나의의자는다리가부러졌다
―「단하나의의자」부분
엊저녁엔품에죽어가는새를안고
함께호흡을맞추며잰걸음했었지
살릴수있어.살수있어.살거야.
그렇다면나는괜찮은사람인가
나정도면
나정도쓰면
이도시의잉걸불을아름다운점묘화라말할수있나
그런말을가슴에품는다고다시인인가
아,오늘도기어코새는죽지를않는구나
―「남문사거리」부분
인터넷에검색하면나는없고
마주하게되는영엉뚱한사람들
울고웃고때론고개숙이고
또부끄러워지고
경수야,이만큼은해야사람들이알아봐
이름석자를내걸고산다는건
한뉘거리에나뒹굴며세상이알아줄때까지
치욕을짓씹는유치한짓은아닐것이다
보통사람들이눈살을찌푸려도수년째
광장에주저앉아생존권을요구하는보통사람들
이름으로불리지않고저치라며욕들어도
살아내기위해
이름같은건버린이들을모른척지나치면
양쪽으로늘어진흥성이는먹자골목간판들
얼굴을내건주방장의웃는눈과마주친다
야,문경수!쪽팔린줄알아,새끼야,좀제발.
사람들이제이름을소리내부르지않는까닭
알면서도
뭐라도된듯
나아냐고
나들어본적없냐고
같은이름의누군가를불러본다
버려선안될것을버려가면서까지
그게틀림없는내가될때까지
―「문경수」전문
소방차들도하나둘철수하고숯등걸도긴긴잠에빠지는그곳에서
난무엇과싸웠나나이제와고백한다
불앞에서는것보다
불을끄고난뒤
폐허가된현장의암흑과추위를
더무서워하고있었음을
나는진정나자신과싸워본일이없음을
―「화마(火魔)」부분
손잡지마옷을잡아야살점이안무너져
사람이사람일수있도록망가지지않도록
한발다가가면섬뒤로숨는작은무지개같은건아예등져버리고나는돌아서련다
한발짝만움직여도한아름안기는희고맑은빛덩어리쪽으로
사람이사람일수있도록망가지지않도록
가족들은다리위에서먼바다에저마다머금던슬픔을투망하고
깨진무지개,그파편에찢긴옷,윤곽만남은사람을트라포드위로건져올린다
두눈을감는다
사람이사람일수있도록망가지지않도록
―「새연교정수에게」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