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림없는 내가 될 때까지 (틀림없는 내가 될 때까지)

틀림없는 내가 될 때까지 (틀림없는 내가 될 때까지)

$12.00
Description
걷는사람 시인선 108
문경수 시집 『틀림없는 내가 될 때까지』 출간

“눈물을 한 방울 한 방울 모아
마음속 약병에 담아 두었다”

시, 그리고 삶을 향해 울면서도 내달리는 마음
스스로에게 정직한 이의 아름답고 선연한 세계
제주에서 태어나 2019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문경수 시인의 첫 시집 『틀림없는 내가 될 때까지』가 걷는사람 시인선 108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소방관으로 일하며 시를 쓰는 문경수가 가진 “스스로를 정직하게 대면하는 자 특유의 회의가 이토록 선연한”(박소란, 추천사) 57편의 시가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생을 건드리고 지나가는 것들은 때로 짙은 상흔을 남긴다. 고된 삶을 치열하게 겪어내며 “울어도 소용없다는 걸 알게 될 때”(「DNR」), 실은 그것을 알면서도 “울면서 살려 달라고 바짓가랑이를”(「단 하나의 의자」) 붙잡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을 때, 우리는 모두가 각자의 고유한 비애를 안고 살아가는 “고립되어 버린 이들”(「여삼추(如三秋)」)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한다. 그저 “곧은길을 걸어왔다”(「그림으로 가는 사람」)는 믿음에 배반당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더는 나아질 게 없는 절망” 위로 “이보다 좋을 수 없는 기회”(「단 하나의 의자」)를 겹쳐 읽으며 묵묵히 살아갈 뿐. 다만, 삶을 그늘지게 만드는 비극을 대면한 문경수의 인물들은 “그렇다면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남문사거리」)를 자문하고, “나는 진정 나 자신과 싸워 본 일이 없음을”(「화마(火魔)」) 각성한다. 간혹 생과 함께 죽음을 도모하는 마음을 품을지언정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간으로 실존할 수 있는 궤도를 끊임없이 모색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의 인물들에게는 마땅히 맞서야 할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결기가 배어 있다. 눈을 부릅뜨고 불편한 진실을 응시하려는 용기와, 삶을 책임지기 위해 안간힘쓰는 마음까지도. 서럽고 분하며 때로는 헛헛한 “삶의 치부로 내달”리면서도 “기꺼이 엎어질 줄”(박소란, 추천사) 아는 이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질긴 각오가 이 세계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기에, 시인은 “화염 앞에 다가서면서 마주한” 절망 너머로부터 “따뜻하다/환하고 밝은 게/때론 아름답기도 하구나”(「화마(火魔)」)라는 가혹하고도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산들바람만 불어도 공병처럼 울보가”(「탑동」) 될지라도 “이 어중간한 마음으로는/전속력으로 달려야 했다”(「울면서 달리기」)며 처절한 진창 같은 현실의 면면에 산재한 아름다움을 선명하게 길어 올린다.
최진석 문학평론가가 이야기하듯 울지 않기 위해 우리는 달려야 하지만, 그럼에도 달린다는 것 자체가 우는 것이며, 오직 “울면서 달리기”만이 삶을 삶으로 끌어안으면서 동시에 시를 바라고 갈구하며 자신을 던지는 몸짓에 가깝다. 원점으로 되돌아갈 운명을 직감하면서도, 그러나 감히 원점의 원점을 향해 자기를 던지는 것. 죽어 가는 새를 보듬고 시를 마음에 각인하는 일 또한 이 같은 역설을 요구하는 일과 다름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 세계에서만큼은 새를 시로, 그리고 삶으로 발음하는 일이 무릇 자연스럽다. 쓰고자 하는 마음은 스스로에게조차 위축되고 의심당하기 십상이지만,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고자 하는 마음은 결국 우리를 환하게 날아오르게 하리라는 믿음이 이곳에 있다. “세상을 바꿔 본 적이 없”으며 “가만 보면 죽어 가는”, 그러나 기어코 “죽지를 않”(「남문사거리」)고 “언젠가 아름다운 새가 될”(「모라토리엄」) 모두를 비추는 “뜨거운 빛의 일렁임”(「올레길」)이 여기에 있듯이.
“좋은 시는 저마다 날카로운 어떤 것을 쥐고 있다”라는 믿음을 가진 박소란 시인의 말처럼, 타자를 쉽게 연민하지 않기 위해 단정하게 벼려진 마음이 이 세계에 녹아 있다. 이 시집은 타자의 고통을 단정 짓지 않는 방식으로, 다른 누구도 아닌 틀림없는 내가 되는 오롯한 경험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저자

문경수

저자:문경수

제주에서태어나소방관으로일하며시를쓴다.2019년《내일을여는작가》신인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1부온세상이까매지도록서있었다
단하나의의자
탑동
남문사거리
알프라낙스
셔틀런
푼크툼
여삼추
빈중심
모라토리엄
문경수
이번역은합정,합정역입니다
서향
시를씹는밤
화마

2부이사람그때밥은먹었으려나
섬망
말릴수없다면
울면서달리기
버드아일랜드
래커스프레이
장난감강아지해리
스턴트
새연교
그림으로가는사람
건입
사이키델릭
미드나잇선즈
하트세이버
카운트다운

3부천사들은무영등을켜고
세화
네멋대로써라
정명
아침드라마
골든타임
양면코트
DNR
웨어러블캠
퇴원
장지
습성
졸업

5월8일
애월
표식

4부얼룩진꿈으로문앞을서성이면서
초심
미장
때때
4B
자율학습
낡은바다를입고잠들면
옹포
올레길
승희미용실
상생
유전
자유시간
아파트

해설
먼지평,시와삶사이의말들
―최진석(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시인의말

한걸음뒤로두걸음앞으로.두걸음뒤로그리고세걸음앞으로.실패를자책하지않고나아가다보면,작은좌절쯤은익숙해질까.걷다보면덜웃고,덜울겠지.감정도무뎌지고매사에머뭇거림도없어질테고.첫발을뗄때의그마음은서서히더러운발자국으로지워질것이다.이발자국을따라걷겠지.돌처럼나는굴러다닐것이다.길을지나는누군가가나를아득한곳에집어던져주었으면,그먼데서길을잃었으면,할때도있을것이다.하나나는잘안다.원점으로되돌아오리라는것을.그러면서도내가어떤‘근사치’에도달하고있다는느낌.그느낌이무섭다.그게말뿐인시밖엔안된다는게섬뜩하다.
2024년1월

책속에서

의자는그의유일한벗
죽으려는뜻마저온몸으로지지해주었지만,

살아보려고뭐라도하려는인간과
죽어버릴까,망설이는인간은한통속이어서

그를위해마련된단하나의의자는다리가부러졌다
―「단하나의의자」부분

엊저녁엔품에죽어가는새를안고
함께호흡을맞추며잰걸음했었지

살릴수있어.살수있어.살거야.

그렇다면나는괜찮은사람인가
나정도면
나정도쓰면
이도시의잉걸불을아름다운점묘화라말할수있나

그런말을가슴에품는다고다시인인가

아,오늘도기어코새는죽지를않는구나
―「남문사거리」부분

인터넷에검색하면나는없고
마주하게되는영엉뚱한사람들
울고웃고때론고개숙이고
또부끄러워지고

경수야,이만큼은해야사람들이알아봐

이름석자를내걸고산다는건

한뉘거리에나뒹굴며세상이알아줄때까지
치욕을짓씹는유치한짓은아닐것이다

보통사람들이눈살을찌푸려도수년째
광장에주저앉아생존권을요구하는보통사람들

이름으로불리지않고저치라며욕들어도
살아내기위해

이름같은건버린이들을모른척지나치면
양쪽으로늘어진흥성이는먹자골목간판들
얼굴을내건주방장의웃는눈과마주친다

야,문경수!쪽팔린줄알아,새끼야,좀제발.

사람들이제이름을소리내부르지않는까닭
알면서도
뭐라도된듯

나아냐고
나들어본적없냐고

같은이름의누군가를불러본다

버려선안될것을버려가면서까지
그게틀림없는내가될때까지
―「문경수」전문

소방차들도하나둘철수하고숯등걸도긴긴잠에빠지는그곳에서

난무엇과싸웠나나이제와고백한다

불앞에서는것보다
불을끄고난뒤
폐허가된현장의암흑과추위를
더무서워하고있었음을

나는진정나자신과싸워본일이없음을
―「화마(火魔)」부분

손잡지마옷을잡아야살점이안무너져
사람이사람일수있도록망가지지않도록

한발다가가면섬뒤로숨는작은무지개같은건아예등져버리고나는돌아서련다
한발짝만움직여도한아름안기는희고맑은빛덩어리쪽으로
사람이사람일수있도록망가지지않도록

가족들은다리위에서먼바다에저마다머금던슬픔을투망하고
깨진무지개,그파편에찢긴옷,윤곽만남은사람을트라포드위로건져올린다

두눈을감는다
사람이사람일수있도록망가지지않도록
―「새연교정수에게」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