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함이 나를 살릴 것이다 - 걷는사람 시인선 109

막막함이 나를 살릴 것이다 - 걷는사람 시인선 109

$12.00
Description
걷는사람 시인선 109
김수목 시집 『막막함이 나를 살릴 것이다』 출간

“어둠을 뚫고 먼 인가의 불빛이 다가오다 망설인다
이 버스가 닿는 곳이 내일이다”

사랑과 자유를 찾아 떠도는 방랑자
당신과 나는 아직 꾸어야 할 꿈이 많은 사람
김수목 시인의 새 시집 『막막함이 나를 살릴 것이다』가 걷는사람 시인선 109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을 읽는 하나의 이정표로서 표제작 「막막함이 나를 살릴 것이다」를 들여다보면, “항상 무언가를 쥐고 있어야 했던 손이지만/항상 비어 있다고 기억하려 했다”라는 문장이 의미심장하다. ‘막막함’의 사전적 의미는 “의지할 데 없이 외롭고 답답한” 상황을 말하는데, 시인은 막막함을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기보다 오히려 “막막함이 나를 살릴 것이다”라고 긍정한다. 결국 김수목 시인은 인간이 태생적으로 외로움과 어둠을 등에 진 존재임을 인식하되, 사랑과 자유를 찾아 떠도는 보헤미안으로서의 여정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시의 길을 개척해 나간다.
십여 년 전 쓴 시집에서 “낡은 여행 가방을 찾으러 다시 간다면/파랗고 깊은 눈동자의 베두인 주인은/밤하늘의 물뱀자리로/택배 보냈다고 할지도 몰라”(「바그다드 카페」)라고 적었던 것처럼, 그는 여전히 스스로 ‘낡은 여행 가방’이 되어 사막의 밤하늘이 마냥 검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체득해 가고 있는 중이다.
이렇듯 시인은 ‘어둠’을 통하여 도저한 시적 물음을 지속한다. “심해라는 말은 심장 속이라는 말과도 같다 (중략) 어디에 있든 너와 나는 심해라는 짐을 나누어 살고 있구나”(「심해에서」)라는 시구는 그 단적인 표현이며, 시인은 삶에 드리워진 암연(黯然)을 떨쳐내기보다는 그것에 더욱 밀착해 들어가고자 한다. 스스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감으로써 어둠 저편에 반짝이는 ‘불빛-불 비늘’을 발견하려고, 그리고 결국엔 자신이 곧 ‘불빛-불 비늘’이 될 그날을 꿈꾸며 그는 시를 쓰는 것이다.
「야간 산행」에서 주지하고 있듯, 밤 산행을 떠난 그에게 “유일한 기억 방식은 보행”이며, 그는 “몇 번의 넘어짐을 빼고는 밤새워 걷는다”. 야행 길을 나선 자는 온몸의 감각 신경을 곤두세운 채 어둠을 벗하면서 어둠 속 길을 걷는다. 김수목은 그것이 바로 삶의 길이라고 믿는 듯하다.
교사로서 첫 발령을 받아 섬마을 선생님이 되었던 시절(「나의 70년대식」), 희망대공원 아래 남의 집 문간방에 세를 살았(「나의 70년대식」)던 시절, 그리고 자신의 상처를 되새기며 걸었던 숱한 여행지(추전역, 톤레삽과 훈자 마을과 카슈가르…)에서의 뚜벅뚜벅한 행보가 이 한 권의 시집에 녹아 있다.
“갈 곳 없는 나의 청춘도 훔쳐 가라고”(「나의 80년대식」) 부르짖던 날들을 건너와 이제는 “언제부터인지 목걸이는 목에 맞지 않았다/꾸어야 할 꿈이 너무 많아서/어느 사이엔가 뚝 끊어져 사라졌다”(「인정하긴 싫겠지만」)고 말하는 사람. 빛나는 목걸이보다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두 다리를 더 믿고 의지하는 사람. 소박하고 단출한 자연인 김수목의 면모가 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사실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전 세계가 위중하던 시절에도 그는 산티아고 길을 순례하고 돌아온 이력이 있다. 기나긴 길 위에서 정상이 어디인가 가늠해 보는 건 무의미하다고, 나는 아직 꿈을 꾸고 있는 중이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 가슴속에 든 ‘붉은가슴딱새’ 한 마리의 울음을 대신 들려주면서.
저자

김수목

저자:김수목

전남강진에서태어나2000년《문학과창작》으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바그다드카페』『슬픔계량사전』,산문집『지중해를전전하다』등을냈다.

목차

1부누가나의감추어진손을끌어내줄까
심야버스
봄날
아직가만히놓다
긴잠깐
금영노래방
어제는생일이었다
오늘
생각은끝났습니다
그러고싶었던것처럼
막막함이나를살릴것이다
적벽,그아래서
끝은없었다

2부밤의긴침묵이날아다녔다
상사초
일식의하루
부르지못할이름
공모
붉은가슴딱새
셋,동행
저의불찰입니다
빈술병이쓰러져우는시
어두움너머
나의70년대식
나의80년대식
나의90년대식

3부짧은사랑의기록이라고해두자
야간산행
식물학
물푸레나무
입하
가을의구도
사과
표해록
노란선안으로
패턴으로기억해
쑥보다레몬그라스
잉카인들은고향을감자라고불러
심해에서
카슈가르에서한나절

4부꾸어야할꿈이너무많아서
세월
들여다보다
연애고샅길
1월은길었다
직선과사선
스물에서의한밤
재경향우회
골목끝에우리집이있는데
4월은
삼거리버스정류장
인정하긴싫겠지만
한낮

해설
어둠의저편,‘불빛불비늘’의욕망
―고명철(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시인의말

눈을떠보니잊고있었던나의어제가떠올랐다.
어제보다더먼옛날들도차례로떠올랐다.
읽고쓰고걷고사랑했던그긴날들이
늘나와함께했다는걸새삼알게되었다.
살아내는게그랬다.
지구의어느한곳에서
시간의어느한점에서
2024년2월
김수목

추천사

“살아내는모든게적벽”(「적벽,그아래서」)인세상에서그는“외로운이의창가를밝히고싶”(「심야버스」)어소박하나따듯한시의등불을찾아다니는시인이다.그등불을찾으려“한때는비구니가되어세상을떠돌”(「그러고싶었던것처럼」)거나스스로불빛을만들어보려“비공개지하수장고에청춘을처박아두고”살기도했다.어두운밤전철역근처에서만난가난한사람들의힘겨움을견딜수없어슬픔을물어날으는딱새처럼,“붉은갈색의가슴에혼자”,타인의슬픔을담아가는딱새처럼(「붉은가슴딱새」)젊은시절을보내기도했다.그래서“적당히거절하며/적절하게싫은티도내면서”“다음생에는아니더라도한번쯤/멋지게살아내고싶다”(「봄날」)고말한다.그러나시인에게는천성적으로나와너의분리가없어어쩌면“아무것도갖지못하고아무것도할수없었던”(「나의80년대식」)우리들속으로영원히걸어가고있는지도모른다.“심해라는말은심장속이라는말과도같”(「심해에서」)아서그는분리되지않은심해에서심장을나누어살고자한다.그리하여그는“항상무언가를쥐고있어야했던”(「막막함이나를살릴것이다」)우리들에게자신의손이“항상비어있”음을보여주는시인이다.
박형준시인

책속에서

어둠이밤새일렁일때마다불비늘이되어
외로운이의창가를밝히고싶었다

심야버스의낯선실내등이파랗게질려간다
어둠을배경삼아더파랗게질려가는찌든얼굴들

이마가창문에차갑게닿는다
출렁거리며어둠이다가왔다가물러선다

어둠을뚫고먼인가의불빛이다가오다망설인다

이버스가닿는곳이내일이다
―「심야버스」부분

추전역을지나면서
아직오늘이다가지않았다는것과
더기다릴여력이남아있다는것에숨을내쉰다
(중략)
막막함이나를살릴것이다

발부리에차인돌멩이를주워던지며
그리워할사람이없을때가좋았다고
말하려다그만두었다

손이펴지지않았다
항상무언가를쥐고있어야했던손이지만
항상비어있다고기억하려했다
―「막막함이나를살릴것이다」부분

손에넣으면금세부러질듯한몸매와
인기척에놀라그림자까지떠메고사라지는딱새가
그어마어마한슬픔을어떻게물어날랐을까

슬픔은어둠이흔들어깨워
아침이면유리창에기대어
딱새를기다리게하는것
―「붉은가슴딱새」부분

홀로감전되는자동점멸등이식구들의흩어진신발짝들을찾는동안냉장고의불빛이파르스름하게새어나온다벽에붙어있는몇개의포스트잇과메모의흔적들,필요한것은지나갔고잊어버릴것만남았다회전의자의높이를조절하여길게몸을눕힌다.몸의길이는그대로이지만의자는몸이늘어났을거라고믿는다.믿음이곧신념이되는시대여서내몸은늘어나야한다의무적으로감당해야할일의목록이마트영수증길이만큼길다
―「빈술병이쓰러져우는시」부분

지루한한낮,인적드문마을길사이로여자아이가지나가고있었다무심코지나가는아이에게나도모르게아이라이크애플이라고말해버렸다별반응이없이지나치는아이에게다시한번아이러브애플이야라고소리쳐주었다여자아이와스친지꽤많이지난후,기척에뒤를돌아보니아이는뛰어오고있었다은갈색머리카락이춤추며뒤따라오고있었다상기된뺨에호퍼빙하속흑요석같은눈이더욱커지며두팔을쭉내밀어달려오고있었다아이의손바닥에는벌레먹은사과한알이담겨있었다
―「사과」부분

중세유럽에서는감자를관상용꽃으로가꾸어왔지.시체처럼땅에묻어야자라는감자를마녀의작물이라고했겠다.

안데스의중턱에서제각기의색깔로온갖크기와모양을자랑하던감자를떠올렸어.잉카인들은고향을감자라고불러.

싹난감자를꺼냈어.손바닥안에서차가운감자의몸통이만져졌어.춥고척박한땅에서자랐던이력에냉장고속에서도싹을낼수있는건너의자유.독이오른너의싹을싹둑자를수있는건나의의지.
―「잉카인들은고향을감자라고불러」부분

어두워지는여기만큼그곳은밝아졌으면좋겠다가보지못한도시의발음하기어려운이름과늘잊어버려그려야하는국제우편물주소철자는아무리푸념한들거기에있는너의지난함보다더할순없겠지

심해라는말은심장속이라는말과도같다납작한몸과주체할수없는퇴화의기관들이자신의임무를완수하기위해꾸물거리는곳이다가끔씩어쩌다기분좋은날이면깊게심호흡하여한가닥햇살이닿게해주는곳이다어디에있든너와나는심해라는짐을나누어살고있구나
―「심해에서」부분

언제부터인지목걸이는목에맞지않았다
꾸어야할꿈이너무많아서
어느사이엔가뚝끊어져사라졌다
―「인정하긴싫겠지만」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