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걷는사람 시인선 110
김사람 시집 『남자들의 눈은 전쟁을 동경한다』 출간
“눈앞에서 아이들이 죽어 가는데
세상은 그래도 아름답다 말한다”
집으로 가는 길을 잃고 우주를 떠다니는 시인
폭력과 절망 속에서 빙하를 향해 걷다
김사람 시집 『남자들의 눈은 전쟁을 동경한다』 출간
“눈앞에서 아이들이 죽어 가는데
세상은 그래도 아름답다 말한다”
집으로 가는 길을 잃고 우주를 떠다니는 시인
폭력과 절망 속에서 빙하를 향해 걷다
김사람 시인의 새 시집 『남자들의 눈은 전쟁을 동경한다』가 걷는사람 시인선 110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은 총 4장으로 구성된 장시로, 시구절 하나하나가 아포리즘이며 서사의 일부분이다.
최근 우리 시단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장시가 출현한 것 또한 새롭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극사실주의적이며 환상적이어서 독자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시집 1부의 첫 구절부터 이 세계가 얼마나 충격적이고 비정한지 보여 준다. “손목을 긋고 싶다고/아무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나는 병원에 가 보라고/아무 일 아니라는 듯 침묵했다//밤새 심장이/아무 일 아니라는 듯 두근거렸다”.
현실의 비극을 짐짓 모른 척하며 침착해 보려 하지만 밤새 심장이 두근거리는 사람, 지금 우리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보여 주며 시작하는 이 시집에서 시적 화자는 끊임없이 갈등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모두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시대, 그는 이곳에서 애초에 적응하지 못하는 존재이며 감정을 제거하지 못하는 인간이다. 그러나 남성성과 폭력성으로 대변되는 시대에서 기계가 되거나 폭력성에 동화되지 못하면 사회에서는 제거 대상이 된다. 그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거부하지도 못한다. 폭력에 동화되지도 못하고 따듯한 심장을 가진 존재로 타인에게 연민을 느끼며 살아가지도 못하는 존재. 그러한 자아의 갈등이 극에 달할 때 스스로의 기억을 삭제하거나 왜곡하려 한다.
“여기는 어딘가/땅 위에 솟은 기괴한 것들과/허공을 묶은 굵고 검은 줄들”, “무엇이 진짜 기억인지/무엇이 진짜 나인지/모르겠다//이상하다/내 기억 속 세계와는 다르다”(「아무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라고 말하며 자아는 분열한다. 기억이 뒤죽박죽 얽혀 있는 지금 이곳, 지극히 사실적이며 초자연적인 것들이 얽혀 있는 장면들의 배치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으나 결국 발 디딘 이 세계에서 살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으나 생존을 위해 인정해야 하는 초라한 자아에 대한 극렬한 거부반응이다.
임지훈(문학평론가)은 해설 「이율배반의 세계를 주시하는 시」에서 “김사람의 시가 반복하는 것은 바로 시에 대한 최소한의 정의로서의, 자신에 대한 정의의 배반인 셈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반복적인 자기 정의는 계속해서 미끄러짐을 거듭하지만 그것 자체로 의미 있으며 이 행위를 통해 ‘나와 세계는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고 밝힌다.
자유와 폭력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계. 시인 자신의 자전적 모습이 투영된 것으로 보이는 장면들이 곳곳에서 등장하는데 “록은 젊음 자유 낭만이라던/선배들에게 정기적으로 빳다질을 당했다//복종과 질서 속에서 헤드뱅잉을 하며/미래를 규칙적으로 연주했다//우리는 그렇게 어른이 되고/선생이 되어 버렸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계급화된 대한민국의 단면(학교)을 비춘다.
군대 문화가 지배하는 대학에서 록을 연주하는 선배들은 자유의 정신과는 전혀 다른 폭력을 행사하고 젊은 교수는 낡은 책을 읽어 준다. 이 낡은 책의 질서를 벗어나고자 시인은 책을 불태우고 록밴드에 들어간다. 그러나 록밴드는 겉으로는 낡은 질서를 파괴하는 상징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오히려 더 은밀한 폭력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모든 단체에는 폭력의 속성이 존재한다. 소규모든 대규모든 모든 집단은 유무형의 질서를 통해 움직이며 예술의 속성도 마찬가지다. 음악이나 언어도 규칙 속에서 작곡되고 발화된다. 또한 학교는 기존 질서를 파괴하기보다 유지시키기 위해 설립되었으며 그곳에서 시행되는 교육은 가치관을 파괴하기보다 옹호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예술을 통해 그리고 학교 교육을 통해 기존 질서가 지나치게 인간을 억압하며 그 억압이 고조되면 오히려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질서와 자유는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 집단에 기여해야 하는데 교육이라는 억압적 질서 속에서 자유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은 자유를 찾아가기 위한 도구이자 자유를 억압하는 이중적 역할을 수행한다. ‘록’, ‘음악’, ‘언어’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것들은 인간 해방, 사랑을 위한 도구인 동시에 그곳으로 항해하는 데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말로 인해 태어나 말에 짓눌려 살다 말로 돌아가리라”, “말이 모두 사라졌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시인은 이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으며 그래서 독자들에게 말한다. “가르치려 들지 말며/ 배우려 들지 말지니”!
이루기 어려운 꿈은 시 속에서 어떻게 실현될까. 그는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미끄러짐으로써 대상에 다가가려는 것처럼 그는 대상에 끊임없이 다가가려 한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맺는다. “나는 너를 환상한다/가장 누추하고 보잘것없는 고백이/서러운 심장에 뿌리내려/너를 위로해 줄 추억이 될 때까지/바다 품은 빙하를 향해 걷는다”.
최근 우리 시단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장시가 출현한 것 또한 새롭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극사실주의적이며 환상적이어서 독자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시집 1부의 첫 구절부터 이 세계가 얼마나 충격적이고 비정한지 보여 준다. “손목을 긋고 싶다고/아무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나는 병원에 가 보라고/아무 일 아니라는 듯 침묵했다//밤새 심장이/아무 일 아니라는 듯 두근거렸다”.
현실의 비극을 짐짓 모른 척하며 침착해 보려 하지만 밤새 심장이 두근거리는 사람, 지금 우리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보여 주며 시작하는 이 시집에서 시적 화자는 끊임없이 갈등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모두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시대, 그는 이곳에서 애초에 적응하지 못하는 존재이며 감정을 제거하지 못하는 인간이다. 그러나 남성성과 폭력성으로 대변되는 시대에서 기계가 되거나 폭력성에 동화되지 못하면 사회에서는 제거 대상이 된다. 그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거부하지도 못한다. 폭력에 동화되지도 못하고 따듯한 심장을 가진 존재로 타인에게 연민을 느끼며 살아가지도 못하는 존재. 그러한 자아의 갈등이 극에 달할 때 스스로의 기억을 삭제하거나 왜곡하려 한다.
“여기는 어딘가/땅 위에 솟은 기괴한 것들과/허공을 묶은 굵고 검은 줄들”, “무엇이 진짜 기억인지/무엇이 진짜 나인지/모르겠다//이상하다/내 기억 속 세계와는 다르다”(「아무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라고 말하며 자아는 분열한다. 기억이 뒤죽박죽 얽혀 있는 지금 이곳, 지극히 사실적이며 초자연적인 것들이 얽혀 있는 장면들의 배치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으나 결국 발 디딘 이 세계에서 살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으나 생존을 위해 인정해야 하는 초라한 자아에 대한 극렬한 거부반응이다.
임지훈(문학평론가)은 해설 「이율배반의 세계를 주시하는 시」에서 “김사람의 시가 반복하는 것은 바로 시에 대한 최소한의 정의로서의, 자신에 대한 정의의 배반인 셈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반복적인 자기 정의는 계속해서 미끄러짐을 거듭하지만 그것 자체로 의미 있으며 이 행위를 통해 ‘나와 세계는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고 밝힌다.
자유와 폭력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계. 시인 자신의 자전적 모습이 투영된 것으로 보이는 장면들이 곳곳에서 등장하는데 “록은 젊음 자유 낭만이라던/선배들에게 정기적으로 빳다질을 당했다//복종과 질서 속에서 헤드뱅잉을 하며/미래를 규칙적으로 연주했다//우리는 그렇게 어른이 되고/선생이 되어 버렸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계급화된 대한민국의 단면(학교)을 비춘다.
군대 문화가 지배하는 대학에서 록을 연주하는 선배들은 자유의 정신과는 전혀 다른 폭력을 행사하고 젊은 교수는 낡은 책을 읽어 준다. 이 낡은 책의 질서를 벗어나고자 시인은 책을 불태우고 록밴드에 들어간다. 그러나 록밴드는 겉으로는 낡은 질서를 파괴하는 상징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오히려 더 은밀한 폭력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모든 단체에는 폭력의 속성이 존재한다. 소규모든 대규모든 모든 집단은 유무형의 질서를 통해 움직이며 예술의 속성도 마찬가지다. 음악이나 언어도 규칙 속에서 작곡되고 발화된다. 또한 학교는 기존 질서를 파괴하기보다 유지시키기 위해 설립되었으며 그곳에서 시행되는 교육은 가치관을 파괴하기보다 옹호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예술을 통해 그리고 학교 교육을 통해 기존 질서가 지나치게 인간을 억압하며 그 억압이 고조되면 오히려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질서와 자유는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 집단에 기여해야 하는데 교육이라는 억압적 질서 속에서 자유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은 자유를 찾아가기 위한 도구이자 자유를 억압하는 이중적 역할을 수행한다. ‘록’, ‘음악’, ‘언어’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것들은 인간 해방, 사랑을 위한 도구인 동시에 그곳으로 항해하는 데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말로 인해 태어나 말에 짓눌려 살다 말로 돌아가리라”, “말이 모두 사라졌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시인은 이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으며 그래서 독자들에게 말한다. “가르치려 들지 말며/ 배우려 들지 말지니”!
이루기 어려운 꿈은 시 속에서 어떻게 실현될까. 그는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미끄러짐으로써 대상에 다가가려는 것처럼 그는 대상에 끊임없이 다가가려 한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맺는다. “나는 너를 환상한다/가장 누추하고 보잘것없는 고백이/서러운 심장에 뿌리내려/너를 위로해 줄 추억이 될 때까지/바다 품은 빙하를 향해 걷는다”.
남자들의 눈은 전쟁을 동경한다 - 걷는사람 시인선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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