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일찍 죽을 거라 생각했다 - 걷는사람 시인선 111

엄마는 내가 일찍 죽을 거라 생각했다 - 걷는사람 시인선 111

$12.00
Description
걷는사람 시인선 111
김균탁 시집 『엄마는 내가 일찍 죽을 거라 생각했다』 출간

“기억하기 좋은 날들이 사라진 날개깃같이 꿈틀거립니다”

악몽 속을 배회하며 춤추는 언어
조용하고 치열하게 삶과 죽음을 돌고 도는 시
저자

김균탁

저자:김균탁

경북안동에서태어났다.2019년《시와세계》신인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으며,‘글밭’동인으로활동중이다.

목차

1부매일새싹같은악몽이돋아
하얀눈이붉어질때까지
정돈
잔혹동화를쓴작가노트:시즌2
it
사선
해적선
매일새싹같은악몽이돋아
그로테스크
날개깃이없는천사가남긴신의시
물푸레나무가물에잠긴날
기린처럼목이길었던장마

2부무서운날들의연속이에요
시시콜콜한☆☆이야기를써서주머니에넣어두었다
브루누공화국
그림자를갈아입어요
사자

후앙과팜의저녁들,그리고그리운쩐들
삐뚤어지는중입니다
물방울과눈물
눈내리는날눈속에서
발자국과발자국들

3부눈물에젖은꽃은질수없어녹이슬었네
지구별보고서
녹슨꽃
가죽가방공장에서가죽을벗겨만든가질수없는가죽가방
피터팬콤플렉스가필요한이유
우리의이별들을기록합니다
자작나무숲에서길을잃다
꽃같은시절
‘ㅇ’이죽고,사라가떠났다
5리의발자국과9인광고사이의상대성이론
삼투압
dummy

4부무척추의슬픔
없는방
눈이녹아눈물이되는곳에쌓인발자국
뼈와살
떠난이들의이름대신울었다
집오리와들오리의집들이
점,선,면
communism1
communism2
communism3
벌의독백체
소설가지망생K씨의소설론
마지막귀가

해설
브루누의일기
―최선교(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시인의말

고백은언제나따가웠다
혀끝을맴돌다죽어버린말들과
세상에나와숨어버린말들이
무덤을배회하며춤을추었다
죽은내가일어나잃어버린말들을
하나씩끄집어내어끄적거렸다
시가되지못한말들이
목구멍에걸린꽃잎처럼
혀끝에아른거렸다
아직덜무르익은혀가
바닥에떨어져과즙을터뜨리고
따가운햇살에녹아사그라들었다
고백하지못한말들이무덤속에서걸어나왔다
2024년3월
김균탁

책속에서

그가죽었다는이야기를들었을때,무엇을하고있었나?술에취해있었을거다.눈이하얀원숭이를만나주거니받거니되지도않는말을지껄이며웃고있었을거다.아니,어쩌면울었는지도모른다.하지만원숭이의괴성은대체로웃음소리라고하는편이니웃었다고해두자.죽음을위로하기위해서는추락한시간만큼의웃음이있어야최소한의예의,가득찬술잔의술이바닥에닿아흩어질때까지서로의눈을보며울먹이듯웃는건죽음에대한경의의표시,원숭이의손이검게물들어녹아내릴때까지술을마셨을거다.
―「하얀눈이붉어질때까지」부분

엄마는내가일찍죽을거라생각했다.밤낮없이쏟아놓은흔적을지울때면늙은배롱나무껍질처럼생이떨어져나가는것도같았지만죽음의흔적을지우는일은엄마를찾는나의울음인듯익숙해졌다.새벽마다엄마는익숙하지않은모성애로나를흔들어보았다.나는때론늙은할아버지의숨결처럼거칠었고,생고기를잘라입에넣어주던아버지의손처럼눅눅했다.주방에서끓고있던뱀의비명은새벽까지산속을헤매던아버지의발자국처럼주위를맴돌았고,자라의등에서나온다섯개의목은밤새도록꿈틀거리며방바닥을기어다녔다.
―「사자」부분

밤은닿지못한감각들이검게물들어가는시간

아직끝나지않은이별들이무서운속도로쏟아집니다

얼마나많은조각을잘라야먼곳에서부터지쳐간죽음을위로할수있는걸까요

얼마나많은조각을꿰매야가까운곳에서부터잊힌이별이위로를받을수있는걸까요

예고된적도없이사라진사람들을독백처럼떠올리며지금은삐뚤어지는중입니다
―「삐뚤어지는중입니다」부분

이골에서농약을마시고자살한사람이셋입니다.밭너머이어진산의푸른색들이권태롭기그지없어거지같은삶을버린겁니다.삶에이골이난사람들은물대신농약을들이켜고고통에몸부림치다가식도부터위까지녹아호흡을서서히잃어가는겁니다.그건누구의잘못도아닌권태로운녹색들의장난입니다.

지구를쪼갤수있도록커다란도끼를만들어보고싶다는어설픈생각을샛강에흘려보냈다.사구에서몸통만남은사체가떠올랐다는뉴스가간헐적으로흘러나왔다.몸속에피가남았는지궁금했지만죽음이흘러나온다는소식에이골이난사람들,죽음마저권태로운진실이되어가고있었다.
―「지구별보고서」부분

눈물에젖은꽃은질수없어녹이슬었네
로끝나던마주선계절에게자리를내주고
서서히사라진날씨같은문장
그한줄이버릇처럼아파책을찢었다

찢어도다시피어나는꽃잎
낡은청바지의밑단같이허름해진책은
낮열두시무렵뜨겁게달아오른체온처럼날아가고
바람은오와열을맞춰목메어울었다
―「녹슨꽃」부분

구멍에서는기형의기억들이
담쟁이덩굴처럼걸어나왔다
비명을지르고싶었지만
입보다큰구멍에서먼저흘러내린소음
소란을덮어버리고몸을관통해흐느적거리던너
기억속괴물을피해이불을뒤집어쓰고
발바닥이축축해지도록울던날이었다
―「떠난이들의이름대신울었다」부분

젊은노동자가죽었고
추운겨울어린아이가맨발로등교했고
컴컴한방에서오래된사랑을버렸지만
우리는모두침묵했죠
침몰하는선원들의아우성이들렸지만
조용히하지않으면같은죄의늪에빠질까
두려움속에벌벌떨며겨울바람에쓰러진
감나무처럼모가지를꺾었죠
―「벌의독백체」부분

끊이지않는비명이커질때면
온몸을구겨귀를막고싶었다
최후의곡선인듯태초의사선인듯
길게늘어진길을막고웅크린몸으로잠들고싶었다
(중략)
돌아오지못한사람들의끝없는귀가
귀가처량한날이면최초의집으로돌아가
잘못쓴글자들이얼룩질때까지서럽게울고싶었다
―「마지막귀가」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