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5·18 광주민주화운동 44주기‐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는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어떻게 뒤흔드는가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는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어떻게 뒤흔드는가
상부의 명령을 받고 군대에서 ‘충정봉’을 만들어야만 했던 20대의 군인,
국가 폭력에 일조했다는 죄책감에 일평생 자신을 독 안에 가두듯
속죄하며 살아야 했던 한 시민의 다큐멘터리
걷는사람 에세이 25번째 작품으로 오성인 시인의 『세상에 없는 사람』이 출간되었다.
오성인 시인은 2013년 《시인수첩》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그간 오월 광주의 상흔을 담은 시집(『푸른 눈의 목격자』 『이 차는 어디로 갑니까』)을 출간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44주기를 맞는 이즈음에 저자는 끊임없이 왜 ‘오월’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어째서 광주를 말할 수밖에 없는지 지난 시집에서 차마 다 꺼내지 못했던 사연을 밝힌다.
1980년 봄, 상병으로 군대에 복무하던 저자의 아버지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 박달나무 방망이를 만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방망이가 5·18 때 시민을 제압하는 계엄군의 ‘충정봉’으로 쓰였음을 알게 되어 큰 충격에 휩싸인다. 제대 후 대학생으로 돌아갔지만 더 이상 그는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었다. 자신이 아끼던 친구와 선후배 들이 계엄군으로부터 당한 상처를 보며 자신이 곧 가해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는 끊임없이 “나가 죽었어야 했는디… 나가!”라고 절규했다. 국가폭력에 동조했다는 죄책감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고, 그는 지금까지도 속죄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독에 가둔 채로 살고 있다.
오성인 시인은 이 책의 말미에 이렇게 적는다.
“이 글은 곧 내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만 하는 짐이자 충정봉을 만들어 계엄군 손에 쥐여 준 가해자의 자식으로서 광주와 오월 영령들께 드리는 속죄다.”
이 하나의 사연을 놓고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1980년대, 거대한 독재정권의 폭력 아래에서 수많은 시민과 학생과 군인이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었다. 비단 80년대만이 아니다.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는 수많은 무고한 사람의 생명과 영혼을 앗아갔다. (이 책에는 6·25 때 징집을 피했다는 이유로 평생 빨갱이로 낙인찍혀 살았던 할아버지, 광주 출신이라는 이유로 군대에서 가혹행위를 당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저버려야 했던 외삼촌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하지만 몸에 입은 상처도, 정신에 입은 상처도 국가는 제대로 돌봐 주지 않았고, 광주 시민 학살의 가장 큰 책임자는 사과 한마디조차 하지 않고 떠났다. 그리하여 수많은 이들이 치유되지 못한 채로 여전히 신음하며 오늘을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오월의 깊은 상흔을 보듬고, 평화를 염원한 광주항쟁의 정신을 계승하고 확장하려는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다. 오성인 시인은 출간을 앞두고 “이 책이 어떤 도화선이 되어 발포 명령자 등 여전히 지지부진한 오월의 진실이 밝혀지고, 가해자들의 사죄가 이루어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이 글은 거창한 역사 기록도 아니고 흥미진진한 소설은 더더군다나 아닌, 그저 내 아버지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 모든 우리네 아버지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동안 미디어를 통해 접했던 광주 5·18이 크고 넓은 강의 본류라면, 이 이야기는 본류 주변에 형성되어 흐르고 있는 자잘한 지류라고 할 수 있다. 사소하고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이 어떻게 역사로 편입되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늦은 고백」 중에서
국가 폭력에 일조했다는 죄책감에 일평생 자신을 독 안에 가두듯
속죄하며 살아야 했던 한 시민의 다큐멘터리
걷는사람 에세이 25번째 작품으로 오성인 시인의 『세상에 없는 사람』이 출간되었다.
오성인 시인은 2013년 《시인수첩》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그간 오월 광주의 상흔을 담은 시집(『푸른 눈의 목격자』 『이 차는 어디로 갑니까』)을 출간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44주기를 맞는 이즈음에 저자는 끊임없이 왜 ‘오월’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어째서 광주를 말할 수밖에 없는지 지난 시집에서 차마 다 꺼내지 못했던 사연을 밝힌다.
1980년 봄, 상병으로 군대에 복무하던 저자의 아버지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 박달나무 방망이를 만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방망이가 5·18 때 시민을 제압하는 계엄군의 ‘충정봉’으로 쓰였음을 알게 되어 큰 충격에 휩싸인다. 제대 후 대학생으로 돌아갔지만 더 이상 그는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었다. 자신이 아끼던 친구와 선후배 들이 계엄군으로부터 당한 상처를 보며 자신이 곧 가해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는 끊임없이 “나가 죽었어야 했는디… 나가!”라고 절규했다. 국가폭력에 동조했다는 죄책감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고, 그는 지금까지도 속죄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독에 가둔 채로 살고 있다.
오성인 시인은 이 책의 말미에 이렇게 적는다.
“이 글은 곧 내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만 하는 짐이자 충정봉을 만들어 계엄군 손에 쥐여 준 가해자의 자식으로서 광주와 오월 영령들께 드리는 속죄다.”
이 하나의 사연을 놓고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1980년대, 거대한 독재정권의 폭력 아래에서 수많은 시민과 학생과 군인이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었다. 비단 80년대만이 아니다.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는 수많은 무고한 사람의 생명과 영혼을 앗아갔다. (이 책에는 6·25 때 징집을 피했다는 이유로 평생 빨갱이로 낙인찍혀 살았던 할아버지, 광주 출신이라는 이유로 군대에서 가혹행위를 당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저버려야 했던 외삼촌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하지만 몸에 입은 상처도, 정신에 입은 상처도 국가는 제대로 돌봐 주지 않았고, 광주 시민 학살의 가장 큰 책임자는 사과 한마디조차 하지 않고 떠났다. 그리하여 수많은 이들이 치유되지 못한 채로 여전히 신음하며 오늘을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오월의 깊은 상흔을 보듬고, 평화를 염원한 광주항쟁의 정신을 계승하고 확장하려는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다. 오성인 시인은 출간을 앞두고 “이 책이 어떤 도화선이 되어 발포 명령자 등 여전히 지지부진한 오월의 진실이 밝혀지고, 가해자들의 사죄가 이루어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이 글은 거창한 역사 기록도 아니고 흥미진진한 소설은 더더군다나 아닌, 그저 내 아버지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 모든 우리네 아버지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동안 미디어를 통해 접했던 광주 5·18이 크고 넓은 강의 본류라면, 이 이야기는 본류 주변에 형성되어 흐르고 있는 자잘한 지류라고 할 수 있다. 사소하고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이 어떻게 역사로 편입되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늦은 고백」 중에서
세상에 없는 사람 : 80년 오월을 거쳐 간 어느 시민의 이야기 - 걷는사람 에세이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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